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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5. 15
한때 미운 오리였던 영국이 드디어 백조가 되었다. 백신 덕분에 코로나19 봉쇄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불과 4개월 전인 지난 1월 19일만 해도 영국은 확진자 3만3355명, 사망자 1610명으로 최악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5월 11일에는 확진자 2284명, 사망자 11명을 기록했다. 아직 확진자가 많은 이유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완전히 숨을 죽이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일일 검사자가 무려 71만1104명이나 되는 데도 원인이 있다. 어찌 되었건 지금 영국은 지난 1월 4일 시작된 3차 전국 전면봉쇄가 3월 8일을 기점으로 풀리기 시작해 4월 12일 모든 상점이 문을 여는 상황을 맞았다. 5월 17일이면 식당도 열고, 친구와 친지 사이는 서로 안아도 된다. 젊은 연인들이 제일 반기는 날일 듯하다. 거기서 더 나아가 6월 21일이면 사회적 거리두기도 없어진다. 최소한 영국 내에서는 코로나19로 시작된 거의 모든 제한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이제 영국인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자가격리가 필요 없는 해외 여름휴가를 꿈꾸고 있다.
▲ 영국의 백신 전쟁을 승리로 이끈 ‘백신특별기동대(VTF)’의 케이트 빙엄 의장. 의료 관련 벤처금융 대표 출신으로 기동대의 나머지 위원들도 전부 민간 전문가들이 맡았다. ⓒ Svhealthinvestors.com
6월 21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도 없어져
이 모든 변화는 영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확보와 접종에 국력을 최대한 기울인 덕분이다. 영국은 지난해 12월 8일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로부터 167일 만인 5월 11일까지 영국 인구 6761만명 중 3572만2401명이 1차, 1843만8532명이 2차 접종을 끝냈다. 영국 성인(17세 이상) 인구의 67.8%가 1차, 35%가 2차 접종까지 마친 것이다. 이제 거의 전 국민이 몸에 항체를 지니게 돼 집단면역이 가능하다고 영국 정부는 판단하는 듯하다.
영국의 백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은 ‘백신특별기동대(VTF·the Vaccine Task Force)’에 돌아가야 한다. 이들의 승전 스토리는 조금 극화하면 위기와 실패와 감동이 펼쳐지는 한 편의 영화 같다. 제목은 ‘11인의 특별기동대’이고, 주인공은 55세 생화학자 출신의 중년 여성과 80세 의사이자 과학자인 노인이다. 나머지 대원 9명은 주연급 조연들이다. 물론 주연급 못지않은 ‘빛나는 조연’들도 있다. 보리스 존슨 현 영국 총리를 비롯해 매트 핸콕 보건부 장관, 지금 존슨을 매장시키겠다고 칼을 갈고 있는 전직 존슨 수석보좌관 커밍스, 영국 정부 내 고급관리들과 40만명의 영국 시민들이다.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2020년 2월 15일 토요일 저녁 ‘바이오 맥스 컨설턴시’ 사장 네티 잉글랜드는 자기 집 거실 소파에서 잉글랜드 노리치 시티 축구팀 출전 경기를 TV로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휴대폰에서 메르스 바이러스 백신을 연구했던 옥스퍼드 과학자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는 이메일을 보낸 것을 봤다. 이메일의 내용은 자신들이 만든 아주 소량의 백신을 대량생산해 줄 파트너를 찾아달라는 요청이었다. 네티는 이런 ‘기술 복덕방’ 같은 일을 지난 30년간 해온 전문가였다. 당시 영국에는 코로나19 사망자가 없었고 확진자만 9명 나온 상황이었지만 네티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직감했다.
옥스퍼드 과학자들이 개발한 백신을 ‘액체 황금(liquid gold)’이라고 부른 네티는 주말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과 기술을 갖춘 옥스퍼드 바이오메디카, 코브라 바이오로직스, 후지필름 등의 회사에 즉시 이메일을 보냈다. 네티는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영국 생명공학산업협회에 백신 개발 성공 소식을 전하고 협조 요청을 했다. 그때부터 네티의 전화에 불이 났다. 평소 같으면 경쟁자일 영국 생명공학산업계와 백신 생산시설을 가진 회사들이 금방 컨소시엄을 만들었다. 서로 목숨을 걸어야 할 경쟁업체들이 협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를 일러 데일리메일은 영국인의 ‘됭케르크 정신(Dunkirk Spirit)’이 발휘되었다고 썼다. 2차 세계대전 중 34만명의 연합군을 프랑스 케르크에서 철수시킬 때 민간인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어선과 소형 보트, 요트 등을 타고 달려온 정신을 상기시킨 것이다.
