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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주인 인간과 대우주와의 관계
일찍이 공자는 "근취저신近取諸身하고 원취저물遠取諸物하라."(『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라고 하였다. 이 말은 우주 신비의 오묘한 존재 섭리를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찾고, 멀리는 자연 만물을 바라보면서 주(인간)·객(우주 자연)을 동시에 간파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의 존재 원리를 풀려면 우주의 신비를 알아야 하고, 우주의 깊고 깊은 존재 섭리에 가까이 다가가려면 그러한 원리가 압축·투영되어 있는 인간 자신의 신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나는 무엇이며,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궁극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정신과 물질, 양면의 신비를 파헤치며 분투하는 것이다. 동양의 정감적이고 직관적인 지혜는 종교를, 서양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지성은 과학을 낳았다. 이렇게 탄생한 종교와 과학이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인류 문명을 일궈나가는 두 축을 이루게 된 것이다.
결국 공자의 가르침은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을 안내한다. '나'라는 작은 존재에서 시작하여 우주라는 거대한 존재를 이해하게 되는 길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우주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인간은 작은 우주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곧 거대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
과학에서 말하는 시간의 큰 주기
천지의 질서가 봄여름은 분열, 가을철은 통일이다. 초목농사로 얘기를 하면, 봄에는 뿌리에서 기운이 발동해서 쫙 올라가 줄기를 향해서 뻗어나간다. 앞마당의 단풍나무를 보면 겨울철에는 이파리가 죽어서 아무것도 없었는데 3월이 돼서 봄비가 한번 딱 내리니까 며칠 사이에 요만한 버찌가 줄기마다 나온다. 그러다 며칠 뒤에 보니까 이파리가 쭉쭉 나와서 일주일 후에는 하늘을 다 덮어버렸다. 봄여름의 기운은 그렇게 발동하는 것이다. 기운이 하늘을 향해서 뚫고 올라간다. 그렇게 분열 생장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성장이 딱 끝나면서 모든 기운이 뿌리로 내려가고 그 과정에서 열매를 맺는다. 우주의 여름철 지구1년 365¼일에서 시간의 꼬리, 5¼일이 남,북극 빙하가 녹아내리는 극점에 이르러서 23.5도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의 정립으로 완전히 떨어져 나가 지구 1년의 날수가 360일이 된다. 그리하여 음력과 양력이 똑같은, 음과 양이 하나로 조화되는 진정한 꿈의 세계, 자연과 인간이 성숙[열매 인간(도통)]하는 우주의 가을 5만년, 평화의 세계가 오는 것이다.
자연 이법의 핵심은 이 대우주에는 소우주인 인간을 농사짓는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다. 즉 대우주에서 소우주인 인간을 낳아 길러서 하늘땅, 천지부모의 뜻을 이루는 우주 1년 사계절의 순환 법칙이 그것이다. 우주 1년은 129,600년으로 인간이 생명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선천 우주의 봄여름 5만 년과 후천 우주의 가을 5만 년이다. 그리고 나머지 29,600년은 우주의 겨울로서, 과학에서 말하는 빙하기다.
지구 1년에서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고 봄여름철에 낳아 길러 온 초목농사의 목적을 완수하듯이, 우주 1년에서는 선천 우주의 봄여름 5만년 동안 다양하게 분열하여 발전해 온 인간 문화의 진액을 거두어 우주 가을의 통일문화를 연다. 후천개벽의 주제가 바로 성숙과 통일이다. 이것을 인간의 가치 개념이나 도덕률로 말하면, 상극에서 상생으로 넘어간다.
천지에서 인간을 내면, 인간은 자연 속에 문화를 창조하고 문명을 건설한다. 즉, 자연이 변화하는 길과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역사의 과정, 즉 문명의 발전과정이 일치하는 것이다. “대자연섭리라 하는 것은 천리가 성숙됨에 따라서 인간의 역사도 함께 성숙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지금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모른다. 그들은 천지의 이치를 모르니까, 인간의 역사라는 건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 천지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를 전혀 모른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천지 이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은 왜 고통 속에 사는가?
