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 2월 정월 대보름과 부럼현대인의 슈퍼 푸드, 견과

[한재영]

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 2월 정월 대보름과 부럼현대인의 슈퍼 푸드, 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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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09.05. 07:53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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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정월 대보름과 부럼

현대인의 슈퍼 푸드, 견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대보름 아침

입춘이 지났다지만 아직은 동장군의 위세가 가시기 전이라 해가 저물면 인적이 뜸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늘 밤만은 예외인데, 오늘이 바로 정월 열나흗날 밤이기 때문이다. 예부터 정월 대보름 전날인 열나흗날 저녁에는 '복쌈'이라 하여 오곡밥과 진채(陳菜, 말린 나물)를 김이나 취나물에 싸 먹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복쌈은 자기 집이 아니라 남의 집, 그것도 세 집 이상에서 얻어먹어야 무병장수한다 하여 이날 저녁만큼은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할 때부터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남의 집 밥을 얻어먹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덕분에 집집마다 다섯 가지 곡물을 안쳐 오곡밥을 짓고, 지난가을에 말려 갈무리해 놓은 나물들을 삶아서 무치는 일로 아낙들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넉넉하고 배부른 열나흗날 밤이 지나가고 대보름 아침이 밝아 오면 어머니들은 아직 졸린 눈을 비비는 아이들에게 나이 수대로 깨물라며 부럼을 한 움큼씩 손에 들려 주었다. 아이들의 어금니 사이로 파사삭 깨지는 부럼 껍데기의 경쾌한 소리를 안주 삼아 어른들은 귀밝이술을 나눠 마시며 올 한 해는 부스럼과 귓병을 앓지 않고 건강하게 나기를 기원했다.

쥐불놀이

논둑이나 밭둑에 쥐불을 놓으면 병해충의 알이나 서식지를 태워 농사 피해를 줄일 수 있으며, 태운 잡초의 재는 거름으로 쓸 수 있다.

음력으로 설을 쇤 뒤 맞는 첫 보름날을 일컬어 대보름이라 한다. 이날은 보름 중에도 유난히 달이 크고 밝게 보인다 하여 붙여진 명칭인데, 속담에 '설날은 밖에서 쇠도, 보름은 집에서 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조상에게 있어 정월 대보름이 지닌 의미는 컸다.

대보름은 설날부터 시작된 흥겨운 분위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본격적인 한 해를 시작하는 분기점이 되는 날이었다. 따라서 대보름이 되면 마을마다 올해에는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줄다리기, 지신밟기,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다리밟기, 고싸움, 복토(福土) 훔치기1) 등 흥겨운 놀이와 함께 천지신명께 복을 빌었다.

또한 대보름은 음식도 풍성했다. 특이하게도 대보름의 만찬은 하루 전날인 열나흗날 저녁부터 시작된다.

전날 저녁 찹쌀, 조(기장), 팥, 수수, 콩을 넣은 오곡밥과 호박고지, 박고지, 말린 가지, 말린 버섯, 고사리, 고비, 도라지, 시래기, 고구마순 등 아홉 가지 말린 나물을 무쳐 취나물이나 김에 싸서 든든하게 먹은 뒤, 대보름 당일 아침에는 부럼을 깨물고 귀밝이술을 마시며 한 해의 건강과 무병(無病)을 기원하곤 했다.

부럼의 과학

부럼이란 대보름날 아침에 까먹는 잣, 밤, 호두, 은행, 땅콩 따위의 견과류를 의미하는 말이다. 부럼을 깨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하여 특히 아이들에게 반드시 깨물게 했는데, 부럼이라는 말도 부스럼에서 유래한 것이다. 보통은 나이에 따라 개수를 정하고 껍질째 깨물어 소리를 크게 내야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도대체 부스럼이 무엇이기에 이를 피하기 위한 세시 풍속이 생겨난 것일까?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견과를 이로 깨무는 풍습에는 이가 튼튼해지기를 바라는 뜻도 담겨 있다.

