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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마지막 때의 징조들 ① (마 24:1-14)
송수천 목사
마24-25장은 세상 마지막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종말 장'이라고도 하고, '작은 계시록'이라고도 하고, 또 이 말씀을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하셨기에 '감람산의 강화'라고도 말합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관한 말씀을 마치시고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러니까 본문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에 마지막 교훈이 됩니다.
24장은 '마지막 종말에 관한 예언'이고, 25장은 '마지막 종말의 때에 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종말에 대하여 관심이 많습니다. '우주의 종말은 있는 것인가? 있다면 언제쯤인가?'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종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종말'과 또 하나는 '우주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이 '우리 개인적인 종말'입니다. 내 개인의 종말이 있듯이 '우주에도 종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시작이 있듯이 끝도 있다'고 분명히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태어남과 죽음이 있듯이 이 세상에도 시작한 날이 있고,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은 종말과 함께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히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날은 우리 하나님만이 아시는 날'입니다. 본문 36절을 보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살전5:1-2절에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행1:6-7절에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주님의 대답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가 아니라'
그때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해서 주님께서 재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성경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권고가 50번 이상이나 나옵니다.
1-2절은 23장의 연결부분으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고, 3-14절은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일어난 여러 가지 징조들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고 도적같이 오십니다. 그러나 그 징조를 보여 주심으로 우리가 재림의 때를 준비할 수가 있습니다.
▶1-2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본문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로 시작합니다.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신 것을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23절부터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7화를 선포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이 7화를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서 나오셨습니다.
본문 1-2절은 '성전 뜰에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예수님께 가리켜 보이면서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예수님 참 아름답죠, 성전이 굉장히 웅장하죠?' 이런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자랑거리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께 자랑하여 보여드렸는데 예수님이 폭탄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대해서 칭찬의 말씀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모독입니다. 유대인들을 향한 가장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주님의 저주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리는 폭탄선언과 같습니다.
성전이라 하면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과 헤롯의 성전이 있습니다. 이 성전은 어마어마한 건축물로 자랑할만합니다. 성경에서 성전에 관한 기록을 보면 스룹바벨 성전과 헤롯 성전은 그 건축현황이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성전은 건축현황과 건축과정이 소개가 되고 봉헌식까지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을 보면 스룹바벨 성전과 헤롯 성전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전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나무를 레바논 백향목으로 지었는데 기록에 보면 레바논 백향목을 벌목할 때 동원되었던 군인들이 3만 명입니다. 돌을 채석하는 채석공이 8만 명입니다. 현장인부가 7만 명입니다.
각 곳에서 감독하는 공사감독관이 3천3백 명입니다. 건축기간이 무려 7년으로 종사 인원만 해도 18만3천3백 명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성전은 헤롯왕이 주전 19년부터 유대인의 민심을 사기 위해 건축한 것인데 얼마나 장엄하고 엄청나게 크게 지었는지 무려 82년에 걸쳐 완공한 성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을 보고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마치 큰 교회의 성도들처럼 말입니다. 대형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은 자기 교회의 웅장함에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때마다 우리 작은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은 기가 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교회가 크다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서 선포되는 메시지가 바로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는 제사장들이 긴 옷을 입고 하나님께 분향하며 많은 짐승을 번제로 드릴 때에 연기가 하늘에 충천했습니다. 제사하는 의식이 굉장하고 어마어마했으며 유대인들은 그 예루살렘의 성전을 자랑하고 그 성전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이 아름답고 예배의식이 굉장하고 많은 사람이 모이고 제사장들의 엄숙한 복장과 엄숙한 태도로 제사 드리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을 잘 섬기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이는 그 어떤 의식, 행사, 형식을 중하게 보신 분이 아니고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을 보실 때에도 회칠한 무덤같이 겉은 깨끗하나 속에는 탐욕과 방탕과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것을 보시고 '화 있을진저' 하시고 7번이나 저주하셨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성전의 웅장함을 자랑삼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그 아름다웠던 예루살렘 성전이 그 화려했던 도성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계십니다.
이 예언은 AD 70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베스파 시아누스'가 황제가 되면서 그의 아들 디도 대장이 총사령관이 되었습니다. 그가 첫 번째 전쟁을 예루살렘에서 치렀습니다.
