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제8회 지리책읽기대회 수상작 - 덕분에좋은세상(고등학교)
수상자: 충북 충주예성여자고등학교 2학년 전*
참가도서: <바다의 시간>
결과물 종류: 감상문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로 특정할 수 없으며, 개인의 성장 배경과 경험, 가치관 등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2017년부터 4년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만 18세 ~ 19세를 대상으로 진행한 “행복한 삶의 요건”이라는 주제의 설문 결과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4분의 1 이상인 25.6%는 재산과 경제력을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돈이나 명예, 권력 등의 사회적 희소가치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처음 제시했던 질문에 몇 가지의 조건을 추가해 보자. 지금으로부터 1분 후에 세상이 멸망하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곁에 있기를 바라는 대상이 있다면 어느 것일까? 교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위의 조건이 추가되자 학생들의 물질적인 가치에 대한 선호는 감소했고, 가족·친구·연인·반려동물 등 자신에게 의미 있는 대상에 대한 언급이 증가하였다.
설리번의 “발달 단계에 따른 특정적인 대인관계의 욕구”를 주제로 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청소년기는 타인이나 주변 사람에 대한 친밀감과 대인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가장 강하고, 보편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친구와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청소년은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이고, 행위 능력 또한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부모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으며, 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부모의 존재 역시 매우 중요하다. 물론 부모와 자녀, 그리고 가족 관계에서 의미 있지 않은 상호작용은 없다. 하지만 특히 어머니에 해당하는 여성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자녀에게 더 많은 애착을 가지게 되고, 양육 과정에서 이것이 깊어지며, 궁극적으로 어머니만이 아이와 형성할 수 있는 유대감이 있다. 어머니가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아이를 아끼는 모성애를 가지듯, 바다도 자신이 잉태하고 영향을 주는 생명체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에게 제2의 어머니와 같은 바다는 지구상의 90%의 생물을 수용하고 있으며,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가 되거나, 오염을 정화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생명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바다”라는 단어를 들으면 휴식과 여가라는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는 한다. 인간에게 바다는 매일 반복되는 바쁜 일상 속 작은 쉼을 주는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바다는 인간의 삶 속 더 많은 곳에 더 깊은 연관이 있다. 우선 바다는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인간은 바다로부터 마실 수 있는 물을 공급받으며, 바다의 물은 증발하고 이를 통해 인간이 숨을 쉬는 데 필요한 산소를 제공한다. 비열이 커서 지구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던 바다가 없으면 지구의 평균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여 인간은 물론이고, 현존하는 대부분의 생명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전체 생명체의 90%는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지구에서 이루어지는 광합성 중 90% 이상은 바다에서 이루어진다. 수많은 생물들은 바다에 살아가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에너지의 기반으로 얻고, 생태 피라미드를 거쳐 에너지는 이를 해양 생물들을 섭취하는 인간에게까지 이동된다. 바다로 인해 생활의 기반이 형성된 인간은 점점 진보해왔고, 그 과정에서 석유, 석탄, 철 등 해저에 매장되어 있는 광물을 사용했다. 광물을 우리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었으며, 궁극적으로 인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단 한순간도 바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적이 없으며, 바다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특정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연결 지어 추론하는 능력은 모든 영장류가 갖고 있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구별되는 고차원의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300만 년에서 500만 년 전 출현한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바다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인간은 미지의 세계인 바다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살아왔고,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바다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으며, 해양 패권을 확보하는 것은 한 사회의 긍정적인 미래를 설계한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이는 한국 전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인천상륙작전의 성공도 남측이 조수간만의 차 등 해양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듯 경제, 정치, 군사, 사회, 문화의 주도권은 늘 바다와 항구를 지배할 줄 아는 이들에게 귀속되어왔으며 우리 사회의 혁신은 대부분 바다에서 일어났거나,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1935년을 기준으로 1인당 국민 소득이 미국의 12%에 불과했던 일본은 기술의 발전과 해상 무역을 통해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자국 내 시장의 성장으로는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어내는 데 제한이 생겼다. 오늘날 상품과, 통신, 정보의 90퍼센트는 바다를 통해 이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바다의 중요성 역시 강조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세계화 또는 지구화라는 단어는 세계 각국 사람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국가 간 교류가 증대하여 개인과 사회 집단이 갈수록 하나의 세계 안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과정인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개인의 역량 강화도 중요하지만, 타인과 상호 작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국가의 사회적 분업과 교류가 확대되고 있지만, 국가라는 주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다이다. 물론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해양에서의 여객 수송 비율은 현저히 감소했지만, 대다수의 화물 수송은 바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A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가’ 국가가 사라진다면 해당 기술을 가진 다른 국가를 통해 이를 얻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던 바다가 사라진다면 지금과 같은 상호작용은 지속될 수 없다. 바다 혹은 대양에서 150km 이내에 거주하는 인구가 한 세기 만에 30% 증가하여 전 세계의 인구를 10명이라고 한다면 그중 6명은 해안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데, 바다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사실 바다의 소멸 이전에 인류의 멸종이 선행될 확률이 높지만, 만약 인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바다만 사라진다면, 머지않아 인간도 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은혜를 베풀지 못한 것, 효도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순리에 체념할 수밖에 없다. 미련을 가져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바다와 인간의 관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며, 이에 대해 경각심을 느끼고 있는 사람도, 초래되고 있는, 앞으로 발생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극히 일부이다. 인간의 수명이 유한하듯, 바다의 자정능력도 유한하다. 44억 4000만 년 전 처음 형성된 이후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해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바다는 인간만을 위한 존재도 아니고, 다른 생명체만을 위한 존재도 아니다. 인간의 부모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듯 자신이 존재하기 전부터 지구에 존재해왔던 바다도 인간에게는 너무 당연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데,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바다는 인간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금세 인지할 수 있다.
이제는 바다가 인간으로부터 고통받는 모습을 방관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바다의 도움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한 행동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 일본의 방사성 오염수 유출 등 해양 수질 오염,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의 생성 및 확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저지대 침수 등의 현상이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당장 우리 세대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분석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다의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며,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자연 속에서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듯이 우리 또한 우리의 자손이 될 미래 세대에게 깨끗하고 살기 좋은 지구를 물려줄 의무가 있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한 쪽이 다른 쪽을 지배한다는 관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바다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첫걸음은 인간과 자연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라는 생태학적 관점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이어가는 것이다. 생태학적 관점에 대해 올바른 의식을 가진 개인이 모여, 사회 제도가 구성되고, 전 세계적으로 해양을 보호할 필요성을 인식하여 세계 해양기구가 창설되는 과정을 통해 바다의 가치는 더욱 빛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기선으로부터 12해리까지를 영해, 200해리까지를 배타적 경제 수역으로 지정해 두었고, 이 범위에 해당되는 구역에서 자원을 이용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내용일 뿐, 바다의 의사는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인과응보”라는 표현처럼 우리가 바다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우리의 운명 역시 결정된다. 사실 바다는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가 바다를 사용함으로써 편익을 누릴 수 있는 배경에는 우리를 향한 바다의 애정과 사랑이 담겨있음을 기억하자. 인간의 시간은 바다의 시간과 정비례하고, 환경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은 채 내가 무심코 한 행동은 바다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을 급속도로 흘러가게 한다. 바다를 소유하고, 바다의 자원을 남용하는 일에 익숙해진다면 언젠가는 바다를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류 또한 이 세계에서 사라질 것이다. 어머니 없이는 우리가 태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구에 바다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걷잡을 수 없을 때 후회하지 말자. 소중함을 인지했을 때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인간과 바다의 시간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