기독교에서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다고 한다. 구렁이로 상징되는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하나님처럼 똑똑해지려고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대가로 세세토록 인간들이 원죄의 씨를 안고 고통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불교도 십이인연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감각세계에서 근본무지인 어둠에 휩싸여 있다고한다.‘근본무명fundamental ignorance’에 휩싸여, 온갖 죄를 짓고 악업을 받고 육도윤회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그 근본 틀이 같다.
또 이 죄업이니, 악업이니, 윤회니, 하는 것이 선천 봄여름우주의 상극(相克) 판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가 없다. 모든 인간의 고통과 불행과 비극의 문제는 어디서 오는 거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선천 우주의 봄여름 5만년이 상극(相克)의 운運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주의 봄여름 선천 5만년에는 천지부모의 몸이, 지구자전축이 동북방, 양陽의 방향으로 23.5도 기울어져서 만물을 쏟아냈다. 동과 서가 부조화하고, 남과 북이 부조화하고, 남자와 여자, 모든 사물들 사이에 조화가 깨져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고 갈등을 하고 남을 죽이고 그러면서도 또 용서하면서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을 해 온 것이다.
선천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요, 정복의 역사다. 16세기에 남미의 인디언들 8천만 명이 스페인 정복군들에 의해 참혹하게 죽어 인디언들이 거의 다 멸망을 당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런 전쟁사가 너무도 숱하다. 미국에 정착한 백인들이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의 흑인 5천만 명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먹고, 짐승처럼 부리고 학대하고 죽였다.
선천 봄개벽을 통해서 시원 인간이 처음으로 몸을 받아 지구촌에 태어나, 선천 5만 년 우주의 봄여름 동안 문명을 열어 현재까지 내려왔다. 여름철 말이 되면 지상에 초목이 무성한 것처럼 인간종자가 지구촌에 꽉 들어찬다. 지구에 살 수 있는 적정 인간은 불과 수억이라고 하는데, 지금 지구촌 인구는 81억이다. 만원(滿員)이다.
선천 봄여름의 변화는 양(量)적인 변화다. 숫자가 한없이 증가한다. 또한 지엽이 벌어져 가면서 자꾸 근원에서 멀어진다. 그로 인해 인간도 제 마음을 잃어버리고, 근본을 잃어버림으로써 도덕률이 무너져버린다. 그런데 후천 가을우주로 들어가면 질(質)적인 대변혁이 일어난다. 곧 우주의 계절 변화가 우주의 여름에서 우주의 가을로 바뀌면서 인류 문화의 틀이 바뀌는 것이다.
과학에서 말하는 시간의 큰 주기(Cosmic Year)
우주1년과 수메르 문명의 수(數) 체계
펜실베니아 대학의 힐프레히트 교수는, 수천 장에 달하는 수메르의 문서판과 수학 계산판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모두 12,960,000 수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2,960,000은 우주일년의 주기(理數)인 129,600년의 100배이며, 세차운동의 주기(理數)인 25,920년의 500배이다.
힐프레히트 교수는, 12,960,000이 세차운동의 주기(理數)인 25,920의 500배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수메르인들이 세차운동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만약 이와 유사한 가설을 세운다면, 12,960,000은 우주일년의 정역수(正易數)인 129,600의 100배이므로, 수메르인들은 우주일년의 주기도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우주일년의 주기인 129,600은 세차운동의 주기인 25,920의 5배이므로, 우주일년의 이수(理數)를 밝혀낸 소강절(1011∼1077)선생 역시 세차운동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남북극 빙하가 대량으로 녹아내리는 이유?
앞으로 4,5년 과정에서 지구촌이 가을우주로 들어가는 이치를 밝힌 조선 말기의 대학자 김일부(金一夫,1826~1898) 선생
지구 1년 360일 『정역(正易)』의 이치를 밝힌 김일부金一夫(1826~1898) 선생은 주역周易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음에도 그의『정역(正易)』사상을 이해하는 지식인은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김일부 선생의 정역사상은 조선을 지배했던 성리학적 세계관을 뒤엎는 발화성 때문에 지배층으로부터는 불온한 이념으로 주시받았고,
김일부 선생의 정역(正易)의 언어와 논리는 기존에 배워왔던 지식이 정역사상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그런점에서 기존 관념의 틀을 벗지못하는 역사학자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과학자들의 초기 모습과도 같다.
