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의 상대를 가리지 말라.
부처님은
보시의 상대를 가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죽은 후의 몸에 대한
애착을 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계 제일의 안구기증 국가는
불교국가인 스리랑카라고 합니다.
자국내의 필요를 다 채우고도 남아 연간 3만 건 정도를
외국으로 보내줄 정도로 안구기증이 활발하다고 합니다.
보살의 삶을 사는 불교인들은
남을 기쁘게 하는 보시행에서 더욱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보시普施는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인데,
보시普施의 상대를 평가하고 나눈다면,
하나가 되는 사랑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평가하고 따지는 동안 보시할 기회가 사라집니다.
보시바라밀다시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항상 끊임없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내놓는 사람’과 ‘내놓을 만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집안에도 내놓은 자식이 있고,
마을에도 내놓을 사람이 있지요.
좋은 말로 해서 내놓은 사람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어쩔 수 없는 개망나니입니다.
말도 안 통하고,
타일러도 소용없는 사람이라 내놓았다고 말합니다.
면전에 욕은 안 하더라도
뒤돌아서는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 반면에 내놓을만한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람입니다.
행동과 말이 점잖고,
약속을 꼭 지키며 사람들과 화목한 사람,
그런 사람은 어디에 내놓아도 믿음직스럽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자님들은 당연히 내놓아도 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지키는 사람,
항상 깨어 있는 사람,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
항상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 애쓰는 사람,
자기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밖으로 보여 지는 행동거지와 말이 다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뚜렷이 두각을 나타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존경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중국 삼국 시대 오나라에는 여몽이라는 장수가 있었습니다.
여몽은 힘세고 용감하며 충성심도 깊었지만,
무기를 들고 싸우는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오나라 왕인 순권은 장수들과 전략을 논의하다가
여몽의 무식함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힘이 좋으니 창칼을 휘두르는 것은 잘 하지만,
병법을 모르니 적의 계략에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하듯이
장수가 어리석으면 그 밑에 있는 병사들이 괴로운 것입니다.
순권은 여몽에게.
비록 늦기는 했지만 학문에도 힘 쓸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여몽은 손권의 충고를 듣고 직시 공부하였는데,
여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기억력이 감퇴되는데,
여몽은 밤잠을 자지 않고 노력함으로써
그 불리함을 이겨냈습니다.
그 결과 그의 공부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였습니다.
오나라 군대의 최고 지휘관은 노숙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여몽을 만나
군사적인 중요한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몽의 견해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폭넓은 식견과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노숙은 이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던
무식한 여몽이었던가 하고 놀라고 말았습니다.
노숙은 너무나 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내가 알던 그 어리석덕 여몽이 맞소?”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비가 서로 헤어져 사흘이 지나면
곧 눈을 비비고 상대해야 할 뿐입니다.”
사별삼일 즉당괄목상대
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
바로 이 일화에서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서로 며칠을 보지 못하는 중에도
학문을 힘써 몰라보게 상취할 수 있으므로,
눈을 비비고 새롭게 바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정된 견해를 가지고 사물을 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뽕나무밭이 바다가 되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은 자연보다 더 발전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일화는
다른 사람을 새롭게 보라는 뜻만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은
나 자신에게 돌이켜 생각해봐야 하는 고사성어입니다.
그러면 날로 달라지고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자신을 길러야 합니다.
그것이 불자님들에게는 수행입니다.
그런 사람이 보살菩薩입니다.
중생으로부터 부처님을 향해 가는 사람,
부처님의 일을 대신 해 주는 사람,
보살이야 말로 불자들이 모범으로 삼고
또 스스로 되어야 한다는 존재입니다.
이웃의 고통을 보고,
고통을 자기 일로 알고,
가슴 아파 하고 도우려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불자고 보살입니다.
우리는 늘 이 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2024년 04월 18일 오전 09:06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雲月野人 진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