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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31일 토요일 궁평항 – 입파도 여행
함께 한 사람 : 고인돌 형님과 지인들 4명
지나간 길 : 오전 8시 30분쯤 집을 출발하여 10시 30분 궁평항 도착 – 11시 출발 여객선 –
11시 45분 국화도 – 12시 15분 입파도 도착 – 점심 식사 및 주변 경관 구경후 –
오후 3시 승선 – 4시 50분 궁평항에 도착
http://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658525
갈매기의 꿈
입파도에서 궁평항까지 한 시간
지칠 줄 모르고 따라가는 이유는
선객이 던져주는 새우깡 조각
때로는 한 조각 얻어먹지만
대부분 헛 지랄이다
그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수 많은 날개짓
수지가 맞을 리 없다
갈매기 날개짓은
살아남기 위한 간절한 몸짓이다
요즘은 미디어가 발달하다 보니 대부분의 소식이 사회관계망 ( SNS )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된다. 제주도 사람 부부싸움으로 시작된 고유정 남편 살인사건이 터지면서 가족관계 등 자세한 내용까지 뜨겁게 세상을 달구더니 조금 시들해지자 일본과의 무역전쟁이 화두가 되었다. 사실 나는 이 대일 무역전쟁에 관심이 쏠렸다. 어찌보면 이 사건의 발단이자 본질이기도 한 역사문제가 뒤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대일 무역갈등의 표면적인 시발점은 일본 징용자에 대한 배상판결이었다. 일본 제국시대 식민지였던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정부에 의해 차출되어 일본에 있는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하게 된다. 해방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왔고 어쨌든 각자 생업에 종사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 사이 1965년 한국의 군사정권은 일본에 포괄적 배상을 요구하여 약 3억 달러의 배상금과 2억 달러 차관을 받아왔다. 이 한일협정에 대해 일본은 일제 36년간의 개인 및 국가간 모든 잘못에 대한 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97년 신일주철 (현 일본제철)에 강제노역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모여서 당시 받지 못한 급여 및 피해에 대해 배상하라고 일본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했으나 일본 최고법원에서 패했다. 이들은 다시 한구에서 이번에는 일본정부는 제외한 채 일본제철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들이 최초로 소송을 제기한 지 20년이 지난 2018년 10월 일본제철은 원고에게 각 1억원씩의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대법원 확정판결을 내렸다.
<황매화>
법원의 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강력하게 항의하였고 결국 양국 정부간의 갈등으로 비화하였다. 원칙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빠른 시일안에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라고 독촉하였고 일본정부는 마침내 한국을 수출우대국가 ( White List )에서 한국을 제외시키면서 무역갈등으로 발전했고 이에 맞서 한국정부는 일본.미국과 함께 결성한 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역사문제가 경제 및 안보문제로 확대되었다.
이런 정부간의 갈등에 편승하여 한국에서는 민간인 사회단체 등의 주도로 일본상품 불매운동과 친일행위에 대한 경고 등으로 일부 일본 제품 가게가 문을 닫고 일본 여행객의 감소로 항공편이 줄어드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얽히고 설킨 양국간의 감정싸움이 마침내 다시 타오르는 분위기다. 이에 대한 원인(原因)을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원인(遠因)은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지 않고 권력욕에 불타는 위정자 (박정희)를 내세워 임기응변식 협정을 체결하고 또 다시 안하무인식의 태도로 일관하는 일본정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처꽃> 옥수터널 지나서 길가 정원에 피어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의 많은 국가들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전쟁의 상처에서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대충 얼버무리고 맺은 평화협정은 마치 곪은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봉합하여 더욱 나빠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일본이 경제적 우위를 앞세워 이제는 유사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더욱 안절부절 못하는 형국이다.
