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늘
황무선
1. 노란 유채꽃이 산들거리는 사월이 오면 제주도의 달콤했던 신혼여행이 생각난다. 장미빛 인생을 꿈꾸며 동화 같은 결혼 생활을 화폭에 그려 넣곤 했다. 철없는 환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났다. 우여곡절이 모래알처럼 겹겹이 쌓였고 장애물이 곳곳에서 손짓했다.
2. 결혼해서 어머님과 함께 살았다. 결혼 생활은 시댁의 환경을 끌어안아야 했고 현실의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오남매의 외아들인 남편은 나와 다른 환경에서 지냈다. 서로의 모난 성격을 아마추어 조각가가 되어 둥근 옥돌로 다듬었다. 흩어진 시간의 파편들 속에서 스스로 남자에게 코를 낚이게 된 놀랄만한 계기가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3. 어머님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를 안방으로 불렀다. 나의 혼수 비용으로 많은 돈을 지출했으니 월급을 받으면 매달 갚으라고 하셨다. 당시 월급이 십오만 원 남짓했기에 어머님의 제안에 동의할 수 없었다. 어머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로 미운털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박혔다.
4. 예상하지 않은 고부갈등이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남편은 서늘한 고부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귀가 시간이 늦어졌고 술을 먹고 오는 날이 잦았다. 나는 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은 냉골에서 이불로 몸을 꽁꽁 동여맨 채 창문을 열고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신세계라고 여긴 결혼생활은 쉽게 등을 돌렸고 꼬인 실타래가 되어 현실을 넘나들었다.
5. 첫 딸이 두 돌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어머님은 남편과 며느리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가출을 감행하셨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고 어린 딸을 혼자 두고 직장에 출근할 수 없었다. 나는 멍하니 암담한 잿빛 하늘을 쳐다보았다. 당장 어린 딸을 맡길 데가 막연했다. 열흘간 올케의 사돈어른에게 딸을 맡겼다. 딸은 낯선 사돈 할머니 손에서 떼를 쓰며 울기 시작했다.
6. 어머님의 가출은 보름이 지난 후에 시댁으로 돌아오셨다. 속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는지 다짜고짜 손녀를 양육할 수 없다고 딸아이와 함께 시댁에서 나가라고 하셨다.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의 상황을 인지한 어머님이 아니었던가? 어머님은 어린 손녀를 볼모로 며느리에게 고생을 해보라는 마음이 가득하셨다. 준비 없이 방을 비우라고 하시니 머리가 하얘졌다. 재형저축으로 마련한 돈이 조금 있었지만 두 칸의 방을 얻는 데는 모자랐다. 겨우 부엌이 달린 단칸방을 얻을 수 있었다.
7. 딸은 의도하지 않게 낯선 아이돌보미에게 맡겨졌다.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오니 딸이 계단에서 굴러 쇄골뼈가 부러졌다. 작은 몸에 깁스한 걸 보니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고 내 가슴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신은 내게 알 수 없는 시련의 색깔로 거침없이 시험했다. 딸은 개미가 출현하는 성냥갑을 닮은 방에서 개미와 친구가 되었고 벼처럼 훌쩍 자라났다.
8. 어머님은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고 시댁으로 들어올 줄 아셨다. 전세로 얻은 작은 방에서 잘 지내는 걸 보고 화가 단단히 나셨다. 급기야 아들에게 원치 않은 이혼을 강요했고 며느리인 나에게 처녀장가를 들인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나는 어머님이 외아들을 소유한 대가치고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는 어머님 말씀을 듣지 않고 욕바가지를 자처했다. 나는 남편이 착한 성품을 보여 준 덕분으로 스스로 남자의 미늘이 되었다. 유년 시절에는 아버지 말씀을 따랐지만 결혼해서 나를 지켜 준 남자에게 자의로 구속되어 하늘처럼 받들기로 마음먹었다.
9. 나는 단칸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축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남편과 의논하여 월급을 받으면 최소한의 돈을 제외하고 거의 저축했다. 목돈이 모여야 어머님이 좌지우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정 경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좁은 단칸방에 살면서 일찌감치 터득했고 검소의 미덕을 실천하기로 했다.
