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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 위에 달린 놋뱀 / 민 21:1-9, 살후 1:6-12
우리말에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한가지 문제를 풀고나면 또 다른 더 어려운 문제가 앞에 놓여 있을 때 쓰는 말이다. 우리 인생살이가 그런 것 같다.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계속해서 괴롭고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그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문제들이 있지만 결코 두려워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문제보다 더 큰 권능을 가지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민족 못지 않게 많은 고난을 겪어 왔다. 그런데도 굳세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말했다.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오직 구원의 길은 여호와 하나님 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 다음 광야생활 40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광야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행진해 가고 있을 때였다. 그들이 호르마 광야에 이르렀을 때에 예상하지 못했던 두가지 큰 문제가 생겼다. 하나는 그곳에 먼저 살고 있던 아랏족이 군대를 일으켜서 이스라엘의 행진을 가로막고 이스라엘 사람들 몇을 죽인 사건이 벌어졌다. 또 한가지는 먹을 양식이 부족하다 보니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만들고, 불뱀의 독소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이와 같은 호르마 광야에서 있었던 사건을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볼 때 바로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귀한 뜻이 담겨잇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호르마 광야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우리를 깨우치려고 하신 그 뜻을 함께 찾아서 나누고자 한다.
1. 하나님의 백성의 행실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다음 가나안 땅까지 가는데 2-3개월이면 충분하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40년이 걸렸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군에는 장애물이 많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고, 문제가 많았고, 난관들이 많았다. 이런 난관들 중에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닥친 문제는 더 심각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르마 광야에 이르렀을 때 아랏족이 침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 그들의 행군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스라엘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아랏 군대를 막을 길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서원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아랏 군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르마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어떤 대적도 물리칠 수 있다는 어떤 자신감, 용기를 가지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힘차게 행진해 갈 수 있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성도들의 인생살이에도 수없이 많은 장애요인들이 있다. 마귀의 세력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를 곁길로 나가도록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쓰고 있다. 때로는 경제적 파탄을 일으켜서 가정생활을 암담하게 만들 때가 있다. 때로는 경제문제가 아닌 것 때문에 가정 파탄이 일어날 수도 있다. 때로는 질병을 일으켜서 꿈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있어야 할 경우도 있다. 때로는 친구의 배신으로 인해 마음이 상할 때가 있다. 때로는 범죄에 연관되어서 감옥에 갈 때도 있다. 이처럼 마귀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삶을 흔들어 대고 넘어뜨리고 파괴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마귀에게 지고만 살 수는 없다. 어떻게든 이겨야 될 것 아닌가?
본문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마귀의 세력을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을 때 저 마귀의 세력을 이길 수 있었다. 승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를 돕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도와달라고 구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기도를 하나님께 올릴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기도의 그릇에 담아서 우리에게 보내주신다. 명절 때 보면 이웃에게 떡이나 맛있는 음식을 보내면 이웃집에서는 빈그릇으로 되돌려 주지 않는다. 또 자기들 나름대로 무언가 담아서 준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기도의 그릇을 하나님께 올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 그릇에 자신의 능력을 담아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되 아무렇게나 들으시는 분이 아니다. 구분해서 들으신다.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는 외면한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해서 구하는 기도는 얼른 들어주신다. 예수님의 기도를 보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을 때 비록 십자가를 졌지만 그분께는 부활의 영광이 있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기도의 자세를 가지고 있나? 나의 욕심, 나의 욕망, 나의 이기적인 욕구, 체면, 이런 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정말 듣기를 원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를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그 분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실 때 단순히 ‘무엇 무엇을 하라’고 일만 시키는 분이 아니다.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권능까지 허락해 주신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때 우리가 원하는 때, 우리가 좋아하는 때에 맞추어서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의 기분, 우리의 필요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시고 우리가 꼭 필요한 그때,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그때에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때에 기도 응답이 이루어지지 아니했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때에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기도의 어머니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분이다. 모니카가 하루는 밀라노 감독 암부로스를 찾아가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들 문제로 고민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까 암브로스 감독이 모니카에게 말하기를 ‘눈물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앟습니다’라고 격려를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말에 위로를 받은 모니카는 그후에도 십년 넘게 자식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십년이 지난 뒤에 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위대한 교부가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2.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랏족과 싸우며 승리했을 때 그 승리의 기쁨을 얼마되지 않아서 식량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니까 그때는 마음이 돌변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본문 말씀 5절에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라고 말했다. 사람이 마음은 너무나도 간사하고 감정적이다. 마음에 맞을 때는 기뻐하고 찬양하던 사람들이 먹을 양식이 부족하고 마음에 맞지 않으니까 그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했다. 이런 일이 어디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 모세 당시 호르마 광야에만 있는 일인가?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도, 우리들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가 있다.
눅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신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 곁에는 두 강도가 있었다. 둘중에 먼저 예수님께 말을 건넨 첫 번째 강도를 보면, 어떻게 생각하면 훌륭한 점이 있다. 적어도 세가지 측면에서, 하나는 예수님과 똑같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예수님과 함께 있다. 외형적으로는 예수님과 똑같은 십자가를 지고 있다. 우리도 같은 교회 교인이요, 같은 교회 집사이다. 같은 교회 성도며 같은 교회 성가대라서 외형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 두 번째 장점을 찾는다면, 예수님을 향해서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물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것이다. 성서의 요약은 사도신경이고, 사도신경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요, 교리와 신조의 핵심이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야라는 뜻이고, 메시야라는 말은 구세주라는 뜻이다.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이 교리의 핵심이다. 두 번째 강도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장점을 찾는다면, 예수님게 ‘네가 나를 구원하라’라고 했다. 구원을 요청한다. 평상시에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구원을 요청하니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겠나? 그러나 이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다. 왜 그런가? 자기 욕구, 자기 소원 성취를 위해서 예수님이 필요할 때는 예수님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나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자기 소원, 자기 욕구가 성취되지 않을듯 하니까 예수님을 비방한다. 신앙의 주체가 누구인가? 강도 자신이지 않나? 예수님께 자신의 삶과 자신의 운명과 자신의 행동을 맡기는 전적인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용되지 않으니까 그때는 비방하고 말았다.
