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기린봉을 오르며
전주안골복지관 수필창작반 조흥수
기린봉을 오른 지 어언 20년이 되었다. 요통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도 있었다. 중학교 때 스승을 만나 요통에 대해 물으니 대뜸 등산을 하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질병에 대한 상식이 많은 분이셨다.
허리 아픈 사람이 경사를 오르고, 비탈길을 내려오면 요통이 더할 것 아니냐고 반문하니, 척추나 관절은 운동을 통해 근력을 강화하면 퇴행성 관절이 보강되므로 자연 통증이 완화된다고 하셨다. 가끔 요통이 발작하면 전연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에 갔더니 요추협착증이라고 했다. 아직 수술 단계는 아니니 잘 관리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 당시 바쁜 일과로 등산을 한다는 것이 나에겐 낯설고 사치스럽게만 여겨졌다. 허리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한방병원, 통증클리닉, 정형외과에도 오랜 기간 다녀 봤으나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암교회 남선교회에서 지리산 노고단으로 등산을 가게 되었다. 정녕치에 차를 두고 노고단을 올랐다. 노고단은 경사가 완만하고 등산 초보자인 나에게도 적당했었다. 일행은 정영 치로 돌아와서 차를 타고 구례로 왔다. 점심을 먹고 그 주변을 산책하다가 구례온천에서 목욕을 즐기고 전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의외로 몸이 가볍고 기분이 상쾌함을 느꼈다. 그때 등산의 효험을 크게 깨달았다. 요통을 억제함은 등산이란 걸 절실히 느끼고 하루 일과 중 가장 우선순위를 등산에 두었다. 아침 다섯 시에 집을 나서 선운사 옆 운동장에서 운동기구로 두루 운동을 하고 부족하다 싶으면 맨손체조도 하는 등 운동을 했다. 30분간 운동을 한 뒤 기린봉 271m 고지를 향해 올랐다. 기린봉에 오르려면 정자에서 바로 능선을 타고 오른 코스가 있고, 선운사에서 오르면 선운사 우측 길과 좌측 길이 있다. 이날 나는 초행이라 80 노인을 따라 우측 코스를 택했다. 노인은 걸음이 어찌 빠른지 조금만 방심하면 따라갈 수 가 없었다. 그러나 고향에서 15~6세 때 6km 이상의 거리를 걸어가서 땔나무를 하고, 논에 풀을 뜯어다 넣으려 오전과 오후 두 번이나 다녔다. 그때 다져진 등산 경력을 발휘하여 그 힘을 상기하며 노인의 뒤를 따랐다.
얼마 뒤 기린봉에 당도하니 시야가 탁 트여 전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이 순식간에 땀에 젖은 옷을 말려버렸다. 노인에게 나는 처음으로 기린봉에 오른다고 인사를 했다. 초보자이니 안내를 부탁한 것이다. 노인은 자기 성은 박이라고 소개했다. 인사를 나누고 이곳 기린 봉에서 조금 쉬었다 가자고 제의하니 노인도 그리자며 쾌히 승낙하셨다. 노인은 봉을 등산하신 지 30년이라 했다.
기린봉을 드나들던 경험담을 들으며 기린봉에서 내려오는데. 오를 때보다 항상 내려 갈 때를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하셨다. 등산 첫날 박 노인의 경험담을 통해 꼭 등산을 해야 할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아침 다섯 시에 집을 나서 기린봉을 다녀오면 약 두 시간이 소요된다. 열심히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하루하루 허리 통증이 좋아진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기린봉만 다녀오다가 차츰 차츰 늘려 기린봉에서 약 25분 소요되는 약수터까지 가게 되었다. 약수터에서 약수 한 잔 마시면 기분이 상쾌하고 흐르던 땀이 싹 가셨다. 일행이 함께하니 그 즐거움은 한량없었다. 다시 1km쯤 오다가 기린봉 좌측으로 돌아오면 다시 운동기구가 있어 간단히 한두 가지 운동을 하고 오게 된다. 조금 더 내려오면 고시촌을 지나 조금 더 내려와 큰 도로에 이르면 기린봉아파트 앞에 이르게 된다.
북쪽에서 풀코스로 오르는 길은 인후동 광음교회 앞에서 오르기 시작하여 첫 묘정까지 314계단을 오르고, 이곳에서 선운사를 통해 가는 길과 직행코스로 능선을 타고 오르는 두 갈래 길이 있다. 두 번째 묘정까지는 급경사 코스로 모두 시멘트계단으로서 650개의 계단을 오르게 된다. 이곳에서 도합 1,089 계단을 올라야 기린봉에 다다를 수 있다. 그밖에 기린봉을 중심으로 군경묘지 쪽에서 오는 길과 동고사 쪽에서 오는 길, 왜망실 쪽에서 오는 길이 있다.
산에 오를 때 보면 계단을 놔두고 좌우로 다닌 길이 있다. 나 역시도 계단을 밟지 않고는 오를 수 없다면 계단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자연스레 경사 길을 오르내린다. 모두가 같은 마음인 것 같다. 그렇다. 딱딱한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는 게 오늘날의 주거문화다. 물론 높은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지 않지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 또한 많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산과 들을 헤매고, 산천을 누비며, 식물과(食物)과 생활도구를 자연에서 얻으며 살았다. 정형화된 계단을 두고 비탈길을 걸으면 몸이 편하다. 동시에 발바닥 은 착지형태에 따라서 근육과 신경의 작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두꺼운 등산화를 신었음에도 발이 닿는 착지 형태에 따라 전고(前高) 후저(後底), 후고(後高) 전저(前底), 우고(右高) 좌저(左底), 좌고(左高) 우저(右底), 등 자갈 하나 나무뿌리 하나에도 무엇을 밟았는가를 알려주니 신기하다. 평지만을 걷는 것과 오르내림이 있고 인공이 가해지지 않는 산과는 확실히 다르다. 평지에서 쓰이지 않는 부분까지 모든 근육을 씀으로써 고루 섭취하는 영양식처럼 우리 몸 전체가 균형 있게 건강해질 것으로 믿는다.
날마다 같은 시간대에 오르다 보면 자연히 같이 등산한 동호인이 생기게 마련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성명과 전화번호를 교환하여 성격과 취미도 알고, 지난날의 경력도 알며, 말하는 스타일도 알게 된다. 그러다가 안 오면 궁금하고 오면 반가워 3시간동안 함께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같이 물놀이도 가고, 관광도 함께 할 수 있으며, 이메일로 서로 소식을 공유하는 친구도 되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석양녘에 같이 모여 같은 목적을 갖고 3시간정도 함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던가? 많게는 10여명 적게는 4~5명이 모여 기린봉 약수터를 매일 함께 오르내렸는데 더러는 이사를 가고 더러는 기력이 쇠잔하여 1년간 참여하지 못한 이도 있다. 누구나 아프면 언제라도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듯이, 기린봉은 전주시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만하다. 기린봉은 앞으로도 전주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종합병원으로 길이 남아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