경쟁사들 협업, ‘케르크 정신’이 살아났다
당초 네티의 중개로 옥스퍼드 코로나19 백신 연구개발 자금줄로 독일계 미국 회사를 선정하려고 했지만 백신이 거의 확보 단계라는 소식을 접한 총리실이 미국 회사와의 계약을 중단시켰다. 총리실은 백신 생산을 영국 내에서 정부 주도하에 하자는 결정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는 매트 핸콕 보건부 장관이 주요 역할을 했다. 핸콕은 2011년에 본 영화 ‘컨테이젼’(Contagion·2011)에 나온 미국 백신 수출 금지 줄거리가 마음에 걸려 국내 생산을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미국으로 갈 뻔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생산시설이 영국과 벨기에에 자리 잡게 됐다. 벨기에에는 생산된 백신 전량을 영국에 준다는 조건으로 영국 정부가 연구개발 생산 자금 전액을 지원키로 했다. 연구개발을 먼저 해놓고 상업화는 미국에 늘 뺏겨온 전철을 영국 정부가 이번에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이 단계에서 남자 주인공인 현 영국 정부 수석과학관 패트릭 발란스 경이 등장한다. 발란스 경을 존슨 총리에게 데리고 간 인물이 현재 존슨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커밍스 전 수석보좌관이었다. 발란스 경은 존슨 총리에게 일종의 ‘백신기동대’ 설립을 건의했고 재무장관도 이런 비상 사태에서는 극단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여기에 적극 찬동한다. 장관이 찬성했음에도 당시 재무부 고위 관료들은 거액이 투입되나 성공률이 극히 낮은 백신 개발이 위험하다고 반대했다.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백신 실패 사례를 예로 들면서 백신 개발 성공에 모두들 회의적이었다. 더군다나 전례 없는 비상기구를 설치해 일을 망칠 염려가 있다고 적극 반대했다. 그러나 존슨 총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또 다른 전국 봉쇄는 피해야 한다면서 기동대 창설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해서 2020년 5월 20일 백신 개발과 생산, 접종 관리에 중점을 둔 백신특별기동대(VTF)가 창설됐다. 기동대의 목적은 영국을 위한 백신 확보, 백신의 국제적 공급 감시, 미래 역병 대유행에 대비한 장기 전략 수립 등이었다.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주도로 설립된 ‘백신특별기동대’의 여주인공은 케이트 빙엄이었다. 그녀는 보건 관련 벤처금융 대표를 맡고 있다가 기동대 의장을 맡으려고 휴직했다. 발란스 경이 존슨 총리에게 빙엄을 추천, 의장으로 임명케 했고 나머지 위원들은 발란스경이 직접 선정 임명했다. 정부 내 관료들이나 정치인 중에서 위원을 고르면 바이러스와 백신에 대해 무지해서 시간 낭비가 심할 듯하다는 이유로 외부 전문가들을 대거 불러들였다. 실제 임명되어 들어온 위원들은 나중에 관료들의 바이러스와 백신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아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영국은 5월 11일 현재 성인 인구의 67.8%가 1차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35%가 2차 접종까지 마쳤다. / ⓒ 뉴시스
벤처금융 대표 등 전원 외부 전문가로 구성
빙엄 의장의 남편은 현 집권당인 보수당 하원의원이고 재무부 차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빙엄은 존슨 총리 여동생과 학교 동창이기도 해서 모두들 연줄인사(chumocracy)라고 빈정댔다. 빙엄은 기동대 의장 제안을 받은 직후 자신이 백신을 잘 모르는 데다 전공이 치료 쪽이라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국민으로서의 의무”라는 딸의 설득이 주효했다. 존슨 총리가 빙엄을 의장에 임명하면서 부탁한 말은 단 한마디였다. “당신 임무는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하는 것이다.”
빙엄에게는 무엇이든 필요하면 존슨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부의장은 백신 관련 제약회사 중역이었고, 나머지 위원들도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국장 4명을 제외하면 모두 정부 밖 외부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정부가 내준 특권을 무기로 내밀한 임상시험 과정과 관련 법규 만들기, 백신의 생산과 접종에 관한 모든 전략과 실행을 책임졌다. 위원들끼리 서로 전공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이여서 비대면으로 일을 했지만 협의가 잘됐고 일이 쉽게 풀렸다. 나중에 정부 국장 출신 위원 중 한 명은 “이 기동대의 협의와 결정 속도는 정부 기구였다면 할 수 없는 광속에 가까웠다”고 평했다.