그렇다면 [주역周易]과 [정역正易]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정역 正易] 대역서에서 김일부 선생은 “초초지역(初初之易)과 래래지역(來來之易)이 소이작야(所以作也)라” 즉 ‘초초지역(初初之易)’ 주역周易은 선천역(先天易)이고, ‘래래지역(來來之易)’은 후천역(後天易)이라는 뜻이다. 이는 [정역正易]을 통해 전통 주역周易은 물론 사회적 모럴과 문화의 양상도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김일부 선생은 과거의 복희팔괘(伏羲八卦)와 문왕팔괘(文王八卦)에 숨겨진 선천 봄여름 상극(相克)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가을우주의 새로운 시공時空의 질서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를 완성함으로써 인류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정역正易]은 인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정역팔괘도는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도를 이은 제3의 팔괘도다. 그렇다면 [정역正易]을 관통하는 핵심주제는 무엇인가?
김일부 선생은 선천 봄여름 상극의 질서에서 후천 상생의 가을우주로 전환된다는 것을 여러 각도에서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정역사상은 한마디로 선후천론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선후천론은 시간의 선험적 구조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자연계의 순환과 진화가 크게 보아 선천과 후천으로 구성되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시대는 지구 1년 365일의 우주의 봄여름 선천에서 지구 1년 360일의 가을우주의 후천으로 바뀌는 시간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철학 체계를 뜻한다.
지구 1년 360일의 가을우주 이치를 밝힌 김일부(金一夫,1826~1898)선생의 ‘『정역(正易)』’
우주의 변화 이치를 담고 있는 역(易)은 천지만물과 인간이 나아갈 법도를 밝히고 있다. 역易은 동방의 성철(聖哲)들에 의해 그 맥이 이어져 왔다. 선천 봄,여름우주의 역易인 복희팔괘(伏羲八卦)와 문왕팔괘(文王八卦)를 이어 등장한 제3의 역易, 후천 가을우주의 이치를 밝힌 역易이 『정역팔괘(正易八卦)』다.
김일부 선생(1826~1898)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지금의 충남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당골의 선비 가정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다. 선생은 그 용모부터 기이하여 손을 드리우면 팔이 무릎을 넘고 키가 커서 춤을 추면 마치 학이 춤추는 것 같고, 얼굴에 인중은 무려 한 치나 되었고, 목소리는 철성(鐵聲)으로, 노래를 하면 허공 높이서 들리는 것 같았다.
선생은 평상시에도 늘 의관을 정제하여 흐트러짐이 없었다. 취침 전에는 눕는 일이 없었고, 낮잠 또한 없었으며, 잠을 자도 극히 단시간 졸고 마는 정도였다. 항시 두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앉되 식사 시에만 평좌로 하였는데, 두 손으로 상을 약간 집는 듯이 가볍게 대고 잠시 묵념한 후 상 위를 살핀 뒤에 천천히 수저를 들었다고 한다.
선생이 태어난 당골의 서쪽에는 띠울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일찍이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 선생이 국운이 쇠미해짐을 보고 서울에서 낙향하여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대학자 이서구(李書九)선생의 학통을 계승하여 천문(天文), 역산(曆算), 역학(易學), 시문(詩文)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아 신비에 싸여있는데, 김일부선생 뿐 아니라 후일 동학(東學)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崔濟愚), 남학(南學)의 김광화(金光華)와 같은 걸출한 인물들의 스승이 된다.
김일부 선생이 36세 되던 해, 하루는 연담 선생이 최제우, 김광화, 김일부를 차례로 불러 말하였다. 최제우와 김광화에게는 ‘각기 떨어져가는 선도(仙道)와 불도(佛道)를 대표하여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니 주문을 외우고 깊이 근신(謹愼)하라’고 경계하였다. 그리고 일부에 대해서는 “그대는 쇠하여 가는 공자의 도를 이어 장차 크게 천시를 받들 것이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 이제까지는 ‘너’라 하고 ‘해라’고 했으나 이제부터는 ‘자네’라 하기도 과만한 터인 즉 ‘하소’라 할 것이니 그리 알고, 예서(禮書)만 자꾸 볼 것이 아니라 『서전(書傳)』을 많이 읽으소. 그러노라면 자연 감동이 되어 크게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고, 후일 정녕코 책을 지을 터이니 그 속에 나의 이 글 한 수만 넣어 주소.”하고 글 한 수를 내어주니 이러했다.
