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잡샀니껴?. . . . . . " "어딜 그리 급히가시니껴?" 며칠 봄비가 내리다 날씨가 화창하게 갠 1965년 봄 어느날 오전, 아침밥먹은 설거지를 서둘러 마치고 먼저나가계신 아버지를 돕고자 들로 향하는 어머니, 나는 그날 국민학교가 오후반이라 잠시 들에 들렸다가 가려고 어머니와 동행하였는데, 삽작을 나와 몇걸음이면 동네어귀에 다다르는데, 당꼬바지에 체크무늬 남방, 도리우찌 모자,그리고 뿔테안경, 마치 땅딸이 "이기동"을 닮은 아니 나까무라(中村) 일본형사를 닮은 중년의 사내가 한손에 회초리 비슷한걸 들고 우리의 길을 가로막았다.
"우에 이레니껴?. . . ." 어머니의 물음에 "도가서 나왔니더. . ." 그는 힘주어 말했는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한참을 뜸들인 어머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디베보소. . . ." 하며 돌아서는데 나는 뭔가가 잘못되고있슴을 감지할수있었다.
이대화만 들으면 뭐 간첩들의 접선신호 같기도하니 통역을 아니하고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을것같다. "도가"는 즉 술도가 (양조장)이며 이는 밀주단속을 나왔다는 이야기이며 (당시 양조장에서는 사비로 밀주단속요원을 고용하여 적발시 성과급제로 수당지급) 그의 협박에 마지못한 어머니의 허락인데 나의 생각에는 이미 어머니의 표정이 "자인서"이며 그계통에 물을 먹고있는 그가 이를 간파하지 못하는일은 없을것이며 그당시 그지방의 순하디 순박한 피검자들은 그 행동만으로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수없었다.
어머니의 허락이 체떨어지기도전에 그는 행동을 개시하였는데 마루밑, 부엌, 부엌에서도 땔감 쌓아놓은곳, 광, 외양간, 두엄더미, 장작더미, 잿간(땔감으로 취사, 난방을하니 나오는 부산물, 나중에 비료로 사용) 돼지우리, 뒷간, 담배건조실 등등 인정사정없이 때로는 들고있는 회초리 비슷한 나무가지로 찔러가며 수색을 하였는데 좀처럼 적발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우리집 수색은 온동네에 소문이 다나서 만일에 헛손질에 그치면 그는 우리동네에서는 아무소득없이 고개숙인체 떠나야만 할처지이니 얼굴이 붉그락, 푸르락하며 행동반경을 넓혀갔다. 텃밭, 뒷산등등 반경 100m까지 싹싹 이잡듯이 훓다가 드디어 뒷산 장작더미에서 어머니가 담그어놓은 막걸리 항아리를 들고는 개선장군처럼 내려왔다.
"이게 뭐이껴?. . . . ." ". . . . . . . . . " 아무말없이 부들부들 떨고 서있는 어머니께 의기양양하게 항아리를 들어보이며 조금은 미안한지 "두말도 넘는것 같은데요 시되(3되)로 적을테니 그리아소. . . . ." 하며 선심을 쓰면서 밀주단속적발서에 어머니의 지장찍기를 강요하는데 어머니는 얄팍한 인정씀에 감사하며 고개숙여 지장을 찍으시는데. 이모습은 마치 대법관앞의 범법자 모습이며 나의 70평생에 그런 치욕의 순간은 두번다시생각조차 싫다.
그당시의 밀주단속은 일정시대부터의 연속이었으며 주세로 손쉽게 세금징수를 하며 또 아까운 양곡이 술로 낭비됨을 막기위함인데 이건 어디까지나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보리고개가 기승을 부리던 그시절 어느누가 풍족하게 술 담그는데 곡식을 소비할것이며 또 농주한잔이 노동력을 증진시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걸 간과한바다.
