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정승이냐고
벌린
조개올시다
4월
영산강변은
유채꽃반
나비반이다
늘어진버들은
남자는배
여자는항구로
갈리는
서러운
이별가에
몸을떠는듯
하늘거린다
호남최대의
포구에
누렁돛배
흐를때
나루터
주막에는
홍어를찾는
식객이
흘러넘친다
나주
곰탕국물에
홍어묵은지
막걸리를곁들인
홍탁을
펼쳐놓고
입맛을
다시거나
홍어
애보릿국을
뜨는
술꾼들은
작가
황석영이
홍어맛을
처음본뒤
터뜨렸다는
그기분에
휩싸인다
참으로이것은
무어라
형용할수없는
혀와입과
코와눈과
모든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혁명일세
큼큼하고
노릿노릿하고
흉흉하다는
홍어애로끓인
보릿국은
둘이먹다
하나가죽으면
두그릇
먹는다는
그클클한맛이다
나주에
홍어요리가
정착하게된것은
고려말이었다
정부는
흑산도
주민들이
왜구에
시달리자
아예섬을
비워버리는
공도정책을쓴다
흑산도
어부들이
몰려온이후로
나주영산포는
홍어1번지가
되었다
영산포
중에서도
내영산
마을건너
삼영리
포구부근에
양지홍이라는
소녀가살았다
양지홍이
태어난해는
분명
하지않으나
그녀가
태어날때
이서구
1754~1825가
전라감사로
있었다는
일화를
고려하여
따져보면
1820년
순조20년
을유년쯤
이었을것이다
실학자
이서구는
천문지리에도
밝았다
어느날
점을쳤는데
나주
삼영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을시켜
혹시
거기막
새로태어난
알라가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러면서
이렇게중얼
거렸다고한다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면
나라를
결딴낼만하고
계집이라면
세상을
시끄럽게
하겠구먼
나주로달려
알아보고온
사람이
홍어요리
주막을하는
양씨집에
여아하나가
태어났다고
전하니
그는다행히
남자가
아니어서
아이
하나벨일을
면했구나
라고말했다
전라감사는
다시
사람을보내
아이가
홍어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오직홍어라는
뜻으로
지홍이라는
이름을
내려주도록
하라고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홍이는
무척예뻤다
객주집에서
요리만
내고있기에는
살결이
너무보얗고
수줍어
살짝흘기는
눈매는
보는사람의
가슴이
아리도록고왔다
목소리는
새벽
잎사귀에서
절집
종소리에
놀라구르는
물방울보다
더곱게굴렀고
오래씹은
밥맛보다
달달했다
이제겨우
열두살인데도
한번보면
반하지않는
사내가없으니
천한출신인
아버지양씨는
이보물을
누군가에게
빼앗길까바
숨기기에
바빴다
주방을
기웃거리는
남정네라도
있으면
괜히신경이
날카로워져
어이중생
무얼남의
안구석을
들여다보고
난리여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
움찔해서
다시
막걸리잔을
들다가도
양씨가
저쪽자리로
가버리면
다시
혹시지홍이
치맛자락이라도
볼까해서
하이바를쑥뺀다
지홍네
홍어집은
홍어맛도
일품이었지만
이런객쩍은
이들때문에
늘북적거렸다
그녀는
인근의
도내기
샘이라는
곳에가서
물을긷기도
하고
채소를씻기도
하였는데
이때마다
사내들이
뒤를밟아
가슴을졸이고
있었다
나주에는
지홍이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만든노래가
민요로전한다
나주영산
도내기샘
상추씻는
저큰애기
속잎일랑
네가먹고
겉잎일랑
활활씻어
나를주소
타는
속을씻게
지홍의
어미는
불심이깊어
인근의
불회사에
가끔
딸을데리고
다녔다
1500년도
더된옛날
마라난타가
와서
세웠다는
이고찰에서
어미는
지홍을
바라보며
걱정하였다
이제막붉은
상사화처럼
피어오른아이가
곧무식한
사내의
손에꺾여
인생을
발에닿는
돌멩이처럼
살아갈것을
생각하니
아깝고
서럽도다
그러다가
이절
길목에있는
연리지에
