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의 결과보다는 동기를 중시한 칸트는 어떤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명령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무조건적 명령으로서의 도덕 법칙을 제시하였다.즉 조건이 붙는 가언 명령이 아니라 의무의 성격을 띤 정언 명령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 가언명령이란 이런 겁니다. 엄마가 아이한테, '거짓말 안하면 장난감 사줄테니 거짓말하지 마라.' 라고 말해서 아이가 거짓말을 안하는 경우입니다. 우선 아이가 거짓말을 안하게 하는데 성공했으니, 도덕법칙을 잘 따른 셈이긴 하지만, 과연 그 아이가 거짓말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안한 걸까요? 그저 장난감이 탐이 나서 거짓말을 안한게 아니구요?
그래서 칸트는 이런 식의 도덕법칙을 강요하지 말라고 한 겁니다. 그냥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순수하게 도덕적인 마음에서 우러나는 착한 행동을 강조한 것입니다.
>>>칸트가 도덕법칙으로서 첫째로 제시한 정언 명령은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젹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행위할 때 항상 보편적 입장에 설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도덕적 원리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입법의 원리라는 것은 누구한테는 해당되고 누구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뇌물을 주고 받는 것은 나쁘므로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처벌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받은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아버지가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한데도 무죄라고 해야 할까요? 국회에서 법안에 상정할 때, 자신의 아버지인 경우에는 뇌물을 받아도 무죄로 하고, 남일 경우에만 처벌한다 라고 할 수는 없겠죠? 칸트는 그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 칸트의 이러한 보편주의의 밑바탕에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인격체로서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이념이 깔려있다. 이로부터 그는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정언 명령을 제시하고 있다. '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결코 단순히 수단으로 취급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하라'
-수단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경우입니다. 어떤 사장이 자기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점원을 막 부려먹다가, 나중에 그가 재벌의 후계자로서 사회경험을 쌓기 위해 점원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경우 말입니다. 이 경우 그 사장은 나중에 그 점원에게 어떤 덕 좀 얻어으면 하는 기대심리를 갖고 있겠죠? 칸트는 이 점을 경계한 겁니다. 사람을 대할때 무슨 수단으로 대하지말고, 그냥 그 사람 그대로, 즉 재벌 2세든 아니든 똑같이 인격적으로 대해주라는 것입니다.
>>>헤겔은 윤리의 개인적 측면보다 사회적,역사적 측면에 주목하였다. 그는 공동체의 윤리를 인륜(人倫) 이라고 부르면서, 인륜은 가족,시민사회,국가라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쳐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간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국가는 가족의 원리와 시민 사회의 원리를 결합시킨 최고의 인륜 형태이고, 개인과 보편적 공동체인 국가는 서로 대립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또 개인은 국가의 일원으로서만 참된 존재 의미를 가지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원시시대부터 국가라는 테두리에 보호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끼리 모여 살다가, 씨족이 되고 부족이 되어 국가까지 발전하게 된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윤리와 가족의 윤리와 개인의 윤리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일까요? 언뜻보면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 그 원리는 같은 겁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 모여 살면서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공경하는 윤리'가 생겨나면, 나중에 여러 가족들이 모여 씨족을 이룰 경우에는, 그 윤리의 대상은 자식대신 아이들로, 부모대신 마을 어른들로 바뀌어서, '아이들이 어른을 공경하는 윤리'로 바뀌게 되는 겁니다. 또, 씨족사람들이 힘을 합쳐 사냥을 하고 그 사냥감을 서로 나눠먹을때 어떻게 분배할까 하는 문제가 생겨날 겁니다. 처음에는 '서로 공평하게 나눠먹는 윤리'가 인정되었다가, 여러 씨족이 모여 부족과 국가로 발전하게 되면, 공평하게 나눠먹는 윤리는 사냥에 더 기여한 사람에게 많이 주는 보다 경제적 효율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인간의 역사가 변화함에 따라 공동체의 윤리는 변화해가는데, 그 변화의 방식을 헤겔이 변증법적이라고 칭했을 뿐입니다. 사실 이 변증법적인 발전방식은 이미 인류 문명이 수천년간 발전해 오면서 체험한 것이고 또 알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헤겔이 멋있게 이름붙였을 뿐이죠.
>>>한편, 산업 혁명과 더불어 자본주의 경제가 점차 발전해 가던 영국에서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일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공리주의가 등장하였다. 그 대표자라 할 수 있는 벤담은 행복이란 다름 아닌 쾌락이고, 고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사회는 개인의 집합체이므로 개개인의 행복은 사회 전체의 행복과 연결되며, 더 많은 사람이 누리게 되는 것은 그만큼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이른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을 도덕과 입법의 원리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모든 쾌락이 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한 벤담은 쾌락과 고통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계산법까지 제시하였다.
-공리주의는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의 삶이 너무나 열악한 것을 보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나온 문제입니다. 노동자가 얻는 수입은 일정한데,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더욱 행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은 밥을 먼저 사먹을 테고, 배부른 사람은 유희를 찾을 것이고, 피곤한 사람은 잠부터 청할 것입니다.
반대로, 당신이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이라면 국가예산을 집행함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어떻게 세워야 할 까요? 빵을 만드는데 더 많이 배정해야 할까요, 오락거리를 많이 만드는데 배정해야 할 까요, 아니면 집을 짓는데 우선 배정해야 할까요? 여기서 밴덤은 배부름과 유희와 잠은 질적으로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더 많은 수의 사람이 필요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자고 한 것입니다.
>>>밀의 벤담처럼 삶을 궁극적 목표를 행복으로 보면서도, 쾌락의 양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그 질적인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에컨대, 감각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이 더 수준 높은 쾌락이라고 하였다. 그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질적으로 높고 고상한 쾌락을 더 원할 것이기 때문에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일정수준의 최소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보다 수준 높은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매일 백만원씩 줄테니, 종이에다 줄을 그었다가 다시 지웠다가를 반복해라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그 일을 할까요? 아마도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수준의 돈이 모이게 되면, 그런 보람도 없는 일은 금방 그만두고 말겁니다. 밀은 그런 점을 지적한 겁니다. 행복은 결코 숫자로는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서구 근대 시민 사회의 형성기라는 동일한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는공리주의와 칸트의 윤리사상은 각기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 우선 칸트의 윤리는 도덕의 정언적 성격과 인간 존엄성의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현실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에게 구체적인 삶의 지침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스님이나 신부, 목사님들이 거친 세상에서 돈을 벌어 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세상살이에서는 상대를 기분좋게 하기 위해서 듣기 좋은 거짓말도 해야하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밀어내기도 해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양심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기는 힘들겠지요. 그래서 현실사회의 인간들에게 구체적인 삶의 지침을 제공해주지 못한다고 하는 겁니다.
>>>벤담과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는 이기적 윤리가 내포한 자기 중심적 관점을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을 잘 제시해 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인간의 내면적 동기의 문제를 소홀히 하였고, 또 결코 양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여러 가치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공리주의에서 이기적 윤리라고 하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나쁜 뜻으로 쓰는 '이기적'이라는 말과는 조금 다른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이기적 윤리란 사회전체보다 개개인을 중시하는 윤리라는 뜻입니다. 즉 공리주의는 우리에게 사회전체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어떤 윤리원칙이 보다 중요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고민하게 해주었지만, 칸트처럼 내면적동기가 어떻게하면 보다 순수해지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소홀했고, 또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행복, 아름다움 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실패했다고 비판을 받았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