부스럼이란 피부에 생기는 급성화농성염증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 '종기(腫氣)'라고도 불렸다. 어떤 이유에서든 피부에 난 상처가 황색포도상구균 등의 화농성 세균에 감염되면 이 부위가 붓고 곪게 되는데 이를 통틀어 모두 부스럼이라고 불렀다. 소독약과 항생제가 발달한 요즘 시대에 부스럼 혹은 종기는 어쩌다가 생기는 귀찮은 증상에 불과하지만 소독약과 항생제가 없던 시절의 부스럼은 때로 패혈증 등 합병증을 유발해 목숨을 앗아 가기도 하는 무서운 질환이었다.

부스럼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천하의 지존이라 하는 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조(世祖, 1417~1468)가 무수한 신하의 반대를 물리치고, 숭유억불(崇儒抑佛,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 정책을 펼치던 조선 팔도에 사찰을 세우고 불공을 드렸던 것은 부처의 자비를 구해 온몸에 돋아난 부스럼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당시 얼마나 많은 이가 부스럼으로 고통받았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간절한 기원에도 세조를 비롯해 문종(文宗, 1414~1452), 예종(睿宗, 1450~1469), 성종(成宗, 1457~1494), 정조(正祖, 1752~1800) 등 여러 왕이 부스럼을 앓다가 합병증인 패혈증 등으로 숨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왕실조차 부스럼에 떨었을 정도이니 백성의 공포는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정월 대보름 아침에 부럼을 깨무는 풍습도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부럼을 깨무는 것이 실제로도 부스럼 예방에 그리 나쁘지 않은 대안이었다는 것이다. 흔히 부럼으로는 잣, 호두, 은행, 땅콩 등의 견과류가 이용되었는데 견과류에는 피부에 기름기를 더해 주는 불포화지방산(unsaturated fatty acid)과 함께 피부 건강에 좋은 비타민(티아민, 토코페롤, 나이아신, 엽산 등)과 무기질(철, 망간, 마그네슘, 아연, 셀레늄 등)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불포화지방산은 피부가 갈라지는 것을 막아 주고, 비타민 B1이라 불리는 티아민은 피지 분비를 조절해 피부를 보호해 준다. 실제로 티아민이 부족하면 피부에 허옇게 각질이 일어나는 마른버짐이 피기 쉽다. 또한 비타민 E, 즉 토코페롤은 피부 노화를 방지하고 피부가 트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립스틱에 반드시 들어가는 물질이며, 엽산은 피부와 점막을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나이아신이 부족하면 구강에 염증이 자주 발생하며, 철분이 부족하면 피부에 건선이 생기고, 아연 부족은 아토피 피부염과 탈모증의 원인이 된다. 마그네슘은 피부에 수분 보호막을 생성시켜 피부를 보호하며, 망간은 유해산소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고, 대표적인 항산화제인 셀레늄은 아토피 피부염과 습진, 건선, 비듬 등의 피부 질환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식품 저장 기술이 좋지 못하던 시절, 기나긴 겨울 내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거의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대보름 즈음이면 대부분 비타민과 무기질 부족에 시달리기 마련이었다. 여기에 추위까지 더해져 사람들의 피부는 매우 거칠고 약해져 있었고, 그만큼 부스럼 발생 위험도 높았다. 따라서 정월 대보름에 먹는 부럼은 겨우내 지친 피부에 영양분을 공급해 부스럼을 예방해 주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풍습이었다.

견과, 현대인의 슈퍼 푸드로 주목받다

세월이 지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영농 기술과 식품 저장 기술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위생에 대한 개념이 널리 자리 잡았으며, 효과 좋은 항생제들이 등장해 굳이 견과류를 섭취하여 피부에 영양분을 보급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견과류에 대한 예찬은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건강을 위해 꼭 먹어야 하는 '좋은 식품' 목록에서 늘 상위권에 오른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견과류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은 저(低)지방, 저칼로리 제품을 선호한다. 먹을 것이 흔해지고 비만 인구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고(高)지방, 고칼로리 제품들은 다이어트의 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칼로리 측면에서만 본다면 견과류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땅콩 한 알은 약 7kcal이기 때문에 심심풀이로 먹는 땅콩 한 줌은 밥 한 공기의 열량을 넘어선다. 호두 역시 마찬가지여서 호두 한 알(50kcal)이면 사탕 3개의 칼로리와 맞먹는다. 이 밖의 다른 견과류들도 크기에 비해서 열량이 높은 편인데 이는 견과류 대부분이 상당량의 지방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견과류들은 대부분 고지방, 고칼로리 식품이다. 하지만 지방이라면 치를 떠는 현대 다이어트 식단에서조차 견과류는 섭취를 권장하는 품목이다. 그 이유는 '양보다 질'이라는 속담에 숨어있다. 견과류 속에 든 지방은 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고지방, 고칼로리 식품임이 분명하지만 질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섭취를 권장해야 하는 '좋은 기름'에 속하기 때문에 이런 이율배반적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좋은 기름 vs 나쁜 기름?