이들은 다른 공무원들과는 달리 밤낮없이 주말에도 일했다. 백신 생산 회사 직원들이 밤늦게까지 회의를 한 다음 “미팅을 언제 할 거냐”고 위원들에게 묻자 위원들은 스스럼없이 “이번주 토요일”이라고 답해 너무 놀랐다는 얘기도 있다. 정부 관리들과는 그렇게 밤늦게까지 회의를 한 적도 없었고 더군다나 주말에 일하자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어서였다. 결국 이렇게 일을 해서 126개 시제품 백신 중 최종 후보를 골라내는 결정을 겨우 한 달 만에 해치웠다. 공무원들이라면 1년 걸려도 못 할 결정이었다.
주말에도 일하며 한 달 만에 백신 후보 결정
정부 관리들은 원래 모더나 백신을 먼저 계약하려고 했으나 기동대가 주장해서 화이자 백신으로 결정되었다. 기동대는 화이자가 먼저 생산될 거라고 보았다. 외부 전문가들인 기동대 위원들은 해당 업체 내부 소식과 정보에 밝았다. 공무원이라면 내릴 수가 없었을 이 정확한 판단이 다른 어떤 공로보다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이자를 선택해서 계약했기에 영국은 세계 최초로 12월부터 접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실제 모더나는 그러고도 거의 4개월 뒤인 4월 중순에야 영국에 인도되기 시작했다.
역설적인 사실은 정부 관리들의 백신과 바이러스에 대한 무지가 기동대의 신속한 결정과 거침없는 실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모르는 일에 대해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려는 공무원의 보신책이 기동대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을 조성했다. 기동대는 백신뿐만 아니라 병원 산소호흡기를 비롯해 개인보호장비 생산·공급도 책임져야 했다. 평상시였으면 외국 기술자를 데려오기 위해 몇 달씩 걸리는 비자 절차도 수일 내로 끝냈다. 당연히 행정부 내에서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기동대가 자신들의 업무영역을 침해하고 제도와 규정을 무시하니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별별 음해와 방해가 들어왔지만 빙엄 의장은 벤처투자금융 최초의 여성 CEO답게 직선적으로 일을 밀어붙였다. 그녀의 뛰어난 업무수행 능력이 없었으면 일을 그르칠 뻔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예를 들어 영국 정부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생산에 투자한 2억파운드의 선금은 백신 생산에 실패하면 날아가는 금액이었다. 몇 명의 공무원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모여서 정치적 관점에서 나올 결론도 아니었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빙엄은 업계 사정에 밝은 기동대 위원들과 토의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걸 근거와 핑계로 정치인 장관들이 책임의 중압을 덜라는 배려였다. 물론 위원 중에도 백신 개발에 실패했을 때 의회에 불려가서 수억파운드를 낭비한 책임을 추궁당할 걱정에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토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백신 생산 협상도 정부에서 국방부 군수물자 구매 담당을 했던 위원이 나서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협상과 계약체결, 납품기일 맞추기 등에 이골이 난 위원들이 일을 원만하게 처리한 것이다. 빙엄은 백신 회사들의 구미가 당기게 충분한 금액도 지불했다.
백신 생산과 인도, 수송과 접종에는 거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정확성과 노하우가 필요했다. 결국 영국 군참병력이 업무를 담당했다. 영국군의 중동전 참전 경험이 여기서 유용하게 쓰였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프랑스가 영국 변형 바이러스를 이유로 영국과 통하는 항구를 봉쇄하자 화이자 백신 수송길이 막혔다. 화이자 백신은 영하 90도에서 수송해야 하고 일단 수송을 시작하면 10일 내에 사용해야 한다. 결국 군참 경력을 지닌 기동대 위원이 36시간 동안 한숨도 안 자고 공군 수송기와 유로터널을 이용해 수송 계획을 다시 세워 문제를 해결했다.
기동대 위원들은 결정이나 통보가 관료체계 어디에선가 잠자지 않게 원스톱 체제를 갖추었다. 그 결과 거의 주 단위로 백신 개발이 진전됐다. 이런 기구가 없었다면 한 단계를 지나는 데도 최소 한 달이 걸릴 판이었다. 막상 백신 생산 준비가 끝나고도 어디서 어떻게 생산하느냐는 문제에 봉착했지만 업계 소식에 밝은 위원들의 정보로 모두 해결했다. 1년에 2억회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최근 준공되었고, 마침 인도계 회사가 약품을 병에 담는 시설을 영국 내에서 완공했다는 정보도 모두 위원들이 들고 왔다. 영국 정부는 이 시설 전체를 2년간 임대했다.