지금의 무역갈등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칙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나 헌법 개정을 목표로 삼고 있는 아베 정부 모두 쉽게 뒤로 물러설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이상 사태가 커져서 크든 작든 상호간 피해가 커지는 것을 염려하여 또 다시 대충 화해하고 얼버무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외형적인 화해 속에서는 끊임없이 커다란 종양이 커져서 언젠가는 말로 주고받는 설전(舌戰)이 아니라 실제 무기를 동원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죽단화>
산다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진리인데 우리는 눈 앞에 먹을 음식이 있으면 이런 진리를 잊게 된다. 하지만 정말로 산다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 개개인의 생명체에도 해당되지만 공동체나 국가 간에도 적용된다. 얼마간 평화로운 기간이 지속되면 이런 태평성대가 영원히 이어질 것으로 착각하지만 과거 역사를 봐도 그런 평화로운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누군가 힘 센 놈은 약한 놈의 것을 빼앗아 차지하려 하고 약한 놈은 뺏기지 않으려 한다. 힘센 놈보고 양보하라고 달래면 힘센 놈은 약한 놈이 머리 숙이고 항복하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버틴다. 개인에게는 사태를 이해하는 인지능력이 있고 또 국가에는 속도를 조절하고 판단하는 여러가지 기관이 있다. 그런 조절기능 덕분에 심각한 사태가 자주 생기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그런 조절기능이 잠시 마비되면 개인간의 싸움이든 국가간의 전쟁이든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화두가 잠시 법무부 장관 후보인 조국에게 넘어간 것 같다. 어느 정부에서나 새로운 장관을 임명하기 위해 청문회를 열게 되면 후보자는 갖가지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특히 이번 조국 후보자는 그런 해명할 기회도 없이 야당에서 제기한 의혹의 방망이를 가지고 언론에서 두드려 패는 바람에 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완전 그로키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의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려 하고 있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야당에서는 국민감정을 등에 업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장관임명을 막으려 하고 있다. 어찌 되든 혹여 조국이 법적인 문제에서 벗어나더라도 도덕적인 면에서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줌으로써 앞으로 약 2년 남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노선에 큰 부담을 안겨줄 것 같다.
궁평항(宮坪港)
모처럼 산행계획을 세우지 않은 주말이다. 백두대간 산행이 격주로 진행되는데 이번주는 쉬는 주간이고 일요일에 벌초 행사를 하기 때문에 토요일 긴 산행을 하기에 부담된다. 윤이는 풍납동 베드민턴 회원들 위주로 구성된 봉사활동 회원들 야유회에 참석한다고 금요일날 양평으로 갔고 미리는 자전거에 전동기를 달았는데 그걸 찾으러 간다고 한다. 일요일에 벌초를 하는 것이니 토요일은 어쨌든 내 의지대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날이다.
잠시 고민해본다. 미리랑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자전가 찾아오는데 동행할까. 천마산에 가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의 야생화를 보고 올까. 이런 저런 들뜬 생각에 아침을 먹고 자전거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져가고 있는데 고인돌 형님이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입파도에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한다.
궁평항 전경
입파도는 화성시에 속한 작은 섬인데 언제부턴가 고인돌 형님이 이 섬 주변의 옛 뱃길 탐사를 위해 여러 번 다녀온 곳이다. 당나라 때 이 곳을 통해 중국과의 무역선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나는 대체 어떤 섬이기에 고인돌 형님이 매료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섬에서 피는 꽃도 볼 겸 선뜻 같이 가겠다고 말하고는 집을 나섰다.
화성시 궁평항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시 30분쯤 도착하니 항구 좀 못미쳐 작은 공터에서는 포도축제가 열리고 있어 주차공간이 복잡하다. 길가에 차를 대고 항구 안으로 들어가면서 고인돌 형님에게 연락을 해도 통화가 안된다. 썰물대라서 바닷물이 빠져나간 뻘은 그냥 진흙 바닥을 드러냈다. 안쪽에도 주차장이 있는데 이미 거의 차 있다.
