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삼삼매는 삼해탈문과 연관이 깊습니다.
명칭이 같으니까요.
삼삼매란 세가지 삼매란 뜻이고,
공(空)삼매,
무작(無作)삼매,
무상(無相)삼매를 말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무작(無作)삼매라는 용어보다는
무원(無願)삼매라는 용어를 많이 씁니다.
현장법사께서는 무원(無願)이라고 번역하셨고,
구마라집께서는 무작(無作)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용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중국에서 번역할 당시 서로 나라가 다르고 시대가 달라서일 겁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무작(無作)이라고 번역했고,
어떤 분은 무원(無願)이라고 번역했습니다만,의미는 같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두가지를 다 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용수보살[나가르주나]께서 천재인 이유가 바로 아래 글에 나타납니다.
공/무상/무원 삼매에 대한 내용이 담긴 경전 내용을 모두 다 인용합니다.
대지도론을 보면, 이런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경 딱 한권에서 그 내용을 발췌해서 설명하시는 게 아니라,
온갖 경전에 있는 내용을 다 인용합니다.
이렇게 온갖 경전을 한번 보면 잊지 않는 것을 <문지 다라니>라고 합니다.
모든 삼매라 함은 세 가지 삼매이니,
공(空),
무작(無作),
무상(無相)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5음(陰:오온)이 나 없고 내 것 없음을 관찰하면 이를 공이라 일컫는다.
이러한 공삼매(空三昧)에 머물러서 뒷세상을 위하여 3독(毒)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를 무작이라 일컬으며,
열 가지 모습의 법인 5진(塵)과 남ㆍ녀ㆍ생, 주, 멸을 여읨에 연하는 까닭에 무상이라 일컫는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삼매 가운데 머물러서 모든 법의 실상(實相),
즉 필경공(畢竟空)을 아나니,이를 공삼매라 한다. 이러한 공을 알고 나면 곧 무작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무작이겠는가?
모든 법이 공하거나 혹은 불공이거나 혹은 있거나 혹은 없음 등을 보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구(法句)에 이런 게송이 있다.
있음[有]을 보면 곧 두려워하고
없음[無]을 보아도 두려워하니
그러므로 유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무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작삼매이다.
어떤 것이 무상삼매(無相三昧)인가?
온갖 법은 형상이 없으니,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다. 이를 무상삼매라 한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언어의 길이 이미 끊겼고
심행(心行)도 사라졌도다.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니
그대로가 열반의 모습이다.
또한 18공(空)을 공삼매라 하고,
갖가지 유(有)에서 구하는 마음 없는 것을 무작삼매라 하고,
온갖 형상이 파괴되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무상삼매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