디도는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몇 달을 버텼습니다. 그러자 성안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굶어 죽고 병으로 죽고 급기야는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 비참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디도가 이끄는 로마군이 침공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성을 다 훼파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죽은 사람이 백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은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토록 아름답던 성전이 예수님의 예언대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로마군인들은 모든 성전을 다 무너뜨린 다음에 벽 하나만 남겨두었습니다. 그 벽이 바로 '통곡의 벽'입니다. 왜 로마가 이 벽만 남겨 놓았을까요? 그것은 바로 로마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하여 로마에 대항하면 '너희 나라도 이렇게 황폐하게 될 것이다.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라는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신 예언은 AD 70년에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 예언의 성취가 끝났다면 이 말씀은 우리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스라엘 역사에 불과할 것입니다.
본문의 말세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또 한번 성취됩니다. 그래서 70년에 성취된 이 성취는 '모형적 성취'라고 부르고 이제 주님의 재림 때 이루어질 성취를 '원형적 성취'라고 부릅니다.
▶이제 3절부터는 '세상 마지막 때의 징조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감람산에 앉으셨을 때 제자들이 찾아와 '세상 끝 날에는 무슨 징조가 있습니까?'하고 질문 할 때에 예수님은 '다섯 가지로 말세의 징조'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①적 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5절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오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에도 문선명이나 이뢰자 같이 자기가 '재림한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300명 이상 있다고 합니다.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②전쟁입니다. 6절에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라고 했습니다.
③7절에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다고 했습니다.
④거짓 선자자의 출현입니다. 11절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라고 했습니다.
⑤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이 식어진다고 했습니다(12). 불법이 성행하여 하루아침에 높은 권좌에 앉았던 사람들이 낙마하는 일이 많습니다. 말세는 불법이 성행하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저울 같은 사람과 꽃 같은 사람이 많아져 헷갈립니다. 군부에서도 비리로 하루아침에 낙마한 사람들이 있고 한 도시의 시장이 구속되는 장면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차례대로 상고해 보겠습니다.
▶3절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이 성전에서 나와 어디로 가셨습니까?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용히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전에 성전을 지나오면서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는 폭탄적인 선언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첫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 그렇다면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82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지은 성전, 어마어마하게 큰돌과 백향목으로 지은 그 성전이 정말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 예언은 주후 70년에 분명히 들어맞았습니다.
이번 두 번째 질문은 무엇입니까?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루살렘의 멸망의 예언은 예수님 돌아가신 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과 마지막날의 징조는 2천년 대를 살아가는 지금 일어날 일들입니다.
두 번째 제자들의 질문은 주님의 재림의 때와 마지막 징조들을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대답은 4절입니다.
▶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여기 '미혹을 받다'의 원 뜻은 '양떼가 길을 잃고 헤매는 정경을 묘사한 말로써 진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로 오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동 번역은 본문을 '아무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거짓 진리를 가르치는 거짓 선생과 거짓 메시야에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이단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92.10.28 밤 12시에 주님재림이 이루어지고 공중휴거가 있다고 미혹한 다미선교회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큰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지나가고 현재까지도 주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이와 같은 미혹은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닙니다. 역사를 보면 언제, 어디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까지 제시한 미혹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미혹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2천년이 되는 날 그때 예수님이 재림할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역사는 6천년으로 보고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합해서 6천년이니까 2천년이 되는 날 예수님이 틀림없이 재림하실 것이라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가 말씀하신 그대로 아무도 알 수 없는 날 밤에 도적같이 갑자기 임하실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아들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아시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예수님 재림의 때가 작년보다는 금년에 더 가까워졌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가까워진 것만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신앙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지금도 이단들은 끊임없이 우리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통일교, 여호와증인, 구원파, 신천지 등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이단들의 미혹에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사냥꾼'입니다. 또 예수님은 말세지말에 자칭 예수님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통계에 의하면 자칭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 제일 많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도관을 일으켰던 고 박태선장로이고, 자칭 예수라 칭하는 문선명입니다. 특히 문선명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실패했고 자기가 성공한 예수라고 떠들어댑니다.
전에는 이것들을 숨기면서 말했지만 요즘은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통일교인들은 예수님보다 더 좋은 부모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래서 모든 기도는 자연히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라 진짜 참 부모의 이름으로 기도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문선명의 이름으로 기도한답니다. 그 외에도 우리 한국에는 자칭 예수가 많습니다.
애천교회의 정명석은 자신을 오실 메시야라고 주장합니다. 영생교의 조희성은 자칭 재림예수라 했지만 갔고, 안상홍은 자신을 보혜사 성령이라고 한답니다.
