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3편에 이어서 오늘 시편도 크게 보아서는 하나님께서 왕이심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은 좀 더 다급하게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시작을 합니다. 1절을 보면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세계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부르짖으며 시작을합니다. 이런 시편은 하나님께 억울함과 도움을 호소하는 탄식시로 볼 수 있습니다. 탄식시는 어떤 어려움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시인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부르짖는 시의 한 형태입니다. 오늘 시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2절을 보시면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시고, 3절에서 악인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4절을 보시면 그들은 마구 지껄이고 오만하게 떠듭니다. 마구지껄이는 것은 막 쏟아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만한 말을 엄청 쏟아 냅니다. 뿐만 아니라 죄악을 행하면서 그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잘되고떵떵 거리면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또 이들은 어떤 악행을 하는가 하면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힙니다. ‘주의 소유’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들에게 언약을 잘 지킬 때 ‘내 소유, 내 보물’과 같이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했을 때 나온 표현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귀한 보물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특별히 연약하고 힘이 없는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고 고아들을 살해하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과부와 나그네와 고아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돌보라고 하신 사회적인 약자들입니다. 율법에서도 이들을 위해서 밭에 가장 자리를 추수하지 말라고 하셨을 만큼 하나님은 그들을 챙기셨습니다. 그런 자들을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행위입니다. 이 악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지 못하시고, 그들의 악행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지 않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에 시인은 주님께서 빨리 일어나시고 심판하시고 복수해 달라고, 언제까지 참으시려고 하시냐고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 확실한 지혜와 믿음이 있습니다. 어떤 지혜와 믿음일까요? 바로 눈을 만드시고 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는 지혜와 믿음입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지만, 참된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지켜보고 계시고, 듣고 계시며 복수하시고 활동하시는 분이심을 압니다. 많은 백성을 가르치시는 분이 바르게 살도록 책망하지 않겠습니까? 시인은 이 모든 사실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오히려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과 계획이 얼마나 허무한지 알고 계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허무하다는 것은 연기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쉽게 날라가버리고 없어져 버리는 연기와 같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하나님께 바른 교훈을 받으며 때로는 책망도 받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1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을 교정해 가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배우고 알고 있고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내릴 심판을 준비하시면서 그들에게는 위로와 평안을 주심을 믿고 있습니다. 5절에서 말한 것 같이 하나님은 자기의 소유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인 그분의 백성을 치는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으시고 복수하십니다. 반드시 심판을 행하심으로 의로우심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마음이정직한 자들은 그 의로우심을 다 받아 들일 수 있을 만큼 정의로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16절을 보면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시인은악행하는 자들을 보게 되고 그들을 심판해 줄 분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더딘 것 같이 여겨지고 심지어 뭐하고 계시나 싶을 때도경험하게 됩니다. 동시에 시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며, 그분의 확실한 복수가 있기 때문에 견디고 인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기는벌써 침묵 속에 잠겼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발이 미끄러져 넘어질 뻔 하였을 때 주님의 인자하심이 그를 붙잡아 주었다고 합니다. 인자하심은 언약에 신실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확실히 복을 주시고 건져주시며, 언약을 지키지 않은 자들에게 심판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또19절을 보면 근심이 많을 때에도 하나님의 위안이 그의 영혼을 즐겁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당신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들을 붙드시고, 위로하시고, 즐겁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는 불의한 재판이 있고, 권력을 가지고 잘못 재판하는 무리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작당할 때에 의로운자를 넘어지게 만들고, 무죄한 자를 정죄하며 피를 흘리게 하는 일도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는 시인의 요새이시고 피할 반석이시며, 나아가 그들을 공의로 심판한 분으심을 고백함으로 이 시는 마무리가 됩니다.
오늘 시편은 의로우신 재판장으로서 하나님께서 악한 무리에게 의로운 심판과 그에 따른 보복을 알려줍니다. 시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보물로서악인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붙들어 주심과 위로하심과 요새와 바위 되심을 신뢰함으로 이겨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오늘 시편은 큰 위로와 힘을 줍니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부조리와 불합리 속에서, 때로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모두지켜보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율례를 빙자하여 거짓된 재판을 통해서 죽으셨지만, 결국 하나님께서살리심으로 그들을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결국 모든 악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참 불합리한일을 보게 되고, 남을 속이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좀 해줬으면 싶을 때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심판하실 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때 힘과 위로가 됩니다. 또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공평하게 심판하실 날이 있다는 것과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주의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몰래 행하는 악행도 주님은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시편을 통해서 악인들에게 복수를 하시고, 징계를 내리시는 하나님, 넘어지려고 할 때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즐겁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보물로서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도전을 받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어려움 가운데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보시는하나님을 신뢰하시고, 또 그분 앞에서 우리의 행실을 바르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