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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감동을 주실 때
에스라 1:1-4
1. 실패의 역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세상 만민 중에서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을 보면 북쪽 갈릴리 지방에 있는 비옥한 약간의 토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땅이 마치 광야와 같이 메마르고 건조한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척박한 땅을 그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주셨을까요? 그 척박한 땅을 주시면서 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을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기업으로 받은 건조한 광야와 네게브 사막 지역은 물이 부족해서 그렇지 실상은 아주 영양분이 풍부한 땅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이 땅은 기근이 들면 살기 어려운 땅이었지만 충분한 비만 내려 주면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이 땅에 도착했을 때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이 든 그 땅에 정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떠났다가 낭패를 당한 후에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서 살게 됩니다.
이삭 때도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아버지처럼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그 땅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땅에 거하면서 기근의 때를 견딜 수 있도록 우물을 팠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기근이 심하여 죽겠다고 난리인데, 이삭은 그 해 농사를 지어 100배의 수확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삭은 거부가 된 것은 기근을 견딜 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영양이 풍부한 땅이기 때문에 물만 충분하면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주는 그런 땅이었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사막 같은 땅에 정착촌을 세우고 갈릴리의 물을 끌어와서 옥토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농산물은 이스라엘의 중요 수출품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면 하나님이 풍부한 비를 내려 주셔서 이 땅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같이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기근이라는 어려움을 주셔서 고난 중에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게 되면, 그 주변에 사는 이방인들이 궁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은 분명히 척박한 땅인데 어떻게 저런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아와 너희는 어떻게 그런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느냐? 라고 묻게 됩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더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복을 주셨다고 전해주면서, 너희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이 복을 누리며 살고 싶으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라고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 나라들도 자신들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도록 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받은 사명이었습니다.
반대의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섬기지 않고, 각종 죄악을 행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게 되었을 때 이방 나라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이유를 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죄를 지으며 살다가 하나님의 징계과 심판을 받아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증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두 가지 삶 중에서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삶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방 나라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의 죄와 범죄를 심판 하셨고 그 심판의 고통 중에 회개하고 돌이키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경험한 역사였습니다.
2. 하나님이 주신 말씀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종들을 보내셔서 주신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서 종살이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서 25:11절입니다.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이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이 메시지는 범죄한 이스라엘이 바벨론과의 전쟁에서 져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서 29:10절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전쟁에서 져서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될 것이지만 70년 후에는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예레미야는 예레미야서 29:11절에서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의 손에 넘겨 징계할 것이지만 70년 포로 생활 동안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시키셔서 다시 그 백성으로 삼아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심판 후에 회복될 그 영광스러운 날을 내다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이것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했던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둘째, 이사야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44:28절입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는 장차 고레스라는 사람이 일어나 하나님의 목자가 되어서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으로 돌아가도록 해 주고 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기초를 놓게 해 줄 것이라는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셋째, 에스겔을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에스겔서 37장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어떻게 회복되고 또 어떻게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그 고토로 돌아갈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막대기 비유를 통해서는 그때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의 나라가 될 것인지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47장의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의 환상은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서 세상의 생명을 살려 나가는 제사장 국가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 다니엘이 깨달았던 말씀
이스라엘의 회복을 깨달은 다니엘
당시 중동 지방은 바벨론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 바벨론 동쪽 곧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는 메데 바사 왕국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메데 왕 아하수에로의 딸과 결혼하므로 결혼동맹을 맺습니다.
그리고 이 고레스는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와 함께 메데 바사 연합군을 이끌고 바벨론과 전쟁을 하여서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페르시아 제국을 세우게 됩니다.
당시 메데는 큰 나라였고 바사는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큰 나라의 왕인 다리오가 신생 페르시야 제국의 왕이 되고 그 처남이었던 바사의 고레스는 그 밑에서 바벨론이 지배하였던 지역을 정복하는 전쟁을 계속하였습니다.
다니엘서 9장을 보면 이 다리오가 통치자가 된 그 첫해인 BC 538년에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이 70년 만에 끝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레미야서 29:10절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때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한 후 67년이 되는 때였으며 다니엘의 나이는 82세가 되는 해였습니다.
이 말씀을 깨달은 다니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땅에서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에 그 마음이 감사와 감격으로 불타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작정하였다고 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금식하고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그 일을 이루어 주실 것을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고레스에게 하나님의 예언을 전해준 다니엘
다니엘은 이사야서를 읽다가 이스라엘의 고국으로의 귀환이 바사 왕 고레스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사야서 44:28절입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그래서 다니엘은 고레스를 찾아갑니다.