두모녀가
다다랐을때
지홍이
말을꺼낸다
저두그루
나무는
얼마나서로
사랑하기에
저렇게
가지를뻗어
서로
붙어버렸을까요
그러게말이다
너도저런
배필을만나
다복하게
살아야할텐데
어머니
나는결심한게
있어요
나는
중이되거나
기생이
될거예요
엉
지홍의
어미는
기가막혔다
곱디고운
어린딸년이
저또한
세상의
이치를나름
돌아보니
제대로살길이
없음을
깨달았다는
뜻이아닌가
그래도우선
윽박부터질렀다
무슨소리를
하는게냐
아비가
일궈놓은
상업이
번창하여
돈도꽤모였고
요즘이야
그까짓
양반도사는
세상인데
그런인생을
살려고
한단말이더냐
어머니
나는딱
결심했어요
내나이
열넷이되면
출가할거예요
다만
중이될지
기생이될지는
어머니가
결정하세요
어미는딸을
달래보려는
심산으로
그래
왜네뜻이
그렇게
되었는지
한번
들어보자꾸나
라고말하며
가던걸음을
멈춰
길섶바위에
앉았다
지홍은
자분자분
설명했다
절에들려고
하는까닭은,
자신을노리는
세상에서
숨어
마음이라도
편히살고
싶은마음
때문이고
기생이
되려고하는
까닭은
차라리
이원에나가
권부를지닌
사내를꿰차
장차부모를
귀히모시고
더불어
호강하려고
하는거라고
지홍이가
열네살되던해
아버지
양씨는
한양으로
올라가
나주헌이라는
큰술집을내고
딸을
기생으로
들어앉혔다
당시
도성내에는
주막이크게
번성했다
18세기
영의정
채제공의
말을들어보자
당시한양의
쌀과시장의
어육이
모두술집에
들어가니
금주령을내려야
한다는
건의가
잇따랐지만
술집은
줄지않았다
이런
주막붐을타고
지홍이의
나주헌은
금방
소문이났다
영산강에서
올라온일품
홍어요리에다
천하일색의
기녀가춤과
거문고로
술맛을
드높이니
황진이의
풍류가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무렵
아버지
양씨가
딸을앞에
앉혀놓고
이렇게말했다
너는부디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거라
비록술따르는
처지일망정
품행이
반듯하면
귀하게
될수있다
내듣자하니
상의원
첨정에있는
하옥어른이
안동김문의
큰그릇
이라는구나
우연히
이곳에한번
오게되면
네가
그기회를
붙잡아보아라
중전
순조의비
순원왕후의
오빠라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분은
어떤
분인가요
옛날
영의정을지낸
김창집
선생의
5대손이고
영안부원군
김조순
어른의셋째
자제분이다
권세를잡은
안동김문이
대개
정적에게는
가혹하다지만
지인이나
아랫사람에게는
너그러워
바닥인심은
잃지않았다
특히
하옥어른은
성정이
너그럽고
작은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는구나
지홍은
뜨락의연못에
연꽃을
가득심어
연꽃못을
만들었다
이렇게
부녀는
타깃을
정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1838년
헌종4년
어느날
기회가왔다
김좌근이
정시문과
병과로
급제를
한것이다
이때가
나이
41세때니
안동김문의
핵심인그의
과거시험
합격에
얽혔을
비화가
안 봐도
비디오다
18세기
과거시험
현장을
르포로
기록한
성호이익은
협책
시험장에
책반입
금지령은
이미깨졌고
시험을보는
사람중에서
과거시험을
치르는이는
열에
한명뿐이요
나머지는
모두
접군이었다고
폭로하고있다
접군은
뭘했는가
답안지를
작성해주는
거벽글씨를
써주는사수
앞자리를
차지하는
줄서기꾼까지
공동작전으로
세도가를
등용시킨것이다
굳이
김좌근이
그렇게
합격했다고
못박을수는
없는
일이지만
여하튼
어렵사리
턱걸이
한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시험에
붙고나니
기분이좋아
질수밖에없다
오래전부터
한번
가야겠다고
벼르던
나주헌으로
벗들을불러
잔치를
벌이기로
한것은
그때문이었다
부용당위에
부용이서니
사람부용이
꽃부용
보다낫네
김좌근은
연꽃이
화사한
연못위에있는
나주헌
주련의
시를
읽고놀랐다
안동김씨의
풍류객이며
봉조하
조선시대
전직관원을
예우
차원에서
70세로
퇴임한
종이품
이상의
관리에게
