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일/집결장소
:
2016. 08.21(일)
/ 4호선
과천대공원역 4번
출구(10:30)
▣
참석자
:
12명
(진오,
양주,
재홍,
윤환,
원무,
윤상,
재웅,
삼환,
동준,
해황,
정한,
양기)
▣
산행코스
:
대공원역-사유지사잇길
들머리-대공원
울타리옆 능선-과천
쪽 매봉-헬기장-청계사
삼거리-청계사-주차장
버스정류소-<뻐스로 이동>-뒤풀이 장소('청계민속촌')
▣
동반시
: 동해아리랑
/
전윤호
▣
뒤풀이
: 두부보쌈,파전,감자전에 맥주 및 막걸리 / "청계민속촌"(의왕시 청계동)
올 여름같이 이런 무더운 날씨가 또
있을까?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덥고 후끈거린다.
집안에
있어도 화끈거리고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꼭
동남아시아 적도 가까운 나라의 건기와 같다.
또한
일기예보도 맨날 틀리고 변명만 늘어놓는다.
그런데
이런 날 꼭 산에 가야 하는 건가?
마음속에서는
거부감이 몽글몽글 솟구치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알아서 만들었으니,
그리고
나온다는 친구들이 있으니 무슨 이유를 대겠는가.
서둘러
막걸리 몇 병 사고 집에서 챙겨주는 건강홍삼사탕 봉지를 넣고 지하철을 탔다.
대공원역에 도착하여 일찍 나온
친구들과 악수를 하고 지상으로 올라가니 가게 아주머니는 커피 한잔씩 주겠노라하나 뒤풀이도 하지 않을 식당이니 미안한 마음에 거절하고 누군가가
내놓은 음료와 물만 들이켜고 10분쯤
늦겠다는 친구를 기다리니 참 지루하다.
겨우
20분
정도 되는 시간이 날씨 때문에 이렇게 느껴지는 걸까?
오늘은
당초 16명이
참석 예정이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4명이
빠져 12명이
11시가
다 되어 출발.
청계산은 우리가 자주 올랐던 산이라
번복되는 코스는 지루할 것 같아 과천 쪽에 들머리를 정하고,
대공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산으로 오르는 코스를 찾아 출발 하였으나 예전에 올랐던 시작점이 공사를 하여 언덕을 만들어 놓아 순간
당황하였다.
오늘
코스를 머리 속에 그려 놓았는데 이렇게 흐트러지는 건가?
그러나 조금 더 걸어 사유지 가운데
길로 들어가니 어렵지 않게 계단으로 시작되는 입구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왼쪽으로 대공원 울타리를 끼고 등성이를 계속 오르면 이수봉까지 도달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사진 촬영을 할
친구들이 모두 나오지 않아 자칫하면 증명사진도 없을 것 같아 생각 끝에 재웅 친구에게 부탁을
하였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했지 않는가?
그래도
전에 자주 사진을 올렸으니 제일 적임자인 것 같았다.
사실
사진 찍는 것도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특히
오늘 같은 날씨에는 더욱 그렇다.
일행의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좋은 포인트를 찾아야 하고 언제나 식사 전에도 먼저 서둘러 찍고서 자리에 앉는다.
이제까지
사진 촬영을 말없이 수행해온 종화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5분도
되지 않아 당초 생각했던 입구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났다 그러나 그 길은 이미 폐쇄되어 잡초만 무성하고 길이었다는 흔적만
남아있다.
내가
그 쪽으로 올라 온 것이 상당히 오래 되었나 보다.
생각해
보니 6년
전 일인 것 같다.
좌측으로는 대공원 울타리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문원동에서 올라오는 길을 지나 수녀원이 보이고 가압장도 보이고 이름 모를 집들도 보인다.
오르기 시작한지 꼭
30분
만에 중간휴식.
거봉
포도와 막걸리 한 병이 순식간에 없어진다.
오늘은
중간 휴식이 많을 것 같다. 쉬운
코스로 생각했는데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된다.
참나무과 나무가 많아 그늘은 좋으나
소나무가 보이지 않아,
뜬금없이
온난화 현상이 떠올랐으나 매봉 밑에 이르니 소나무가 지배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정표 즉, 안내판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고 산 너머 원터골 쪽과 비교가 되었다.
관리하는
관계 당국에서는 좀 정비를 해 놓았으면 좋겠다.
매봉을 우회하여 조금 더 올라
적당한 장소를 잡아 배낭을 풀었다.
당초
생각에는 좀 더 올라가 헬기장에서 식사를 할 요량이었는데, 모두 서둘러서 자리를 잡기에 나도 의견을 고집하지 않았다.
오늘의
동반시를 기자인 본인이 읽었다.
