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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헝가리 원광사 청안스님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원광회) 원문보기 글쓴이: srimala
2009_11_17_CASN_Kilsangsa Cho Haru Talk
길상사 초하루 법문
Good morning, everyone, it is good to see you all.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It is a great honor to speak before all of you today during Cho Haru at
이렇게 오늘 초하루에 길상사에서 법문을 하게되어 큰영광입니다.
What Is Cho Haru Nal? Why do so many of you come to the temple when it is full moon?
초하루날은 무엇을 하는날입니까? 왜 많은 분들이 보름이 되면 절에 오시는걸까요?
It is very interesting that in Buddhism, we consider the whole universe as our practicing place and all beings as our practicing friends.
우리불교에서는 우주전체를 수행의 장소로 보고 모든 존재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동반자로 본다는 것이 참 흥미로운 점입니다.
When you look at Cho Haru and all the Shin Jang, all the deities involved in these ceremonies, they are from a very interesting realm.
초하루행사에는 신장님을 비롯해서 모든 호법선신들이 관계되는데
이분들은 다른영역에서 오신분들입니다.
In our world view, we have the ten directions. This ten directions include all beings in this universe.
불교의 세계관에는(깨달음의 정도에 따라)열가지세계(十界)가 있습니다. 이 십계에는 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포함되어있습니다.
It includes humans and animals, we can see that with our eyes.
이 속에는 우리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인간계와 축생계 즉 동물세계가 있지요.
It also includes the demons, hungry ghosts, even lower beings in hell, whom we can not see with our eyes.
또 우리눈으로 볼 수 없는 귀신과 아귀의 세계 또 지옥에 사는 존재들도 포함됩니다.
And, above the human realm, we have the demigods and gods.
인간계 위에는 천신들이 사는 천상계가 있습니다.
So, two visible realms, two below and two above. We call these the six realms of existence.
즉 눈으로 볼 수 있는 두 개의 세계, 그아래의 두 세계와 바로 위의 두세계, 이렇게 육계가 있습니다.
Part of the six realms of existence is the deity realm with all the Shinjang Nim.
신장님도 이 육계에 속하십니다.
If we are Buddhists and practice the Path of liberation, then we are mostly concerned with the four higher realms.
불자로서 해탈을 위해 수행한다면 깨달음의 경지인 육계위에 있는 네가지 세계가 우리에게는 중요합니다.
The other four realms are known as Shravakas, Pratyeka Buddhas, Bodhisattvas and Buddhas.
이 네가지세계는 바로 성문계,연각계,보살계,불계입니다.
You may ask, why we have Cho Haru, why do we have deity practice three days in a lunar month, especially during full moon?
왜 초하루에 이런행사가 있으며 한달에 삼일은 신중기도를 ,특히 보름때하는지 아마 궁금하실것입니다.
Deities are also subject to karma, cause and effect. Their karma is created and is exhausted.
신중들도 인과 즉 업에 매여있습니다. 업이 생겼다가 다 했다가 합니다.
The six realms are very important not just for our understanding but for our well being also.
이 육계는 우리의 이해를 돕는데도 중요할뿐아니라 우리의 안녕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The deities have proven to be very good protectors. This kind of protection is not for your personal protection, it doesnt save you from your own mistakes.
신중들은 수호자로 잘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신변보호차원이 아니고 또한 여러분들이 행한 실수로부터 지켜주는 것도 아닙니다.
It protects the Dharma, it protects the Buddha realm, it protects the Bodhisattva way.
신중들은 법과 불계(佛界)를 수호하며 보살의 길을 지켜줍니다.
We have to understand that. If you practice Shinjung Kido, great deity power can appear, especially if you do the Yakjang Gae all the time, and read all the names of the deities, thereby summoning them. But be careful ! How do you use all this energy?
이것을 여러분은 이해하셔야 합니다. 신중기도를 하시면,특히 약찬게를 열심히 독송하시고 모든 신중님들의 이름을 염불하시면 그분들을 부르게 되어 신중의 큰힘이 발현됩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 모든 에너지를 써야 하는지 주의 하십시오!
What do you ask from the deities while reciting their names? Because what you ask may just happen.
신중염불을 하시면서 무엇을 소원하십니까? 왜냐하면 여러분이 소원하시는 것이 그대로 일어날 수 있기때문입니다.
When you pray, you should not mix rice with sand, your good intentions with your unfinished karma.
기도하실 때 절대로 쌀을 모래와 섞듯이 여러분들의 좋은 의도를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아직도 다하지 않은업과 섞지 마십시요.
So keep your mind very focused and very clear so that your intention would be realized, and your karma would not hinder you.
마음을 집중하시고 아주 명확하게 하셔서 여러분이 의도한바가 실현될수 있도록하며 업이 방해할수 없도록 하십시요.
A prayer is best when you dont pray for yourself.
자기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을 때 최상승으로 기도하신다고 할수 있습니다.
When we practice Bodhisattva path as well as do the deity practice, we ask for protection for all beings.
보살도를 행하고자 수행할 때나 신중기도를 하실 때 우리는 모든 중생의 안녕을 발원합니다.
During the month, we do Kwan Seum Bosal Kido most of the time.
한달의 대부분은 관세음보살기도를 합니다.
Kwan Seum Bosal is Dae Ja, Dae Bi: great love, great compassion.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 즉 큰사랑과 큰 자비의 화신입니다.
This mind is very forgiving, this kind of energy is supportive and very much accepting. It is the best mind for repentance, too.
이 마음은 한없이 용서하며, 한없이 도움을 주고자하며, 한없이 관대한 마음입니다. 또한 참회하기에 가장 좋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Deitys mind is not so forgiving, it is very sharp, like the sword which you see on the altar picture on the Shinjung Dan.
하지만 신중의 마음은 그렇게 관대하지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중단그림에서 보실수 있듯이 그곳에 그려져있는 칼과 같이 날카롭습니다.
