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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1절-11절: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열방들이 뭐라고 했기에 분을 발하고 진노를 하느냐? 1절-3절을 보면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여호와를 알고 기름 받은 자를 아는 것을 보면 이방인들이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인 것 같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까 4절에서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 말한 인간들의 교만한 소리를 들으시고 진노를 나타내셨는데 왜 분을 내셨을까? 인간이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분을 발하시느냐? 사람을 많이 때려 죽였다거나, 환난 핍박을 줬다거나 그게 아닌 관원들이 나서서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을 하고, 그리고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그들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기에 그들을 결박을 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유롭게 살고 있는데 결박을 해서 더 못살게 만들거나 더 고통을 주거나 그건 아닌 것 같다.
만능의 능력자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믿던 안 믿던 전부를 하나님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인격자로 도덕성을 가진 자로 만드셨는데, 인간 자기를 인격성을 가진 자로, 하나님처럼 닮게 만들어 놓은 이유가 뭐냐?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이냐? 말하자면 우리를 예수 믿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는 이유가 뭐냐?
당신처럼 천국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다. 이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인간들을 향해서 ‘이래라. 저래라’ 명령도 하시고, 일일이 간섭도 하시고, 징계도 하시는 거다. 인간 자기를 지으심의 목적은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거할 사랑의 대상자인데 그런 자로 살지를 않기 때문에 진노를 하시는 거다. 그 면에 대해 염려 걱정을 하시며 진노를 하신다.
어린아이에게는 반드시 부모의 양육이 필요하다. 먹이고 입히고 교육을 시키고 일일이 간섭을 해야 한다.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반드시 선생이 필요하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특수한 목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통치 진리통치가 없어서는 안 된다. 꼭 필요하다. 죽음의 선을 넘어가기까지 필요하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진노를 하시는데, 누구를 위해 진노를 하시는 것이냐? 하나님 당신을 위함에서 인간에게 진노를 하는 건가, 아니면 인간 나를 위해서 진노를 하심인가? 후자다.
6절: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나의 왕을’이라고 했으니까 이 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을 해서 세우시는 왕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세우시는 왕이다. 이 왕은 신정통치를 할 수 있는 왕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나 왕을 세우는 거냐, 당신의 인정에 의해서 왕을 세우시는 거냐? 당신의 인정이 먼저 들어간다. 우리가 다 어떤 분야에서 왕이 되려고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되느냐? 하나님의 인정이 있어야 한다. 내가 회사를 맡겠다고 하면 사장이 인정을 해주느냐? 사장의 인정이 있다면 내가 사장을 안 하겠다고 해도 ‘너는 나를 위해서 사장이 되라’고 한다. 위에서 보고 인정을 해 주는 것. 아무나 왕을 세우는 게 아니다. 나라에 아무나 왕을 세웠다면 백성들의 것을 다 빼앗고 일만 시키고 나라를 망하게 한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신정통치를 할 수 있는 왕을 말한다. 거룩한 산이 어디냐? 시온이다. 시온에다 왕을 세웠다. 시온은 역사적으로 다윗 왕이 여부스족으로부터 빼앗은 요새지다. 사방이 절벽으로 되어있고 그 위에 성이 있어서 성에서 아래가 다 보이고, 성에서 활을 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활에 맞아죽게 된다. 그래서 이방군인들이 쳐들어와도 정복이 잘 되지 않는 곳이다. 또 시온은 성전이 있는 곳이다. 성령의 영감의 감화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다 물리치시고 하나님 당신의 마음에 합한 기뻐하는 왕이 있는 곳이다. 다윗 왕을 기뻐하셔서 그를 왕으로 세웠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밀계시는 비진리적 타락적 이질적 정신 사상을 철두철미하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시온의 요새다. 그 때의 역사를 가지고 와서 개인적 신앙으로 보면 자기의 정신 사상이 시온의 요새처럼 진리로 철저히 무장이 되어있다면 다른 이질성적 육적인 사상이 자기를 침범할 수가 없다. 왜? 그 사상에는 진리통치가 되어있기 때문에. 그 교훈이 있는 곳이 바로 시온사상이다. 이 통치가 있는 곳이 시온이다.
