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과 ‘저급’을 마구 흩뿌릴지언정 / 이원우
나는 4라는 숫자가 좋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게 바로 4다. 2 곱하기 2도 4다.
4를 만약 한자로 사(死)로 쓰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이른바 ‘죽음’이다. 그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게는 이미 기정 사실, 워낙 많이 죽어봤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이승에 대한 미련은 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는데, 그걸 못 이뤄도 ‘덤으로 사는 인생 운운’의 상투적인 표현으로도 능히 상쇄시킬 수 있고말고. 4와 사(死)? 연상의 매체이긴 하다.
대중가요에 트로트라는 게 있다. 한참 품격이 떨어지는 가사에 애절한 가락을 붙여 만듦으로써, 세파에 찌든 장삼이사들을 노래방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기도 한----.여기서 트로트의 개념을 옮겨 보자.
트로트는 ‘빠르게 걷다’ 혹은 ‘바쁜 걸음으로 뛰듯 한다는 뜻의 연주 형태인, 폭스 트로트에 바탕을 두었다는 이론에 우선 눈이 간다. 그런가 하면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말, 일본의 ’엔카‘가 유행함으로써 그 영향이 끝내 우리 가요와 얽히고설킨 끝에 우리 독창적인 가요와 접목된 장르로 보기도 한다나? 뽕짝으로 폄훼되기도 했다. 이미 거기 젖어든 우리가 그걸 붙잡고 왈가왈부하는 건 격에 맞지 않다.
어쨌든 내가 애장품 정도로 여기고 있는 <한국 가요>라는 비교적 고본에 속하는 책을 뒤져 보자. 그 첫 페이지에 ‘가거라 삼팔선’이 나온다. 이부웅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1946(?)년 발매. 여기서 나이 든 사람끼리라도 소리 높여 한번 불러 보자. 아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 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릿길---2/4박자다.
다섯 장을 넘기면 ‘가슴 아프게’다. 이 노래를 모르면 1960년대 이후 이 땅에 산 사람이 아니다. 그 만큼 알려진 노래다. 역시 트로트, 4/4박자다. 남진의 흉내를 내어 보자.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을처럼 목메어 운다--작사가 정두수의 시대감각이 약간 의심되게 하는 노래이긴 하지만(‘연락선’은 광복과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고 없다), 헤어진 하 많은 연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이 아니라 저몄다는 게 맞는 표현이리라.
나 자신을 아무리 치켜세워 봐야 남들이 안 알아준다. 트로트 그러니까 2/4박자 혹은 4/4박자인, 이 태생적인 이 슬픈 노래를 너무 좋아한다는 게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나와 줄곧 더불어 살아온 트로트가 어림잡아 1백곡이니 어쩌랴. <한국 가요>책장을 넘겨가며 세어보는 보는 재미도 쏠쏠하달 수밖에. 그건 그렇고. 나는 근래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만약 초등학교에서 43년을 근무하지 않았었더라면? 얼핏 머리에 떠오르는 첫째 대답이 악보를 볼 줄 몰랐을 거라는 가정이다. 일흔이 가까울 때까지 이어온 건조한 삶에 부채질하는 그런 꼴이 되었을지 모른다. 거꾸로 말해 보자. 악보를 놓고 흥얼거릴 수 있는 그 같잖은 능력 하나가 여럿 앞에서 고개를 들게 하기도 한다.
거슬러 올라가 병상에서 사투를 벌일 때 이야기. 70명의 의사 중 두서넛이 120번을 오르내리는, 말하자면 빈맥(頻脈) 증상을 보이는 내게 심호흡을 적극 주문했다. 설명해 보자. ‘하나 둘 셋 넷’하면서 아랫배로 숨을 들이마시고 ‘편안하다’는 다짐(?)과 함께 날숨이다. 콧구멍 앞에 깃털을 대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강가 모래밭에 누워 있다는,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몸과 마음의 상태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그걸 일과로 삼을 때도 있었다. 물론 효험이 있었으니 지금 건강하지 않은가? 생로병사의 사고(四苦) 중 마지막 하나와만 멋진 씨름을 하면 먼지로 돌아갈 수 있음이라. 지난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미소가 나온다. 아름다웠다? 그런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지.
일흔을 두 해 앞두고 나는 여전히 번잡을 떤다. 초로답지 않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아침에 밀양에서 만나 사람과 느지막한 오후, 부산 역 대합실에서 맞닥뜨리고 물금 시장 바닥에서 국수를 먹는 일도 있다. 물론 녹초야 되겠지, 그렇다고 해서 사치스러운 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죽으나 사나 지하털이다. 다섯 자 다섯 푼 겉보기에도 초라한 육신은 그 땀 냄새가 나는 공간의 체취와 숨소리조차 좋으니 어쩌랴.
의자에 앉으면 나는 우리말 사전부터 펼친다. 이미 형관 펜으로 여기저기 밑줄을 긋고 메모한 흔적이 본문과 섞여 어지럽다. 나 같은 것도 문인이라면 바른 말, 고운 말, 아름다운 말을 원고지에 옮겨야 하는데, 천학비재한 탓으로 그게 여의치 않아 택한 몸부림이다.
얼마 전부터 사나흘에 한 번쯤은 <가요 책>을 들고 지하철을 탄다. 1,581 쪽에 1천곡이 넘는 대중가요가 수록되어 있다. 정말 기가 막히게도 그렇게 애타게 찾아 헤매던 ‘안개 낀 목포항’도 나온다. 유달산 기슭에 해가 저물면/ 영산강 찾아가는 뱃사공 노래---. 좌절의 시절에 목메어 부르던 노래다. 역시 2/4박자 트로트, 유춘산 노래, 1952년 발매.