“관담막여수(觀淡莫如水)하고 호행의행인(好德宜行仁)을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하니 권군심차진(勸君尋此眞)하소. 맑은 것을 보는 것은 물만 같음이 없고 덕을 좋아하는 것은 인을 행함이 마땅하구나. 빛이 천심월에서 동하니 그대에게 권하노니 이 진리를 찾아보소.”연담 선생은 이 글을 남겨놓고 마을을 떠나 행방을 감추었다.
일부 선생은 연담 선생의 유훈에 따라 예학(禮學)과 문사(文詞)에 힘쓰던 종래의 공부 방법을 바꿔 『서전』을 읽고『주역』을 탐구하였다. 또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법으로 정신과 육신을 계발하여 천지의 심법을 함양하였다.
그는 요순(堯舜)의 심법을 체득하고, 요순의 기(朞)와 삭망(朔望)의 전도(轉倒)에 따른 천체의 이동을 알고자 했다. 그래서 마을 뒤쪽에 있는 용바위, 냇가 등지에서 종일토록 뛰고 청아한 음성으로 ‘음아어이우’의 오음(五音)을 발하고 그 곡조에 맞춰 춤을 추었는데, 이 노래를 ‘영가(詠歌)’라 하고 춤을 ‘무도(舞蹈)’라 하였다. 이는 선생이 붙인 이름이 아니라 고종제인 권종하(權種夏)가 선생의 공부를 보고 감동하여 옛 성인들의 공부법을 보았다 하여 ‘영가무도(詠歌舞蹈)’라 이름붙인 것이다.
일부 선생은 조석으로 뒷산에 오르내리며 어떤 때는 날밤이 새도록 가무(歌舞)하다가 새벽녘에야 갓에 서리를 하얗게 싣고 도포 자락이 찢어진 채 돌아오곤 했다. 또 반야산 기슭에 있는 관촉사 은진미륵을 주야로 찾으며 깊이 기도하기도 했다. 소나무 숲속에서 무도舞蹈를 하면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면 “복(福)받아 가거라”하고 자주 외치시곤 했다. 당시 선생이 뛰던 자리는 풀 한 포기도 없을 정도로 닳았다고 한다.
김일부 선생은 공부에만 정진할 뿐 가사를 돌보지 않아 집안 살림이 극히 가난하였다. 그 부인이 겨울에도 맨발로 짚신을 신고 다녔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일반 선비들처럼 글만 읽은 것이 아니라 뒷산으로 가서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반복하자 종문(宗門)에서도 이단지학을 한다하여 족보에서 이름을 빼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공부에 진력했던 선생은 후에 자신의 마음을 『정역(正易)』에 이렇게 써놓았다.
六十平生狂一夫는 自笑人笑恒多笑라. 笑中有笑笑何笑오. 能笑其笑笑而歌를.
육십평생에 미친(狂) 한지아비(一夫)는 스스로 웃고 남이 웃으니 항상 웃음이 많구나. 웃음 속에 웃음이 있으니 무슨 웃음을 웃는고. 능히 그웃음을 웃고, 웃으며 노래하는구나.『 ( 正易』「十五一言」중에서)
선생은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 ’의 열쇠를 풀기 위해 더욱 정진하여 주야로 가무(歌舞)하면서 탐구에 진력을 다하는 가운데, 눈을 감으나 뜨나 환하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이 갈수록 청명해졌다. 일부 선생의 끊임없는 정진으로 36세로부터 19년 만에 드디어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니, 그 때가 선생이 54세 되던 1879년이었다.
