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항문(大腸肛門) 건강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잠을 잘 자고, 시원하게 배설(排泄)하는 행위는 우리 인간의 원초적인 즐거움이다. 특히 배변(排便)은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에서 쓰고 남은 찌꺼기를 몸 밖으로 배출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변비(便秘)가 생기면 장에 쌓인 노폐물이 부패하고 독소가 발생하여 복통, 두통 등 여러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쾌변(快便)은 우리 몸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다.
쾌변을 위해서 매일 식이섬유(食餌纖維)가 풍부한 음식물과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여야 한다. 식이섬유를 하루 25-30g씩 섭취하도록 권장한다. 식이섬유는 장(腸)내의 지방 흡수를 저하시키며 대변을 부드럽게 하여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시킨다. 또한 식이섬유는 대장(大腸)의 내용물을 흡착하여 배출되므로 굵고 시원한 쾌변을 도와주고 체중감량에도 도움이 된다.
변비는 근육량이 적고 운동량이 부족한 여성들이 많이 겪는 질환으로 알려져 왔지만 현대에 와서는 누구나 겪는 가장 흔한 질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따라서 변비 증상을 겪어도 가볍게 여기고 변비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변비약은 장의 연동(聯動) 운동을 활발하게 해 주어 체내에 축적된 노폐물을 배출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변비약을 과다 복용하면 오히려 대장운동을 억제해 변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장기간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사람의 배변 횟수는 나이에 따라 다르다. 즉 생후 6개월 미만으로 모유(母乳) 수유를 하는 유아(乳兒)의 정상 대변 횟수는 2주에 1회에서 하루 12회까지 아이에 따라 다양하며 분유(粉乳)를 먹는 유아는 하루 1-7회 정도다. 대변 횟수는 자라면서 줄어들어, 만 4세가 넘으면 성인처럼 하루 1회 정도 본다. 아이들은 배변하는 습관이 들지 않아 대변을 참는 경향이 있어 변비에 잘 걸린다. 따라서 이유식(離乳食)을 할 때부터 식이섬유, 유산균 함유 식품을 충분히 섭취시켜서 변비를 예방해야 한다.
치핵(痔核) 등 항문(肛門)질환은 대변을 볼 때 오래 앉아 있거나 강한 힘을 주는 등 잘못된 배변습관으로 인해 발생한다. 강한 힘을 주면 울혈(鬱血)이 일어나고 항문에 부담을 준다. 쭈그리고 앉는 동양식 변기에서 대변을 볼 때 항문에 힘이 더 많이 가해지므로 가능하면 서양식 변기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압력이 가해지는 시간도 길어지므로 여러 항문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이에 화장실에서 신문, 책 등을 읽지 말아야 하며, 변기에 5분 이상 앉아 있는 것을 피해야 한다.
매일 대변을 보면 변이 부드러워지며, 아침식사 전보다 식사 후에 용변을 더 잘 볼 수 있다. 대변이 마려울 때 참는 것은 변비의 원인이 되므로 변의(便意)를 느끼면 곧 화장실에 가는 것이 좋다. 용변 후 항문에 남아있는 대변 찌꺼기는 항문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휴지보다는 가능하면 ‘비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비데의 수압을 너무 세게 또는 너무 오래 사용하면 항문의 기름샘과 조직 등에 영향을 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배변 후 따뜻한 물로 목욕 또는 사워를 하면 항문을 청결히 하는 것과 더불어 혈액순환을 도와 치질(痔疾)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치질의 주된 원인은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한 변비, 설사 등과 같은 배변 장애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올바른 식생활을 하여야 한다.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고 하루에 물을 8잔 이상 마시도록 한다. 김 다시마 등 해조류, 감자 고구마 등 구근류, 콩 잡곡 등 곡물류, 당근 사과 배 등 채소와 과일에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김치나 된장 등 발효식품(醱酵食品)은 변비 예방과 해소에 도움이 된다. 김치나 된장을 먹기 싫어하는 어린이는 장내 유산균(乳酸菌)이 감소해 배변 기능이 약해질 수 있으므로 유산균 제품을 별도로 먹이면 좋다. 그러나 유산균은 종류가 다양하므로 안정성이 확인된 비피도박테리아나 락토바실러스가 함유돼 있고 이중으로 코팅해서 장 도달률이 높은 제품을 먹이면 더 효과적이다. 유산균 제품은 장(腸)내에서 유산과 초산을 생성하는데, 이러한 성분이 딱딱해진 대변을 부드럽게 만들어 배변을 원활하게 해 준다.
장시간 같은 자세로 골반 쪽에 울혈을 조장하는 낚시, 운전 등과 승마나 자전거 타기와 같이 항문에 자극을 주는 운동, 중력과 반대하는 역도와 같은 운동들은 조심해야 한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 연구팀이 4만 3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잦은 설사와 구역질을 겪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두통 발병률이 높았고, 두통 증상 횟수가 증가할수록 위장(胃腸)질환이 자주 나타났다.
요즘 한국 의료계는 ‘전문병원’의 전성시대다. 특정한 질병이나 전료과목만 다루는 전문병원(專門病院)이 대학병원(大學病院)보다 앞선 진료 환경을 갖추고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전 동네병원 위주였던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는 전국을 시ㆍ군ㆍ구 단위의 142개 중진료권(中診療圈)으로 나누고, 환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진료권의 병원에 가야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 규제가 1998년 10월 폐지되면서 의료기관은 전국 어느 곳을 가든 건강보험을 적용받게 됐다.
대장(大腸)항문(肛門) 분야는 척추(脊椎) 분야와 함께 전문병원화가 가장 빨리 이뤄진 분야이다. 대표적 항문질환인 치질(痔疾)은 전체 환자의 7%만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머지는 전문병원과 전문의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서울송도병원은 치질과 치루 등의 치료법을 개발해 국제 학계에 발표하고 있다. 여성은 치질 등 항문질환이 생겨도 부끄러움 때문에 병을 키우면서 진료를 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에 여성 환자들이 심리적 부담 없이 진료 받을 수 있도록 여성 전문의가 담당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장암(大腸癌) 분야에서도 전문병원이 대학병원 못지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 소재 송도병원과 대항병원의 대장암 수술실적은 각각 매년 400여건씩이다. 1991년 개원한 대구 소재 구병원은 지난해까지 대장암을 포함해 5만5000건의 대장항문질환 수술을 했다. 이 병원은 대장항문질환 전문의 11명을 포함하여 모두 22명의 전문의가 진료하고 있다.
글/ 박명윤(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