Deity power is very significant, but lets be very careful and very clear how we use it and why we ask for it.
신중의 힘은 매우강력하지만 어떻게 써야하는지, 왜 우리가 그힘을 필요로 하는지 매우 주의를 요하며 또한 명확해야합니다.
It does not protect us from our own mistakes. It does not make our karma disappear.
말씀드렸듯이 신중은 우리를 우리가 행한 실수로부터 지켜주지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업이 사라지게도 하지 않습니다.
It simply protects our best part, our Dharma energy.
단지 우리가 가진 가장중요한 부분인 법의 에너지를 지켜줄뿐입니다.
In the west, many people ask, “How is it possible that I dont see it and yet it exists?”
서양에서는 많은사람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아니 어떻게 눈으로 볼수없는 것이 존재할 수가 있나요?
Do we see the radio waves? Apparently not. Do we see the telephone waves? No, we do not. But all these work, without us seeing the frequencies they operate in.
라디오 전파를 눈으로 볼수 있습니까? 볼수없지요. 무선전화의 전파를 볼수있습니까?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것들은 우리가 볼수없어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You hear the phone, you tune the radio and you know by experience that they work.
전화를 받고 라디오주파수를 맞추고 그러면서 여러분은 경험으로 그것이 작용하는지 알수있습니다.
The ten directions work in the same way. You tune your mind to various frequencies, and they enter your life and enter your karma.
이 열가지의 세계(十界)도 같은식으로 작용합니다. 마음을 갖가지
주파수에 맞추면 그것들이 여러분들의 삶과 업에 들어옵니다.
We may think that the altar picture is a beautiful work of art, but in fact it is a gate, which we open when we chant.
신중단의 그림은 어떤분들은 아름다운 미술작품이라고 생각하실분도 계시겠지만 사실은 우리가 염불을할 때 열게되는 신중세계로 가는 문입니다.
The Buddha statue is not just a work of art, it is a reminder of our own Buddha nature.
불상또한 그냥예술작품이 아니라 우리자신이 가진 불성을 상기시켜주는
대상입니다.
When you bow to the Buddha, it is not just paying respects to all the Buddhas of the past, present and future, but it is elevating your own Buddha nature above everything else.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것은 과거,현재,미래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단순히 경배를 드리는것외에도 여러분 각자의 불성을 다른모든 것 위로 고양시키는것입니다.
You bow to the Buddha, you become Buddha.
부처님께 절을 올리시면 여러분들은 부처가 되십니다.
You bow to the Deity, the Deitys mind and energy enter your life.
신장님께 절을 올리시면 신장님의 성품과 에너지가 여러분의 삶속으로 들어오게됩니다.
Cultivating all these correctly is the reason why our practice has been alive for the last 2500 years. If we keep our practice with the very clear mind into the future, with the correct mind, it will stay alive.
이렇게 모든 것들을 올바르게 기르고 함양해옴으로 우리의 수행이 지난 2500년 동안 지속되어 올수 있었습니다. 미래에도 맑고 명확한마음,
바른마음으로 수행을 계속해나간다면 이 수행방법은 지속될것입니다.
Our practice in temples and the meditation centers is truly important and significant. But the temple is not the most important place when you live your lives as lay people.
사찰이나 선원에서 수행을 하는 것은 진실로 중요하고 또 큰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찰은 여러분들이 재가불자로 일상의 삶을 살아가시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장소는 아닙니다.
The most important area is outside temple where you use your mind.
가장 중요한 장소는 여러분들이 일상의 마음을 쓰며 살아가는 사찰밖입니다.
Everybody can keep the correct form here.
사찰안에서는 모든분들이 올바른 태도를 지킬수 있습니다.
Everybody can have correct situation, relationship and function in a temple. It is very easy.
모든사람들이 사찰안에서는 올바른 상황,관계 그리고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아주 쉽지요.
How do we keep correct mind outside temple? This is a very important and very big question.
하지만 어떻게 하면 올바른 마음을 사찰밖에서도 지킬수 있을까요?
이것은 참으로 중요하며 또한 큰 질문입니다.
There are more and more human beings on this planet, therefore our quantity increases.
이 지구상에는 점점 많은사람들이 태어나고 있어 인간은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What about our quality? What about our human mind quality?
하지만 인간의 질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마음의 질은 어떻습니까?
We made six times more human beings than we used to have two hundred years ago. Are our minds six times more clear?
200년전보다 여섯배나 인구가 증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마음도 여섯배나
더 맑고 명확해졌습니까?
If you look at the world, the answer is a clear “no”. We have made so much suffering and we just keep doing that to the present moment. It is a miracle that earth still supports us.
세상이 돌아가는걸 보시면 그답은 명확하게 아니오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고통을 만들었고 또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지구가 아직까지 지탱하고 있는 것이 기적일뿐입니다.
This world has no beginning and no end, it has no thinking, but it has function.
이 세계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생각도 없고 다만 제구실을 다할뿐입니다.
Only human beings have this thinking. Only human beings think of start and finish, only human beings think of life and death, only human beings are clouded by ignorance.
오로지 인간들만이 이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로지 인간들만이 시작과 끝을 생각하고, 인간들만이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인간들만이 무명에 가려져 있습니다.
Only human beings create so much anger, desire and so many ignorant views, that by following them we are near to destroying this planet. We have to change our views and go beyond the limitations of our current perception. This is why it is so important to open our minds to the realms that we do not see.
오로지 인간들만이 무수한 분노와 욕심 그리고 무명에 덮힌 관점을 만들어내고 그것에따라 행동함으로 이지구를 거의 파괴상태로 몰아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점을 바꾸고 현재 우리인식의 한계를 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눈으로 볼수없는세계로 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지 하는 점입니다.
Buddhism is not a religion. It is a tradition. It is a tradition of walking on the Path towards Enlightenment together. What matters on this Path is your experience, not what you believe.