특별히
내린벼슬을
지낸
김이양
대감의
소실로들인
기생
김부용의
시였기
때문이다
김좌근은
당시한양의
일등
미색이라고
손꼽히던
지홍이
무엇을간절히
바라고있는지
필이지르르
몰려왔다
남도의
홍어요리가
푸짐한
주안상앞에
나붓나붓
나비걸음으로
지홍이가와서
눈을깔고앉는다
18세
터질듯이
피어오른
절정의
아름다움이
현기증을
느끼게
할만큼
놀라웠다
중국에
경국지색이
있었다더니
거기만
있었던것이
아니로구나
그.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저는
나주에서
올라온
시골뜨기
지홍이라
하옵니다
지홍이라
어찌
사내이름을
지었단말인가
오래전
호남에계시던
이서구
어른께서
친히지어주신
이름이옵니다
“그게무슨
뜻이더냐
다만
홍어처럼
살라는
뜻이옵니다
홍어처럼살라
어떻게살라는
말이더냐
홍어처럼
영산강을
떠나지말고
가만히살다
가라는
뜻이옵니다
흠.그런데너는
어찌하여
그강을떠나
여기까지
헤엄쳐
왔단말이냐
척재어른은
그렇게
지었으되
홍어회또한
나주를떠나
이렇듯
한양에서
뭇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으니
홍어처럼
살려면
저또한
그래야하는것
아니
겠사옵니까
핫핫정말
그럴듯한
변론이로다
나주는
천하의
변방이라
인물이없는줄
알았더니
여기여사
하나가
있었구나
과분한
말씀이옵니다
하지만
나주를
그리낮춰
말씀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이곳은
고려
성종때부터
12목
요즘의
광역자치단체
하나였고
호남제일
고을입니다
금성산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영산강이흘러
이곳한양과
지세가
닮았습니다
북악산이
금성산이고
한강이
영산강이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작은한양이라
불리던
곳이옵니다
허허,그랬더냐
대단한
곳이구나
나주에는
세 가지
배가있다
하옵니다
하나도아니고
세가지란
말이더냐
나주사람들이
우스개로하는
말이옵니다
하나는
다디단
나주배고
또하나는
목포로
이어지는
영산강
뱃길에떠있는
돛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배는
핫핫.떠나가는
배를탄
사람을못잊는
여인의배가
아니더냐
간밤에그배는
다른배에닿아
있었는데
어머나
너무야하신
말씀이옵니다.
그게아니란
말이더냐
곰탕으로
배를채워
떠나는
사람의그리운
허기를데워
주는것이라
하옵니다
엉
내가
너무많이
나갔구나
내가연꽃을
좋아하여
호를하옥이라
지었거늘
그대의
뜨락이
온통하옥이니
마치내집에
온것같구나
연꽃의
열가지
덕중에서
이제염오를
가장
아끼옵니다
진흙속에
살아도
진흙에물들지
않으니
그대가
부용이란
말이더냐
그렇게살라꼬
애쓰고
있사옵니다
아까
기둥에붙은
부용시를
보았는데
부용의
다른시와
더불어
거문고
소리를들려줄수
있겠느냐
부족하지만
한번
해보겠사옵니다
좌중의
하객들이
모두큰소리로
환호했다
사각사각
낙엽
밟고가는
스님이
앞장서고
해뜻해뜻
머리에
꽃
꽂은기생이
따라가네
만겹의
계곡과
산가는길
어지러워라
이길
돌아가려면
신선과
숨바꼭질
좀해야겠네
김부용이부른
묘향산에
들다라는
시옵니다
과연절색에
절창에
탈속의
풍류로다
이날밤
두사람은
합환의꿈에
이르렀고
마침내
땔수없는
사이가된다
사내는
홍어처럼
톡쏘는
밤의여인과
남도농주처럼
착달라붙는
낮의
여인사이에서
정신을차리기
어려웠다
그는마침내
이렇게말한다
선녀로세상에
외출나온
그대가
영산강물에
얼비친
물결때문에
번지수를
잠깐
잘못찾는
바람에
천출로태어나
설움을
겪었구려
내앞으로
무슨수를쓰든
큰부귀를
누리도록
해줄터이니
그대는
나를
믿으시오
김좌근은
자식이
없는것을
이유로삼아
이나주
여인을
소실로들인다
당시출세한
기생의대명사
김부용이
한강가에
화려한빌라
녹천정에
들어와산지
1832년
6년이
되던해였다
김부용은
가벼운
알코홀릭이
되어
시를쓰면서
한가하게
살다갔지만
홍어의
꿈을지닌
양지홍은
좀달랐다
