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잘 쇠셨습니까. 황금같은 4일 연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추석은 참으로 보람찼습니다. 하늘 한가운데를 두둥실 떠오르던 누런 보름달처럼 밝은 희망이 타올라 어느때 보다 가슴 벅찬 연휴를 보냈습니다. 회사를 오고가던 버스속이나 방에서 뒹굴다 보면 앞으로 살아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가득해 막막함을 느꼈지만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스쳐가는 창밖 풍경에 기분이 날아갈 듯했습니다. 현재의 추석 풍경은 옛날보다는 많이 변해 다소 삭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고향에 들어서면 마음이 설레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토록 맡고 싶었던 고향 내음이 물씬 풍겨 오를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저절로 어머니의 따스한 품속에 안겨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큰집에 들어서자 마당가에 주차된 몇 대의 차에 눈길이 갑니다. 당조카들이 온 모양입니다. 근 일 년동안 만나지 못했던 당조카들은 갑작스런 나의 출현에 참새처럼 재잘거렸고 말소리가 깔리는 마당으론 꽃들이 뿜어대는 짙은 향기가 가득합니다. 또한 누런 감들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도 가을 내음에 젖어 가지가 찢어질 듯합니다. 감빛깔이 너무나 현란하고 고와 바라보는 눈동자속에도 온통 가을빛으로 가득합니다. 사촌형님과 당조카들은 아침 일찍 성묘를 갔다왔나 봅니다.
꽃들이 술렁이는 가을산길을 걸어서 조상님들의 산소에 성묘를 하고 싶었지만 점심시간이 다 되어 도착하는 바람에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 대신 자갯골 부모님 산소에 먼저 성묘를 하고 내처 큰집으로 달려온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겟지요. 그러나 고향의 추석 분위기는 갈수록 삭막합니다. 떠들썩한 동네 분위기도 찾을 수 없고 색동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아이들도 찾을 수 없습니다. 내 유년시절에 맛보았던 정감은 이제 어디에도 없는 듯합니다. 그냥 고향의 어른들만 찾아뵙고 곧장 도회지로 떠나야 하는 현실 속에서 추석은 이제 일회성 명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향사람들의 얼굴도 대부분 낮설었습니다. 내가 유년시절에 만났던 얼굴들은 이제 주름투성이가 되어 호호백발 노인으로 변했고 그들을 닮은 후손들이 대를 있고 잇다는 점이 조금은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만약 추석이 없다면 난 아마 고향사람들의 얼굴을 영영 접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주름투성이로 늙어가는 어른들을 간혹 보게 되고 고향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도 추석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나 때맞춰 조상들의 성묘를 할 수 없어 늘 죄책감으로 남습니다. 내년에는 대전에서 아침 일찍 부모님 제사를 모시고 곧장 고향으로 내려와 큰집 식구들과 함께 성묘를 할 계획입니다. 큰집에 내려온 지 얼마되었다고 아내는 자꾸만 처가로 마음이 쏠리는 듯합니다. 큰집에서 한참 놀다 저녁쯤 처가에 들리려고 했지만 어린아이처럼 엉덩이를 들썩이는 통에 그만 휑하니 처가로 향했습니다. 답답해하던 딸도 마침 잘 되었다는 듯 얼굴이 환해집니다. 오랜만에 만난 당조카들과 속 깊은 얘기를 할 새도 없이 그만 처가로 바람처럼 달려가게 되니 아쉬움만 따라붙습니다.
