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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4:36-53절) 주님의 마지막 분부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런덴 40일 내내 제자들과 함께 계신 것은 아닙니다. 부활하신 후, 즉시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이미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권세(權勢)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을 자주 찾아오셔서 자신의 부활을 믿게 하셨고, 온 세상에 복음(福音)을 전하라고 분부(分付)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후에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행1:10-11절)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이제 예수님이 마지막 때, 천사들과 함께 구름타고 이 세상에 오실 때(再臨)까지 이 세상에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약속(約束)하신 성령을 보내셔서 땅 끝까지 복음(福音)을 전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世界)에 증거 되었을 때, 비로소 천사들과 함께 영광중에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찬송가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Ⅰ.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오심
24:36절)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모든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우선 예수님을 죽인 자들은 보복(報復)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가 과연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면, 죽기 전과 무엇이 다를까? 궁금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과 똑같이 부활하셨을까? 아니면, 전보다 훨씬 강(强)한 모습으로 살아나셨을까? 하는 것이 궁금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에는 제자들과 늘 함께 하셨습니다. 즉 제자들과 동거동락(同居同樂)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는 함께 계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는 살아나셨지만, 무덤이 비어 있었고, 예수님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곧바로 하나님 보좌로 올라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이 계신 곳은 하나님 보좌 우편입니다. 예수님이 거기에 계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의심(疑心)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존귀를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權勢)를 물러 받으셨습니다.
마28:18절)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고 찌른 원수들에게 복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복수하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건지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찌른 원수들에 대한 심판은 35년 후, 로마(디도)와의 전쟁으로 미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전쟁도 유대인들이 겸손(謙遜)했더라면, 필요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유대인들은 일종의 과대망상증(誇大妄想症)에 사로잡혀 로마와의 전쟁에서 이길 줄 알고, 전쟁했다가 결국 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예전처럼 제자들과 항상 함께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제자들에 대한 정신적인 이유기(離乳期)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자들은 예수님이 안 계신 상태에서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항상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집들의 문(門)이 무서워서 닫혀 있는 상태에서 문(門)을 열지 않고, 그들에게 마치 유령(幽靈)처럼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느꼈던 첫 번째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과거와는 다른 몸을 가졌습니다.
즉 시간과 공간의 제약(制約)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첫 번째로 한 인사가 36절)...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는 인사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평강(平康)은 지금까지 제자들을 사로잡고 있던 모든 두려움과 실망과 고통을 이기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새로운 평안과 힘을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평강* 은 치열한 전투에서 대장이 적군들을 모두 다 몰아낸 후, 숨을 헐떡거리면서 이제 적(敵)들은 완전히 패배했기 때문에 다시는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宣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동안 사탄의 세력과 치열한 전투(戰鬪)를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는 창에 찔리고, 그의 영혼과 몸은 사망상태에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탄의 세력이 완전히 승리한 것 같고, 하나님이 패배하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예수님이 이길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은 사탄의 세력을 꺾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승리의 소식을 평강(平康)으로 제자들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인사하신 것은 *내가 이겼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십자가와 같은 고통스러운 비극이 없을 것이며, 제자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오직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 그를 믿는 우리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고, 따라가면, 우리에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평강(平康)* 인사는 인사치례의 평강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두려움과 고통은 영원히 끝났다는 놀라운 선포입니다.
또 이것은 믿는 우리의 모든 불행과 답답함과 억눌림은 끝났고, 이제부터 마음껏 축복(祝福)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찬송가 469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Ⅱ.그러나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못함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 앞에 서신 것을 보고 무서워 했습니다.
37절)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이 있는 방문(房門)으로 들어오시지 않고, 그들 앞에 갑자기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아마 머리가 쭈삣해질 정도로 놀랐습니다.
성경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37절)...영(靈)으로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靈)*이란 우리가 말하는 귀신(鬼神)과 같은 것입니다. 제자들은 유령(幽靈)이 나타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靈)과 비슷한 몸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즉 부활하신 몸은 천사와 같은 몸입니다. 그러나 영(靈)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몸은 뼈와 살이 있고, 만질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최초로 부활하신 몸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에 한 가지 빠져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까지 있었더라면, 그들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것은 몸의 광채(光彩)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에서 태양보다 더 밝은 광채(光彩)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빛이 없는 상태에서 제자들을 찾아오셨는데도 제자들은 믿지 못하고 두려워했습니다.
