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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9-14
열정이 있는 삶 / 박봉수 목사
지난 주간에 전남 광양을 다녀왔습니다. 회사 간부이신 한 장로님의 안내로 광양의 제철소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정말 놀랐습니다. 그 규모가 여의도 4배가 되고, 순 이익이 연간 2조고, 6시그마 운동으로 유리알처럼 투명한 경영을 이루어 냈다는 등 정말 상상을 초월할 만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제철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철강석을 녹이는 고로입니다. 이 고로는 한번 불을 붙이면 고로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불을 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약 15년간 하루 24시간 계속 불을 붙인다는 것입니다. 한번 불을 끄면 고로 안의 녹던 철강석이 굳어서 폭탄으로도 잘 처리가 안 된답니다. 그래서 24시간 3교대로 15년간 계속 쉬지 않고 불을 붙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장로님 설명이 이 고로의 불이 제철소의 심장이라는 것입니다. 이 불이 꺼지면 고로도 못쓸 뿐 아니라 제철소도 all stop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모두 예외 없이 마음의 고로에 불이 붙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열정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축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무려 2만 번의 실험을 했답니다. 축전기에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 마음이 축전기에 불 붙어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을 무려 10년에 걸쳐 그렸습니다. 워낙 그 작품에 몰두해서 하루 종일 먹는 것조차 잊어버릴 때가 많았답니다. 그의 마음은 이 최후의 만찬으로 불 붙어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불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열정이 불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 마음의 불이 꺼지면 우리 인생은 불 꺼진 제철소 고로처럼 멈춰버리고 말 것입니다. 마음속에 열정이 식으면 우리 인생은 파산되고 맙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심령이 불붙어있습니다. 그 심령에 열정이 넘칩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가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10절과 14절에 보면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답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다시 말하면 “내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불이 붙어있사오니...” 그런 뜻입니다. 자기의 심령에 열정이 불 일 듯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의 상황은 영적으로 너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악한 왕후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일 때였고, 나라 안에 성전 제사는 무너졌고,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우상 제사가 극성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기를 죽이려고 찾고 있는 아합 왕에게 달려갔습니다. 죽음을 무릎 쓰고 나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 제사장들과의 영적 전쟁을 선포합니다. 850:1이라는 누가 봐도 불리한 싸움을 자청하고 나섭니다. 그 심령이 불붙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합 뿐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열정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불을 붙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우선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불을 붙여주십니다. 살전 2:4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부탁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깨닫는 사람들 그 마음에 열정이 일어납니다.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 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힘써 전하세” 감격하며 심령에 불이 붙어 충성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성자 하나님 우리 주님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 마음에 불을 붙여주십니다. 바울은 고전 5:13-4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주님께서 사랑으로 우리에게 강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그 큰 사랑을 깨닫는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불붙기 시작합니다. 그 큰 사랑을 마음에 새긴 사람들은 그 마음의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불을 붙여주십니다. 계 1:10을 보면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을 감동하시면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집니다. 불이 붙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으면 열정이 식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멀어지면 열정이 식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아예 하나님 앞에서 떠나가면 열정은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우리의 마음에 열정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열정을 갖되 올바른 곳에 열정을 불태워야 합니다. 엉뚱한 곳 잘못된 곳에 열정을 불태우면 안 됩니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열정이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남편의 잘못된 애정 행각에 대한 열정이 가정에 큰 고통을 남깁니다. 개인의 잘못된 취미나 이단에 대한 열정이 그 인생을 망칩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열정을 가져야 할까요?