불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불교는 전통입니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전통입니다. 이 구도선상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경험이지
무엇을 믿는가가 아닙니다.
You chant the name of Deities, you can experience Deity realm.
You chant the Bodhisattvas name, you experience Bodhisattva realm.
When you have no thinking, Deity realm and your mind become one.
When you chant the name of the Bodhisattva, then the realm of Bodhisattva and your mind become one.
신장님의 명호를 부르시면 신장님의 세계를 경험하실수 있고 보살님의 명호를 부르시면 보살님의 세계를 경험하실수 있습니다.
그러다 무념의 상태가 되면 신장의 세계와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가 됩니다.
보살님의 명호를 염불하시면 보살의 세계와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가 됩니다.
Please, do not just pray to Kwan Seum Bosal. She is not out there somewhere.
그러므로 그냥 무작정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지마십시오. 그분은 어디 저 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Kwan Seum Bosal is in our hearts. Every heartbeat of yours is a breath of Kwan Seum Bosal
관세음보살님은 우리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심장박동 하나하나는 바로 관세음보살님의 숨결입니다.
If your hearing is clear, you hear what people really say. You hear the sound of the world. Then your great love and great compassion function without hindrance, and we can become the true embodiment of Kwan Seum Bosal.
귀기울여 들으시면 사람들이 진실로 무엇을 말하는지 들으실수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들을 들으실수 있습니다. 그러면 대자대비의 마음이 아무런 장애없이 작용할수 있고 우리는 진실로 관세음보살님처럼 자비의 화신이 될 수 있습니다.
This function shows in our lives and relationships immediately.
이러한 대자대비한 마음의 작용은 우리의 삶과 관계들속에서 바로 보여집니다.
If wisdom, compassion and true strength are all combined together, then we can wake up and help others wake up too. This is why our tradition is so important because it conveys this wisdom, it carries this view into our daily lives.
지혜와 자비와 진정한 강인함이 함께 합해지면 우리는 깨어나게되고 다른사람들이 깨어나는데 도움을 줄수 있습니다. 우리수행의 전통은 이러한 지혜를 담고 있으며 일상생활속에서 실천할수 있도록 해준다는점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The Path never gets old. Human beings get old. Views can be outdated, but awakening can never be outdated.
이 구도의 길은 절대로 구식이 되지않습니다. 인간은 늙어갑니다. 관점은 구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깨 달음은 절대로 구식이 될 수 없습니다.
When we practice one mind, then our existence is connected. We experience this connection heart to heart, mind to mind.
우리가 이 한마음을 수행하면 우리의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연결됨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또 마음과 마음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If all human beings could experience that in their own lives and in their own way, we would have much less suffering on this planet.
모든 인간들이 이러한 것을 각자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경험할수 있다면 아마 이지구상에는 고통이 훨씬줄어들것입니다.
It is up to us. Our lives do not depend on another being or other beings. We make it into what it is right now.
이것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다른존재나 타인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이순간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삶을 만들어 나갑니다.
The way we make our lives, thats the way we experience this world.
우리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은 바로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Now I would like to hear questions from the audience, from all of you.
자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들에게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I have to tell you that there are two kinds of teaching:
One is which I am prepared to give. The second is what you need to hear.
두가지 가르침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제가 준비해온 것, 두 번째는 여러분이 듣고 싶어하시는것입니다.
The second kind of teaching is much more valuable. We could have a Dharma Talk when I only talk, but that is not so interesting!
두 번째의 가르침은 더 큰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혼자서 말하는 법회도 할수 있겠지만 그건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What you may have in mind and what is approaching on those notes is a lot more interesting.
So I welcome the questions on the memos, I also welcome the live questions from the audience.
여러분이 마음속에 품고계셨다거나 노트에 적어놓았던 것들이 훨씬더 흥미롭습니다. 자 그럼 메모해놓으셨던 질문이나 즉석에서 하시는 질문도 환영합니다.
Question in Korean: 마음이 튼튼해 지려면 어떻게 기도를 해야할까요?
In order to have a strong mind what kind of practice do I need to do?
Answer in English: Do you have a weak mind? If you feel you have a weak mind, you should see what made it weak.
약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게 느끼신다면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You know, when dogs get sick, they hide, they dont appear. After three-four days they come back and they are okay . You see, dogs understand retreat! They disappear, do not move much, do not talk. Do not each much or do not eat at all. Then they become healthy.
개들은 병이들면 숨거나 사라집니다. 삼사일 후에 다시나타날 때 보면 괜찮아졌지요. 개들은 안거를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사라져서 많이 안 움직이고 짖지도 않고 적게 먹거나 전혀먹지를 않고 그러면서 건강해집니다.
So, human beings are more stupid than dogs. Most human beings do not understand retreat.
인간들이 실은 개보다도 멍청하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안거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So if we return to our temple, return to meditation room, and we dont talk, we dont move, we dont eat so much, then our mind naturally becomes healthy and strong.
우리가 사찰로 돌아와 선방에 앉아 묵언하며 움직이지 않고 먹는 것을 자제하면 우리의 마음은 자연적으로 건강해지고 또 탄탄해집니다.
Sometimes I look at people walking in the street, and I do not understand how they can stay alive.
가끔씩 길거리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어떻게 그사람들이 아직도 살아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질때가 있습니다.
If they do not practice, how do they return to their nature, how do they regain their energy and clarity?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사람들은 본성으로 돌아갈수 있으며 어떻게 삶의 에너지와 명확함을 얻을수 있을까?
Most people do not understand the significance of real practice, real meditation.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수행,진짜 명상의 중대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Many of them believe in a type of behavior. They believe that the traditional Buddhist clothing is a kind of fashion, some old style fashion. That is not true, we all know that.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어떤 행동양식이라고 믿습니다. 전통의 승복을 고풍이지만 패션의 하나로 치부하지요.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Returning to our nature is very spontaneous and very clear, but due to our thinking it seems to be difficult. So we think too much if we have too much anger, desire, if we just see too much, hear too much, think too much, taste, smell, touch too much then mind becomes weak. Sensory perceptions take energy. Seeing takes energy, hearing takes energy.