또한가지 TV나 소설속에서는 어릴적 술심부름 즉 주전자들고 읍내 양조장에 가서 막걸리 받아오라하면 가지고 오다가 홀짝 홀짝 마시다가 어떻게 되었다는 등등인데 이는 전부 허구이다. 한번 살펴보자 우리집에서 양조장까지는 짜끼산 모랭이 돌아 검정고무신발끌고 터벅터벅 걸으면 1시간반이나 걸리는 십리길이며 어쩌다 차한대 지나가면 하얀먼지 때문에 5분은 족히 제자리에 서있어야하는 신작로길을 가야한다. 거기에 더하여 식수인원이 몇명인데 주전자로 해결될일이 아니며 왕복하면 족히 한나절이상이 소요되는데 그러면 일은 누가하고 소는 누가 키울것인가? 애초에 방향설정이 잘못되었고 첮단추도 잘못 끼워진 그냥 어거지에 강요된 상황이다.
각설하고 코로나19 때문에 한2년간 말그대로 처삼촌묘 벌초하듯 때웠던 어머니산소를 이번엔 손자, 증손까지 거느리고 확실하게 벌초한후 반듯한 성묘상을 차리고 모두들 엎드렸다. "아버지 빨리 기침하세요. . ." 부복(俯伏 - 조용히 조상께서 제사상을 드시게 장시간 엎드려 기다림 -연장자의 헛기침 신호에 일어난다) 하고있는 동안 상념에 젖어 제때 신호를 하지 않았더니 뒷줄의 나의 큰아들이 엉덩이를 살짝 찔러 마지못해 "어허허험. . ."하니 다들 기다렸단듯 일어난다. 이어 순서에 의거 철시(撤匙 - 상위의 수저를 내려놓음) 국궁(鞠躬 - 존경의 뜻으로 서서 몸을 궆힘) 사신(辭神 - 신위에 2번절하고 기제를 끝내는 예) 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데 음복(飮福) 때가되니 다들 둘러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우리 할머니를 잘 이해하지만 뭐 그렇게 까지 하셨어요, 벌금이 500원이라면서요. . . . ." 알듯 모를듯 미소지으며 큰아들이 한마디 거드는데 글쎄 "일금오백원" - 지금은 너무나 가치가 떨어져 지폐조차 발행되지않고 학이 양각된 주화한잎 딸랑 . . . . . 풍요하고 부족함없이 자란 너희들이 그 질곡의 세월을 어찌 알리요. . . 국민소득 130$ 에 전세계 200여국가중 아프리카 후진 몇개국과 국민소득 꼴찌를 도토리 키재기하던 최빈국이 세계 10위 경제대국에 35,000$ 국민소득을 자랑하게 되기까지 겨우 반세기가 조금더 필요하였는데 그거려고 우리가 얼마나 피땀을 흘렸는데 너희들은 아느냐? 그당시의 500원이 지금의 500만원 아니 그이상의 가치가 있었으며 그 벌금의 참담함을 너희들은 모를것이다. 이는 마치 프랑스 대혁명때의 "마리 앙투아네트" 전설이나 밥이 없으면 라면먹으면 되지않느냐란 동문서답과 무엇이 다르랴?
"鄭順男" 평생 ㅇㅇㅇ의 처, ㅇㅇ댁, ㅇㅇ어머니, ㅇㅇ할머니, 심지어는 족보상에도 ㅇㅇ配 淸州鄭氏 父 在成 이라되어 있는 우리 어머니의 이름, 생존해 계신다면 100세를 훌쩍 넘기셨을테지만, 70인 아들이 이제까지 지켜본바 종이에 쓰여있는 이름은 이 벌금고지서가 유일하다. 물론 이는 우리 어머니만의 일이 아니고 동시대를 산 모든 어머니가 해당되겠지만 질곡의 역사를 오로지 자식만을위하여 살다가신 우리 어머니 "鄭順男" 여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졸필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2022. 8. . 장 세 규 재배
후기 : 밀주단속원의 횡포는 당시 사회문제화 까지 되었으며 또 사칭하는자가 계속나와 농민들을 갈취 하였었다 그들의 서슬퍼럼에 감히 신분증 제시요구는 입도 벙긋 못하였으며 또 문맹률이 높아 그 효과가 그리 크지않았다 일례로 군대제대증 가지고 공갈친 우스게소리가 회자되던 시절이었으니 정말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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