구성 성분으로만 본다면 삼겹살에 듬뿍 붙어 있는 비계든 땅콩에 포함된 지방이든 별 차이가 없다. 이들 속에 포함된 지방은 모두 1개의 글리세롤과 3개의 지방산으로 구성되며, 글리세롤 하나에 사슬 모양의 긴 지방산 3개가 마치 꼬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동일 성분으로 구성된 물질이 서로 차이가 있다면 그건 이들이 분자 구조나 결합하는 방식의 차이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녹말과 셀룰로오스처럼 때로는 구조의 작은 차이가 매우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내곤 하는데 고기의 지방과 견과류의 지방 역시 같은 특징을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지방이라면 모두 글리세롤 1개에 3개의 지방산 사슬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다음 그림에서 보듯 지방산 사슬은 길게 이어진 탄소(C) 사슬을 중심으로 빈틈을 수소(H)가 채워 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탄소는 4개의 결합 부위를 가지므로 사슬 모양으로 늘어선 탄소들은 수소 2개와 결합할 수 있다. 이렇게 지방산을 구성하는 모든 탄소들이 각각 2개의 수소와 결합한 구조를 '포화지방산(saturated fatty acid)'이라고 한다. 지방산을 구성하는 각각의 탄소가 결합할 수 있는 최대 수의 수소와 결합했다 하여 '포화'라는 단어가 붙는 것이다.

포화지방산과 불포화지방산의 분자 구조식

그런데 어떤 지방산의 경우에는 일부 탄소들이 서로를 너무 강렬히 사랑해서(?) 자신이 가진 4개의 손 가운데 두 손을 맞잡아 이중결합을 하는 경우가 있다. 원래 수소를 붙잡아야 할 손으로 옆의 탄소를 붙잡아 이중결합을 형성하면 이 탄소 부위에는 수소가 1개씩밖에 붙지 못하게 되는데, 이런 종류의 지방산을 '불포화지방산'이라 한다. 말 그대로 수소를 덜 포함한 지방산이라는 뜻이다.

포화지방산의 경우 지방산 사슬이 직선 모양이어서 차곡차곡 포개지는 것이 가능하지만, 불포화지방산의 경우 이중결합된 탄소 부위에는 수소 2개만큼의 빈 공간이 생겨 지방산 사슬이 꺾이거나 휘게 된다.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을 쉽게 구별하려면 실온(약 15~20℃ 기준)에서 고체 상태인지 액체 상태인지 확인하면 된다. 포화지방은 지방산 사슬이 직선 모양이므로 곧게 자란 통나무와 같아서 차곡차곡 쌓이지만, 불포화지방은 지방산 사슬이 꺾여 아무렇게나 휘어 자란 나무줄기와 같으므로 아무리 잘 포개 놓아도 중간에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물질의 제형은 그들을 구성하는 분자들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거리가 가까우면 고체, 멀어지면 액체, 상당히 떨어지면 기체가 되는 식으로 말이다. 따라서 포화지방의 경우 포개진 지방산들 사이의 공간이 작기 때문에 실온에서 고체로 존재하지만, 불포화지방의 경우 분자 사이에 틈이 생기므로 거리가 떨어져 실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돼지비계나 버터처럼 실온에서 고체 상태이면 포화지방으로 구성된 것이며, 어유(魚油)나 식물성 기름처럼 실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대개 불포화지방2)이다. 일반적으로 고기와 육류, 우유 등에 포함된 지방들은 포화지방인 경우가 많고, 식물과 물고기에 든 지방은 불포화지방인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견과류는 특히 불포화지방을 많이 가진 식품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흔히 포화지방을 '나쁜 지방'으로, 불포화지방을 '좋은 지방'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불포화지방이 많이 든 견과류를 '몸에 좋은 식품'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포화지방이든 불포화지방이든 열량 측면에서 본다면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포화 상태에 상관없이 모든 지방은 1g당 9kcal의 열량이 발생하므로 에너지 발생량에서는 차이가 없다. 지방의 제형 차이는 진화상 필요에 의해 각 생명체들이 선택한 전략의 차이일 뿐이다.