이 교훈은 거룩의 통치이고, 이 교훈은 사람이 구별되어 거룩하게 만들어진다. 이 사상이 바로 성전이요 요새이면서 시온이다. 시온사상, 아브라함의 신앙사상, 히브리인의 긍지, 이런 사상에는 이방사상이 못 들어온다. 아주 철두철미한 사상이다. 이게 시온이다. 이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이 사상은 진리통치로 되어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이 사상을 왕으로 세우신다.
교회의 인도자와 교인들은 시온의 정신과 사상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도가 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사상은 깨끗한 거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 내놔도 그 사상은 혼합 혼잡이 되지를 않는다. 하나님은 이런 성도와 같이 다니신다.
열방과 군왕들은 선악과 따먹은 정신 사상들이다. 이 자들이 왕권을 잡고 통치를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허락치를 않더라. 그러니 열방과 군왕들은 결국 심판을 당할 것이고,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은 거룩의 곳에서 살게 된다.
7절: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법령이다. 그러니까 절대자 주권자의 칙령이고 선포이고 선언이다. 그러면 왜 이런 공포를 하시느냐?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말씀에는 신분이 들어있고 권세가 붙어있다. ‘아들’ 하는 여기에는 ‘하나님처럼’ 하는 신분이 붙어있고, 또 ‘아들’ 할 때는 아버지의 권세가 또 내려간다. 그러니까 첫째는 ‘너는 내 아들이니, 하나님의 아들이니 함부로 행동을 말라’는 의미가 붙어있고, 두 번째는 열방과 군왕들을 향해서 ‘내 아들을 함부로 건들지 말아라. 내 아들을 무시하지 말아라’ 하는 의미가 또 붙어있다. 세 번째는 그럼에도 거스르는 자에게는 형벌과 심판이 따른다는 의미가 붙어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은 대단한 위치요 신분이다. 선악과 따먹은 타락된 세상에서도 어느 나라 통치자의 아들이라고 하면 모두들 부러워하고 깎듯이 대우를 해준다. 행여나 누가 해코자 할까봐 보호하는 자들이 붙어서 따라다닌다. 그리고 통치자의 아들은 먹을 거, 입을 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진리로 난 교회는 누구의 아들이라고 누가 선포를 했느냐?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나님께서 선포를 하신다. ‘진리로 태어난 교회는 내 아들이다’ 하고 하나님께서 선포를 했다. 긍지를 가져라. 그러니까 당신의 아들이니 누가 보호를 하고 신경을 쓰겠느냐? 성경에 보면 당신의 백성들을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이 있다. 그리고 천군천사들이 호위를 한다.
아들에게는 상속권 지배권이 있는데, 그런데 가만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현세에서 나그네로 살다 보니까 땅의 아들들보다도 못한 때가 있다. 어떤 어려움에 빠져 있으면 자기 신세가 처량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예수 믿는 내가 이런가’ 하며 스스로 한탄이 들어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도다’ 라고 하신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인간은 혈통적으로 생산이 되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진리로써 출생이 된다. 인간들은 종교적 제도적으로 확장을 시키지만 하나님은 영적 사상적으로 생산이 되게 하신다. 영적인 사상을 가진 자들이 자꾸 생산이 되게 한다. 인간들은 종교적 제도를 가지고 자꾸 끌어 모아서 확장을 시키지만 하나님은 진리사상을 가지고 진리사상적으로 생산이 되게 한다. 질이 다르다.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도다’ 라고 하심은 하나님의 독권적이며 주권적인 역사로 낳았다는 것이고, 진리로 낳았고, 아가페로 낳았고, 성령으로 출생을 시켰다는 것이다. 육적 혈통으로 낳은 아들은 죽지만 하나님으로 성령으로 진리로 낳은 아들은 죽는 법이 없다. 그리고 영적인 사람들은 진리로 또 후손을 낳는다. 죽지 않는 아들을 낳는다. 그런 자식을 낳아야 한다.
