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당 김은호|탄생 백주 기념 전
중앙일보
입력 1992.07.15 00:00
전통채색화를 현대로 계승·발전시키는데 가교역할을 해온 한국화가 이당 김은호 화백(1892∼1979)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해보는 대규모 기획전이 열린다. 이당이 타계한 이후 13년 만에 처음 마련되는 회고전이다.
오는 19일부터 8월16일까지 호암 갤러리에서 열리는「탄생 1백주년 기념-이당 김은호전」(인물에서 자연으로)에는 그의 초기작으로부터 작고직전까지의 대표작 70여 점이 출품된다.
출품작들은 이당의 유명한 초상화 30여 점을 비롯해 인물·화조·산수하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으로 구성됐으며 유품 등 관계자료40여 점도 함께 전시돼 이당의 작품세계·생애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출품작들은 호암미술관을 비롯, 각 미술관과 화랑·후소 회·개인소장 가들이 소장해온 것들이다.
출품작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이당이 20대 때 제작한『민영휘 초상』-. 이당 특유의 세밀한 선묘와 단아한 색채는 마치 살아있는 이를 대하는 듯한 생동감을 전해준다. 이 작품은 초본(밑그림)과 정본이 함께 공개됨으로써 작품의 제작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말년인 70년에 부인 원씨를 모델로 제작한 대표적 인물화『황후대례복』은 황금색의 화려한 복장과 인물의 자연스런 포즈·표정을 완벽하게 살려내고 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호암미술관은 전시회에 맞춰 출품작전체의 컬러사진과 작품·작가론·연보등을 수록한 1백50페이지분량의 대형화집도 출간한다.
이번 전시회는 특히 이당의 뛰어난 예술성과 함께 그의 인물화에 살짝 스몄던 일본화의냄 새, 중국화풍의 화조 화 등 부정적인 측면까지를 공정하게 평가해 봄으로써 우리미술문화전통의 올바른 토대를 마련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당은 무엇보다 초상화에 있어서 독보적인 경지를 이룩했던 화가였다. 남종화풍의 수묵화가 주류를 이뤘던 구한말의 화단에서 그는 자신의 천부적인 묘사력을 살려 채색화, 그 중에서도 초상·인물화를 개척하고 주력했다.
그의 남다른 초상화 솜씨는 일찍이 높은 평가를 받아 불과 20세 때 당시 화가로서는 최대의 영광인 「어용화사」가 되었다. 그는 순종의 어진에 이어 대조·세조·원종 등의 어진을 도맡아 제작했다.
그의 초상화 경지는 단순한 외형적 닮음(형사)을 뛰어넘어 대상인물의 내면적 정신세계(전신)까지 표현해내는 통찰력을 보였다. 그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완벽한 필획으로(한국초상화는 덧칠을 허용치 않는다)대상을 정교하게 재현해냈다.
이 같은 기법은 천부적 재질 외에 끊임없는 연마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또한 작품제작에 있어서도 완성하기까지 수도하는 듯한 인내가 요구된다.
이당은 이 같은 초상화 외에도 인물·화조화로부터 수묵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능력은 초상·인물화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는 새롭게 탄생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당은 작가활동 뿐만 아니라1936년엔 후소 회를 창립, 많은 후진들을 양성하며 전통적 화법을 보급·전파하는 교량적 역할을 했다. 이 후소 회를 통해 운보 김기창·월전 장우성·오당 안동숙 등 기라성 같은 화가들이 배출됐다.
이번 이당 김은호전은 서구 지향적인 회화가 범람하는 요즘의 미술계 상황에 신선한 청량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728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