그 외에도 자칭 예수는 많답니다. 관악산에 만든 자칭 예수가 7명이나 되고 사당동에도 두서너 명이 있답니다. 의정부에서는 여자 예수가 나타났고, 강남의 예수도 나타났답니다. 이들은 나타나서 예수님을 팔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여기서 '내 이름으로'란 문자적으로 보면 '내 이름을 근거로 내세워, 내 이름을 의지하여'란 뜻입니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칭해서 그의 권위와 명성을 이용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자칭 예수가 많이 있다는 이러한 현상은 종말 현상입니다. 예수님의 탈을 쓴 거짓 예수들, 적 그리스도의 출몰은 주님의 예언대로 종말의 징조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23-26절대로 하면 됩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기적과 표적은 행하면서 '광야에 번쩍, 골방에 번쩍'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취할 태도는 현혹하지 않고 제 교회, 제 자리는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
▶6절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난리와 난리 소문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어지러운 일들이 세계 각처에서 일어날 것을 말합니다. 세계는 지금 이상 기온으로 엘니뇨현상으로 홍수가 나서 물 날리 속에 죽은 사람이 많고 또 어떤 나라는 폭설이 휘몰아쳐 동사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난리는 뭐니뭐니해도 인간 기본윤리가 무너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남편이 깡패를 사서, 자기 부인을 목 졸라 생매장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이 여인은 죽지 않았습니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죽였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것이 난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요즘 청소년의 탈선은 입에 올리기도 무섭습니다. 오토바이를 갖고 싶다고 동네 동생뻘 되는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죽였습니다. 말세에는 세계 각처에서 어지러운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이 세상의 끝은 아니고 끝이 가까운 징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가 말세지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택함 받은 성도들에게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난리의 소문을 들으면 누구라도 그런 일이 우리 주위에 일어나면 어쩔꼬' 하는 염려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왜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선택받은 백성은 우리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요, 또 더 큰 이유는 구원받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난리가 나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요11:25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렇습니다. '죽어도 살겠고' 부활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난리 소문 때문에 두려움에 빠지는 자가 아니라 더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7절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본 절을 보면 세계 각처에서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겠다고 예언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남북대치 상태입니다. 저 중동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입니다. 1900년대의 경우만 보더라도 중동은 전쟁다발지역입니다. 아랍권과 이스라엘은 크고 적은 전쟁이 수도 없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들어가는 행군을 시작하는 날부터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나라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①조상들이 뿌린 씨앗 때문입니다.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싸움은 배다른 형제의 싸움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처에서 난 이스마엘과 이삭의 싸움입니다.
②신앙적인 이유입니다. 구약의 경우를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백성입니다. 계약의 내용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지키신다는 것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 계약의 양태는 때에 따라 '부부관계, 부자관계, 주인과 종의 관계'로 설명됩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그 언약을 파괴하고 하나님대신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③지리적인 조건입니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이스라엘 등 크고 작은 나라들이 맞물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아시아와 구라파가 만나는 거점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의 요충지역이기 때문입니다.
④이념과 종교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나라이고 아랍권은 알라신을 믿습니다. 회교주의와 시온주의의 싸움입니다.
특히 계16:16절에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고 했는데, 아마겟돈 전쟁이 무깃도에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므깃도는 나사렛 남방 평야에 있는 한 지역인데 그곳에서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가 격전을 벌이게 된다고 계시록에서 예언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므깃도 전쟁을 종말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말세에는 기근이 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영, 육 두 가지입니다. 육적으로 기근이 들어 죽어 가는 소말리아 사람들이 있고, 아프리카 여기저기에 많은 기근이 있어 1년에 3천만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답니다. 또 먼 나라 이야기만 아니라 저 이북의 내 민족도 굶어서 죽는 사람들이 많이 있답니다.
영적으로는 말세지말에 말씀에 기갈입니다. 암8:11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오늘날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합니까?
또 종말의 징조가운데 하나가 지진이 있을 것임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오늘날 지진과 기근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시대가 갈수록 더 자주 나타나고 더 강하게 참혹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주 두려울 정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화산폭발까지 동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땅과 지구를 흔들고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처처에, 곳곳에' 이 말은 '동시다발적'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동시다발적으로 지구 전체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진과 자연 재해는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생할 것입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지는 현상이 자꾸만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노아 홍수 때에 자전축이 23.5도 기울었다고 하는데 2004년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난 쓰나미 때는 8인치가 기울었고 칠레 지진 때는 3인치가 기울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미국 항공우주국 NASA가 칠레 지진으로 자전축이 8센티나 이동했다고 밝혔습니다. 작년 2010년에서 6월까지 5도 이상 지진이 31번이나 발생하였고 2월 달 27일부터 한 주간에 5.0규모 지진이 157회나 발생하였고 7도 이상은 8회, 바다 속에서 일어난 지진의 회수는 작년 4월 한 달만도 300번 이상 발생했다고 합니다.