오메가3는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지 않지만 대사활동에 필수적인 불포화지방산이다. 우리는 주로 음식물을 통해 섭취하지만 다양한 건강보조 식품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자연 상태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들은 약간이라도 에너지가 남는 경우 이를 악착같이 몸속에 저장해 두려고 한다. 동물이 사용할 수 있는 세 가지 에너지원(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중에서 에너지원으로 가장 적합한 것은 지방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1g당 4kcal)에 비해 지방은 같은 무게당 2배 이상의 에너지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적은 공간에 더 많은 열량 저장이 가능하다. 이러한 저장 용량의 우수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생명체는 지방을 에너지 저장원으로 선택해 진화해 왔다.

그런데 지방 성분 중에서 적재 공간의 효율성 측면에서만 보면 포화지방이 더 우수하다. 포화지방은 구조가 가지런해 차곡차곡 쌓을 수 있어 부피를 덜 차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물이 포화지방의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동물이 포화지방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포화지방은 고체이기 때문에 이를 에너지원으로 쓸 때는 녹여서 써야 한다.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와 조류는 비교적 체온이 높은 항온동물이므로 포화지방을 녹여서 쓰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체온을 유지할 수 없는 물고기나 식물의 경우 추운 겨울철에는 포화지방을 녹이기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공간을 좀 더 차지하더라도 불포화지방의 형태로 에너지를 비축하는 편이 낫다. 물고기의 경우 중력의 영향을 덜 받으며 식물은 아예 움직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불포화지방으로 인해 몸의 부피가 커져도 큰 부담이 없다. 그래서 부피가 큰 불포화지방을 저장해도 괜찮은 것이다.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은 애초에 그들이 저장되는 생명체의 특성에 따라 선택된 것일 뿐 그 자체로 어느 쪽이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다만 지방 섭취량이 필요한 에너지량을 상회하는 현대 사회의 특성상 포화지방의 성질, 즉 쉽게 굳거나 덩어리가 지기 쉬운 포화지방의 제형적 특성이 문제가 될 뿐이다.

혈액 속에 포화지방 성분이 많아지면 이들이 혈관 벽에 달라붙거나 덩어리를 형성해 혈관을 막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 더해 포화지방은 혈액 내 존재하는 콜레스테롤(cholesterol)의 양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고 불포화지방은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포화지방은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콜레스테롤 자체가 지방의 일종이므로 기름진 음식을 섭취하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다. 콜레스테롤은 동물만이 합성할 수 있는 물질이므로 동물에 존재하는 포화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콜레스테롤 수치도 당연히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불포화지방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는 것일까? 어쨌든 불포화지방도 지방의 일종인데 말이다.

좋은 콜레스테롤 vs 나쁜 콜레스테롤?

이 아이러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콜레스테롤의 특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콜레스테롤은 고지혈증의 원인이며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취급받지만 원래 콜레스테롤은 동물의 세포막을 구성하는 물질이며 성호르몬을 비롯한 다양한 호르몬과 소화에 필요한 담즙을 합성하는 데 꼭 필요한 물질이다. 즉 콜레스테롤이 부족해지면 호르몬 불균형으로 체내 항상성과 면역력이 떨어진다. 특히 성장기 어린이의 경우 세포막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성장 발달이 지연되거나 뇌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적정량의 콜레스테롤은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하다.

이처럼 콜레스테롤은 매우 중요하기에 우리의 몸은 80% 이상의 콜레스테롤을 간에서 생성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콜레스테롤은 혈관을 타고 신체 각 부분으로 운반되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남는 콜레스테롤은 다시 간으로 운반되어 저장된다. 우리의 신체 시스템이 콜레스테롤 대부분을 스스로 합성하며 게다가 남는 콜레스테롤까지도 몸 밖으로 배출하는 대신 다시 간으로 돌려보내 저장하도록 진화되어 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콜레스테롤이 우리 몸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콜레스테롤이 '공공의 적'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음식으로 공급되는 콜레스테롤의 양이 적정 필요량의 20%를 초과하면서 남아도는 콜레스테롤이 혈관 속에 잔존해 고지혈증과 동맥경화, 혈전을 발생시키는 일이 잦아지면서부터다.