고레스를 찾아가서 하나님이 약 15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 즉 바사 왕 고레스가 세계를 지배하는 군주가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과 하나님이 고레스를 이스라엘의 목자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 주실 것이며, 고국으로 돌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나중에 이 고레스는 바벨론 정복 전쟁을 마친 후에 다리오로부터 제국을 양도받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고레스는 다니엘의 예언한 것처럼 페르시아의 왕이 되었습니다.
4. 고레스가 보인 믿음의 반응
고레스의 순종
고레스는 다니엘로부터 전해 들은 것은 두 가지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일제국의 왕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을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어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고 성전을 다시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예언한대로 고레스는 통일제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고레스의 마음을 하나님이 감동시키셨다고 합니다. 에스라서 1:1절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용하실 때는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그 마음에 감동을 주심으로 기쁨과 충만한 확신 속에 그 일을 하게 하십니다. 고레스를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셨다고 합니다.
고레스는 다니엘로부터 자신이 바사의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미 150년 전에 그렇게 작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얼마 있지 않아서 다니엘이 전해준 대로 고레스는 그는 처남이었던 다리오를 이어 페르시야의 왕이 되었습니다.
고레스는 자신이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 왕이 되었다는 것과 그런 자신에 대한 기록이 약 150년 전에 자신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기록되어 있었다는데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메데 바사 연합군이 강한 바벨론을 쉽게 이기고 결국 자신이 메데 바사의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이 은혜 주신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을 고토로 귀환시켜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게 하고 성전의 기초를 놓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고레스는 왕은 칙령과 조서를 내려서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2-3절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면서 고레스는 너희가 고국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고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되 나와 나의 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요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고레스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이방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뜻을 이루어 가는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순종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일생을 다 예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그 인생을 자기 힘으로 힘겹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그 신앙이 다르고 삶이 다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시편 139편을 보면 다윗은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라고 함으로 다윗은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나기 이전에 벌써 자신의 생애가 하나님 책에 다 기록되어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애는 철저히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생애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다윗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그 마음이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신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마음뿐 아니라 그 삶의 자세도 특별했습니다. 그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러고 말했을 정도로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스린 다윗 왕국은 이상적인 하나님 나라의 모델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자신의 생애가 하나님에 의해 철저히 계획되고 예정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그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이 만세 전에 다 예정해 놓으셨다고 믿습니까? 아니면 스스로의 힘겹게 개척하며 살아가야 할 삶이라고 믿습니까?
우리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서 나의 생애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벌써 다 예정해 두셨다고 믿어도 그 믿는 강도에 따라서 우리의 생애는 달라집니다. 이 믿음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더 큰 확신 속에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내 때’, ‘나의 때’라고 하시므로 철저히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그 일생을 살고 계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저 지식적으로 나의 생애가 만세 전에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그렇게 이해하고 믿고 있는 사람과 지식적으로 이해할 뿐아니라 순간순간 삶 속에서 그 일을 체험하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신앙이 다르고 그 삶이 다르게 됩니다.
5. 하나님이 감동하심
고레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를 1절에서는 ‘하나님이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생애가 철저히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던 고레스의 마음에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자 고레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감동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감동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위한 선한 생각과 소원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을 감동하실 때 그 감동에 순종하면 우리는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에 즐거이 순종하는 사람들과 함께해 주시고 또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 안에 계속 거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감동을 주셨는데도 순종하지 않고, 미적미적하며 무시하거나 못 들은 척하면 성령의 감동은 곧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계속 살게 되면 더 이상 성령의 감동은 오지 않게 됩니다.
그 예로 사사시대의 엘리 제사장을 들 수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처음에는 성령의 영감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년에 하나님이 그 자녀들과 가정에 주시는 말씀을 무시하며 살다가 결국에는 이상이 흔치 않은 삶,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사는 영적인 암흑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선한 길을 제시하실 때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고레스는 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이 예정해 두셨다는 사실과 또 성령을 통해 주시는 감화 감동 안에서 즉각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이 만세전에 나의 일생을 다 예정해 두셨다는 믿음을 가질 뿐 아니라, 또 성령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있을 때 즉각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인 반응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인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 하므로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영영히 벌하시지 않으시고 70년이 차면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포로 생활 70년째 되는 바로 그 해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대로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너희는 고국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을 새로 건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꼈던 감격이 어떠했겠습니까?
