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으니 더 외로워" 노인세대 재결합 급증 재산·호적문제가 걸림돌인천시 중구 중앙동의 삼성부동산. 김영철(78)씨의 이 사무실은 인근 노인들의 '사랑방'이다. 중앙동에서 40년 넘게 터를 잡고 살아온 김씨를 중심으로 매일 7~8명이 노인들이 모여 친목회를 열고 바둑을 두고, 시간을 보낸다.
할아버지들만 오가던 이곳에 5년 전 '안주인'이 생겼다. 손님으로 부동산을 찾았던 신정자(76)씨가 김씨와 부부로 발전한 것이다. 아직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던 2004년 3월의 어느 날을 김씨 부부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곱디고운 할머니가 부동산 문을 열었어요. 말은 또 얼마나 얌전하고 예쁘던지…. '아, 이 사람이다' 싶었죠."
그날을 회상하는 김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김씨는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발품을 팔아 좋은 집을 구해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집은 김씨가 살고 있는 곳에서 5분 거리였다.
신씨는 당시 미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가기 전에 잠시 머물 곳을 찾던 중이었다. 하지만 김씨와 '눈이 맞으면서' 미국행 대신 김씨와 해로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아이들은 엄마 혼자 지내는 게 걱정된다고 미국으로 들어오라고 했었죠. 그런데 바쁘게 사는 애들한테 가봐야 친구도 없고 혼자 외로울 게 뻔한데 뭐…. 사랑하는 사람이랑 여생을 같이 보내는 게 훨씬 좋죠. 안 그래요, 여보?"
부부는 서로를 '여보 당신'이라 부르며, 공손하게 존댓말을 썼다.
노인 세대가 이혼하고 재결합하는 이른바 황혼(黃昏)이혼·재혼은 갈수록 급증 추세다. 2007년 65세 이상 노인의 이혼건수는 여성 1427건, 남성 3622건으로 10년 전보다 각각 5.8배, 4.2배 증가했다(통계청 '2008 고령자 통계'). 재혼도 남녀 각각 2004건과 610건으로 10년 전보다 2.3배, 3.7배씩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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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내가 나이 들어서 이렇게 행복을 되찾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던 전(前) 부인이 세상을 뜬 건 약 10년 전이다. 8년이나 극진하게 병수발을 했었다. "그 사람 떠나고 나서는 그냥 시간이 흘렀어요. 나이도 많이 먹었고, 인생에 즐거움이 별로 없었지요."
아내 신씨는 29세에 혼자가 된 뒤 3남매를 부양하기 위해 정신없이 살았다고 했다. 일본을 오가는 보따리상으로 아이들을 키웠고, 직장 따라 학교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주기 위해 또 미국을 오갔다.
신씨는 "다시 남편이 생길 것이라고는 꿈꿔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처음에 영감을 만났을 때는 진짜 처녀 때 마음 같았어요. 늙은이가 주책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정말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첫사랑 하는 마음이었죠."
김씨가 "노인들도 다 똑같다"고 역성을 들었다. "나이 먹고 혼자 있으면 더 쓸쓸하고 외로워요. 남자고 여자고 서로 상대할 사람이 있어야 돼. 우리는 아무도 70대라고 안 봐요. 같이 지내면서 행복하니까 늙지도 않는 거지."
두 달 전 사고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분당의 조카딸 집에 갔던 신씨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구급차에 실려가게 된 것이었다.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말까지 들었다.
김씨는 "앞이 깜깜하더라"고 했다. "이제 좀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아볼까 하는데, 이 사람 없이 남은 인생 더 살아 뭐 하나 싶기도 하고…."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았고, 신씨는 한 달간 입원치료를 받은 후 퇴원할 수 있었다. 김씨는 인천에서 신씨가 입원한 서울 한양대병원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갔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구해다 날랐고, 산책도 시켜주고 다리도 주물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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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철·신정자씨 부부는 일흔을 훌쩍 넘긴 황혼녘에 만나 새 가정을 꾸렸다. 지난 8일 오후 김씨 부부가 손을 꼭 잡고 집 근처 인천 자유공원을 산책하고 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중환자실에서 눈을 뜨니까 얼굴이 수척해진 영감이 '살아줘서 고맙다'며 흐느끼고 있는 거예요. 한번 죽을 고비를 넘고 보니까 더 고맙고 서로에게 절절해지더군요."(신씨)
김씨 부부는 아직 법적인 부부관계는 아니다. 김씨의 4남매 중 아직 결혼 안 한 아들이 김씨와 함께 살기 때문에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신씨는 "마흔 넘은 (김씨) 아들이랑 같이 사는 것은 아무래도 좀 민망하다"며 "'자유의 몸'이 되면 호적 정리를 해서 정식 부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혼 재혼을 하는 노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재산·호적문제를 둘러싼 자녀들 반대나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다. 서울 구의동에서 '닭살 부부'로 소문나 있는 이서교(85)·배영숙(61)씨 부부도 "5년 전 처음 가정을 꾸릴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고 했다.
24세의 나이 차가 문제였다. 배씨는 "처음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젊은 여자가 돈 보고 왔을 것'이라고 수군거렸다"고 했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견뎌냈다.
이씨는 재산문제도 '사나이답게' 결단을 내렸다. 자녀 몫의 재산과 별개로 살고 있던 아파트는 배씨 명의로 옮겨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보여줬다. 다행히 양쪽 자녀들은 부부의 뜻을 따랐고,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물려받을 재산문제에 토를 다는 법이 없었다.
이씨는 황혼 재혼을 꿈꾸는 실버들에게 "진심만 있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늘그막에 행복을 찾아 결혼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치 볼 게 뭐가 있어요.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면 어느 정도의 진통은 감수해야 하는 거고, 우리가 행복해야 자녀들도 편해지는 거예요."
첫댓글 다시피는 사랑의 애정이 새봄에 꽃피우듯이 활짝펴서 향기로운 삶을 사세요. 어르신님들...!
보기 좋은 모습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