낮에는 감을 따고, 저녁에는 다슬기를 잡고
고향에서 10리 쯤 떨어진 매곡면의 처가에는 대전의 3남매 가족들이 모여 시끌벅적합니다. 뒷문 담장 쪽에 서있는 감나무에 올라간 동서는 누렇게 익은 감을 따느라 분주하고 그 아래에는 식구들이 모여 감을 주워 담느라 웃음이 그치질 않습니다. 황간에서 몇 명의 시인들과 모임을 갖고 저녁에 처가로 돌아와도 왁자지껄한 소리는 그치질 않습니다. 그 소리가 다가오는 어둠에 묻혀 가라앉을 때쯤 장인어른이 색다른 제의를 합니다. 처가 앞을 흐르는 하천으로 다슬기를 잡으러 가자고 합니다. 다슬기가 엄청 많다고 자랑을 하면서 주섬주섬 채비를 하는 장인어른을 따라 동서와 아내가 동행을 하려 합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군부대에서 핵물질인가 뭔가 하는 물질을 하천으로 흘러 보낸다고 주민들이 데모를 하는 바람에 하천이 외면받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물이 꽤 맑아진 모양입니다. 가재도 산다고 하니 일급수가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함께 동행하자는 아내의 제의에 난 단번에 거절을 했습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어야 할 추석에 다슬기를 잡는다는 것이 웬지 어색해 보였습니다. 일행 몇 명이 하천으로 떠나고 난 다음 어둠이 내려앉고 하늘엔 누런 달이 휘영청 떠올랐습니다. 얼룩 한 점 찾을 수 없는 달 표면은 너무나 맑고 투명해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더구나 콤파스를 대고 원을 그려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달의 테두리는 동그랗습니다. 초등학교 때 부르던 동요, “쟁반 같이 둥근 달”은 바로 이 달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 달은 마치 나를 위해 떠오른 듯한 착각이 듭니다. 아니 그보다는 나보다 못한 사람들, 가난을 천형처럼 껴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떠오르는 듯 해 나는 그만 달을 향해 주술처럼 소원을 빌어봅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취직과 직장 생활하는 딸과 아내의 건강, 그리고 집안의 화목을 위해 말입니다. 나의 소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휘영청 떠오르는 달은 더욱 더 빛깔이 짙어집니다. 그런 달을 마음속에 품고 난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듭니다.
배추와 파들이 가득 들어찬 누나의 집 뒷마당
광평리 큰 누나의 집도 가을 냄새가 풍성합니다. 외지에서 내려온 조카들도 추석을 쇠고 바로 다녀갔다고 합니다. 겨우 하룻밤을 자려고 러시아워 같은 복잡한 도로를 타고 내려왔나 싶을 정도로 요즘 추석은 너무나 쓸쓸한 면이 있습니다. 더구나 허술하게 자란 나무와 꽃들이 듬성듬성 꽃을 피운 화단도 쓸쓸하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단감나무도 똑 같습니다. 나뭇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누런 감들을 매달고 잇는 단감나무는 마치 누구의 손길을 기다리듯 쓸쓸히 서 있습니다.
몇 해 전 매형이 세상을 등지고 조카들이 외지에 나가 살림을 하는 바람에 집안을 돌볼 사람이 그만큼 적은 탓입니다. 조카들이 추석을 쇠고 갔으니 단감이 더 익어 물러터지고 화단의 꽃들이 시들어 씨를 남길 때쯤 한 두 번은 내려와 가을을 마무리 할듯합니다. 쳐다보기만 해도 향긋한 단감 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감나무 그늘을 지나 뒷마당으로 돌아가니 눈이 번쩍 뜨입니다. 속이 꽉 찬 배추가 텃밭이 터질 듯 가득하고 그 옆에는 실하게 자란 파들이 빽빽하게 솟아올라 한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누나 혼자 배추와 파를 가꾸며 노후에 몰려오는 쓸쓸함을 이긴 듯합니다.
그 때 마침 청주에 사는 질녀부부가 추석을 쇠러 온 덕분에 집안은 금세 시끌벅적합니다. 쓸쓸했던 집안에 금세 활기가 돕니다. 화기애애하게 돌고 도는 술잔 속으로 해거름이 깔리고 붉게 술 취한 단풍잎 몇 장이 어른거리는 듯합니다. 술 한 잔 들이킬 때마다 추석분위기는 더 흥취있게 다가오고 아직도 푸르름이 약간 벗겨진 집 뒤편 산은 조금씩 단풍물이 번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