그리고 기묘(1879)년 이후부터는 눈앞에 이상한 괘(卦)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천지가 모두 이 낯모르는 팔괘의 상으로 뒤덮여보였다. 혹시 가무에 너무 집중하여 기력이 쇠한 탓이 아닌가 하여 음식을 먹기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혹시 주역에 그런 괘도가 언급되어 있지 않는가 여러 차례 찾아 보기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주역』「설괘전(說卦傳)」에서 “신야자(神也者)는 묘만물이위언자야(妙萬物而爲言者也)니라. 신이라는 것은 만물을 신묘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라는 대목에 와서“…고(故) 수화상체(水火相逮)하고, 뇌풍이 불상패(雷風不相悖)하고, 산택이 통기(山澤通氣) 연후(然後)에야 능변화(能變化)하여 기성만물야(旣成萬物也)니라.
그러므로 수화가 서로 미치고 뇌풍이 서로 어그러지지 않고 산택의 기가 통한 후에야 능히 변화하여 이미 만물이 완성 되느니라”는 말씀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괘도와 완전히 부합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성인이 이미 주역에 말씀하신 것이니 그릴 수밖에 없다’하여
재종질인 김국현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문왕괘도(文王八卦圖)』의 뒤를 이어 나타난 제3의 괘도인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이다.
팔괘도를 다 그리자 홀연 공자가 나타나 일부에게 “내가 일찍이 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것을 그대가 이뤘으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하고 무한히 찬양한 후 ‘일부(一夫)’라고 호칭을 했다. 일부라는 호칭은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문득 들은 일이 있었으나 그것이 자신에 대한 호칭인줄 몰랐다가, 이제 공자가 말씀하시니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눈앞을 꽉 채우던 괘상은 이후로도 3년 동안이나 어른거리다가 사라졌다.
1881년 선생은 정역(正易)의 서문격인 <대역서(大易序)>를 저술하였다. 이 글에서 선생은 역(易)은 역(曆)이라는 것과 공자는 천지유형지리(天地有形之理)를 통달했는데, 자신의 도는 천지무형지경(天地無形之景)까지 통관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59~60세(1884~1885년)에 『정역(正易)』을 선포하였다. 이후 1886년에 제자들에 의해 목각판으로 초판이 발행됨으로써 『정역正易』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정역(正易)』은 무엇인가. 기존의 역易과는 무엇이 다른가?
정역(正易)은 앞으로 지구촌 인류가 맞이할 가을우주의 새로운 세상의 미래상을 담고 있다. 그 핵심은 앞으로 천지의 시공질서가 바뀌어 1년이 360일이 된다는 것이다. 공자가 서술한 『주역』「설괘전」을 보면 앞으로 지구 1년의 날수가 365일이 아닌 360일로 바뀜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
乾之策二百一十有六坤之策一百四十有四凡三百有六十當期之日.
건지책 이백일십유육 곤지책 일백사십유사 범삼백유육십당기지일『( 주역』「설괘전」)
그러나 이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풀지 못한 채 2,000여년을 내려왔는데, 이를 김일부 선생이 비로소 밝혀낸 것이다.
帝堯之朞는三百有六旬有六日이니라
제요지기는삼백유육순유육일이니라
帝舜之朞는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이니라
제순지기는삼백육십오도사분도지일이니라
一夫之朞는三百七十五度니十五를尊空하면
일부지기는삼백칠십오도니십오를존공하면
正吾夫子之朞는當朞三百六十日이니라.
정오일부지기는당기삼백육십일이니라.
『( 正易』「十五一言」)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지구 자연환경은 23.5도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의 영향으로 360일에서 5와 1/4이라는 윤도수가 붙어서 불안정한 봄,여름천지 상극(相克)질서에 의해 인간은 고통과 번민 속에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 본래의 천지의 운행도수인 360도로 천지일월이 운행하게 되면 모든 인간은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천지질서 속에서 성숙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선천 5만년 상극의 주역(周易)시대가 후천 5만년 상생의 정역(正易)시대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誰遣龍華歲月今고!
오호라, 그누가 용화낙원의 세월을 이제야 보냈는가!『( 正易』「十一一言」중에서)
火金金火原天道니라.
화금이 금화로 되는 것(金火交易)이 근본된 천지의 도이니라. 『( 正易』「十一一言」중에서)
一夫能言兮여 水潮南天하고水汐北地로다.