자성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 의도함없이 확연하게 일어나지만 우리의 생각 때문에 어렵게 보입니다.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분노와 욕심이 넘칠 때,너무 많이 보거나, 듣거나,맛보거나,냄새맡거나 촉감을 사용할 때 우리의 마음은 약해지게 됩니다. 감각작용은 에너지를 뺏아갑니다. 보는 것은 에너지를 뺏아 갑니다 듣는 것은 에너지를 ㅤㅃㅔㅅ아갑니다.
In our tradition, we say we have three kinds of energy.
전통적으로 우리는 세종류의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One is the original energy, which we are born with, we call that won gi.
첫 번째는 우리가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 본래의 에너지,우리는 그것을 원기라고 부릅니다.
You can see it in children. Some children, they have a lot of won gi, they are always moving around, shouting, fighting, doing something. Other children are not so much active, they read, they walk, they stare at the sky, sometimes they talk, but not so much energy.
아이들에게서 잘 볼수 있습니다. 원기가 넘치는 아이들은 한상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소리지르고 싸우기도 하며 항상 뭔가를 합니다. 또 어떤아이들은
그렇게 활동적이지도 않고 책을 읽는다거나 걷거나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가끔씩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지는않지요.
The second kind is what keeps the dimensions of time and space, with all the planets together. It is called dae gi, it is universal energy.
두 번째는 모든행성과 더불어 공간과 시간의 차원을 지탱해주는 에너지
입니다. 이것을 대기라고 하며 이것은 우주적인 에너지입니다.
It is all the materials, all the energy, everything in time and space, it is called dae gi.
모든 물질,모든 에너지 그리고 시간과 공간상에 있는 모든 것을 통틀어 대기라고 부릅니다.
Science does not seem to be able to describe that fully, all in one line. But light warms you up. Gravity attracts mass. A magnet attracts metal. Electricity is conducted by water and certain metals. All these are the manifestations of dae gi.
과학적으로는 대기가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어질수 없습니다. 하지만 햇볕이들면 따뜻해지고, 중력은 끌어당기며 자석은 쇠붙이를 끌어당깁니다.
물의 힘에 의해 전기가 생산되고 전기는 특정한 금속으로 전도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대기가 구체화 된것입니다.
How do we, human beings connect to the universe? Through the third type of energy called gong gi, or empty energy. This is our breath.
그렇다면 우리인간은 어떻게 하면 우주와 연결될수 있을까요? 세 번째의 에너지는 공기 즉 텅빈에너지라고 부릅니다. 그겻은 바로 우리의 호흡입니다.
When you watch your breath, you think less and less, and ultimately your won gi connects to dae gi. When won gi, dae gi and gong gi are combined and become one, we called that hap gi.
호흡을 관하면 생각은 점차로 없어져서 결국에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원기와 우주의 대기가 연결됩니다. 원기(元氣)와 대기(大氣) 그리고 공기(空氣)가 합해져서 하나가 되면 우리는 그것을 합기(合氣)라고 부릅니다.
You may ask, if we are constantly connected to the universe by our breath, how do we get tired?
우리가 호흡을 통해 지속적으로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면 어떻게 피곤해질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실수 있습니다.
This universe has infinite energy. How come that we get tired, not only that, we also get old and die?
이 우주는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피곤해지고 또한 늙고 죽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The reason is that we lose focus of our breath, we lose this one mind, and we focus on our thinking and sensory perceptions.
그 이유는 우리가 호흡할 때 초점을 잃고 오롯한 한마음을 잃고 대신 우리의 생각과 감각작용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This body is born, and it dies anyway. But how we use this body in the meantime is very important.
이몸은 태어났으니 또 언젠가는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이몸을 어떻게 쓸것인가는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If our minds are clear, if we are connected to the universe always all the time, then our existence has higher quality, more clear and closer to Buddhahood.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고 명확하다면,우리가 우주에 언제나 항상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의 존재는 최상승의 존재로서 더 청정하며 더 부처님께 가까워 질것입니다.
If we are attached to sensory perceptions and thinking, we are sentient beings.
하지만 우리가 감각작용과 생각에 얽매여 있다면 우리는 중생일 뿐입니다.
If you dont attach to all this and you restore unity between you and universe, then you become Buddha.
이런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분과 우주의 합일을 지속시켜나간다면 여러분은 부처가 되십니다.
That is why in every single meditation school, the first instruction is: “Watch your breath!”
그래서 모든 명상학교에서 말하는 첫 번째 지침은 호흡을 관찰하라 입니다.
Dont attach to your thinking or whatever comes up in your consciousness, watch your breath, return to your breath.
생각에 얽매이지 말라. 어떤 것이 너의 의식에 떠오르더라도 호흡을 관찰하라, 호흡으로 돌아가라.
If you do your mind practice on top of this correctly, for instance yombul or hwadu, then you refrain from thinking, you and this universe become one and stay as one.
호흡을 관하는것외에 마음수행을 바르게하신다면 예를 들어 염불하거나 화두를 드시는 것은 생각을 가라앉히고 여러분과 우주가 하나가 되게하고 또 하나로 머물게 합니다.
So if your mind is weak, then do it like a dog: Disappear, dont do anything.
마음이 약하다면 개들처럼 한번 해보십시요:은둔하며 아무것도 하지마십시요.
Do a little meditation practice, come back to your breath, come back to this one mind, come back to this one energy. When you are clear and strong, you are ready to go.
명상수행을 좀 해보십시오. 호흡을 돌아보고 오롯한 이 한마음으로 돌아오고 합일(合一)의 에너지로 돌아오십시오. 그래서 명확해지고 강건해진다면 그러면 된것입니다.