나라를 떠나면 모두가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그리워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꿈에서 소원해 오던 그 일이 지금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고국으로 귀환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처음에 바벨론으로 끌려왔을 때는 포로로 노예로 끌려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자기 능력에 따라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고, 다니엘과 같이 총리가 된 사람도 있었고, 다니엘의 친구들과 같이 고급 관리가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왕이 가장 신임하는 술맡은 관원 장이 된 느헤미야도 있었고, 다른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 황후, 모르드게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제국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요즘도 우리가 보면 잘 알지만 세계 경제는 유대인들이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추측하건대 아마 당시에도 그랬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그들은 자기의 재능과 소질대로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여 이제는 좀 살만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언의 말씀과 고레스의 칙령을 따라 고국으로 돌아가려면 마치 갈데아 우르 땅을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지금까지 바벨론에서 이루어 놓은 모든 산업과 생업을 다 포기하고 가야만 했습니다.
그것뿐 아닙니다.
그들이 돌아가야 할 예루살렘은 완전히 훼파되고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다시 성과 성전을 건축하려면 많은 헌신과 희생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약속의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성령이 주시는 감동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뿐 아니라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령이 그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인도하실 때 그 감동을 무시하고 모른 채 외면하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성령이 주시는 감동을 무시하며 살아오다가 이제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별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고 쉬운 일이면 모두 다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희생을 요구하고 헌신을 요구하고 수고를 요구할 때는 다릅니다. 그 요구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서를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고 말씀하실 때 이 순종은 내게 좋은 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하게 되면 내게 손해가 날지라도 하나님이 그렇게 요구하시고 성령을 통해 감동을 주시니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장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기 어렵고 힘들다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장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바벨론 땅을 떠나, 황무지와 진배없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시 성과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힘든 결정이었지만 이스라엘로 돌아간 사람들을 통해서 다시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지고 그 후손들은 하나님 백성의 특권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어렵다고 순종하지 않고 바벨론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이후 언약 백성의 기업에서 멀어지고 나중에는 그 신앙까지도 다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아마 그 지역 사람들과 동화되어 지금은 회교 사원에서 알라신을 섬기고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을 감동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역하지 말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사 사람들이 보인 믿음의 반응
에스라 1:6절 말씀을 보면 바사 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
바사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방 신을 섬기며 살았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러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와서 은과 금과 각종 보물로 지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여 주의 일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이런 성도들의 삶을 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먼저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교회 개척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성도들의 헌신하는 삶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줍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도우려고 나서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재물을 바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바사 사람들에게서 일어났습니다.
바사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신을 섬기기 위하여 바사에서 이루어 놓은 그 모든것을 버리고 그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 마음이 감동을 받아서 은과 금과 보물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을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은금 폐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시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 사람들이 은과 금과 패물과 의복 등등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다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한 푼도 받지 못한 품삯으로 받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역사 속에서 드러날 때 믿는 사람들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1997년 일어났던 평양대 대부흥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평양대 부흥이 일어났을 때 평양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당시 교회 안에서 일어난 회개 운동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그 사람들도 자신들이 잘못한 일들을 서로 고하며 용서를 구하고 손해를 입힌 것은 변상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예수 믿는 성도들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1% 도 안되었는데 평양 시내는 주일이면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 상점의 문을 닫았을 정도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 부흥의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부흥은 성도 개개인과 교회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그 교회가 소속되어 있는 세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은 초대교회 부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이적과 표적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성도들이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 앞에 내어놓는 헌신의 역사를 보고, 사람마다 두려워하게 되었고,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의 수를 날마다 더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사 사람들이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업들을 다 버리고 고국으로 귀환하는 것은 자기에게는 엄청난 손해가 나는 일이었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이기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서 섬기며 살려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귀환 행열을 보며 마음이 감동을 받아 자신들의 귀한 보물들을 내어주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성도들뿐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감동을 주셔서 사용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 있는 우리들, 주일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마음에 감동을 주시거나, 성령을 통해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우리들은 바사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 밖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에 주시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각종 진기한 보물들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우리들이 성령이 감동 주시는데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삶이 되겠습니까?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해주시고 수많은 기적을 베풀어 주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는 모습을 보시고 저주를 선포하고 계십니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세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는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보다 많이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지 않았고, 성령을 통해 주시는 감동을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면 그 즉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감동하실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감동 주심은 기회 주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갑자기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을 감동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받을 기회를 주시고 계신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 마음 속에서 일어날 때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둘째, 주신 감동을 억제하거나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감동이 올 때 우리는 그것을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서를 보면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세월을 아껴서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늘 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모님이 주일학교 교육전도사로 섬길 때 그 교회 안수집사님이 우리가 교회 개척을 준비하고 있는 줄 알고 교회를 개척하게 되면 소형차라도 하나 사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분은 뉴타운으로 지정된 서울과 경기도 경계선에 땅 500평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시가는 엄청났습니다.
