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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는 온실 속 화초의 한계
신분이라는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요즘,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갖고 살아간다.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사람 간의 사랑이 존재하는 이 모든 일은 지금부터 몇백 년 전만 해도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춘향전은 판소리계 소설로 당시의 신분 제한적 사랑을 풀어낸 소설이다. 어릴 적 읽었을 때 변사또는 못되고 해학적으로 표현되고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애절하고 담백하게 서술되는 게 누가 봐도 고전 소설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커서 춘향전을 다시 읽게 되자 예전과는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첫째로, 춘향이는 범법자라는 것이다. 잘못된 법을 어긴 것과 그런 법을 만드는 것 중 무엇이 그른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하지만, 기생의 신분으로 수청을 드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엄연히 당대의 법을 어긴 것이다. 게다가 몽룡이 암행어사의 신분으로 춘향이를 맘대로 풀어주고 소란을 피운 것은 권력 남용과 위법 행위이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둘째로, 춘향이의 수동적 태도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지어진 소설이 민망할 정도로 이야기 속 춘향이 한 일은 감옥에 갇혀 이몽룡을 기다린 것뿐이다. 무기한적으로 몽룡을 기다리는 행위야말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여성의 절개 상이었을까? 이러한 점에서 구시대적인 남녀역할 차별을 담아낸 대표적인 작품이라 단언할 정도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춘향은 꽃이 시들어가듯 자신의 젊음만을 바쳤고 시간이 지나도록 나아지는 점은 없었다. 만약 몽룡이 잔칫날 오지 못하였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절개를 지킨다는 구실로 한평생 감옥에 갇혔다가 죽게 된 비극적 여인상을 담아낸 이야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신분을 넘나드는 사랑의 모순이라는 점이다. 한 여인의 절개를 중점적으로 다룬 춘향전에는 그 당시의 중요한 가치인 ‘효’ 가 완전히 무시되었다. 춘향이가 어린 나이에 감옥살이를 하게 되면서 나이 드신 어머니는 홀로 어떻게 밥벌이를 하며 지내셨고 딸을 걱정하는 속앓이는 또 얼마나 심하셨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이다. 빨리 감옥에서 나와 부모님을 공양하고 효를 충실히 지켰어야 할 춘향이는 밥 먹여주지도 않는 사랑에 눈이 멀어 부모님께 엄청난 불효를 한 셈이다.
옛 선인들과 우리를 이어주는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 춘향전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소설로만 우리에게 여겨졌다. 하지만 소설 속 남녀 편파적 사고나 비현실성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아이들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다양한 형태로 전해져 오는 춘향전을 더 이상 고전이라는 타이틀에 싸인 화초로 둘 것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꽃단장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1327)



첫댓글 춘향전을 읽으면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이몽룡을 기다린 춘향이의 절개에 대해서만 생각했었는데..너의 글대로 만약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나타나지 않았다면 춘향이가 옥에 있는 동안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새로운 방향에서 춘향전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 글쓰느라 수고많았어 연아야!
먼저 소설 속 주인공이 범법자라는 사실을 가지고 비판한 것이 인상 깊어. 또 춘향전을 읽을 때 단지 춘향이가 안타깝고 몽룡이 멋져 보이기만 했는데 너의 글을 읽어보니 춘향이는 책의 제목이 될 만큼 특별한 재주나 자신이 한 일을 보여주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만약에 몽룡이 그 잔치에 없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어. 글 쓰느라 수고했어~~
나도 춘향전이 마냥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 했는데, 너의 글을 읽고 춘향전에 모순적인 내용이 이렇게나 많은지 깨달았고 다른 고전 소설도 이런 모순적인 내용들이 있는지 궁금해졌어. 앞으로는 다른 소설을 볼때에도 이런 점이 있는지 고려하고 생각하며 읽어야겠어. 글쓰느라 수고했어 연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