Question in Korean: 화두를 들고 좌선을 하다보면 어느순간 화두가 없어지고
그저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를 즐기게 됩니다. 깨어나고 싶지도 않고
아무런 바램도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상태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요?
When I am sitting in a meditation with hwadu, the hwadu disappears in some moment, I am at peace and in complete stillness. I dont want to wake up to reality and have no wishes. What shall I do with this status?
Answer in English: Very good question! This question points to several stages of consciousness.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의식에 여러단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We look at them step by step. The first question says when sitting in complete quiet, the hwadu disappears.
한단계씩 보도록하지요. 첫 번째 질문은 좌선시 절대고요속에서 화두가 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This is a very important point.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Because if you are attached to hwadu, if you are attached to the body of question, you can not become free.
왜냐하면 화두에 집착하신다면, 그 질문덩어리에 집착을 하신다면 절대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When we start practicing with hwadu, we repeat the question, but when we practice for a few years, the words of the question disappear, but the question remains there.
화두수행을 처음 시작하면 우리는 그 질문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 단어로서의 질문은 사라지고 단지 질문만 남게됩니다.
This state is complete stillness, this state is peaceful.
이 상태는 아주 고요하며 평화롭습니다.
Even if thinking may arise, it remains peaceful but usually at this point there is no thinking.
설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평화로운상태가 유지됩니다 하지만 대개 이 상태에서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But the next step in the question is that the questioner notices is that he or she is peaceful.
하지만 질문에서 다음단계는 질문하시는분이 이러한 평화로운상태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는것입니다.
When you notice it, and you say, “I am peaceful”, immediately there is an” I”.
그것을 감지하시고 아, 나는 평화롭다고 하면 당장 그곳에 이 “나“가 생겨납니다.
Out of that I comes some impulse, which may say “I dont want to go back to the world!”
이 “나“라는것으로부터 어떤 충동이 생겨서 그것이 “나는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않다“라고 하게 됩니다.
So what we can see if we follow this story with the hwadu from beginning to end is how to attain clear, peaceful mind, and how to lose it.
화두수행과 관련된 이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보면 청정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어떻게 얻으며 마지막에는 어떻게 하면 그것조차 버려야 하는가 하는것을 볼수있습니다.
Attaining our true self is not difficult, but keeping it is difficult.
우리의 자성을 얻는 것은 어렵지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If you have one moment of no-thinking, that is a moment of awakening.
한순간 생각이 없으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But the next moment your thinking just starts even stronger than before.
So the biggest question is how do we keep this mind.
하지만 바로다음순간 생각은 이전보다 더강하게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물음은 우리가 이마음을 어떻게 지켜나가야하는가 입니다.
If your “I, my, me” disappears, then your most important job is not to make it again.
이 “나“와 관련된 것들이 사라지면 우리가 해야할 가장중요한 일은 다시는 그것을 만들지 않는것입니다.
So have the courage not to notice that you are peaceful.
평화롭다고 감지하지않을수 있는 용기를 가지십시요.
Return to the same kind of no-mind as the rocks, trees, rivers or lakes.
바위나 나무 강 또는 호수와 같은 무심(無心)으로 돌아가십시요.
Originally, we are complete, and that is why cultivation and practice can only take away your karma. It cannot make you Buddha.
원래 우리는 완전합니다 그래서 배우고 교양을 쌓고 수행하는 것은 단지 여러분의 업을 없애줄뿐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부처로 만들 수 없습니다.
So, Buddha nature is not something you get from somebody or you make by some practice.
불성은 어떤 다른사람에게서 받을수도 또 어떤수행을 함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Practice only takes away your karma, then your original nature, which you already have, is shining bright.
수행은 업을 없애줄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계신 본래의 성품이 밝게 비치게 됩니다.
What we return to or wake up to by meditation practice is shared by all beings around us.
우리는 우리가 선수행을 통해 회복하거나 각성한 그무엇을 우리주변의 모든 존재들과 나누게 됩니다.
A lake does not know that is a lake. But it is a perfect lake as it is.
호수는 스스로 호수인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자체로 완벽한 호수일뿐입니다.
Korea has many mountains. It is a beautiful country, but none of those mountains know that they are mountains.
한국은 산이 많은 아름다운나라입니다 하지만 그중의 어떤산도 스스로 산인줄 모릅니다.
They are perfect and beautiful as they are. All of them. So if we return to the same kind of mind, then we do not know that we are Buddhas. We shouldnt. But we can and should function spontaneously as such.
모든 산들이 있는그대로 완벽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우리가 부처인줄 모릅니다. 그래서도 안되고요.
그러나 우리는 그와 같이 자연스럽게으로 제구실을 다할 수 있고 또 다해야합니다.
This is a very important point.
이것은 아주 중요한점입니다.
If you make “I”, you have a problem. This is why Buddhas dont know they are Buddhas.
이 “나“라는 것을 만든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부처님들은 자신들이 부처인줄 스스로 모릅니다.
Awakened people lose all concepts, even the concept of awakening.
깨달음을 얻은사람들은 모든 개념을 놓아버립니다. 심지어 깨달음이라는 개념까지도요.
In Zen, we formulate this practically as “Just do it”.
선에서는 이것을 실제적으로 그냥한다 라고 표현합니다.
Then you take this mind in your everyday life without thinking of yourself, without making I, my, me,” you just do what you do for all beings!
이렇게 여러분은 이마음을 일상생활에서 가지고, 자신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나에 관련된생각을 만들지 않고 모든중생을 위해 그냥 해나가시면됩니다.
Question in Korean: 열반을 하면 정말 극락세계가 있을까요?
If we die, is there really Nirvana?
Answer in English: You have to ask your travel agent! (Laughter from the audience)
여행사에게 물어보셔야지요!(청중에서 웃음소리)
Where is Nirvana? What is Nirvana?
니르바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이 니르바나 입니까?
Zen master Joju when they asked him, “Mind and Buddha, are they the same or different?”