지금까지
이여인은
조선의
연산군때의
장녹수
광해군
시절의
김개시
숙종대의
장희빈
그리고
명종대의
정난정과함께
조선5대
나쁜여자로
손꼽혀왔다
조선말의
권력부패
상징으로
자주
거론돼왔고
또
안동김씨
세도가문의
전횡에
역성든
개념없는
여성으로
낙인이
찍혀있다
물론그녀의
행적자체를
부인
할수는없다
김좌근의
아버지인
김조순
1765~1832
당대에
손꼽히던
학자이며
정치원로였다
정조가
돌아간뒤
순조를
30년간
보필하면서
가문권력을
구축하게된다
김조순을
결정적으로
권력화했던
계기는
딸을왕비
순정왕후로
앉히면서
국구
왕의장인이
된일이다
그의
개인적인
품성은
우유
부단하다
할만큼
온건했고
사람들에게
너그러웠다고
한다
정적에
대해서는
그럴수
없었겠지만
한시대를
풍미한
스타지식인
으로서의
인격적면모는
지니고
있었던셈이다
김조순에게는
아들이
셋있었는데
핵심으로
꼽혔던
맏이
김유근은
평안감사로
나갔다가
테러를당해
죽을고비를
넘기고
돌아온다
이후
후유증인지
실어증과
반신불수
상태가오고
비참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나머지
두아들로
김원근과
김좌근이
있었는데
둘중에서는
김좌근이
더뛰어
났던듯하다
3남인
김좌근은
아버지를닮아
경서에
밝았고
문장도
뛰어났다
그의
글솜씨를
엿볼수
있는것은
그가쓴
순조대왕
능비다
주자가
말하기를
일이
모두의리에
맞으면
스스로
반성해봐도
항상
곧다고했다
주자는
본성대로
편안히
행하는것을
성이라하고
그렇게된
이유를
알수없는것을
신이라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대순이며
대화다
만백성이
새로워져
화평한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것도
구족을
친근하고
화목하게
한데서
시작
된것인데야
말할것이
무엇있겠는가
아무리
권력자라지만
이토록
중요한글을
써낼수
있다는것은
문재와
학식이
받쳐주었기
때문일것이다
김좌근을
오로지
부패하고
탐욕스러우며
어리석은
인물로만
치부하는것은
지나치게
인물을
단순화한
느낌이있다
그가
순조비인
순정왕후와
함께
국사를
농단하게되는
과정도
권력의집중
이라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영의정을
3번이나
지낸그를
한명회
유자광과
더불어
조선3대
간신으로
지목하는것은
조선말의
혼란과
타락상에
대한염증과
불쾌감을
오로지
그에게
얹어버리는
여유없는
매도라고
할수있다
김좌근은
아버지의
관대한
처세술을
이어받았다
별장을
청계계곡에
지어놓고
바둑을두는
풍류생활을
즐겼고,
안동김씨의
입지를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정치적
대립자들
외에는
너그러운
태도를보였다
나주의
야심녀
양지홍을
매료시킨것은
바로
김좌근의
너그러움이었다
아버지의
권력을
이어받은
자의
여유랄까
가정적으로
넉넉한
교육의
기회를
가졌던
엘리트로서
그는
유연성과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김좌근의
면모에
관한일화는
꽤많다
전라도
장성에
이춘보라는
중생이
있었는데
객주로
큰돈을벌다
실수로
가산을
탕진하고
관아의
돈까지날렸다
죽을지경이된
이춘보는
문득자신의
외삼촌이
김좌근과
어린시절
친구였다는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외삼촌
박정삼에게
간청한다
박정삼이
가만히
생각해본다
김좌근이
옛친구인것은
맞지만
아무리그래도
자신은
지금천하의
가난뱅이고
그는권력의
핵심인데
조카의일을
하소연한다고
들어줄리
있겠는가
그는하이바를
흔든다
하지만
조카가
죽기살기로
매달리니
하는수없이
김좌근의
집으로
찾아간다
김좌근은
박정삼을
보더니
반가워서
얼싸안는다
천하를
호령하는
사람이맞는가
서당시절을
이야기하며
김좌근은
소년처럼
깔깔댄다
그때어렵사리
박정삼이
조카의
이야기를
꺼낸다
김좌근은
큰소리로
대답한다
아! 잘되었다.