고인돌 형님의 연락이 오길 기다리며 선착장쪽으로 걸어가니 한 대가 정박되어 있고 또 한 대가 들어와 선객을 내려놓는다. 11시에 출발한다고 들었는데 벌써 시간이 10시 45분이다. 승차권을 사려면 다시 항구 입구에 있는 매표소에 가야 한다고 한다.
궁평항에서 국화도 가는 길
입구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에 매표소가 들어있다. 아마 항구를 만들 때는 번듯한 건물 안에 관리소가 있었을 터인데 이렇게 항구 한켠에 컨테이너 박스를 세워두고 그 안에서 행정업무를 보는 것은 전문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냥 하루 하루 배 탑승권을 파는 업무만 염두에 둔 때문이리라. 주차장에 차가 그리 많은데도 배표를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포도축제에 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그런데 표를 사려고 하니 앞에 고인돌 형님이 표를 사고 있는 중이다. 전화기를 차에 두고 와서 내 전화를 못받았다고 한다. 배를 타려면 신분증 확인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빈 몸으로 왔다. 다행히 고인돌 형님 일행인 것으로 인정하고 왕복 20,000 원짜리 표를 살 수 있었다. 흰색, 파란색 그리고 노랑색 이렇게 세 가지 색깔의 종이 사이에 먹지를 대고 볼펜으로 눌러서 승객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흰색은 서해해운에서 보관하고 승객에게는 파란색과 노랑색 표를 내어준다. 파란색은 섬으로 들어갈 때 그리고 노랑색은 섬에서 나올 때 제출하는 실질적인 유가증권인 셈이다.
고인돌 형님의 일행은 5명이었다. 수원에서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인데 모두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 같았다. 나는 그 일행을 따라 11시에 출발하는 국화도 – 입파도행 배를 탔다.
입파도가 보인다.
수평선 위에 펼쳐진 하얀 뭉게구름이 아름답다. 십 여년 전 바다 낚시 다닐 때 먼 바다까지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옅은 해무 사이로 서 있는 섬의 모습이 참 멋있었다는 생각이 난다. 지금의 풍경은 그것과 또 다른 풍경이다. 멀리 당진화력발전소가 보이고 오른쪽 먼 곳에는 영흥도 화력발전소가 보인다. 맑은 날씨 덕분에 사방이 뻥 뚫렸다. 꽤 바른 속도로 달리던 배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면서 선장이 방송으로 해군함정 참수리호가 훈련중으로 평택항 쪽에서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어 이를 먼저 보낼 예정이라 한다. 그런데 참수리호는 올라오다가 다시 뒤돌아간다. 바다위에서 일어나는 일상이 육지에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오른쪽 가까운 곳에 작은 섬이 하나 물 위에 떠 있다. 고인돌 형님이 도리도라고 가르쳐 주신다. 섬 모양이 복숭아처럼 생겨서 도리도(桃李島)라고 부른다는 설과 이 섬을 기점으로 돌아가는 뱃길이 있어 돌아간다는 의미라고 하는 설도 있다는 설명을 해 주신다. 바다에 떠 있는 수 많은 섬들이 바다에서 일상 생활하는 어부들에게는 그들이 살아온 나날만큼이나 많은 사연이 숨어 있을 법하다.
국화도 모습
약 45분을 달려 국화도에 도착했다. 섬에 국화가 많이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가. 섬 이름에 대해 고인돌 형님은 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백두대간을 뛰면서 산 이름 고을 이름을 유추하여 그 유래를 찾아내는데 이력이 났다. 이 섬은 원래 갯벌섬이었을 것이다. 진흙 갯벌이 많아서 그렇다. 그것이 비슷한 발음인 개(狗)불(火)섬(島)이 되었고 이 구화도를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왕실 상징인 국화(菊花)로 인식하여 지금처럼 국화도로 명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섬에는 팬션 등 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선장이 설명해준다. 이 섬에서 약 20 여명이 내리고 또 육지로 돌아가는 10여명의 승객이 탑승했다.