조주선사님께 학인들이 이와같이 물었습니다, “선사님 마음과 부처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He said, “Yeah… Mind is Buddha.” Then many years later, they asked him the same question.
„음, 마음이 곧 부처지“, 하고 선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후 그학인들은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Joju said, “No mind, no Buddha.”
그때 조주선사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도 없고 부처도 없다네.”
The students were astonished, “Zen Master, years ago you said Mind is Buddha, Buddha is mind. Now whats going on? We dont understand. If there is no mind, no Buddha, why didnt you say that many years earlier?”
그러자 학인들은 너무 당황해서, “아니 선사님 몇 년전에는 저희더러 마음이 부처고 부처가 곧 마음이다라고 하셔놓고 지금은 왜 다르게 말씀하십니까?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마음도 없고 부처도 없다면 아니 왜 몇 년전에는 그렇게 말씀을 안하셨는지요?”
Joju replied, “I said that so that children wouldnt cry.”
조주선사님은 이와 같이 응답하셨습니다. “그때는 애들이 울까봐 그렇게 이야기했어.”
When you think of Nirvana as something far in space or time, you lose everything.
니르바나를 저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있는, 어떤시간대에 존재하는걸로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잃게됩니다.
If you return before thinking, right now, right here, this is Nirvana.
Everything else is up to your travel agent.
생각이전으로 돌아가신다면 바로지금,바로여기가 니르바나입니다.
그 외에는 여러분들의 여행사에 달려있습니다.
Question in Korean: 주변사람이나 나자신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알려주십시요.
How do we prepare for the death of other people or myself?
Answer in English: The preparation is that you dont attach to anything.
여러분이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을 때 그것이 바로 준비입니다.
You dont identify with anything.
어떤것과도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는것이지요.
If you look at the Heart Sutra, the highest state of mind
has no eyes, no ears, no nose, no tongue, no body and no mind.
반야심경을 보시면 이런구절이 있습니다: 최상승의 마음은 눈도 코도
귀도 혀도 몸도 마음도 없다.
If you dont attach to anything, if you dont identify with anything, then life and death do not concern you. We are alive now. So do your job, live you life.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으신다면, 어떤것과도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사는것과 죽는것에 초연하실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할 일을 하시고 그냥 사십시요.
When we die, we just change bodies. Human body, other body, on this planet or anywhere else we dont know and it does not matter, as long as you walk the Path to awakening and helping other beings.
죽으면 몸을 바꾸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깨달음으로 가는 구도의 길을 가며 다른 존재들을 도울수 있다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거나, 다른존재의 몸을 받거나, 이 지구상이나 아니면 다른행성에 태어나거나 하는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But if you want to prepare for death, you live a very sad life. So do not prepare for death.
하지만 지금부터 죽음을 준비하시려고 한다면 아주 불쌍한 인생을 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은 준비하지 마십시요.
Prepare for awakening. That is a lot far and reaching than just one change of the body.
깨닫기위해 준비하십시오. 이것이 단순히 몸을 바꾸는것보다 훨씬 먼 훗날을 위한 일이고 또 원대한일입니다.
So, not being attached to anything, not being identified with anything makes your mind clear for lifetimes, not just for one change, not just for one death, many lives and deaths, many incarnations.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또 어떤것과도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청정하고 명확한 마음을 지금 살아 있는 동안뿐아니라 이 한번의 죽음을 넘어서 여러생에 걸쳐가지게 됩니다.
That is correct practicing, that is the correct attitude towards life and death. This helps all beings whoever they are, wherever they are.
이것이 바른 수행이고 이것이 삶과 죽음에 대한 바른태도입니다.
이런태도는 어떤존재를 막론하고 어디에 있든지 모든 존재를 도웁니다.
Question in Korean: 앞으로 미래의 나의 자녀에게 바라는 꿈과 목표를 빌면서 기도하면 성취할수 있나요?
When I pray for my childs wish or goal in future, can this pray be materialized?
Answer in English: It depends on your children. Because no matter how well and how sincerely you pray for your children, if they mess up their own lives, you feel like a failure although you are not.
아이들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잘 기도하셔도 자녀분들이 인생을 엉망으로 산다면 여러분은 실패자처럼 느끼게 될것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지요.
When you think about this kind of prayer, remember the Hwa Oem Kyoeng, the Avatamsaka Sutra.
이런 기도와 관련해서 화엄경 의 한구절을 보겠습니다.
Because the Hwa Oem Kyoeng says something which is the deepest truth:“If you want to perceive the nature of this universe, then see it as created by mind alone.”
화엄경의 이 구절은 아주 뜻깊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우주의 실체를 통찰하려면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것임을 보아라.
Your children are no exception, their successes and failures are created by their minds.
여러분의 자녀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성공과 실패는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You may pray for their good examination at the university, but if they do not study, they cannot pass those exams.
대학입시를 위해 아무리 기도하셔도 자녀분이 공부를 하지않는다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것입니다.
It is true that if you have strong Kwan Seum Bosal mind then your immediate inyeon, your strong karmic relationship can feel that and use that. But you cannot make decisions instead of your children.
여러분이 아주 강한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가지셨다면 그 인연과 업에따라 성취를 하실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자녀분을 대신해서 어떤결정을 내려줄수는 없습니다.
You see, I was born into a non-Buddhist country. I feel sorry for that. But my parents had some wisdom.
아시다시피 저는 유감스럽게도 불교국가가 아닌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모님들은 지혜로우셨습니다.
When I wanted something, they enabled me to achieve that.
제가 어떤 것을 원하면 그일을 성취할수 있게 하셨습니다.
When I wanted to do some drawing, they bought me very good pencils and pens so that I could experience drawing.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면 좋은 연필과 펜을 사서 제가 그림을 그릴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When we needed something as a family, there was a way to work for it, earn what is necessary and purchase it.
가족들은 뭔가가 필요하면 노력을 해서 필요한 것을 얻을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So, for our children, what is most important?