일부가 능히 말함이여! 물(남북극빙하)이 남쪽 하늘에 모이고 물이 북쪽땅에서 빠지는 일이로다. 『 ( 正易』「十五一言」중에서)
우주 1년을 말한 매월당 김시습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신동(神童)으로 다섯살에 세종대왕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나라의 큰 재목으로 쓰이기로 결정된 인물이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다만 ‘5세’ 또는 ‘김오세’라고만 불렀다.
김시습은 지금의 서울 명륜동 성균관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나던 날 밤 같은 마을에 살던 영해 박씨(부도지를 쓴 박제상의 후손)들은 그 집에서 공자(孔子)가 태어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어린 김시습은 총명하여 5세에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도 통달하였다. 그러자 이름난 정승 허조(許稠)가 찾아와 아이에게 말을 시켰다. “내 늙었으니, 늙을 노(老)자로 시를 지어 보라.”고 하자,
“늙은 나무에 꽃이 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老木開花心不老)”라는 김시습의 즉각적인 시작(詩作)에 허 정승은 연발 무릎을 치며 ‘신동(神童)’이라고 감탄사를 연발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세종대왕이 대궐로 불러 시험하였다.
세종대왕이 “동자의 학문은 마치 백학(白鶴)이 푸른 소나무 끝에서 춤을 추는 것 같구나.”라고 하자, 아이는 “어진 임금님의 덕(德)은 마치 황룡(黃龍)이 푸른 바다 가운데서 노는 것 같습니다.”라고 응답했다. 이에 세종대왕이 기뻐하며 비단 50필을 하사 하고, 그 집에 일러 아이의 재덕(才德)을 감춰 기르라 하시며, 장차 크게 쓰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김시습이 학문에 전념하고 있을 때, 세종대왕과 문종이 잇달아 세상을 뜨시니, 어린 단종이 나이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자 숙부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였다. 이때 김시습의 나이 21세였다.
삼각산 중흥사에서 과거공부를 하다 단종의 손위(遜位)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대성통곡하며 모든 책을 불태워 버리고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사건은 김시습의 생애에서 숙명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아직 세파에 때가 묻지 않은 21세라는 그의 나이는 불의(不義)에 의해 정도(正道)가 무너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시습은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에 묻어 주었다. 이에 후대 사람들은 살벌하고 무서운 시대에 두려움 없이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준 절의(節義)를 높이 사서, 김시습을 생육신(生六臣)으로 추대하였다.
김시습은 단종이 암살되자 계룡산 동학사에 몇몇이 모여 남몰래 제사를 모시고, 절의(節義)를 지켜 영원히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의 일을 그는 이렇게 적었다.
‘갑자기 충격적인 일을 당하자, 나는 생각했다. 대장부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뜻을 실행할 수 있는데도 물러나 자기 몸만을 깨끗히 하여 도덕과 윤리를 저버린다면, 이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뜻을 실행 할 수 없을 바에는 차라리 제 한 몸이나 깨끗이 하는 것이 나으리라.’ 이렇게 세속을 떠난 김시습은 한동안 영해 박씨들과 행동을 같이 하다가, 나중에 설현(偰賢)을 만나 한계산(寒溪山: 지금의 설악산)에서 신선술인 연단법(煉丹法)을 수련하게 된다.
설현은 본래 원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권진인(權眞人)으로부터 도(道) 공부를 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권진인은 김시습의 사조(師祖)가 된다. 권진인은 본명이 권청이다. 고려때 안동사람으로 어린시절 문둥병으로 태백산에 버려졌으나 범의 도움으로 약초를 먹고 병을 고쳤다. 마침 당나라에서 수학한 의상대사가 임종전에 태백산 암자에서 전해준 여동빈의 선도를 이어받아 득도하였다. 함열사람 남궁두가 그의 제자 중 한 명이었고 남궁두와 허균은 친분이 있었다. 최초의 한글 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은 남궁두를 모티브로 썼다고 전한다.
김시습은 설현에게 선도(仙道)를 배운지 1년 만에 단(丹)을 이루었으며, 다시 금강산에 들어가 9년을 수련하여 득도하였으나 천선(天仙)의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하였다. 또한 김시습은 10여 년에 걸쳐 신라의 화랑들처럼 전국 국토순례(國土巡禮)를 하였다. 그리고 김씨의 뿌리인 경주의 금오산에서 7년 동안 묻혀 저술에 몰두하였으니, 이때 탄생한 것이 바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였다.