8절: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세상의 아들들은 세상과 세상 것을 구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영에 속한 것을 구한다. 아버지와 아들들은 법적 관계가 아니다. 그리고 사무적 관계도 아니다. 그리고 서식적으로 문서적으로 되는 관계도 아니라 오직 인격적 애정적 수수관계다.
‘내게 구하라.’ 구하라 하심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이 충만하시다 함이다. 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열방을 유업으로 준다고 하신 것을 보면 이 열방도 누구의 것이냐? 아버지의 것이다. 불신세계도 다 아버지의 것이다. 마귀의 것이 아니다. 그러면 마귀의 것은 뭐냐? 성경에 보면 마귀에게 잠깐 맡겼다고 하는 게 있는데 뭘 맡긴 거냐? 마4:에서 사단이 예수님에게 한 마지막 시험이 ‘내게 절을 하라. 절 한 번만 하면 세상영광을 다 주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세상은 다 하나님의 것인데 인간이 죄를 짓게 되면 죄가 그 사람에게 되면 왕 노릇을 하게 돼 있다. 사망이 왕 노릇을 하게 된다. 그 세상을 마귀에게 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정신적인 세계다.
물질은 다 세상이다. 성경을 종이로 만들었는데, 성경의 종이는 세상이냐, 천국이냐? 불에 집어넣으면 타버린다. 그러니 세상이다. 그런데 이 성경 속에 천국이 들어있는 건데, 성경을 가지고 세상을 말을 하게 되면 그 사상에는 마귀가 지배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허용을 해 놓으셨다. 그 세상을 말한다.
‘내게 구하라.’ 세상 전부는 아버지의 것인데, 그렇다면 무엇을 구할까? 열방을 구할까? 열방도 아버지의 것이라고 했으니까. 열방은 천국이 아니라 세상이다. 아무리 세상 나라라도 실력이 없으면 못 다스린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능의 실력이다. 아닌 말로 우리 교인들이 하나님께 세계를 다 달라고 구해서 줬다고 하면 그걸 다스릴 능력이나 지혜나 지식이 있느냐? 인도자가 되려면 교회던 나라던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 없으면 못 다스린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능의 실력이다. 하나님의 지혜지식성, 하나님의 도덕성, 하나님의 능력성이 있어야 한다.
세계 각국 열방 속에는 우리가 깨달아 가질 수 있는 천국의 점령법이 들어있다. 세상에 사람을 많이 생산해 놓은 것은 점령을 하라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 밭을 네가 점령을 하라’ 그 말이다. 실력이 있으면 그 마음 밭을 점령해 들어간다. 이 점령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돼 있다. 진리로써 점령을 하면 자기의 소유가 되는 거다. 영적 면에서의 소유다. 자기의 소유란 자기의 영광이라는 말이다. 실력이 있느니만큼 점령을 해봐라.
9절: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거스르는 자에게는 형벌과 심판이 따른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선포는 인간들의 선포가 아니라 절대자 하나님의 선포다.
‘네가 철장으로.’ 철장이 뭐냐? 나무막대기냐, 쇠몽둥이냐? 쇠몽둥이다.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 종보고 하는 말이냐, 아들을 보고 하는 말이냐? 아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아들에게 형벌권과 심판권과 절대권이 들어있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쇠몽둥이로 닥치는 대로. 그러니까 형벌이고 심판권 행사고 절대다. 누가 말릴 사람이 없다는 거다. 이건 하나님의 권이다. 그런데 쇠몽둥이로 철장을 휘두르려면 반드시 평가 판단이 정확해야 한다. ‘이건 틀렸다. 이건 안 된다. 이건 옳다. 이건 선이다. 이건 악이다’ 하는 것을 판단 평가하는 것이 정확해야 사정없이 때릴 수가 있다. 그러니까 영과 육의 분별이 명확해야 하고, 진짜와 가짜, 즉 진가의 판단이 명확해야 하고, 고저, 즉 높고 낮은 분별이 정확해야 하고, 강하고 약하고 하는 것의 분별이 명확해야 하고, 아름답고 추한 것의 분별이 명확해야 하고, 장단, 즉 길고 짧은 것의 구별이 분명해야 한다. 절대 정확해야 부술 수가 있다. 정확하지 못하면 심판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질그릇이 쇠몽둥이 앞에서 무슨 힘이 있겠느냐? 아무 힘이 없다. 그러니까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 진리생명의 말씀은, 진리이치는 옳기 때문에 절대적이다. 현세에서도 옳고, 영원히 옳은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옳은 거다. 그러니까 진리이치는 흙으로 된 것은, 즉 육적인 요소로 된 것은, 세상성적인 요소로 된 것은 인정사정없이 부숴버린다.