콜레스테롤이 혈관벽에 쌓여 혈관을 막게 되면 동맥경화증을 일으킬 수 있다.

고지방, 고열량식인 정크푸드는 우리 몸의 콜레스테롤 과잉과 연관된다.

앞서 말했듯 콜레스테롤은 간에서 합성되어 혈관을 통해 신체 조직으로 운반된다. 그런데 콜레스테롤은 지방 성분인데 반해 혈액의 주요 구성 물질은 물이다. 알다시피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기 때문에 콜레스테롤이 혈액 내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들을 담아서 운반하는 일종의 택배 상자가 필요하다. 인체 내에는 두 종류의 콜레스테롤 택배 상자가 존재하는데 LDL(low density lipoprotein)과 HDL(high density lipoprotein)이 그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편견이 등장하는데 LDL은 '나쁜 콜레스테롤'이며 HDL은 '좋은 콜레스테롤'이라는 선입견3)이다. 보통 건강 검진을 하면 혈액 내 총 콜레스테롤 수치, LDL 수치, HDL 수치 등 세 가지 콜레스테롤 연관 수치를 검사한다. 이때 총 콜레스테롤과 LDL은 낮을수록, HDL은 높을수록 건강하다4)고 보기 때문에 LDL은 '나쁘고' HDL은 '좋다'는 선입견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사실 LDL과 HDL 자체는 좋고 나쁨을 논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LDL과 HDL은 모두 콜레스테롤과 결합하지만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단백질이다. HDL은 혈액 내 존재하는 콜레스테롤을 수거해 간으로 운반해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 LDL은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꺼내 혈액과 조직으로 유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LDL이 제 기능을 해야 세포의 성장과 분열, 호르몬 합성 등에 필요한 콜레스테롤이 공급될 수 있다. 그래서 LDL은 절대로 우리 몸에 해로운 역할을 하는 물질이 아니다. 다만 LDL의 수치가 적정치를 웃돌 경우, 혈액 내 존재하는 콜레스테롤의 양이 많아져 고지혈증과 동맥경화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LDL을 보는 시선이 곱지 못한 것이다. LDL의 입장에서 보면 보통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어쨌든 LDL의 양이 늘어나면 혈액 내 콜레스테롤의 양도 늘어나기 때문에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은 바로 이 LDL과 HDL의 수치에 영향을 미친다. 즉 포화지방은 LDL의 수치를 높이며 불포화지방은 HDL의 수치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포화지방은 체내 지방 성분과 혈액 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모두 높이지만, 불포화지방은 체내 지방 성분을 증가시키기는 해도 HDL을 증가시켜 혈액 내에 유리되어 떠돌아다니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좋은' 지방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콜레스테롤과 결합해 움직이는 LDL과 HDL

이처럼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 LDL과 HDL은 단순히 좋고 나쁘다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인 측면이 있다. 이들은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기보다 각각 진화적 필요성에 의해 전략적으로 선택된 '필요한' 물질이다. 예전에는 귀했던 존재가 지금은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이들의 정체성이 변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섭취하는 열량에 비해 소모하는 열량이 많던 시절에 정립되었던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몸이 정확히 그 반대의 상황에 놓이면서 벌어지는 혼란인 것이다. 부스럼을 막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부럼과 체중 조절을 위한 다이어트용 간식, 동일한 견과류가 서로 다르게 인식되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차이의 소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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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5/27
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들어가는 말
1월 설날과 떡국
하리하라 레시피 밥과 구수한 누룽지 / 누룽지 김치 피자
2월 정월 대보름과 부럼 지금 읽는 중
하리하라 레시피 삶은 땅콩 / 견과류 약밥
3월 머슴날과 콩 음식
하리하라 레시피 밥두부전 / 미소된장 두부국
[네이버 지식백과] 정월 대보름과 부럼 - 현대인의 슈퍼 푸드, 견과 (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2015. 06. 30., 이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