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유년 시절
설교 중심 사상: 참된 신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신체적으로, 지적으로, 영적으로 바르게 성장한다.
요즘 쓰는 말 중에 "디지털 원어민(digital nativ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어린아이들을 가리킵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릅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종종 "요즘 아이들은 아이들 같지 않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유년 시절은 어땠을까요?
누가복음 2:39-4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헤롯왕을 피해 잠시 애굽에 머물렀던 요셉의 가족은 이스라엘로 돌아와 갈릴리 나사렛에 정착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이 구절은 그분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강하여지고"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신체적인 면과 지혜가 충만하며"라는 부분은 그분의 지적인 면과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는 묘사는 영적인 면과 관련시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A. 영적인 면
먼저, 어린 예수님의 영적인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40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그분과 함께하셨습니다. 그 은혜는 예수님의 유년 시절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랍비들의 학교에서 이루어진 교육은 형식화되어 있었습니다. 전통이 성경을 대신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탁월한 교육이라 생각되던 것들이 학생들을 제대로 향상시키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교육은 어떨까요? 공교육과 사교육이 학생들을 제대로 성장시키고 있을까요? 2022년,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두 명이 교무실에 들어가 교사의 노트북에 악성 코드를 심어 시험 문제지와 답안지를 빼돌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익숙했던 학생들은 직접 악성 코드를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그들은 성적에 대한 압박감과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욕심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습니다. 학교와 학원이 학생들에게 지식은 전달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그들을 성장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랍비들의 교육에는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은 그 교육을 통해 하나님을 올바르게 배울 수 없었습니다. 어린 예수님은 이러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분은 가정에서 어머니 마리아로부터 교육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읽고 쓰고 듣고 외우면서 지식을 쌓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에 정통하셨던 것은 그분이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부지런히 연구하셨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가난했기 때문에 매일 힘들게 일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어린 예수님도 바쁘게 만들었고, 결국 그분에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시대의 소망」 72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빈곤과 극기와 궁핍을 잘 아셨다. 이 경험이 그분에게는 한 방벽이 되었다. 그분의 부지런한 생애에는 시험을 이끌어 들일만한 한가한 시간이 없었다. 부패한 교제를 위한 길을 터놓는 목적 없는 시간이 없었다."
현대인이 바라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돈과 시간입니다. 사람이 돈과 시간이 많으면 무엇을 할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이 두 가지를 쾌락 추구에 사용합니다. 에스겔 16:49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소돔에는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을 요즘 표현으로 바꾸면 돈과 시간입니다.
소돔 사람들은 돈과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 풍족함 속에서 그들은 창세기에서 롯에게 나타난 것처럼 순리에 어긋난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사람이 한가하면 대부분 쾌락을 찾습니다. 목적 없는 시간은 사람을 타락의 길로 이끌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타락한 후, 하나님께서 땅에 가시덤불과 잡초를 나게 하셔서 사람들이 더 수고하게 하신 이유입니다. 그래야 악에 빠질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항상 부지런하셨기에 한가한 시간 목적 없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대의 소망 73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분은 결코 하늘 사물을 생각할 시간이 없을 만큼 세상의 관심사에 몰두하지 않으셨다.” 어린 예수님은 한가한 시간이 없이 바빴지만 하늘의 사물을 생각할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게 지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하셨습니다. 구약을 묵상하고, 시편을 암송하며, 찬양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지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악에 물들지 않고 하늘과 교통하며 사는 것을 알고 그분을 맹렬히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연결된 힘으로 모든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예수님이 경험하셨던 것처럼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B. 지적인 면
두 번째로, 어린 예수님의 지적인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40은 "지혜가 충만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어린 예수님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지혜가 풍성히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시대의 소망 70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분은 유년 시절부터 오직 한 목적에 사로잡히셨는데 곧 남을 축복하기 위하여 생애하셨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원을 그분은 천연계 가운데서 발견하셨다. 식물과 동물, 생물의 생태를 연구하시는 동안 새로운 방법과 수단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번개같이 떠올랐던 것이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사셨으며 그 힘과 지혜를 창조 세계에서 발견하셨습니다. 여러 식물과 동물을 관찰하며 타인을 이롭게 할 방법을 깨달으셨습니다.
김명호 목사님이 쓰신 땅의 것을 통해 하늘을 본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경의 표상과 예수님의 비유를 설명한 책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사람들에게 이 땅의 사물을 통해 하늘을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분이 땅의 사물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탁월하게 하늘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창조 세계와 주변의 평범한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교훈을 얻으셨기 때문입니다.
2022년에 많은 나라가 가뭄을 겪었는데 그때 나타난 한 현상을 통해 저는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강수위가 낮아지자, 체코의 엘베강에서 '기근석'이 드러났는데, 이 돌에는 "내가 보이면 울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한 저수지에서는 수백 개의 고인돌이 나타났고, 다뉴브강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한 독일 군함 20여 척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중국의 양쯔강에서는 오래된 불상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물속에 감춰져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가뭄으로 인해 세상에 드러난 것입니다.
히브리서 4:13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우리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행한 은밀한 일들이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 앞에서 모두 드러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감춰져 있던 것들이 이처럼 드러난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더 분명하게 드러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 예수님은 창조 세계와 주변의 평범한 것들을 통해 하늘의 지혜를 배웠고, 지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예수님이 경험하셨던 것처럼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C. 신체적인 면
마지막으로, 어린 예수님의 신체적인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40에서 "강하여지고"라는 표현에는 한글 성경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원어에는 "심령이"라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 어린 예수님은 정신적으로 강하게 자라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강한 정신력은 분명히 그분의 신체 건강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시대의 소망」 72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분은 체력을 무모하게 사용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기에 알맞은 그런 방법으로 체력을 사용하셨다." 어린 예수님은 체력을 낭비하지 않았고, 건강을 유지하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체력을 사용했습니다. 오늘날처럼 헬스장에서 체력을 단련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은 열심히 일하며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요셉의 직업을 "목수"로 기록합니다(마 13:55: 막 6:3). "복수"로 번역된 원어 '테크톤(tektón)'은 '건축가(builder)'에 가까운 의미를 지닙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나무가 많지 않았기에 요셉이 나무를 다루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돌을 다루는 석공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셉의 일은 매우 힘든 노동이었을 것이며, 어린 예수님도 아버지를 도우며 일을 배웠을 것입니다. 시대의 소망 72페이지는 "그분은 연장을 다루는 일에도 서툴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품성이 완전하셨던 것처럼 일꾼으로서도 완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집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즐겁고 성실하게 해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은 신들이 일을 시키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을 축복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신을 많이 활용하고 몸을 적게 움직이는 것을 고상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엘리트들은 철학과 정치, 예술에 종사해야 하며, 육체노동은 노예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요즘 사회에도 스며들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라는 용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어린 예수님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예수님이 경험하셨던 것처럼 신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전인적으로 건강하셨던 예수님은 우리의 모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축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전인적으로 건강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해 봅시다.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며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이러한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