그러던 어느 날, 서면까지 볼일이 있어 나가는 중 심호흡을 하면서 ‘안개 낀 목포항’에 매달려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동차 안에서 소리 내어 노래를 불렀다는 얘기는 아니고. 의사 몇의 모습이 환상처럼 떠올랐는데, 글쎄 나는 그들이 내게 뭔가 부추기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여기서 감히 재현을 해 본다. ‘유달산 기슭에/ 해가 저물면’에서 대각선 앞까지의 4박자, 숨을 들이쉬면서-복식 호흡-소리 없이 연주(?)한다. ‘해가 저물면’에서는 반대로 날숨. 의사의 의견과 접목시키면 들숨 동안의 네 박자는 하나 둘 셋 넷에 해당하고 날숨 네 박자는 ‘편안하다’와 맞먹는다.
40분 동안 마치 정신 빠진 사람처럼 그러고 앉았는데, 서면에 닿기도 전에 내 기분은 하늘을 날 것 같았다. 무척이나 아플 때 진통제를 맞고 나서 느끼는 그 편안함과도 비유할 수 없는----.
세상엔 어울리는 게 더러 있는 모양이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 따름이지. 얕잡아 보이기 일쑤인 트로트의 2박자 혹은 4박자가 ‘소리 없는 노래’의 복식 호흡과 짝을 이루었다? 마침내 그 조합이 내 일상과 접목되기 시작한 몇 달 동안 나는 우연만하다는 말에 실감을 갖는다.
어찌 앉아서만 그 소중한 일을 하겠는가? 밥을 먹으면서도 거리를 걸으면서도 극성스럽다는 자평을 간단없이 내면서 트로트와 호흡 삼매경에 빠진다. 잠자리에서 두말할 나위도 없고. 때문에 트로트는 천박하고 저급이라는 그런 느낌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어제는 밀양 노인 학교에 수업하러 갔다가 내려오면서 ‘죄 많은 내 청춘’을 입에 담았다. 청춘아 내 청춘아 죄 많은 내 청춘아/ 하룻밤 그 고개를 넘은 것이 한이 되어/ 죄 없는 그 사람을 못 쓰게 하고----//청춘아 내 청춘아 죄 많은 내 청춘아/ 못 만질 그 가슴을 만진 것이 한이 되어---
작사가? 밝히지 말자. 다만 가수는 내 콘서트에 우정 출연했었던 남백송 선배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노래다. 그런데 이상하다. 4박자 복식 호흡은 몇 십 분이나 계속되고(2/4박자 두 마디면 4박자다), 마음은 한없이 편안한 것이다. 나는 속으로 허허 웃었다. 천박과 저급, 내가 그걸 꼬집을 자격이 있는 공인이기라도 한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계속 걸었다. 그리고 ‘죄 많은 인생’에다 몇 곡을 보태어 흩뿌렸다. 노인 학교에서 친구 천무룡 형의 승용차와 무궁화 열차 안에서도.
문득 인생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마구 흩뿌릴지언정 거두는 게 있었으니. 가을 하늘이 유달리 드높았다. 트로트, 나는 2/4 혹은 4/4박자 ‘하나 둘 셋 넷’과 ‘편안하다’는 의사의 처치보다 훨씬 윤택한 들숨과 날숨을 택한다.
(2010년 10월 16일)
* 창작 후기
창작이다? 그 근거는 정진권 교수의 주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본다. 그분은 일찍 수필에서의 허구 도입을 이야기했다. 초야의 무지렁이인 내가 거기 가세는 할지언정 독창적인 이론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몇 가지 피상적인 수필의 특성에 견주어 보고 근접하고자 애쓰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겠다는 색악은 갖고 있다. 무엇보다 수필은 맑고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시는 소나기 소설은 흙탕물 수필은 지하수라 했을 것이다. 피조물 중의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사람이다. 그걸 제대로 그려내는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15장을 넘긴다면, 나는 일단 실패라고 본다, 내 졸고를 보고 말이다. 12장-15장! 그게 정답이다. 그 안에 압축시키는 노력도 ‘창작’을 향한 몸부림이다. 일단 나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화를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것까지 감안해서 12-15장, 이게 환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본 졸고가 21장, 줄였어야 하는데---.
산문의 생명은 주제라고 하고 싶다. 반드시 교훈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童話도 거기로부터 자유로운데 하물며 수필이랴. 주제 (혹은 소재/ 등호를 그을 수 없지만)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신변잡기라는 소릴 듣는다. 그러나 작품을 함부로 평가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행간을 샅샅이 훑어야 한다. 언젠가 ‘악보 배달을 하고’라는 졸고를 한 편 시원찮은 잡지에 실었는데, 주제는 (영남과 호남의 화합)을 ‘목포의 눈물’로 도모하자는 뜻에서 쓴 것이었다. 문단에서 한참 후배인 칠순 넘은 노인이 그 저변을 훑지 못하더라.
만약에 세상에 흔한 게 노래라면 그 노래를 들먹였다고 해서 신변잡기라 치부했다면? 오늘 트로트를 전면에 내세운 나 같은 사람은 평생 수필 한 편을 ‘창작’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야 할 것이다. 트로트로 인해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거기 동화된다면 그들은 창작에의 몸부림을 치는 사람이다. 나도 그 한 구성원이 되고 싶다.
끝을 ‘다’로 맺지 말자. 활자화되었을 때 외형이라도 보기 좋게 단락이며 문장 길이에까지 신경 쓰는 것도 창작이라는 정의와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는지 모른다.
이원우 <한국수필> 추천/ <한글 문학> 소설 등단/한국 수필가 협회 회원/ 전 초등학교장, 전 노인 대학장/ 대중가요 연구가/ 지은 책 1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