[금오신화]는 부정한 현실체제에 합류할 수 없었던 그의 이상(理想)과 그동안 전국을 순례하면서 얻은 신선사상(神仙思想)의 영감(靈感)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이렇게 7년 동안 [금오신화]를 완성한 김시습은 그것을 석실(石室) 속에 감춰두며 이렇게 말했다.
“후세에 반드시 나를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금오신화]를 바로 발표하지 못하고 ‘때’를 기다려야만 했을까?
조선시대는 주자학(朱子學)을 숭상하고 유교(儒敎)를 국교(國敎)로 삼은 왕조였다. 그러므로 유교 이외의 사상(思想)은 모두 이단(異端)으로 취급하였다. 그리하여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영영 매장당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김시습은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금오신화]를 집필하였지만, 그 작품 속에 들어있는 선도사상(仙道思想) 때문에 바로 발표하지 못하고 ‘때’를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다.
선도(仙道)의 특성 자체가 밀의적(密意的) 비전성(秘傳性)을 띠는 데다가, 조선조의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김시습은 자신의 진면목을 두꺼운 베일 속에 감추었다. 김시습은 미친 사람처럼 행세하였으며, 와서 배우려는 자가 있으면 나무나 돌로 치려하고, 활을 당겨 쏘려고도 하며 그 성의를 시험하였다.
김시습이 누더기에 패랭이를 쓰고 14세 연상의 대제학 서거정(徐居正)이 타고 가는 가마에 거침없이 다가가 서거정의 호를 부르며 수작을 하였다. “강중(剛中)은 편안한가?” 그러면 대제학 서거정이 가마를 세우고 김시습과 한참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세상 사람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또 40세 연상인 집현전 부제학 조상치(曺尙治)와도 허물없이 친구로 지내는가 하면 김수온(1410~1481), 서거정(1420~1488), 홍윤성(1425~1475) 등 모두 나이 많은 공신 및 고관대작들이 김시습(1435~1493)을 깍듯하게 대접하며 상석(上席)에 앉혔다고 한다.
김시습은 운명할 때에도 선도(仙道)의 시해선(尸解仙)으로서 마지막 삶을 끝마무리 하였다. 시해선(尸解仙)은 바로 지상선(地上仙)이었으니, 그로 인해 김시습이 조선시대 선도(仙道)의 비조(鼻祖)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그가 운명할 때 승려의 신분으로 마땅히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火葬)을 해야 했으나, 그는 이렇게 유언하였다.
“내가 죽거든 화장(火葬) 하지 말고, 땅에 묻으라.” 그래서 절 옆에 임시로 묻었다가 3년 후에 장사지내려고 그 빈소를 여니, 얼굴이나 몸체가 생시 모습 그대로였다. 바로 선도(仙道)의 시해선(尸解仙)이 된 것이었다. 이를 두고 율곡 이이(李珥)는 “필경 외도(外道=仙道)를 닦은 때문에, 죽었어도 살았을 때처럼 모습이 그런 것이라고” 말하였다.
김시습은 유불선을 총합한 조선시대 최초이자 최고의 인물이다. 조선 선도(仙道)에서는 시조되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에게서 비롯되는 제자가 정희량 서경덕 윤군평 홍유손 등이다. 정희량은 연산군에게 충언을 드리다가 유배를 간 인물이자, 퇴계 이황 공부를 도와주었고 퇴계 또한 존경했다는 인물이다.
화담 서경덕은 황진이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은 당대 유명인사이면서, 소강절의 매화역수에 정통한 상수철학과 기철학의 대가이다. 윤군평은 전우치와 함께 도술로 이름을 함께 떨쳤으며, [해동전도록]을 써서 우리나라 선도사(仙道史)의 도맥을 확립한 한무외의 사조(師祖)이다. 홍유손은 조선 사림파의 시조로 불리는 김종직의 문인이자 김시습의 친구이다. 노자와 장자 사상을 좋아했고 연산군때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며 그의 맥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후대로 전해진다. 이런 제자들을 통해 후일 단학의 대가 정북창, 동의보감의 허준, 홍길동전의 허균 등이 김시습의 도맥에서 비롯되어 나온다.