38-39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고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볍게 책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그가 죽었던 그 상태로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죽을 때의 상태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몸을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손과 발을 보라고 하시면서 성경 41절)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너무나 기쁘므로 아직도 예수님의 손을 만져보고, 그 못 자국을 보고서도 믿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은 제자들에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모습이었습니다.
손과 발에 못 자국도 옆구리에 창자국도 몸에 살과 뼈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몸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좋아서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예수님이 살아오신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믿고 따라다녔던, 예수님이 너무나 비참하게 죽었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잃어버렸던 그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는데,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이 놀라운 축복(祝福)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심(疑心)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까 예수님은 그 구운 생선을 잡수셨습니다. 만약 귀신이라면, 음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를 믿는 우리들도 천국에서 분명히 무엇인가를 먹을 것입니다. 아마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을 것입니다.
Ⅲ.예수님은 성경을 강론하심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신 후, 성경으로 제자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활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15:50-58절)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인간들이 상상(像想)으로 만들어낸 죽은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모든 죄(罪)가 사(詐)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 중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 제사를 받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았던 성전 휘장이 활짝 열려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껏 하나님 앞에 나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고, 축복을 간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4-45절)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허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구약 성경을 풀어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은 곧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설계도(設計圖)이기 때문입니다. 설계도만 볼 때는 잘 모릅니다. 나중에 건물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 그 설계도대로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계도와 다른 것들은 철거됩니다. 구원의 설계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基礎)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히 세워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이 부활의 능력이 주어지므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 자랑을 이기고, 또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믿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힘으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시간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공급을 받는 가장 귀한 시간입니다.
좋은 것들은 위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약1:17절)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이 세상을 주도(主導)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은 하나님의 설계도(設計圖)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찬송가 441장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Ⅳ.제자들에게 주신 약속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두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①예수님을 통한 죄 사람을 얻는 회개.
47-48절)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새 사람이 되려면, 과거의 죄(罪)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새 사람이 되지 못할까? 그것은 과거의 죄(罪)가 그대로 남아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가 과거의 죄를 다 씻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번만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새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계속 씻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259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서*
그런데 우리는 내가 새로워진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우리의 과거를 들추어내지 못하도록 다른 사람의 기억도 지워주십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를 대적(對敵)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심판(審判)으로 그를 치실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과거의 죄(罪)를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47절)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이 죄를 짓고 싶어서 짓는 것일까? 죄의 세력에 얽매여 있고, 죄가 중독(中毒)되어서 악(惡)한 자들에게 붙들려 있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죄에서 돌아서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어느 누구도 죄를 강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놀라운 권세(權勢)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세력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은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이 증거 되기만 하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걱정은 어떻게 불신자(不信者)들이 보지도 않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믿는 것을 증거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근거는 예수님의 두 번째 약속(約束)입니다.
49절)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신 가장 놀라운 약속(約束)은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은 최고의 기적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마치 고물 자동차에 제트기 엔진을 달고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의 깨달음은 구약 선지자들의 수십. 수백 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진리(眞理)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 마음에 오시면,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罪人)임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믿어집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것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9절)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마치 옷을 입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벌거벗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서서 말할 수 없습니다. 수치(羞恥)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옷을 입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리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50-51절)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 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예수님이 손을 들어 축복(祝福)하신 것은 파송(派送)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마친 후, 축도(祝禱)하는 것도 은혜 받은 성도들을 세상에 파송(派送)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축복(祝福)하시면서 이 세상에 파송(派送)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에서 사는 것이 축복의 파송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眞理)를 우리가 속한 삶의 현장에서 활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완전히 끝난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하실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모든 사역들, 즉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을 우리에게 맡긴 것입니다.
②예수님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육체(肉體)로 나타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대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셔서 주님처럼 능력 있게 만드실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때는 이 세상을 심판(審判)하실 때입니다.
③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성령의 시대와 교회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을 우리는 땅 끝까지 전하되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들을 건져내는 일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讀者)여러분!
이제 우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祝願)합니다.
찬송가 515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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