▲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진 영국에서는 6월 21일이면 사회적 거리두기도 없어진다. / ⓒ 뉴시스
관료주의 용납하지 않은 원스톱 체제
이런 식으로 특별기동대들이 일한 결과 접종이 최초 시작된 2020년 12월 8일부터 2021년 2월 5일까지 딱 60일 동안 970만회의 접종이 이루어졌다. 일일 평균 16만회, 접종이 피크를 이룰 때는 하루에 70만회도 해냈다. 더타임스를 비롯한 데일리텔레그래프, 데일리메일 등 냉소적인 영국 언론도 ‘신념에 차고 민첩한 외부인 몇 명(dedicated few nimble outsiders)이 일을 냈다’는 식으로 격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동대가 활동한 지 5개월 뒤인 10월 중순 영국 정부기구 비상사태 과학 자문단(SAGE)도 “특별기동대는 엄청나게 비상한 임무를 수행했다. 덕분에 영국은 가능한 백신 생산에 있어 아주 확실하게 앞줄에 서게 되었다”라고 격찬했다. 기동대의 성공에 힘입어 같은 제도를 다른 부문에도 도입하자는 여론이 행정부와 업계에서 지금 형성되고 있을 정도다. 행정부 내 각 부서에 특수임무 수행 민관합동 독립기관을 설치하자는 것이다.뿐만 아니다. 지난 2월5일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 위원장마저도 "영국 쾌속보트(speedboat)가 우리들을 뒤에 남겨 놓고 달려 가 버렸다"고 한탄했다. 자신들이 실수를 해서 EU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실패를 자인했다. 영국은 스피드보트이고 EU는 거대한 석유 수송 탱커라고 했다.
영국 정부는 백신 접종 전 6개 제약회사에 4억회의 백신을 주문했다. 실제 6700만 영국 인구가 6회 이상 맞을 수 있는 수량이다. 기동대 빙엄 의장은 원래 전 국민이 아니라 고위험군에 속하는 인구의 반만 접종하자고 했지만 핸콕 보건부 장관이 전체 인구가 6회 이상 접종할 수 4억회의 백신을 고집했다. 한두 개 제약회사가 백신 제조에 실패하거나 대량생산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로 공정이 늦어질 것을 고려한 과감한 조치였다.
영국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예산을 보면 어디서 저런 돈이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로 거액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한 달 만이라도 일찍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백신에 들어간 금액은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영국은 코로나19 백신 개발, 구입, 생산, 접종에 지금까지 11억7000만파운드의 세금을 썼다. 영국은 이번 경험을 토대로 다음번에 어떤 형태의 바이러스가 들이닥치든지 대비를 확실하게 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영국은 매년 독감 백신을 국민들에게 이미 접종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독감과 코로나19가 합쳐진 백신을 매년 접종하겠다는 계획이다.
백신 연구개발에 6억파운드 투자
영국 정부가 백신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6억파운드이다. 결국 1회 백신 비용이 15파운드에 해당한다. 그렇게 보면 굳이 자국 내에서 백신을 생산하지 않고 외국에서 사서 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그러나 영국은 백신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고 보기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영국 내에 백신 생산기지를 가지고 있으려는 정책이다. 일부 영국 언론은 ‘백신 국수주의’라는 비판도 가하지만 영국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영국은 백신 개발 국제 협력에도 이미 2억5000만파운드를 투자했고, 코백스 퍼실리티에 단일 국가로는 최고액인 2억5000만파운드을 공여했다. 참고로 한국은 1000만달러를 공여했다.
어찌 되었건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백신기동대원들의 공로는 분명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그들은 의장을 비롯해 전원이 무급 봉사자였다. 자신의 원 직장에서 주는 월급 말고는 수당도 받지 않았다. 자신들의 말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일을 수행했다는 자부심이 그들에게는 수당이었다는 말이다. 이들과 함께 박수 받아야 할 사람들은 예비 백신 임상시험에 참가한 34만명의 무급 자원자들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미래의 백신 개발에도 임상시험에 참여하겠다는 자원자가 이미 40만명이 등록한 상태다.
기동대의 빙엄 의장은 4억회의 백신을 확보한 상태에서 지난해 12월 8일 세계 최초의 백신 접종이 시작되자 뒤도 안 돌아보고 12월 말 의장직을 사임했다. 30년 이상 제약 관련 투자 전문가였고 현직 벤처 캐피털리스트였으니 지금 보면 더 이상의 적임자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빙엄은 백신 전쟁에서 진력을 다한 나머지 건강이 소모됐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 외부 전문가 집단의 성과를 음해하는 공무원 집단에 넌더리가 나서 고문으로 남아달라는 요청도 거부하고 본업인 투자금융업으로 돌아갔다. 11명의 영웅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에게 끼친 영향을 보면 역사는 거대한 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말 ‘신념에 차고 민첩한 외부인 몇 명’으로 바뀐다고 봐야 한다. 백신기동대가 만일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우리의 주인공 빙엄이 떠나면서 남긴 말이 마지막 대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No one is safe until we are all safe).”]\
권석하 / 재영칼럼니스트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