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미식가다
석현수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이 말에는 맛도 모르면서 설쳐대는 이들을 향한 질타가 담겨 있다. 게 맛은 먹어 본 사람만이 안다. 바닷가에 살지 않는 이상 비싼 게를 맛볼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러고 보니 게도 먹을 형편이 못 되는 주제에 무슨 맛을 논하려 드느냐는 비아냥거림 같아서 말끝이 다소 씁쓸하다.
“넌 제비추리, 갈매기살 맛을 알아?”
내가 들이대는 반격이다.
물론 제비나 갈매기 요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안심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먹는 것이어서 이름만 생경스러울 뿐 모두가 알고 있는 고기다. 음식점 주인들은 맛의 프로들에게만 내놓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풍에 지나지 않아 믿을 것이 못 된다.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도 갑자기 이 질문을 받으면 어느 것이 소의 것인지 돼지의 것인지가 어리둥절하게 된다는 것에 내가 착안해 본 것이다. 제비추리는 소의 안심에 붙은 고기를 말하고, 갈매기살은 돼지의 가로막 부위에 있는 살이다.
맛에도 ‘나가수’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 진짜 맛 프로를 가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불행하게도 맛과 방송은 이미 결별한 상태여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가 어려울 것이며, 시청자들은 이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이들의 말을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맛집 소개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었던 방송 프로그램이 들통났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동원된 가짜손님들이며 최고의 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어올리는 사람은 출연료를 받고 연출하는 전문 연기자들이라고 했다. 맛있다고 방송 타는 집은 주방에서 음식 맛을 낼 생각은 하지 않고 비싼 돈 주어가며 텔레비전 화면에다 음식 내놓고 냄새를 맡아 보라는 식의 봉이 김선달 같은 사람들이다. 세 치 혀를 선도하겠다는 방송도 허망하지만, 진짜 손님과 동원된 엑스트라도 구별 못 하고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았던 미식가들은 또 얼마나 바보상자 앞의 바보들이었던가?
재미있는 간판 하나를 보았다.
외형은 포장마차 수준인 것 같은데 세 곳에서 방송을 탔다는 설명을 큰 글씨로 달아놓았다. 작아도 대단한 집이로구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KBS, MBC, SBS에서 방영된 집”이 아닌 ‘방영될’ 집이라는 미래형 표현이었다. 요즈음 맛 세태를 꼬집기라도 하는 듯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어 밉지 않았다.
나는 먹는 재미로 여행한다.
여행을 즐기는 편보다는 소박한 식도락가 쪽에 더 기울어져 있다.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향락성 음식은 아니더라도 작은 멋은 맛으로 살살 부리고 다닌다. 하룻밤 나그네가 낯선 곳의 먹을거리를 한 번쯤 경험해 본다는 것이야 어찌 사치가 되겠는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혀에 담아 놓은 맛의 기억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호주의 오페라하우스 기억은 없으나 그곳의 연한 스테이크 맛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며, 로마에서의 도시 관광보다는 이탈리아 본 고장의 피자 맛을 더 기억하고 있다. 그곳이 어디였든 간에 새로운 곳에서는 새로운 음식을 만난다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다. 맛과 향기가 같이 가지 않아도 좋다는 것도 여행을 통해 알았다. 두리안이란 열대 과일은 맛이 귀족 수준이어서 당장 혹惑 하는 사람도 있지만, 냄새로 치면 악취 수준 이어서 거저 준다 해도 싫다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먹는 맛이 곧 사는 맛이다.
군자라고 맛을 잃은 사람들이 아닐 텐데 왜 옛 어른들은 먹는 이야기를 피해 갔을까? 점잖은 체면 때문에 게걸스런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싫어서일까?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은 즐거울 락樂이기보다는 오히려 도덕이요 규범이어서 멍에에 가까워 듣기만 하여도 갑갑해진다. 일락樂을 더하여 머리를 식혔으면 좀 더 즐겁지 않았을까. 이런 면에서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추사삼락秋史三樂’인 일독一讀, 이색二色, 삼주三酒가 맹자보다는 더 휴머니티가 있을 것이다. 먹는 즐거움이란 것이 마시고 취하는 쪽이어서 좀 그렇긴 하지만. 식도락食道樂을 끼워 인생의 즐거움을 논한 군자가 없었음이 유감이다.
솔직히 나는 게 맛을 잘 모른다.
그렇다고 게 맛 하나로 미식가라는 타이틀에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 어차피 맛이란 개인 취향이지 않은가? 남들이 좋다는 맛도 그 맛을 모르는 이에게는 세상에 없는 쥐뿔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명작이 누구에게나 같은 명작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반기는 맛과 향기가 따로 있을 것이기에 생뚱맞은 고기 이름이라도 들이대며 자칭 미식가의 얼굴을 세우려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