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5일 월요일
여행 7일째.
6시 3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크루즈에서 하선하였다. 3박 4일간의 크루즈 투어는 아주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시설과 잠자리와 식사가 좋았고, 승객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안락한 분위기였으며, 나일강의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 풍경 등을 감상하는 재미도 컸다.
오늘 날씨는 기온은 10도에 아주 맑은 하늘이었다.
버스를 타고 나일강 서쪽에 자리 잡은 왕가의 계곡으로 이동하였다. 이집트 파라오들이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년~기원전 1077년, 제18왕조~20왕조)부터 왕가의 계곡에 무덤을 만들기 시작한 주된 이유는 피라미드 건설의 한계(비용, 도굴 위험)를 극복하고, 도굴꾼의 눈을 피해 파라오의 영혼이 안전하게 내세로 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 나일강 서쪽의 불모지라는 지리적 이점과 종교적 상징성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아울러 고지대여서 침수 위험을 피할 수 있었고, 거대한 인공 구조물 대신 자연 암벽을 이용해 무덤을 만들면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내세로 가는 길을 만들고자 하는 믿음도 작용했다고 한다. 500년간 이곳에 만들어 놓은 파라오들의 무덤 중에서 지금까지 65개 이상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대부분이 도굴되어 부장품들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으나, 투탕카멘의 무덤만이 예외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먼저 왕가의 계곡의 대표적인 무덤인 람세스 6세의 무덤(KV9: KV는 ‘King’s Valley’의 약자로 이집트 학자들이 무덤을 식별하기 위해 붙인 표기법이며 뒤의 숫자는 발견된 순서대로 번호를 매긴 것임)을 관람했다. 국력이 쇠약해진 시기에 왕위에 오른 람세스 6세는 람세스 2세나 람세스 3세와 같은 위대한 파라오들을 따라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자, 선대 파라오들이 지어놓은 건축물들을 본인이 지은 것처럼 위조한다거나 자신의 조각상을 세우는 데 열심이었고, 전임자인 람세스 5세의 무덤을 빼앗아 본인의 무덤으로 재단장한 후 이곳에 묻혔다. 이 무덤은 길이 104m로 3,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무덤 안의 부조가 아직도 아름다운 색채를 간직한 채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덤은 묻힌 지 20년 만에 도굴당했으며, 미라를 담아두었던 석관은 도굴되면서 파괴되어 흉측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어서 바로 옆에 있는 투탕카멘(Tutankhamun) 무덤(KV62)을 둘러보았다. 1922년 11월 하워드 카터가 이끄는 발굴팀에 의해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이 발견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이 무덤은, 람세스 6세의 무덤이 도굴되면서 그 돌들을 바로 옆의 투탕카멘 무덤 위에 쌓아두는 바람에 이때까지 도굴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투탕카멘이 고대 이집트 역사 기록에서 별 존재감이 없어서 도굴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점도 도굴로부터 유물을 보존하게 된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 왕들은 재위 시작부터 자기 무덤을 만들기 시작하기 때문에 무덤의 크기와 유물의 규모는 왕의 재위 기간에 비례한다고 한다. 재위 기간이 고작 8년(18세에 요절)에 불과하고 다른 왕들에 비해 그 존재감이 미미했던 이 왕의 무덤(기원전 1323년에 밀폐됨)에서 5천여 점의 부장품이 발견되었고, 미라 순금관의 무게가 110kg이고 황금 마스크는 11kg이었다고 하니(다른 부장품에 포함된 금의 총무게는 수백kg으로 추정), 재위 기간이 길었던 다른 왕들의 무덤에는 얼마나 많은 부장품이 들어있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이 무덤 최초의 발견자는 발굴팀의 이집트 소년 호세인 아둘라솔로 물 담은 항아리가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땅에 조그만 구멍을 파다가 우연히 첫 계단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덕에 무덤 입구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진 모델을 하면서 받는 돈으로 평생 먹고살게 되었으며, 정부로부터 훈장과 연금도 받았다고 한다.