10. 결혼하고 7년이 지나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남편과 맞벌이로 시작해서 절약하고 저축해도 입주 금액은 턱없이 부족했다. 은행에 융자를 받아도 모자라서 전세금을 빼기 위해 머리를 숙이고 시댁에 들어가기로 했다. 입주할 때까지 어머님 집에서 2년 동안 군말 없이 조용히 지냈다.
11. 어머님과의 고부갈등은 봄눈 녹듯이 조금씩 해소되고 있었다. 딸아이도 예전처럼 잘 보살펴 주셨다. 무엇보다 남편의 가교 역할이 빛을 발했다. 어머님과 아내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힘들게 버틴 남편을 기억한다. 시댁에서 쫓겨났던 것이 남편과 화합하는 단초가 되었고 역경을 이겨 낸 용기가 되었다.
12. 햇볕이 들어오지 않은 작은 방에서 개미를 만지며 놀던 딸을 회상하면 나도 몰래 소스라치게 놀란다. 딸의 유년 시절 결핍을 경험하게 한 것이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다행한 것은 부모의 돈독한 관계에서 사랑으로 보살핀것이 딸 아이가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을 터이다.
13. 어머님은 79세에 치매로 거동이 불편하여 9년 동안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시누이들이 멀리 있어서 주로 남편과 내가 어머님이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나는 2주일에 한 번이었다. 요양병원에 있는 다른 가족들이 한마디씩 했다.
“요즘 며느리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부모에게 아들을 잘 보내지 않아요”.
“이 댁 며느리가 너무 착해요”.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남편을 어머님이 입원한 요양병원에 자주 보낸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 의아했다.
14. 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집을 살았지만 오랜 기간 입원 중인 어머님이 한편으로 측은했다. 어머님은 정신이 있을 때,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며늘 아가, 그동안 고생이 많았고 너무 고맙다."라고 하셨다. 남편의 바람처럼 나도 어머님이 어렵게 살아오신 세월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둥근 마음이 되었다. 어머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고 남편을 잘 키워 주어 감사했다. 어머님과 남편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두 분에게 두고두고 갚아야 하는 아름다운 숙제를 소중하게 안았다.
15. 나의 삶은 언제나 일에 쫓기면서 살아왔다. 삶이란 돌아보면 산그늘로 짙어지고 거실의 벽시계는 낙엽 밟은 소리를 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즐거움과 고통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면 몸과 마음도 성글게 구멍이 뚫렸다.
16. 나는 스스로 남편의 낚싯바늘에 코가 꿰여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헤어질 위기에서 선뜻 아내를 선택한 남편을 고맙게 생각한다. 또한 남편을 이세상에 있게 해 준 어머님의 하늘같고 바다같은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첫댓글 고된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남편에게 미늘이 되어 오로지 꾸준한 인내로 고진감래 하였음에 찬사를 보냅니다.
시누이들이 멀리 있어서 주로 남편과 내가 어머님이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남자는 일주일에 한 번, 나는 2주일에 한 번이었다. 요양병원에 있는 다른 가족들이 한마디씩 했다. “요즘 며느리들은 남편을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에게 잘 보내지 않아요. 이집 며느리가 너무 착해요”라고 했다. 남자를 요양병원에 잘 보내게 한다고 칭찬을 했다.
위의 글을 보면서 진심은 통하여서 시어머님을 감복시키고 노후를 잘 모셨습니다. 잘 살아오셨습니다.
남편이 효자이고 외조도 잘 하신 좋은 분입니다.
감동 실화를 잘 읽었습니다.
진일 스님
결혼생활은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시댁 환경을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했어요.
나를 시험하는 연극무대였습니다.
지나고 나니, 잘 참고 견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준 남편이 고맙습니다.
같은 고생을 겪으면서, 부부의 정이 만들어지고 쌓이는 거지요..
그 고생이 남은 인생에서 되갚아주리라고 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창남 선생님
어머님의 힘들었던 환경을 머리에
흰 눈이 내리고서야 이해를 합니다
혼자의 힘으로 다섯 남매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외아들이 실낱같은 희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