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비라는 13년째 해의 여름에 깊은 명상 속에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육체를 비롯한 물질세계, 그리고 모든 욕망에 대한 승리를 거둔 ‘지나’(Jina),
즉 “정복자”가 되었다.
이후로 마하비라의 추종자는 ‘자인’(Jain)이라고 일컬어지게 되었으며, 바로 여기서 ‘자이나교’(Jainism)라는
명칭이 나왔다.
이후 마하비라는 30년간 신도들을 이끌고 가르치다가, BC 527년에 72세를 일기로 해탈하여 모든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는 마하비라의 사후 1세기가 지나 형성된 경전과 후대의 전승에서 말하는 내용이므로 확고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후대의 전승에서는 마하비라를 자이나교의 역대 ‘티르탕카라’(Tirthankara), 즉 “여울[건널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했다.
즉 마하비라는 제24대 티르탕카라이며, 그 이전에도 무려 23명의 다른 티르탕카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중 제23대인 파르슈바는 역사적 인물이었지만, 그 이외의 인물은 실존 여부가 불확실하다.
이것은 후대의 자이나교에서 일종의 법통 만들기를 시도한 결과로 추정된다.
(가령 불교의 경우도 외부에서는 고타마 고타마 시타르타를 그 창시자로 간주하지만
내부에서는 그 이전에도 수많은 붓다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경향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오늘날의 자이나교에서는 마하비라를 그 ‘창시자’보다는 오히려 ‘개혁자’로
간주한다. 여하간 마하비라 때에 와서 자이나교가 지금처럼 종교로서의 체계를 본격적으로 갖춘 것은 사실이다.
인도 종교 사상의 흐름에서 볼 때 자이나교 자체는 아주 독창적이거나 새로운 종교까지는 아니었다.
가령 대표적인 교리인 불살생조차도 이전의 힌두교 사상과의 연속성이 두드러진다.
다만 그러한 신념을 열심히 엄격하게 실천한 면에서는 마하비라와 비교할 만한 인물이 전혀 없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