그렇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Besides the love and acceptance of the parents, it is the potential. If they have the potential, they can do it.
부모의 사랑과 이해외에도 중요한 것은 잠재력입니다. 잠재력이 있으면 해낼수 있습니다.
We talk about inner potential and external opportunity. They are the same.
내재된 잠재력과 외부의 기회에 대해 말하자면 그둘은 같은것입니다.
If they believe in themselves, they realize their potential.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잠재력을 현실화 할수 있습니다.
Besides praying, please tell your children, “You can do it!”
기도하는 것 외에도 자녀들에게 너는 할수 있어 라고 말해주십시요.
Imagine, you go home after six hours of Kwan Seum Bosal chanting, and your child says Well, Mom, I dont think I can do this!” Even if you say Just do it!, it doesnt help much.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섯시간동안 관세음보살염불을 하신뒤에 집에 가면
아이가 엄마 나 이거 못할 것 같아 라고 합니다. 이러면 여러분이 아무리 너는 할수 있어 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What is really necessary is teaching your child cause and effect, and the role of mind. Then naturally they understand that they can do it. We call that inner potential.
정말로 여러분의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인과와 마음의 역할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할수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내재된 잠재력이라고 부릅니다.
The other is the external opportunity like buying pens and pencils.
다른하나는 펜이나 연필을 사주는것같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회입니다.
Many people are worried about that, How do I buy the best computer for my child, how do I buy the apartment or car and so on, how do I pay for tuition…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제일 좋은 컴퓨터를 사주고,어떻게 하면 좋은 아파트와 차를 사줄지 또는 교육비는 어떻게 감당해야하는지
많은 걱정을 합니다.
At the start it is your job, but as time goes on, your child grows, it will be more and more their job.
아이가 태어났을때는 이것이 여러분이 하셔야할일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이가 자라면 점차로 이것은 아이들의 몫이 됩니다.
The most important part is the potential and the start.
가장중요한 부분은 잠재력과 시작입니다.
With correct teaching and wisdom, courage and compassion, with correct education you can build up your childs inner potential.
바른 가르침과 지혜, 용기와 자비 그리고 바른 교육으로 아이의 잠재력을 키울수 있습니다.
This potential is more important than anything outside. Then you give the first couple of external opportunities, then in a few years your child becomes independent, becomes a grown up person and will thank you for it. We call that responsibility.
잠재력은 외부의 다른 어떤것보다 제일 중요합니다. 그런다음 여러 가지 적절한 기회를 조성해주면 몇 년이 지나 아이는 서서히 독립해나가고 마침내 어른이 되어 여러분의 수고에 감사할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일컬어 책임감이라고 합니다.
Besides praying for your child, please make them realize their own responsibility. Then your job is complete.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외에 자녀들이 자기자신에 대한 책임을 질수있도록 키워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할 일을 다하신것입니다.
Question in Korean: 모든게 제가 원했던 상황,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하셨는데 절대 내가 원하지 않았던 상황이 나타난다면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업이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Once you said that every situation and form materialize as I wanted, however if I face situation which I dont want to, is this so called karma?
Answer in English: You have to pay more attention.
질문하신분은 좀더 주의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Because if something enters your life, then somehow you opened your life to that.
왜냐하면 어떤 것이 여러분의 삶에 나타난다는 것은 여러분이 그것을 여러분의 삶속으로 어쨌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If you have undesired events in your life, how did you attract that?
원하지않은 일들이 생겼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어떻게 끌어들인걸까요?
If you have some unfinished karma, which you dont see, that attracts things and people you don t want or like.
여러분이 보지못하는 남아있는 업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여러분이 원하지않거나 또는 싫어하는 것이나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It is a very deep experience, when you start some meditation, and you ask yourself, Why did I have that problem, why did I have that person in my life?
명상을 시작하시면 아주 심오한 경험을 하시게 될것입니다. 명상중에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묻기시작합니다: 왜 나는 그때 그런 문제들에 부딪혔을까, 그사람은 왜 내인생에 나타난것일까?
Then you see cause and effect deeper, which you didnt see before.
그러면 전에 보지 못했던 인과를 더욱 깊게 보시게 됩니다.
Then you see: Yes, I did it.
그리고 결국에는 그래 내가 초래했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Remember the original teaching: “Past, present, future, all come together in this moment.” No exception. Even if it is not something that you would want, you would like, it is like this.
근본 가르침을 기억하십시요: 과거,현재,미래 이 모두가 바로 이 순간속에서 온다. 예외는 없습니다. 그것이 설령 여러분이 원하지않는것이거나 좋아하지않는것이라도 그와 같을뿐입니다.
To uncover this hidden karma, you have to ask the right question.
숨어있는 이 업을 드러내기위해 올바른 질문을 하셔야합니다.
If you ask the right question, your mind looks to the right direction, and proceeds the right way.
스스로에게 올바른 질문을 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올바른 방향을 향하게 될것이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될것입니다.
To ask the right question, there is one pre-condition: You have to be honest with yourself.
올바른 질문을 하기위해서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정직해야합니다.
If you lie to yourself, the world will lie to you. If you sincerely look into your own mirror, it may be hard at first, but it brings you back to reality, then your connection to the world and other people are 100% clear. This is the core of our practice. Without that, it is only an empty form.
스스로를 속인다면 세상이 여러분을 속일것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거울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힘이들지라도 그것은 여러분을 현실로 돌아오게 하고 여러분을 세상과 타인을 향해 100% 선명하게 연결시켜줍니다.
이것이 우리수행의 핵심입니다. 그것없이는 단지 빈형식에 불과합니다.
Please keep your mind focused and clear, and ask the right question very sincerely. Then your unseen karma will be clear. Then you know what made it and how, and you can change that. You dont have to feel guilty. There is no guilt here, but there is cause and effect. If you see cause and effect, you can change it. If you dont see it, you cannot change it. It is very simple.