그일은
호조에서
다루는
일이아닌가
가만히
있어보게
여봐라
호조판서를
좀
불러오너라
호조판서는
그의
양아들이며
권력실세인
김병기였다
한집에
살고있던
김병기가
달려오자
김좌근은
다짜고짜
이렇게말한다
여보게판서
큰절로
인사드리게
아비의
옛친구라네
김병기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절을올린다.
그때놀란
박정삼이
일어나
맞절을
하려하자
김좌근이
허리춤을
잡아
주저앉히면서
그냥받게나
라고
속삭인다.
자,판서
장성부사에게
당장편지를
쓰시오
이사람의
편의를
좀봐주도
록 말이오
그러자
김병기는
난감한
표정으로
글을쓴다
김좌근은
박정삼에게
서찰을
쥐어주며
이젠
해결됐으니
걱정말고
다리쭉뻗고
잠좀자게나
라고
말한다
그런데
박정삼이
문밖으로
나가자
김병기의
하인들이
대기하고있다
편지를
빼앗고는
그를혼쭐낸다
이후
김좌근은
열받아서
방문을걸고는
자리에
드러누워버린다
아들
김병기가
놀라서
문밖에서
석고대죄를했다
방 안에서
앓는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비의
옛친구를
능멸한것은
나를능멸한
것이나
마찬가지
내가
자식놈에게
패대기를
당했으니
드러눕지
않고
배기겠는가
이후김좌근은
아예
박정삼을
장성부사로
임명해
내려보낸다
이런장면을
보고있노라면
착잡하고
복잡한
마음이된다
분명권력을
사용하는
나쁜자임이
분명하지만
어쩐지
왜곡된
세상에서
바닥에있는
사람을감싸는
따뜻한
면모가
짚이기도한다
여하튼
김좌근은
이런
사람이었다
이같은
성격은
안동김씨
가문의
흥망보다
그를더오래
권력에
있게하는
힘이
되기도했다
파락호처럼
지내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은근히
돌봐준것이다
이하응은
돈이
떨어지면
그가그린
난초그림을
김좌근에게
팔러왔다
그러면
김좌근은
두말없이
비싼값에
그림을사준다
그의이런
보험이
대원군집권
이후에
원로대우를
유지하게했다
다른
안동김씨들이
숙청
당했을때도
그는
철종실록
편찬을
주관하고
3군부영사
벼슬을받는다
김좌근은
한때의
바람기로
양지홍을
대한것이
아니라
그녀를
진짜후실로
대해주었다
후실
그이상이었다
양지홍을
당시세간에서
나합이라고
불렀다
합이라는
호칭이묘하다
합은
대문옆에붙은
쪽문을
가리키기도
하고
대궐을
가리키기도
한다
합문은
궁궐의
조회의례를
맡아보는
관아인
통례원을
가리킨다
궁궐의
일상업무가
시작되는
편전의
앞문을
그렇게
통칭했다
이에따라
정승을
합이라고
부르는
관행이생겼다
영의정은
영합
좌우의정은
좌우합이된다
정승의
성을따서
김합.조합
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양지홍을
나합이라
부른것은
김좌근의
벼슬만큼이나
높다는것을
비꼰의미일
것이다
그의미를풀면
나주의
정승이란
뜻이된다
하지만
합부인이란
말이있다
남의부인을
높여
그렇게
부른다
그렇다면
나합은
나합부인의
준말로
그리
어색할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