이어서 람세스 9세(KV9)와 4세(KV2)의 무덤도 관람하였다. 이 무덤들도 부조 벽화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이어서 버스를 타고 핫셉수트(Hatshepsut) 여왕의 장제전으로 갔다. 이 신전은 이집트 최초의 여왕인 핫셉수트가 만든 가장 독창적이고 웅장한 3층의 테라스식 장례 신전으로 왕가의 계곡 반대편 동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투트모세 3세가 내린 기록 말살형에 의해 여왕의 모습이 대부분 훼손되어 있었다. 기록 말살형(Damnatio Memoriae)을 시행한 이유는 크게 정치적 정당성 확보와 왕위 계승의 안정화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투트모세 3세는 핫셉수트가 여성으로서 파라오에 오른 것은 이집트의 전통적인 질서(Ma'at)를 깨뜨린 비정상적인 사건으로 보았고, 그녀의 통치 흔적을 지움으로써 자신과 선왕들(투트모세 1세, 2세) 사이의 왕통을 직접 연결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세우려 했다. 아울러, 자기 아들인 아멘호테프 2세에게 왕위를 안정적으로 물려주기 위함이었는데, 핫셉수트의 전례가 남을 경우, 훗날 다른 왕실 여성이 왕위를 주장하거나 핫셉수트 계열의 인물이 왕권을 위협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 것이다. 과거에는 투트모세 3세가 핫셉수트에 대한 개인적인 증오로 기록을 지웠다는 설이 지배적이었으나(현지인 가이드로 이런 주장에 동조했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말살 작업은 그녀가 죽은 지 약 20년이 지난 통치 후반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단순한 복수심보다는 후계 구도를 굳히기 위한 냉철한 정치적 계산이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투트모세 3세가 핫셉수트의 모든 기록을 지운 것이 아니라, 그녀가 '파라오'로서 행사했던 기록 위주로 말살했다는 점이고, 왕비나 섭정으로서의 기록은 일부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이집트 대표적인 전통음식 중 하나인 하맘 마쉬(Hamam Mahshi: 비둘기 요리)를 추가로 곁들인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멤논의 거상으로 갔다. 아침햇살이 비칠 때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고 전해지는 이 거상은, 카이로에서 720톤의 무게의 통돌로 제작하여 나일강을 이용해 배로 운반해 와서 설치했다고 하는데, 믿어지질 않을 정도의 규모였다. 이 석상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 '멤논'이 아니라,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기원전 1350년경)의 모습이다. 원래는 당대 최대 규모였던 아멘호테프 3세 장제전(Mortuary Temple)의 입구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기 위해 세워졌으나, 장제전은 지진과 나일강 범람으로 거의 파괴되어 사라졌고, 현재는 이 두 거상만이 홀로 남았다고 한다.
오늘의 숙소인 소네스타 룩소르 호텔(St. Sonesta Luxor Hotel)로 가서 체크인하고 1시간 정도 쉬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5성급이었고, 나일강변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시설과 조망이 아주 좋았다.
오후 4시 45분에 호텔을 나서 룩소르 신전(Luxor Temple)으로 갔다. 이 신전은 카르나크(Karnak) 신전과 함께 룩소르를 대표하는 신전인데, 신전의 일부가 성당을 거쳐 모스크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기에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속적으로 기능하는 종교 시설로 손꼽힌다고 한다. 나일강 동쪽 둑에 있는 이 대형 신전은 기원전 1400년경에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하였고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중축하였다. 꽃이 피어있는 파피루스와 피지 않은 파피루스 기둥이 대조적으로 서 있는 모습이 특이하며, 높이 16m의 원주열은 주랑 측벽에 투탕카멘왕이 오페드 축제 내용을 새긴 얕은 부조와 함께 신전 중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다. 대탑문, 람세스 2세의 뜰, 제2탑문, 열주실 등 웅장한 모습들이 이어져 있었다.
이어서 카르나크 신전으로 가서 저녁 7시부터 시작된 카르나크 빛과 소리 쇼(Sound and Light Show)를 관람했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신화를 화려한 조명과 해설로 재현하는 야간 공연인 이 쇼는, 투트모세 3세, 투탕카멘, 람세스 2세 등 고대 파라오들의 업적과 테베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었고, 관객들이 신전 내부를 이동하며 조명을 받아 빛나는 기둥과 조각상을 감상하는 1부와, 신성한 호수(Sacred Lake) 근처 좌석에 앉아 전체적인 쇼를 관람하는 2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약 1시간가량 진행되었는데, 헤드셋을 통해 가이드의 한국어 번역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8시 40분경에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오늘 일정을 정리한 후 나일강의 야경을 감상하다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