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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곳이다. 21세기에 갓 쓰고 사는 권헌조옹, 그가 산 경북 봉화의 300년 된 고택 송석헌(松石軒·중요민속자료 제246호)이 그렇다. 안동 권씨 가문의 종손이자 8대째 이 집의 주인으로 살던 권옹의 나이는 2010년 촬영 당시 83세. 사진집은 이렇게 오래된 집과 한몸이 돼 살아가는 노인에 얽힌 이야기를 몇 차례 여행을 통해 다큐멘터리 찍듯 담았다.
전남 구례로 낙향한 작가 권산. 어느 날 아는 방송국 PD로부터 곧 정부 예산으로 전면 대보수에 들어가는 송석헌의 사진 촬영을 요청받는다. ‘영남 지방 사대부 저택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는 가옥’이라는 송석헌. 그 큰 집에서 그는 혼자다. 변을 맛보며 건강을 살피던 부모님은 진작에 세상을 떠나셨고, 지극정성으로 병구완했던 아내도 먼저 갔다.
왜소한 체구의 그가 건사하기에는 벅찬 집이다. 습관의 힘으로 그 일을 감내하는 체화된 일상이 카메라에 잡힌다. 아침저녁 의관을 정제하고 집 위 언덕의 부모님 산소를 성묘하고, 하루 한번은 먼지 켜켜이 쌓인 집안을 둘러보는 모습을.
이 시대 마지막 선비로서 살아가던 그의 모습은 큰 집만큼이나 낯설다. 공사가 시작되고 노인은 병원에서 임시 거처한다.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 권동재 선생이 뼈대만 남은 집을 지키며 사는 모습도 담긴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날아온 권옹의 갑작스런 부음.
“집 때문일 겁니다. 집을 떠나 계셔서 몸도 떠나신 것이지요.” 송석헌으로의 마지막 여행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 집에 머물기로 했던 권동재 선생마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 이뤄진다. 작가는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향해 주장하지 않았고 단지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300년의 기억, 송석헌>
송석헌 [松石軒]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석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옥이다. 1700년에 지어진 집으로 지대의 경사를 그대로 살려 짓다보니 앞에서 보면 2층 구조로 보이는 특이한 집이다. 중요민속자료 249호다.
여기 오래된 집 하나가 있다. 1700년에 지어진 집이니 300년이 넘는 집이다. 마당에 들어서면 일단 한옥에서는 볼 수 없는 2층 구조가 충격을 준다. 산의 경사를 그대로 이용해 짓다보니 앞부분에 높게 기단을 형성해놓은 탓이다. 송석헌이 주는 이 웅장함과 스케일은 조선 양반가옥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독특함이다. 현대 건축가들이 송석헌을 주목하는 이유다. 300년을 살아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집, 이 오래된 집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살고 있을까.
<기억과 사는 마지막 선비, 권헌조>
권헌조 [權憲祖 83세] 송석헌을 지키고 살고 있는 권씨 가문의 후손이다. 안동 봉화일대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통하며 아직도 유교적 삶을 산다.
여기, 오래된 가치를 아직도 붙잡고 있는 선비가 있다. 아침?저녁으로 의관을 갖추고 집 뒤에 있는 부모의 묘지를 찾아 배례를 하고, 외출하고 돌아와도 다시 묘지를 찾는다. 선대가 번듯한 벼슬을 한 적도 없고 본인 또한 공부가 부족해 자신은 한사코 한학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봉화 안동 일대의 한학자들이 제자를 자청하며 정기적으로 찾아와 한학을 공부한다.
그는 홀로 산다. 자식들은 다 서울에 사는데 그는 기어이 이 집에서 생을 마감할 작정이다. 이유는 단 하나, 부모님이 살던 이 집을 놔두고 어떻게 떠나느냐는 것. 그가 품고 사는 가치는 여전히 과거에 있다. 그래서 과거는 과거일 뿐인가. 모든 오래된 기억에는 기억되어야만 될 무엇인가가 있다. 기억은 그렇게 완성돼 마침내 하나의 가치가 된다.
<집과 기억에 대한 예찬>
독특한 모양의 표지판이 집 앞의 도로 가에 서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 한껏 꺾어진 위태로운 길 위에 서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이 오래된 집의 상징처럼도 보인다.
300년의 기억 속에는 과연 무엇들이 살고 있는가. 그리고 노인은 왜 아직도 그 기억을 붙들고 있는가. 이 프로그램은 그 오래된 기억에 대한 예찬이며 그 기억에 바치는 하나의 헌정이다. 그 예찬과 헌정의 방식은 프로그램 속에서 사진작가와 뮤지션을 통해 구현될 것이다. 어느 오래된 집이 품고 있는 수많은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