이런 신앙은 예수님 곁에 있던 강도만 가진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들 주변에도 흔히 볼 수가 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문제가 생겼을 때, 앞이 캄캄하고 암담할 때,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원망하면 할수록 형편은 더 나빠진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고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우리 곁에 와 계시고, 우리 손을 붙들어 주시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형편이 어려운, 이 어려운 사정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한순간 형편이 어렵다고 해서,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시련이 있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기 바란다. 바로 이것을 통해서 더 선한 결실을 맺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손을 붙들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하나님께서 보낸 불뱀에 물려서 죽어갔다. 불뱀은 일종의 독사이다. 불뱀에 한번 물리면 독이 온몸에 번져서 결국 생명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 교훈에서 알려주는 말씀은 무엇인가? 어떤 처지에 어떤 형편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누구를 원망하거나 믿음에 낙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생명까지 잃어버린다는 말씀이다.
3.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백성들은 불뱀에 물려 죽게 되자 그때서야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기 시작했다. 7-8절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서 긴 장대에 달아서 높이 들었다. ‘누구든지 그 놋뱀을 보는 사람은 독을 제거할 수 있고 생명을 구할 수 있다’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모세가 든 놋뱀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다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모세의 말을 무시하고 바라보지 않은 사람은 다 죽고 말았다.
이 사실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있다. 장대에 매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님 자신이 그렇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적이 있다. 요 3: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계속해서 16-17절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광야의 백성들이 모세가 든 장대 위에 매달린 놋뱀을 바라볼 때 구원을 받은 것처럼, 오늘 우리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함을 받는다. 예수 이외에 구원받을 도리가 없다. 행 4:12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하실 수가 있다. 옷에 더러운 것이 묻었을 때 옷 자체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수 없다. 사람이 세탁을 해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심령에 더러운 때, 재앙이 묻으면 사람 자신이 깨끗하게 할 수 없다.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인간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깨끗하게 하시고, 곧 죄를 해결해 주시고, 인간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삼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그 피는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공로를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 호르마 광야에 있던 백성들은 모세가 든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바라봄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지만, 오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 그리스도를 따를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길과 진리요 생명으로 믿고 살 때에 참된 인간의 삶이 잇고 구원이 있다. 구그스도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환난이 밀어닥칠 때, 그럴수록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구원을 청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까지 지신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호르마 광야에서 생긴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세가지 교훈을 마음 속에 가져야 된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길로 가고 잇는 백성들은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마귀의 세력이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힙입고 사는 사람은 능히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둘째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는 사람은 결국 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어떤 처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셋째로, 오직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사는 자만이 구원이 있고, 은혜가 있고, 축복이 있는 것이다. 호르마 광야에서 생긴 일을 마음 속에 새기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생활을 재정립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 세례식 >
세례의 부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셨고,
또 ‘너희는 가서 모든 백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기를 원하는 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을 때 진정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기도
사랑의 주님, 이 사람들은 은총 가운데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를 씻으시며 부활의 생명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거룩한 성례를 통하여 몸된 교회의 일원이 되며,
주님의 제자로서 영광스런 지위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사람들이 진심에서 우러나는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또한 온 교회로 하여금 이 예식에 참여하여
세례의 은총을 회상함으로 새 기쁨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앙고백과 문답
거룩한 세례를 받기 원하는 이들이여,
이제 다음의 문답을 통하여 당신들의 세례 받으려는 뜻을 표하고,
우리 교회에 입교하려는 언약을 삼고자 합니다.
하나님 앞과 여러 성도들 앞에서 진실한 대답을 하기 바랍니다.
오른 손을 들고 묻는 말에 예라고 크게 대답하기 바랍니다.
문) 당신들은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지도자이신 성령을 믿으며, 죄사함을 받아 죽음에서 구원되었음을 믿으며,
주님의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며,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심과 주님의 의와 사랑의 최후 승리를 믿으며,
영원히 살 것을 믿습니까?
문) 당신들이 회개함으로 말과 생각과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 성서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기로 결심하였습니까?
문) 당신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들을 구속하신 주님으로 믿고
사람들 앞에서 증거하기로 작정하였습니까?
문) 당신들이 우리 교회의 규칙과 성례를 지키고,
몸과 마음과 정성과 시간과 재물을 바쳐서 교인된 의무를 힘써 다하겠습니까?
문) 당신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선교와 교욱과 봉사 등
교회의 모든 활동에 적극 참여하겠습니까?
수락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의 세례 받으려는 결심과
신앙고백을 신임하고 세례를 허락하겠습니다.
세례
○○○,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선언
○○○, ○○○가 그리스도 교회의 일원이 된 것을 선언합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새가족이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은 사랑으로 환영하기를 바랍니다.
파견사
하나님의 일꾼인 여러분은 세상으로 나가서
정의와 믿음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여러분은 이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례를 받고 입교하는 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보호하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진실하게 살며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교회와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항상 인도하여 주옵소서.
여기 모인 주님의 권속들에게 복을 내리시어,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백성으로 활기차게 살게 하시며,
저희들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주님의 평안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997-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