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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자신이 개량한 벌통 앞에 앉아 있는 생전의 L.L.랑스트로스 , 사진 출처-자서전에서 인용)
오늘날 양봉의 표준이 되는 벌통을 만든 사람은 미국태생의 성직자겸 양봉가였던 로렌조 로레인 랑스트로스(Lorenzo L. Langstroth, 1810.12.25.~1895.10.6.)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이름을 따서 개량형 표준벌통을‘라식벌통’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곤충에 남달리 관심이 많아서 개미 관찰 등에 열중했다.
이런 그의 이상한 행동을 부모는 마땅치 않게 생각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곤충에 심취했다.
예일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한 랑스트로스는 미국의 한 회중교회에서 목사로 일하던 중
어느 날 친구의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던 유리 용기 안에서 멋진 벌소비를 보게 되면서 다시 곤충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날로 랑스트로스는 꿀벌 두 통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 꿀벌기르기와 연구에 평생을 바치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양봉장을 운영하며 1852년에는 당시 유럽형 벌통과 벌집구조를 개량해서 운반과 내검을 용이하게 한 벌통을 발명했다.
그리고 곧바로 필라델피아에서 특허를 신청해 획득했다.
그의 개량형 벌통 덕분에 벌을 나누는 분봉이 자유로와져서 본격적인 현대 양봉시대가 열린 것이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벌통 속 소비(벌집)간의 간격이 9미리인데, 이는 벌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집을 짓고
다른 벌집소비로 이동하기에 최적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을 처음 알아내서 적용한 벌통이 랑스트로스의 벌통이다.
그는 1858년 아들과 함께 이탈리안벌을 증식시켜 당시에는 엄청난 액수인 2,000달러를 한 시즌에 벌어들이는 수완을 발휘했다.현재 북미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양봉벌인 이탈리안벌의 수입도 그의 1863년 사업이었다.
그 후 독자였던 아들의 죽음과 자신 몸의 지병으로 더 이상은 양봉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지만
소수의 꿀벌 군수를 가지고 연구와 저서 활동은 계속했다.
1874년 양봉업계에서 은퇴한 후 외인장로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중 1895년에 생을 마감했다.
아쉽게도 양봉업계에 큰 족적을 남긴 랑스트로스였지만 양봉으로 부를 축척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그는 오늘날 미국 현대 양봉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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