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야, 넌 설날이 좋으니
진선이
코흘리개 철부지였던 그땐 아무것도 몰랐기에 설날이 마냥 기다려졌다. 색동저고리에 분홍치마를 입고 댕기를 달아 예쁘게 치장한 내가 좋았다. 평소 먹어보지 못한 한과도 맛있었고 복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세뱃돈도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철이 들어 좋은 점도 있지만 몰라도 되는 것까지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세상을 알아갈수록 설날이 조금씩 피곤해졌다. 나에게 설날은 딱 열 살까지만 좋았다.
할머니 슬하의 자녀는 팔 남매다. 고모 셋은 시집을 갔고 삼촌 둘은 결혼해서 각자 살림을 꾸리고 살았다. 세 삼촌은 도회지로 공부하러 떠났다. 집에는 조부모님 나 이렇게 셋이 살았다. 두 분은 연세가 있으셨기에 집안 심부름과 잔일은 모두 내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남녀 일에 선을 긋는 데는 대왕급이어서 집안일에는 손도 대지 않으셨다. 명절이 다가오면 할머니가 분주해지는 만큼 나의 피로감이 더해졌다.
할머니는 대명절을 치르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준비하셨다. 재료를 준비하고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하나에서 열까지 할머니 손을 거쳐야 했기에 할머니는 날 동업자로 고용하셨다. 엿을 달이거나 식혜를 하는 날이면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아궁이에 불을 지펴 때고 밀려오는 잠을 이기며 꾸벅꾸벅 졸았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약과와 산자(한과)를 시작으로 명절 음식이 하나둘 만들어졌다. 하루에 끝나지 않았다. 한과 만드는 일이 끝나면 도토리묵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또 어찌나 손이 많이 가는지. 음식의 맛은 정성이라고 했다. 할머니와 난 가을이 오면 산으로 도토리를 주으러 갔다. 도토리묵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도토리를 주어와 말리기를 여러 날 거쳐야 한다. 말린 도토리를 가루로 만든 후 가루를 물에 불리고 무명천에 담아 손으로 누르고 짜며 도토리묵 물을 만들어 치대기를 여러 번 해야 진한 도토리묵 물이 된다. 할머니가 흡족해할 정도의 농도가 되면 가마솥에 붓는다. 나는 불을 때고 할머니는 도토리 물이 가마솥에 눌어붙지 않게 계속 저으며 도토리묵이 될 때까지 젓고 또 젓는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음식이 만들어졌다.
이제 좀 쉬어 볼까, 하는데 할머니는 곧바로 대청소를 시작하신다. 먼지가 쌓인 이불 홑청과 베갯잇을 뜯어 햇빛 좋은 날 빨래를 해서 널고 말렸다. 여기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이걸 다시 바느질하는 일이 남아있다. 눈이 침침한 할머니가 날 부른다. "선이야, 바늘에 실을 꿰라." 난 또 옆에서 군말 없이 손을 놀린다. 이불이 끝나면 방마다 빗자루질하고 걸레로 닦는다. 무릎은 왜 이리도 아픈지, 손은 왜 이리도 시린지. 추석보다 추운 설날이 싫었다. 동화 속 신데렐라 같았다. 마당 안뜰과 뒤뜰 청소할 곳이 많았다. 마당 청소를 끝내면 옥상을 정리했다. 집안일은 하고 또 해도 끝이 없었다.
명절 앞 시골 5일 장은 대목장으로 인산인해다. 평소 5일 장 보다 과일과 생선이 두 배로 넘쳤다. 명절 때만 볼 수 있는 곱고 고운 한복이 눈길을 끌어당기고 신발가게 빨간 구두가 날 유혹했지만, 나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시장바구니에 꽃게와 조기가 담겼다. 사과, 배, 곶감, 귤로 바구니가 무겁다. 두 손이 무거워지는 만큼 삐져나오는 내 입술을 보셨을까? 할머니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술빵을 사주셨다. 마음이 달래졌다. 갑자기 시장 안에 울려 퍼지는 “뻥이요.” 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설날 이틀 전 오늘은 방앗간을 가는 날이다. 설날 아침에 먹을 떡국 떡을 만들기 위해 불려둔 쌀을 소쿠리에 담았다. 할머니는 기름으로 짤 들깨 참깨를 챙기고 땅콩도 챙기셨다. 참기름, 들기름, 땅콩기름을 담기 위해 미리 소주병을 씻어 햇볕에 잘 말려두었다. 팔 남매를 두셨으니 줄줄이 서 있는 병도 많았다. 난 자전거에 싣고 할머니 뒤를 말없이 따랐다. 할머니 발걸음은 가볍고 내 발걸음은 무거웠다. 방앗간은 이미 다른 손님들로 초만원이다.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서 가져간 곡식을 순서대로 줄을 세웠다. 줄을 보니 3시간 이상은 족히 걸릴 것 같다. 또 하루가 이렇게 저물었다.
설날 하루 전날 타지로 갔던 식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모여들었다. 조용했던 집안이 시끌시끌했다. 팔 남매가 모이니 넓은 집이 순식간에 좁아졌다. 할머니는 며느리들이 모이자, 주방을 내주었다. 할머니 일은 이제 끝났다. 내 일도 끝났다. 이제부터 며느리들의 일이 시작되었다. 팔 남매 자녀에다 손자 손녀 며느리까지 3대가 모이니 집안은 사람으로 꽉 찼다. 끼니때가 되면 여자들은 주방에서 분주히 밥상을 차려냈다. 할머니 할아버지 밥상을 제일 먼저 차리고 안방 작은 방 마루까지 네 개의 밥상이 놓였다. 3대가 어우러져 먹는 진풍경이 펼쳐지지만, 설거지는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며느리들의 한숨 소리는 깊어지는데 방안에서는 남자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순간 시집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진심은 '여자로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넌 살림 많은 시골집으로 시집가지 말아라.” 할머니의 고된 삶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에 대한 염려였을까. 사랑이 뭐길래 시집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꺾었을까. 난 결국 옆 동네로 시집을 갔으니, 할머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골살이는 아니었지만 결혼 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가정적이고 나만 보는 해바라기 같은 남편을 만나 흔히 말하는 고부 갈등은 없었다. 시집살이가 힘들진 않았다. 명절이 다가와도 명절 증후군은 없다.
다만 사회 통념으로 굳어진 여자, 며느리라는 울타리가 가슴을 답답하게 할 뿐이다. 집안일을 여자의 몫으로만 돌리지 말고 분담을 했으면 한다. 함께 전을 부치고 설거지도 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면 서로 얼굴 붉히는 일보다 웃는 순간이 더 많아질 것 같다. 핵가족화로 옛날보다 명절이 간소화되었지만, 여자들의 부담감은 줄지 않았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명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갑진년 설날을 맞이하며 까치에게 묻고 싶다. “까치야 넌 설날이 좋으니?”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누구를 위한 노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