저희가 어려운 시대에 교회 개척을 한다고 하니 성령께서 그 마음에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고 감동을 사라지자 약속한 대로 순종 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어서 이제까지 소형차를 사주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희가 아는 어떤 분은 남편이 직업군인이어서 젊을 때는 얘기를 업고 새벽기도에서부터, 전도, 군인교회 섬기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분에게 은혜를 주셔서 각종 은사를 많이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시고 성령께서 감동하시므로 그 삶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은 새벽 기도하려고 교회에 갔는데 하나님이 저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100 만원을 주라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우리 교회 교인도 아니고요? 라고 하자 그래도 저 사람에게 100 만원을 주어라 라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모님에게 가서 저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예요 라고 물었더니 교회를 개척하다가 어려우셔서 그만두고 우리 교회 기도하려고 나오시는 목사님이라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벌써 4-5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 그 당시에는 100만 원이면 아주 큰 돈이었습니다. 당시에 목돈으로 100만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남편 몰래 융자를 내어서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렵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하심에 순종하며 살았더니 자신에게는 물로 남편과 그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군에 있을 때 남편의 진급은 물론 제대 후에는 대기업에 들어가서 지금은 연금과 월급을 합치면 그 소득이 엄청나다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그 아내의 헌신 때문에 자신의 일이 잘 풀리게 된 것을 안 남편 되시는 장로님은 늘 당신은 기도만 해, 기도만 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은 나중에 신학을 하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기도원을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지난주에는 제가 과거 참빛교회에서 목회할 때 한 설교를 읽어보았습니다.
그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오늘 설교와 연관 되어서 인용해 봅니다.
오늘 점심은 외식을 하게 됩니다.
이병규 집사님께서 그간도 몇 번 식사 대접을 해 주셨지만 오늘은 특별히 우리 교회에 오신 주동자 전도사님, 김정숙 집사님, 나무용 집사님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식사대접을 하시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실까요?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감동을 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도 순종하지 않으면 당장은 경제적으로는 득이 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지 않으면 당장은 얼마의 득인 것 같아도 그것으로 그 인생은 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그 삶에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주동자 전도사님도 창동에 있는 교회에 그냥 다니시면 얼마나 더 편안합니까?
그런데 저희교회로 오니 어떤 일이 앞에 놓여 있습니까? 오전에는 말도 잘 듣지 않는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해 수고해야지요. 점심을 먹고 서는 쉴 틈도 없이 설거지를 해야지요. 또 매주일마다 밑반찬까지 해 오시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누가 반찬 해 오라고 한다고 해 올 수 있습니까? 그 마음에 감동이 와서 자원하셔서 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복 된 삶이 아니겠습니까?
김정숙 집사님을 보십시다.
개척교회에서는 기도가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그 먼 가양동에서 금요 기도회에 매 주일 오십니다. 지난주에는 먹은 음식이 체하여서 음식도 잘 먹지 못하고 토하는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기도자리 지키려고 오셨습니다.
이렇게 힘들 때는 집에서 기도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어렵게 교회에 오셨을까요? 하나님이 힘들지만 교회에 가서 함께 기도하자 라는 마음을 주시니 그렇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김성진 집사님은 이제 내일 이사를 가십니다.
그래서 교회와 집이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 마음에 감동을 주시면 비록 거리는 멀어도 우리 교회로 출석하지 않겠습니까? 너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고 사는 성도로서 교회를 세우는데 한 알의 밀알이 되어라 라고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면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교회 청소를 토요일 날 사모님이 거의 합니다.
그런데 배도 많이 부르고 해서 청소하기 어려운데 내가 해야겠다. 라고 하나님이 감동 주시는 분이 계시면 자원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제가 청소를 히고 있겠습니다.
셋째, 푯대를 옮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감동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지 않은 사람은 몰라서 못했다고 하지만 감동을 받고서도 순종하지 않으면 알고도 순종하지 않는 자가 됩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물으실 때 변명할 수도 없게 됩니다.
우리 교회로 누구를 전도해서 데려와야지 라는 감동이 있으면 실행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감동에 기도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감동하셔도 그 감동에 순종하지 않으면 곧 감동이 없어지고 아무런 감동도 받지 않은 것이 됩니다. 나도 과거에는 감동 받아 보았어라고 해봐야 아무 소용아 없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일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한 없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하만의 흉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멸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모르드게는 황후 에스더에게 네가 네 동족에 관한 이 사실을 왕에게 말하여서 우리 민족을 구원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네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유대인들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촛대를 옮길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 가시려고 촛대를 옮겨가실 것입니다.
이때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함께 예배드리며 이 말씀을 나누고 있는 우리 모두는 성령이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면 지체하지 말고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설교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기도를 통하여, 다른 성도님들의 권면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심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감동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하나님이 내게 지금 말씀하시고, 기회 주신다는 것을 믿고 즉각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인생을 동업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