우리가 가려는 입파도(立波島)는 국화도에서 약 15분 거리다. ‘서서 파도를 맞는 섬’이라는 다소 뜬금없지만 낭만적인 이름이다. 국화도에 딸린 부속섬으로 십여명이 살고 있다. 우리는 하선하여 우선 요기할 만한 식당을 수배했으나 한낮 뙤약볕 아래서 좀 헤매야 했다. 지나가는 차 운전사에게 물으니 고개 너머에 팬션이 있는데 물어보겠다고 한다.
고인돌 형님 일행은 모두 아침을 안먹고 온 탓에 몹시 시장해 보인다. 팬선 들마루에 자리를 잡고 우선 궁평항 횟집에서 준비해온 회와 쓰끼다시를 안주삼아 소주를 한 순배씩 돌린다. 짧은 여정이지만 모두 오랜만에 갖는 나들이인 듯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어서 식당에 주문한 백반이 나오고 커피로 입가심까지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3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려면 시간이 촉박하지만 고인돌 형님의 안내를 받아 섬을 반만 돌기로 했다.
입파도 입항
등대까지는 포장도로를 완만하게 오른다. 수리중인 등대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능선길을 따라 해안가로 내려가는데 바위가 깍여나간 급경사길이다. 누군가 매어놓은 여러 가닥 밧줄을 타고 해안으로 내려섰다. 늘 보는 풍경이 아니니 모든 것이 아름답다. 해안가 절벽에는 아직도 <원추리>꽃이 많이 피어 있다.
보통 해안이라 하면 고운 모래가 펼쳐진 백사장을 떠올리는데 이 입파도의 해안은 큰 바위가 켜켜이 쌓인 너덜지대다. 마치 설악산 귀때기청봉에 널려있는 바위 같은 느낌을 준다. 섬과 섬 사이 만조때는 물이 왕래할 것 같은 지대 부근에는 모래와 조개껍질이 쌓여 해수욕장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해당화>와 <배풍등>, 그리고 <계요등>꽃이 보이고 <대나물>꽃이 등골나물 같은 모양으로 많이 피어 있다. 그늘에 피어 있는 <쑥부쟁이>는 자신이 이 국화섬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이 다소곳이 피어 있다.
입파도 이모저모
이 섬에서 사람이 사는 곳은 배가 드나드는 선착장 주변과 그 언덕 너머 팬션이 있는 곳 뿐이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목에 입파도 도선운항 매표소라는 건물이 방파제 위에 세워져 있는데 그 넓직한 시멘트 바닥은 폐기물 처리장처럼 어수선하게 괸리되고 있다. 재활용이 가능한 물품인지 모르겠지만 생활쓰레기가 방치되어 있는 느낌이다.
여객선은 제시간에 들어왔고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배 위에서 멀어져가는 입파도와 주변 섬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선장은 입파도 섬의 모양이 마치 사람이 누워있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또 그럴싸하다. 출발지인 궁평항까지 약 40분쯤 걸려 3시 45분 하선할 수 있었다.
<대나물>
<산초나무>
<자주개자리>
<개싸리>
<큰낭아초>
등대
<맥문동>
입파도 해변
섬과 섬 사이 - 밀물때면 길목에 물에 잠긴다.
이어진 섬
<잔대>
<꿩의비름>
<무릇>
<배풍등>
<계요등>
<댕댕이덩굴>
<쑥부쟁이>
궁평항은 예전에 궁(왕궁)에서 관리하는 논이 많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가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포도축제를 보러 왔는지 주차장 입구가 완전히 막혀버렸다. 나는 고인돌 형님 일행과 인사를 하고 서둘러 그 곳을 빠져나왔다.
벌초행사는 일요일에 있으니 토요일은 봉갑리 큰누나 집에 모여 저녁을 먹고 엄니집에서 자기로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바다 나들이를 참 잘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