"동해아리랑" /
전윤호(1964~)
사람들은 사랑을 잃고 동해로
온다지만
난 동해에서 사랑을
놓쳤지
소금 사러 시장 간
사이
그녀는 사라져
버렸네
흥정을 위해 막걸리 몇 잔 낭비한
사이
파도에 취해 몇 번 쉬는
사이
봇짐을 간수하던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백봉령 넘어 백리
길
구비마다 잰걸음으로
재촉하더니
어느 날쌘 파도를 타고
떠났을까
서러운 소금 한 섬 지게에
얹고
혼자 돌아가네 천리
길
검은 산 물 밑에 꽃이
지네
아라리요
아라리요
인생은 잃어버려야 철이
든다네
즐거이 마시다 보니 막걸리가 조금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쭉 0.5xN+1
병을
준비해 왔는데, 어떤 때는 남아서 마지막에 억지로 잔고르기 할 때도 있었으나 오늘은 모두 땀을 많이 흘려 목이 마르고 힘들어 수요가 많아진 것
같다.
자리를 정리하고 조금 더 오르니
드디어 헬기장이 나온다.
그러나
거기는 그늘이 없어 조금 지나쳐서 숲속에 자리를 잡은 산객들이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될 뻔했다.
식사를
끝내면 내려가기만 하다 모처럼 올라가니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얼마
못가 다시 휴식.
눕고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 위 회장이 한 곡조 뽑았다.
청객
겸 심사위원들로부터 최하의 점수로 1등을
했다.
최하
득점자는 회비 면제를 걸었으나 경쟁자가 없었으니 무효.
청계사 갈림길에서 청계사 쪽으로
하산하여 절에 들렸다.
그러나
공사 중이고 햇볕이 뜨거워서 구경하는 것은 생략하고 물만 마시고 내려와 입구의 커다란 명판에서 오늘의 증명사진을 찍었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청계사는
청계산 남쪽 태봉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로,
경기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
《봉은본말지》에
통일신라 때 창건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284년(고려
충렬왕 10)
평양부원군
조인규(趙仁規)가
사재를 들여 중창하였고,
이후
조인규 가문의 원찰로서 후손들이 약 500년간
중창을 거듭하였다.
조선
연산군 때 도성 안의 사찰을 폐하고 관청을 세우자 불교 쪽에서 이 절을 선종의 본산으로 정하였다.
경내에 신라 석등과 부도 조각
일부가 남아 있으며,
극락보전과
종각,
삼성각,
산신각,
수각
등 3동의
요사를 비롯해 10채의
건물이 있다.
동종(경기유형문화재
96)과
목판(경기유형문화재
135)
등
문화재도 있다’라고
되어 있으나,
청계사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청계사 카폐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때 창건 되었다고 하면서 '청계사의
정확한 창건 연도는 확실히 알 수가 없으나 봉은사의 사적을 기록한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는
신라 때 창건되었다는 내용이 있으나 구체적 근거자료가 없지만 현재 사찰 경내에 있는 석등과 부도 일부는 신라 때 것으로 추정되므로 신라시대의
창건설은 믿을 만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포장길을 내려와 마을버스를 타고
오늘의 종착지 뒤풀이 장소에 도착하였다. 과천-봉담도시고속화도로
옆의 '청계
민속촌'에
들어서는 우리를 주인인 듯한 젊은 남자가 맞이한다.
그러나
첫인상이 좋지 않다.
너무
고압적인 말투에 신발은 어떻게 해라 화장실은 어떻고 듣기 거북스럽다.
그래도
참고 자리를 잡았는데 문을 열더니 개별 주문 말고 조용히 하라는 위압적인 말투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하는데 친구들이 만류한다.
나는
현직에 있을 때 워낙 친절을 강조하는 분위기였기에(민원인이
느낄 때는 어쨌는지 모르지만)
퇴직
후에 이런 걸 보면 괜히 손해본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을 억누르고 앉아
두부보쌈,
파전,
감자전
등에 맥주 막걸리를 마셨다.
나머지는
별로이고 두부보쌈이 좋아 추가하여 시켜가며 몇 잔 들이키니 오늘의 피로가 풀린다.
계산할
때 여주인이 머리 숙여 사죄하며 몇 번이고 죄송하다고 한다.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다시 오고 싶지는 않다.
다음 산행은
울릉도이다.
여러
회원이 같이 했으면 좋겠으나 현재 비회원 포함 12명이
예약하였다.
각자
사정이 있을 것이고, 배 타는 두려움도 있을 법해서 너무 강권하지는 않았으나 회원이 많이 동참하여 같이 즐겼으면 좋겠다...
2016년 8월 22일
염재홍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