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요, 선택의 총합이라고 한다. 인생은 운명이 아니란 얘기다. 매일 현관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탈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에 마주 치고, 등산을 할 때도 무수한 갈림길에서 망설이다 결국엔 항상 가는 길, 익숙한 길,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택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점심 메뉴 결정처럼 아주 중차대한 선택부터 12월 대선 때 누굴 뽑을 것인 가처럼 사소한 것까지 선택은 항상 내 주위에 널려 있다.
우리는 3억 분의 1이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운명적(運命的)으로 태어나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자식을 낳고 사주팔자에 따라 운명(殞命)한다. 그 사이사이 수많은 선택을 하며 그걸 운명으로 돌리거나 체념하며 자기 의지를 부정한다.
뒤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잘못 돤 선택을 했던가, ‘그 때 그렇게 할 걸’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후회와 반성이 나이가 들수록 도피적 운명론자로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작년 6월 은퇴를 했다. 은퇴 후 8만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다 살면서 처음으로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을 했다. 내가 항상 가던 길, 익숙한 길보다 내가 안 가본 길, 새로운 길을 택해서 가 보기로 했다.
이제껏 쫓기듯 살아온 내 전반기 인생과 달리 후반기 인생 2막은 재미와 보람과 변화를 찾기로 했다. 그래서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일로 요양보호사, 머리로 할 수 있는 일로 한자1급자격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교사를 목표로 1년간 아줌마와 젊은이들 틈에서 늦바람이 나서 매서운 추위와 따가운 햇살과 고락을 함께 했다.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머리는 쾌청한 가을 하늘처럼 항상 맑았고, 그래서 좋은 성과를 얻기도 했다.
지난 6일 KOICA(한국국제협력단)에서 파견한 해외봉사단원이 스리랑카에서 낙뢰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는 뉴스를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바로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올 3월에 KOICA가 모집하는 해외봉사단 한국어교사에 응모하였다. 1차 희망 국가를 스리랑카로 한 나는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과했으나 최종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여 결국 8월에 파견되지 못 했다.
불합격 이유는 혈소판 수치가 정상치(14만~40만)보다 만정도 미달되어 의료 수준이 낙후된 저개발국가에 국가가 책임지고 보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결과였다. 지금까지 수십 번 신체검사를 하면서 한 번도 문제되지 않았던 일이고 일상생활에서 전혀 지장이 없었기에 당혹감과 함께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차사고로 비행기를 놓쳐 추락 참사에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그저 그런 남의 이야기로 귓등에 흘려 들었는데 이름도 생소한 혈소판이 한 젊은이와 늙은이의 생사를 가름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100% 그 곳에 내가 가리란 보장은 없지만 그 당시 모집 요강을 보니 파견 시기와 수요 기관이 거의 일치하여 그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혈소판 수치를 높이겠다고 한약을 먹고 새벽마다 운동을 하고 좋다는 토마토와 당근을 먹으며 그 놈의 혈소판을 원망했던 지난 여름의 무더위가 오히려 고맙고 그립다.
보름 후면 혈소판 검사를 다시 한다. 그러나 이제 그 검사 결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옹(塞翁)에게 말(馬)이 복(福)이 되기도 하고 화(禍)가 되기도 하듯이 유옹(柳翁)에게 혈소판이 화가 되기도 복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인생은 어차피 화(禍)도 슬퍼할 게 못 되고 복(福)도 마냥 기뻐할 게 못 된다.
(멀고 먼 이국에서 한 떨기 아름다운 꽃으로 진 두 젊은이의 명복을 빌며 부상 중인 세 사람의
쾌유를 진심으로 바란다.)
첫댓글 글 솜씨가 참 좋습니다. 이 정도면 고료 받아야 할 정도인데요...
좋은글 감사하구요,생각만하고 행동에 못옮기는나는 과연재미와보람과변화를 알까?
혈소판검사 좋은결과가있기를 기도하며...
유군도 이제 많이 컷고나! 인생을 논하는 걸 보면........
그래 인생사 새옹지마!!! 참으로 틀림없는~~~
어쨌든 고맙다! 부의금 굳었으니~~~
광현아! 40 여년 전 뉴질랜드에 있는 이기문과 너와 종암동에서 후암동 학교까지 통학 하며 지내던 까까머리 시절의 추억,
10 여년 전 중국 동영에 출장가 2차로 술 먹던 기억, 오랜된 것 같지 않은데......
어는 덧, 인생의 제2막을 열심히 준비 한다니 새삼 감회라고나 할까, 아무튼 많은 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지난 번 스리랑카 못 갔었던 것을 천운이라 여겨라. KOICA를 통해 더욱 보람찬 여생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