1. 하나님께 대한 열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먼저 하나님께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대하 1:6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솔로몬이 왕이 되어 저 유명한 일천번제를 드린 사건에 관한 말씀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자마자 신하들을 이끌고 여호와의 회막 앞으로 나가 제사 드리는 일부터 했습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드린 번제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일천 희생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한 번의 번제는 하나의 제물이면 족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천 마리의 제물을 드린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천 번의 번제를 드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의 번제에 제물을 천 마리를 바쳤다는 것입니다. 자세한 기록이 없어서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유추해 보면 제단이 여러 개 있어서 동시에 제물을 불태울 수 있는 형편은 못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마리씩 불 태웠다면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요? 하루에 30마리를 태웠다고 해도 한 달은 넘어 걸렸을 것입니다. 왕이 만사 제쳐놓고 제사 드리는 데 이렇게 여러 날을 보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솔로몬의 하나님께 대한 열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제사장이나 종교지도자들의 청이 있어서 한 일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그가 자원해서 결정한 일입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대해 불붙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렘 29:1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
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되 전심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죽기 살기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천사가 환도 뼈를 부러뜨려도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7번이나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열정으로 불 붙어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기도하는 일에 생명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크게 쓰십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정이 불타기를 바랍니다.
2. 사명에 대한 열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사명을 받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한 달란트 받았거나 두 달란트 받았거나 다섯 달란트 받았거나 모두가 다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달란트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사명 받은 사람들입니다.
행 20:23-4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그 어떤 어려움, 그것이 죽는 일이라고 해도 물러서지 않고 헌신하겠다고 결단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에 대한 바울의 그 열정입니다.
에 4:14 이하를 보면 에스더가 외삼촌 모르드개의 말씀을 듣고 자기의 사명을 깨닫습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자기가 왕에게 나아가 자초지종을 고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이에 에스더가 비장한 각오를 전합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에 대한 에스더의 그 열정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영적 지도자 존 낙스는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겠나이다” 미국의 저 유명한 부흥전도자 화이트필드는 이렇게 외쳤답니다. “나에게 영혼을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 영혼을 가져가시옵소서.” 맡겨주신 사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토하는 사자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 열정으로 죽음도 무릎 쓰고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이런 열정 때문에 역사가 변합니다. 이런 열정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이런 열정 때문에 교회가 부흥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명에 대한 열정이 불붙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일에 대한 열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이 세상에 삽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이 땅에서 일해야 합니다. 농부는 농사를 지어야 하고, 직장인은 근무해야 하고, 가정주부는 가사 일을 해야 하고, 학생은 공부해야 합니다. 이 일에도 성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땀을 흘려야 합니다.
세계적인 기업 코카콜라는 아사 캔들러라는 분이 창업을 했습니다. 원래 이분은 알콜 중독자였답니다. 의지가 약해서 번번히 금주에 실패했습니다. 아내가 이 분을 위해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귀가하고 있을 때 강열한 마음의 소리를 들었답니다.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이기는 사람이 성공한다” 집에 와보니 그 시간 아내가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캔들러는 아내의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금주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업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합니다.
작은 수입에도 철저하게 십일조를 하면서 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업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고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코카콜라만 생각하고 코카콜라만을 말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성공의 비밀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 혈관 속에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코카콜라고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그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청소년들이 받고 싶어 하는 상 가운데 [전미 과학경시대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니어 노벨상이라고도 하는데 대통령이 직접 시상할 뿐 아니라 명문대학 입학자격이 주어지는 상입니다. 몇 해 전에 한 학생이 ‘면역체계 연구’로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상 소감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상을 받으려고 연구를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제 여자친구가 병에 걸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친구를 낫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병을 연구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이렇게 좋은 결과가 생겼습니다.
이 학생은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에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친구를 그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는 그 마음이 채찍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밤을 새우며 연구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실험을 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곳을 다니며 자료를 찾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학생들이 공부에 성공하려면 열정이 필요합니다. 사업하는 분들도 사업에 성공하려면 열정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일이든지 성공하려면 열정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보면 열정의 사람 엘리야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자기 혼자입니다. 도저히 자기 혼자의 힘으로 자기 앞에 놓인 대적을 물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을 때 여전히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비록 내가 도망치고 있고, 지치고 영적 침체에 빠져 있지만 아직도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붙잡으셔서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다시 그는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정이 있더라도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열정이 있더라도 앞 뒤 좌우 길이 막혀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고 그래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열정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그 불이 다시 일어날 불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불씨가 있어야 거기에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불씨를 쓰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제철소처럼 고로가 있습니다. 그 고로에 불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식으면 우리 인생에 갖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이 꺼지면 우리 인생은 그야말로 파산이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열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정, 사명에 대한 열정,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