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
이 책을 두번째 읽게 되었다.
'달과 6펜스'의 상징적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세계를 가리킨다. 또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암시하기도 한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 하지만 둘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며 삶의 비밀에 이르는 신비로운 통로로 사람을 유혹한다.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두운 욕망을 건드려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도 한다.
그래서 달은 흔히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징해 왔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의 값이다. 이 은화의 빛은 둔중하며 감촉은 차갑고 단단하다. 그 가치는 하찮다. 달의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달과 6펜스>는 40대 중년의 한 남성이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해설 중에서>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고갱을 모델로 했다.
가족을 떠난이유를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기 쉽지 않고 그렇다고해서 기존의 삶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과 영영 인연을 끊겠단 말씀입니다?"
"어릴때는 귀여워했지만 이제 다 크고 나니 별 감정이 들지 않아요." p64
공감(?)되는 말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더크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를 비난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생각은 왜 그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버려져 있다고 생각해?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없이 주워 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p102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의 예술성과 천재성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재능은 없었지만 천재를 보는 눈은 있었다.
"여보 그사람은 천재라니까. 당신은 설마 나를 천재로 생각하지는 않겠지. 나도 내가 진심으로 천재였으면 좋겠어. 천재를 볼 줄은 알지. 천재를 정말 진심으로 존경해. 세상에서 천재보다 굉장한 건 없어. 천재들에게나 그게 큰 부담이 되지만 말이야. 천재들에게는 너그럽게 대해 주고 참을성 있게 대해 주어야 해"p131
자신이 천재가 아님을 인정하고 질투도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그리고 천재를 지켜주고 싶어한다. 스트로브의 천재에 대한 생각이다.
아내는 "그 사람은 무서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한테는 무서운데가 있어요. 우리에게 큰 해를 끼칠 사람 같아요. 전 알아요. 느낌이 그래요. 그 사람을 데려오면 반드시 끝이 좋지 않을 거에요."
그녀는 알 수 없는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제력을 모조리 빼앗기고 만 것 같았다.
결국 블란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세상의 지혜는 그런 감정의 힘을 알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원하면 여자에게 그 남자와 결혼하라고 부추긴다. 사랑은 나중에 절로 생기게 마련이라고 장담하면서 그것은 안정감에서 오는 만족, 재산에 대한 자랑스러움, 누군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즐거움, 가정을 가졌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 등이 어우러진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감정은 사람을 기분 좋데 하는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여자들은 거기에 무슨 정신적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감정도 열정을 막아낼 방비책이 없다. 나는 블란치 스트로브가 스트릭랜드를 격렬하게 싫어했던 이유가 처음부터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데가 있었디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156
스트릭랜드가 가정을 떠나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는 것과 블란치 스트로브가 남편을 떠나 스트릭랜드에게 간 행동은 모두 6펜스를 버리고 이상향인 달을 쫓은게 아닌가 싶다.
아내가 죽고 스트로브는 네덜란드로 돌아가기로 한다.
"세상은 참 매정해 우리는 이유도 모르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라. 그러나 겸손하게 살아야지. 조용하게 사는게 아름답다는 걸 알아야 해. 운명의 신의 눈에 띄지 않게 얌전하게 살아야지. 그리고 소박하고 무식한 사람들의 사랑을 구해야 하는거야. 그런 사람들의 무지가 우리네 지식을 다 합친 것 보다 나아. 구석진게서 사는 삶이나마 그냥 만족하면서 조용하게. 그 사람들처럼 양순하게 살아가야 한단말이야. 그게 살아가는 지혜야."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전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마치 이국 땅에 사는 사람들처럼 그 나라 말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온갖 아름답고 심오한 생각을 말하고 싶어도 기초 회화책의 진부한 문장으로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사람들과 똑같다. p211
아브라함과 알렉 카마이클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꺼?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어찌 삼히 말대꾸를 하겠는가.' p259
높은 지위를 가진 외과의사를 버리고 평범하고 가난한 의사의 삶을 택한 아브라함은 달을 쫓아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을 선택했고 그 덕분에 늘 이인자였던 알렉은 높은 지위에 올랐다. 알렉은 아브라함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옳은 선택인것 같다. 부와 권력을 갖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것을 갖기위해 노력하면되구 그것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것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면 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남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대로 하면된다. 단 도덕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하는 행동은 아닌것 같다.
아브라함의 용기있는 선택이 부럽기도 하다.
타히티에서 만난 브뤼노 선장은 스트릭랜드의 행동에 이렇게 생각한다.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열정은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때문에 마음이 한시도 편하지 않았지요. 그 열정이 그 사람을 이리저리 휘몰고 다녔으니까요. 그게 그를 신령한 향수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로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p276
스트릭랜드의 죽음과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을 본 닥터 쿠트라는 말했다.
"스트릭랜드 본인도 그게 걸작인 줄 알았을 겁니다. 자기가 바랐던 걸 이룬 셈이죠. 자기 삶이 완성된 거에요.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고 그것을 바라보니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 다음 자부심과 함께 경멸감을 느끼면서 그걸 파괴해 버린거죠."p299
스토릭랜드은 다분히 충동적이고 주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다. 자신이 그리려고했던 분명한 예술세계도 서술되어있지 않았다.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가정을 버리고 떠난것이다.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관계도 중요하지 않았고 소유할려고 하지도 않았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며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그 그림을 불태우기를 바랬고...
화자의 생각과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스토릭랜드만 있을 뿐 본인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 그건 각자 독자들이 판단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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