여기서 교회 인도자들은 자기가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부서질 것으로 가지지 말아라. 안 부서질 것, 절대 정확한 것을 가져라. 그 어떤 것을 가지고 와서 ‘네가 가진 것이 얼마나 기냐? 얼마나 짧으냐? 얼마나 무거우냐? 얼마나 높냐?’ 하고 재본다고 해도 타가 가진 것보다 더 길어야 하고, 더 무거워야 하고, 더 높아야 하고, 더 깊어야 부술 수가 있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허물이 있을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악한 자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돼버린다. 인간은 도덕성을 가진 인격자의 세계이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약하더라도 정확하고 옳은 말을 하면 어른이라도 덤벼들 수가 없다. 아주 대범하게 보는 거다. 그게 인간의 세계라.
10절: 군왕들 관원들 모두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들이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의 군왕들 관원들에게는 지혜가 없다. 성경으로 보는 지혜가 없다. 세상 모든 지도자들의 소원 목적은 다 땅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원하시는 지혜가 없다.
지혜는 미래를 정확히 알고 그것에 대비해서 나가는 거다. 하나님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거기에 대비해서 나가는 게 지혜다. ‘영원 궁극적인 세계가 어떤 것이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그 세계를 알게 해서 현실에서 환경을 교체시킬 때마다 영능의 수입을 잡고 유익을 보도록 하신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살면서 신앙 면에 손해를 본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지혜가 있겠느냐? 손해를 보는 것은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군왕들 관원들에게는 영능의 수입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없다. 있다고 하는 것은 물질 이해타선적인 지혜요, 임시성적인 지혜요, 이 지혜는 불안한 지혜다. 왜냐하면 환경이 변동이 되면 그 지혜 역시도 변동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악과 따먹은 이방 불신 세상에는 지혜가 없는 거다. 그리고 세상 속화된 교회도 지혜가 없다. 왜냐하면 선악과 따먹은 일반 사회적 윤리 도덕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신적인 하나님의 지혜가 없다.
학생들이 선생의 지도를 받으면 아는 것이 자라는 게 원칙이다. 지도자들의 다스림을 받는다면 사람의 인격 면에 자라는 것이 원칙이다. 만일 자람이 없다면 지도자가 뭐가 필요하겠느냐? 이렇게 되면 교회의 경우라면 강도의 굴혈이 돼버린다. 알고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한다.
11절: 왜 여호와를 경외하고 섬기라고 하느냐? 경외하고 섬기면 뭐가 생긴다든지, 하늘로부터 뭐가 내려온다든지 하는 게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이 말씀을 하심은 누구를 위함인가? 당신 자신을 위함인가, 인간 우리를 위함인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함이다. 우리에게 당신과 같은 지혜를 주고 싶어서다. 아가페 사랑을 주시고 싶어서, 당신과 같은 능력자로 만들어 주고 싶어서 하는 말씀이다.
믿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이 없다면 하나님의 온전을 닮아가는 것이 없게 된다.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면 그 인격이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본질로 고상하게 올라가게 되어있다. 그래서 섬기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세속화된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 세상을 섬기기 때문에 교인들이 고상해지지를 못한다. 기독자는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를 믿으면서 모든 인격 면에 깨달음이 있고, 모든 품행이 고상해지고, 인인관계의 대함성이 고상해지고, 예법이 바로 되고 해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