김시습은 실로 잘난 사람이었다. 그 자신은 시대를 잘못 만났다. 하지만 그는 유도를 버림으로 충을 지켰고, 승복을 입는 순간 세상의 시비를 버렸으며, 결국 자연으로 돌아와 사사무애의 우주를 얻었다. 이 분이 쓴 책 가운데 [용호결]이 있다. 그 내용 중에 김시습이 얻은 우주1년 ‘129,600년’ 구절이 있어서 올려본다.
김시습의 용호결(龍虎訣)에 나오는 우주1년
且人之呼吸猶 天地之呼吸也.
冬至之後爲呼 夏至之後爲吸. 此, 一年 之 呼吸也.
또 사람이 숨쉬는 호흡이란 것은, 천지 운행의 호흡과도, 비슷하다. 동지(冬至) 이후부터는, 날숨이 되고, 하지(夏至) 이후부터는, 들숨이 된다. 이것이 곧 1년의 호흡이 된다.
子 以後爲 呼 午 以後爲 吸. 此, 一日 之 呼吸也.
天地一年一日 僅如人之一息. 是以 一元之數 十二萬九千六百年 在大化爲一年.
자시(子時) 이후부터는, 날숨이 되고, 오시(午時) 이후부터는, 들숨이 된다.이것이 곧 하루의 호흡이 된다. 천지간에서의 1년과 하루는, 사람이 한번 숨쉬는 것과도 같다. 이렇기 때문에 일원(一元)에서의 수가 129,600년인 것이며, 큰 변화에 있어서는 1년이 된다.
조선중기 유학자이며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선구자이자 황진이·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유명한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 1489∼1546) 선생은 자연 속에 보이는 많은 수학적 질서에 주목하여 우주의 생성과 그 변화가 모두 어떤 수학적 질서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고 그 이치를 알아내려고 힘쓴 자연철학자였다.
조선시대에 크게 성했던 성리학에서는 이(理)와 기(氣)를 기본으로 말했지만, 바로 기(氣)야 말로 가장 중심적 임을 강조한 학자는 이 땅에서는 서화담이 처음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조선의 주기설(主氣說)의 창시자였던 셈이다. 서화담의 주기적(主氣的) 태도는 율곡 이이(栗谷 李珥)를 거쳐 실학파의 여러 학자들, 특히 홍대용(洪大容)과 최한기(崔漢綺)에서 강하게 표출되었다.

첫댓글 남북극 빙하가 대량으로 녹아내리는 이유?
지구 1년 360일의 우주의 가을세상이 된다.
녹아내리는 빙하의 영향으로 기후변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4,5년 과정까지는 지구촌이 아주 더위로 지글지글하게 된다.
과학자들의 말대로 빙하의 영향으로 지진은 더 잦아지고, 강해진다.
23.5도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이 정립되기 전의 전조 현상으로 기후변화는 더 심해지고 지진과 화산이 잦아진다.
북의 생물학무기, 천연두가 발생하기 전,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전북 군산 미군기지로 북의 미사일 공격이 있다. 그 말씀이 道의 原典, 道典 5:303장 말씀이다.
道典 5:406)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란지하(大亂之下)에 대병(大病)이 오느니라. 아동방(我東方) 삼일 전쟁은 있어도 동적강(銅赤江)은 못 넘으리라. 서울은 사문방(死門方)이요, 충청도는 생문방(生門方)이요, 전라도는 둔문방(遁門方)이니 태전으로 내려서야 살리라.
서ㅇ은 불바다요 무인지경(無人之境)이 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무명악질이 돌면 미군은 가지 말라고 해도 돌아가느니라.
“일본은 불로 치리니 종자도 못 찾는다.” 하시니라.
@햇살아침 음속 5배'로 평양서 서울까지 1분…변칙 기동으로 '미사일방어체계' 무력화
https://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1/15/2024011590171.html
수고하셨습니다
행복한 8월 맞으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