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동영상에서 본 것인데 어느 목사님이 외국 나들이에서 설교를 하셨다. 시작부터 설교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설교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억지로 시켜서 할 수 없이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짬뽕 설교니 내용은 부족하지만 맛있게 먹으라는 식으로 시작했다. 조금 지나서는 설교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가? 라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설교자의 자세가 아니다. 설교자는 겸손하지만 담대하여야 한다. 오만하게 당당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서의 자세인 것이다. 그리고 설교는 어떤 경우에서라도 몰려서 억지로 하는 분위기를 보여서는 안 된다. 준비된 메신저로서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설교가 힘들다고 하는 것은 많은 예화거리가 부족하다는 것인지, 매번 다른 내용을 설교해야 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요한복음 3장 16절 한 절로만 설교한다 해서 성경 66권을 들어 구속사로 설교한다면 천국 갈 때까지 해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성경 66권을 가지고 설교를 한다면 100번 1000번 10000번 겹쳐도 생명 있는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확신 있는 신앙의 설교인 것이다. 도덕 윤리로 설교하려 하지 말고, 재미있게 하려고 하지 말고, 진실하게 복음을 설교하려고 하라. 예화를 많이 사용하려고 하지 말고 성경 본문에 충실 하라. 성경 위에 다른 것들을 얹어서 먹이려고 하지 말라. 말씀을 말씀으로만 풀어 가르칠 때 생명이 있는 것이다. 말씀은 짬뽕(잡동산이)이 아니라 오직 생명의 진리일 뿐이다. 합동신대 정창균 교수는 목회자들이 인물설교를 하면서 자칫 범할 수 있는 잘못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인물설교 가운데 상당수가 단순한 도덕설교나 모범설교의 차원에서 수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성경적 인물설교란 무엇이며, 인물설교가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나 위험은 무엇인지를 심도 있게 다뤄야한다”
“인물설교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련성 하에서 제시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그 인물의 됨됨이 혹은 삶의 면면만을 설교한다면 굳이 그 인물이 성경의 인물일 이유는 없다. 그런 류의 인물들은 성경이 아니어도 주변에 많다” 인물설교가 빠질 수 있는 오류를 언급한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인물설교는 본문이 제시하는 특정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고 잘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본문의 궁극적 의도인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드러내고 청중들이 그 앞에서 반응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또한 인물설교는 인물의 삶을 오늘의 청중의 삶으로 연결하는 적용 점을 찾아 제시하는 설교일 것이다.” 라고 역설했다.한 예를 들어보자. <아브라함의 순종> 하면 아브라함의 순종만이 부각되어 아브라함의 윤리 도덕 설교로 끝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인 면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님이 예비한 어린양> 하면 아브라함의 순종 과정에서 하나님의 의도가 나타나고 구속사로 이어질 것이다.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이삭을 바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삭 대신 예비한 어린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순종을 요구한 것은 대속의 어린양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인물 설교는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도덕 윤리로 마친다. <모세의 기적>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에베소서 6장을 통해 <네 부모를 공경하라>에서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 라고만 가르치면 윤리적 보상이 되고 만다. 그러나 구속사와 관계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순종을 토대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모를 순종하면 영혼이 잘되며 복된 생명을 누림을 전파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또 한 예로서 성찬식 설교에서 다른 것, 전도나 선교를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성찬식에서는 오직 떡과 포도주의 의미와 그 기념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데 치중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특정한 설교는 한 주제에 한 가지 목적에만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것을 전하고 싶다면 다른 방법으로 전해야 할 것이다. 전도나 선교는 특정 주제이므로 오직 그 방향에서 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다른 예로서 겸손에 대해 설교하면서 "미안합니다만 우리 교회 교인은 1400이 모입니다."라고 자랑한다면 우스꽝스러운 겸손이 될 것이다. 겸손의 설교가 쓸모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빛바랜 겸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겸손은 입의 말이나 모양을 갖추는 모양새가 아니다. 행동이요 모범인 것이다. 어느 설교자는 설교 중에 난데없이 기(氣) 이야기를 했다. 기(氣)가 어렸을 때는 발목에 있다가 점점 위로 올라가서 나중에 늙어서는 입으로 가는데 말이 많게 되고 입에서 기(氣)가 나가면 죽음에 이른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입에서 기(氣)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가 하면 기(氣)가 빠지면 죽는다고 결론을 냈다. 우리가 알 것은 우리 기독 신자들은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는 것이지 기(氣)가 빠져 죽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불러서 가므로 소천한다고 하는 것이다. 왜 이상과 같은 현상들이 나오는가? 성경이 말하려는 구속사적 복음을 전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나 세상 이야기를 삽입하여 전하려고 하니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삼천포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섞으려 하니 설교가 어려운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뜻만 전하자.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구원받은 자의 사명과 헌신만을 전하자. 사람을 주제로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주제로 하라. 무슨 내용 무슨 주제로 설교하든지 주인공은 하나님임을 전하자. 그렇게 되면 설교는 자연히 쉽게 될 것이다. ==자료제공 리폼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