▶8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지금 우리는 말세의 징조들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모두 무시하고 불신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화산폭발은 땅속의 몸부림이라고 부릅니다. 땅속에 머물러 있던 불이 밖으로 터져 나옴을 말합니다.
작년(2011) 4월16일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폭발하였고, 5월29일 과테말라에서 화산이 폭발하였고, 5월 29일 에콰도르에서 화산이 폭발하였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난 화산(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은 189년 만에 재 폭발 한 것입니다. 그 화산에서 뿜어낸 화산재가 유럽의 하늘을 마비시켰습니다. 항공대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폭발로 30여 개국의 유럽 나라들이 발이 묶였습니다. 그 폭발은 미국에서 일어난 911테러와 맞먹는 규모라고 합니다. 이 화산은 앞으로 수십 년 간 더 폭발할 것이라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주변의 몇 개 화산이 동시다발로 폭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큰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은 지구 곳곳에서 땅이 거대한 구멍을 내고 가라앉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그 주위에 있는 바닷물을 다 채우고 강물도 채우고 있는데 문제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또 두려운 것은 '백두산의 화산이 폭발할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우리나라도 화산이나 지진에서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저 북한이 하는 짓을 보면 하나님이 무슨 방법으로라도 심판하실 것이 분명한데 저 화산이 폭발하여 북한 전역을 폼베이시 처럼 덮어버리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이 화산폭발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그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9-10절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①말세에는 예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환난을 만납니다. 그러나 미지근하게 믿는 사람은 마귀가 가만히 놓아둡니다.
②말세에는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합니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한 목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한 목사는 잡아주어 죽게 했습니다.
우리 성도가 말세에는 환란 받을 각오와 미움 받을 각오와 죽을 각오까지 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말세에 전무후무한 대 환란이 반듯이 오는데 그 환란 때에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죽이는데 넘겨줄 때가 옵니다.
우리가 말세에는 순교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다가 죽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산 자가 됩니다.
▶11절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 예언한다고 어디로 모이라 하고 흰옷 준비하라고 합니다. 혹시 흰옷 준비하라는 사람이 있거든 '너나 잘 준비하라고 하십시오' 성경에 말한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흰 옷 입는다고 어떻게 천국에 갑니까?
▶12절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말세에는 불법이 성하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사랑이 식어져 짐승처럼 됩니다. 불법이 무엇인가? 곧 '법이 없다, 곧 방자히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사랑이 식어지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세대가 온 것입니다. 바울은 딤후3:1-5절에서 말세의 징조를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이 해답입니다. 여기 '그러나'가 중요합니다. 이런 많은 미혹과 불법이 있고 기근과 지진이 처처에서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어떠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충성하는 자들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주님이 오시고 언제 종말이 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어 준비하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영에 분별력이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14절을 보겠습니다.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세상 끝이 언제 오는가하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 온 세상에 증거' 될 때 그제야 끝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듣지 못한 사람이 없을 때까지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이북에도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중국에도 구 소련에도 복음의 원산지인 유대 땅에도 세상을 돌고 돌아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세상 끝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재림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멘!
그런데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재림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재림은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문제입니다. '유치하게 재림은 무슨 재림이냐'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고 악한 목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배가 부르고 등이 따습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다보니까 '종말이니 심판이니'하는 경고 따위는 관심에도 없고, 굳이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잠시 후에 심판이 시작되는 시간에도 롯의 사위들은 빨리 피하라는 다급한 목소리를 농담으로 들었습니다. 오늘도 모두들 장차 있을 성경의 경고를 허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가장 악한 선지자'를 가리켜서 '오늘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평화를 외친 선지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평안하다'고 외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대를 분별하는데 별로 생각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영적으로 무감각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인이 영적으로 감각을 잃어버리면 그 신앙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 종말은 분명히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고 신속하게 그리고 무섭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다가 보면 언젠가 나의 종말의 날도 오고야 말 것이고, 이 세상의 종말의 시간도 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아주 분명한 말씀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지적하고 경고하고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경고를 마음에 담고' 남은 생애를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