마음을 모으시고 명확하고 청정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올바른 질문을 아주 솔직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태까지 보지못했던 업이 뚜렷해질것입니다.
무엇이 업을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알수있게되어 업을 바꾸실수 있습니다. 죄책감을 느낄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에 죄는 없습니다 다만 인과가 있을 뿐입니다. 인과를 보시면 바꾸실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지못하면 바꿀수 없습니다. 이처럼 아주 간단합니다.
Question in Korean: 제가 올해초에 기도를 하며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있었던 불안과 걱정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라지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몇 달동안 사실이라는 그 불안과 걱정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커졌으나 확인하거나 해결하는 방법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잘못된것일까요?
When I started Kido early this year, I wanted to reaffirm the indignation and anxiety in my mind and if it was true, I wanted them to disappear. The last couple of months, it becomes quite clear for me that they are real but I have not found the way yet to reaffirm or let them disappear. Is my Kido wrong?
Answer in English: Your Kido is not wrong but you may have some science karma.
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질문하신분은 아마 과학적인 업이 있는 것 같군요.
Do you have to prove that the sky is blue? Do you have to prove that clouds are coming and going?
하늘이 푸르다는것을 증명할필요가 있습니까? 구름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까?
Scientists may want that kind of logical, intellectual proof. But if you see something appearing in your mind, you just have to see it, understand the nature of it, and digest it. It appeared for you, so for you it is true.
과학자들은 어떤 논리적이고 지적인 증거를 원하겠지요. 하지만
여러분 마음에 무언가가 나타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직시하고 그것의 원래 본질을 이해하고 또 소화해야합니다. 여러분에게 그것이 나타났으니 그것은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바로 진실인것입니다.
Dont go into intellectual games whether you can reaffirm it or not.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머리를 쓰는 게임은 하지 마십시요.
This is not mathematics. This is not X equals X. It is much more simple.
이것은 수학이 아닙니다. 이것은 수학공식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단순합니다.
Indignity, unpleasantness and infuriation may appear in your mind, for you it is true, because it is there. There is no way to deny it. It is there. You experience it.
모멸감,불쾌감,분노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일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진실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라고 부인할 수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체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But it is truly important to understand the nature of this experience.
그러나 이 체험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진실로 중요한 일입니다.
There are three important aspects of any experience: The first is impermanence, which means that it doesnt last forever.
이러한 경험에는 세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무상(無常)입니다. 즉 아무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지요.
It comes and goes. Even if it appears many times, it will disappear eventually, if you do not put energy into it.
모든 것은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설령 여러번을 되풀이해 나타나더라도 여러분이 그것에 매달리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The second is causality or being subject to causes and conditions.
두 번째는 인과관계 또는 원인과 그 조건 즉 인연에 따른다는것입니다.
It was caused by something. Even if it seems very complex, it was caused by something or somebody. If it appeared by causes and conditions, it also disappears by causes and conditions.
어떤근거가 있으니 발생한것입니다. 겉으로 아주 복잡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어떤 것 또는 어떤사람에 의해 발생된것입니다. 인연에 따라 생긴 것은 인연에 따라 사라집니다.
You have to find out what kind of causes and conditions created it, and then you also find out what will make it disappear.
여러분이 하실일은 어떤 인연이 그것을 초래했는지 밝혀내는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사라지게 하는 길도 찾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The third is what we call non-self, that it has no substance, no existence of its own.
세 번째는 실체도 없고 스스로 존재하지않는 무아(無我)입니다
This means that it came from causes completely and it disappears by causes completely. There is nothing remaining.
그것은 다만 조건에 의해 생겨나서 조건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This third characteristics of our experience is what we usually dont understand or worry about. But this is the best news of all. We call that emptiness, or for a better term, dont know.
수행에서 이세번째, 무아의 개념은 우리들은 대부분 이해를 할 수 없을 뿐아니라 걱정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최고의 소식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空 또는 더쉽게 설명해, 모를뿐이라고 합니다.
All karma comes from dont know and disappears into dont know. Thereby, attaining complete freedom from dualistic thinking, and therefore from the cycle of life and death is possible.
모든 업이 이 모를뿐에서 와서 모를뿐속으로 사라집니다. 이것이 분별하는 생각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게하고 그러므로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You dont have to prove this intellectually or otherwise. You dont even have to understand this, because no matter how much you know, it will not be enough.
이것은 머리를 써서 증명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해하려고 할필요도 더더욱 없습니다 왜나하면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지식으로는 그것을 이해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Experience it. Look inside and ask, “What am I?”
체험을 해보십시오. 내면을 응시하며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보십시요.
When you ask yourself, What am I?, some of your karma begins to appear soon, some of it later, but you experience your karma very clearly and directly.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 질문할 때 여러분의 업이 점차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어떤업은 빨리, 어떤업은 나중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처럼 업을 매우 선명하고 바로 체험할수 있습니다.
The Sixth Patriarch, Hui Neng heard one line from the Diamond Sutra, Do not attach to anything which arises in the mind. He attained the meaning in that moment, and got Enlightenment.
육조 혜능대사께서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어떤것에도 집착하지말라는 금강경의 한구절을 듣는 그순간 그의미를 깨닫고 결국 깨치셨습니다.
It became his teaching. When you attain the source of your karma, how it is created, how it is maintained, and how it goes away, you wake up to this by yourself.
그리고 그것은 그분의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업이 생기고 지속되며 사라지는가 하는 업의 근원을 깨닫게 되면 스스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So, I hope, that lifetime after lifetime we can meet again, we can practice together, wake up, and save this world from suffering.
세세생생 여러분과 만나 함께 수행하며 깨어있어 세상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를 발원합니다.
If we have this kind of mind, we will always find our Bodhisattva job, and we will never be without duty.
이런마음을 가지시면 보살로서 하실 일을 끊임없이 발견하실수 있으실것입니다
Thank you for your attention.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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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헝가리 원광사 청안스님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원광회) 원문보기 글쓴이: srima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