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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는 '빈곤과 차별의 시대를 넘어 장애인운동의 전망 찾기'라는 주제로 연속 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9일 첫 강의를 시작으로 9월 18일까지 격주 목요일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진행됩니다. 비마이너는 전 강의 내용을 요약해 싣습니다. _ 편집자 주 6. 국가와 싸우는 밀양의 목소리를 듣다(이계삼 밀양송전탑대책위 사무국장) 7. 활동지원서비스 시장화, 문제점과 대안 찾기(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원) |
로사이드를 소개하는 것은 어렵다. 한 단어로 규정하듯 그들을 소개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다. 규정이 아닌 ‘설명’으로서만 그들의 활동을 밝힐 수 있다. 로사이드는 그들 자신을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지는 못했으나 독자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사회적 소수자를 발굴하고, 아트서포터즈를 연결해 함께 작업하는 활동 등을 하는 비영리단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이는 분명 모호하다. 이는 로사이드의 작업이 완성으로 귀결되는 것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닌 그 안에 함께하는 사람과 끊임없이 유동하는 관계의 미세함, 즉, 과정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그 안의 풍부함을 드러내기 위해선 규정이 아닌 과정의 떨림에 대한 서술이 필요하다.
지난 8월 7일 늦은 7시, 비마이너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의 연속특강 다섯 번째로 로사이드 프로젝트 기획자 최선영 씨의 강의가 열렸다. 최 씨는 이날 ‘관계에서 피어나는 놀이장애문화예술교육 길찾기’라는 주제로 두 시간여 동안 강의를 이어나갔다.
최 씨는 과거 특수학급·학교에서 수년간 장애아동과 함께한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 후 로사이드 작업으로 이어진 흐름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학교 예술 강사로 활동하기 전 문화예술교육 영상촬영 스텝으로 2년간 활동했다. 그러나 수업진행 방식에 갑갑함을 느낀 그녀는 스스로 강사가 되기로 한다. 그때 ‘이것만은 하지 말자’고 다짐한 몇 가지가 있었다. 예를 들면 첫 시간에 자기소개만은 하지 말자는 거다. 학생들은 이미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자기소개는 강사가 그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서 취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첫 시간을 열면서 그 관계의 사이로 자연히 스며들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 하지 말자고 다짐한 것들을 지키면서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 끝에 수업 첫 시간, 최 씨는 인터뷰 게임을 했다. 인터뷰어는 자신만의 방송국 네이밍 마크를 마이크에 붙여서 인터뷰 하고 싶은 친구나 선생님을 택해 인터뷰한다. 그리고 그 현장이 바로 옆에서 티비로 생중계된다. 최 씨는 “(이러한 장치 설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며 “강사들은 귀찮아서 잘 안 하려고 하나 이렇게 분위기를 만들면 학생들은 더욱 즐겁게 수업에 참여한다”라고 전했다. 그렇게 첫 수업을 시작했다.
최 씨가 늘 중심에 두는 것은 관계의 특징이다. 강사만의 멋진 기획보다는 집단의 성격, 욕구,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관계의 흐름을 타는 것. 이는 후에 로사이드 작업에서 시간의 겹을 쌓으며 관계를 맺어나가는 작업과 궤를 같이한다.
또한 최 씨가 작업에서 중요히 여긴 것은 재료의 특이성이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미술 재료’는 거의 쓰지 않는다.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불규칙한 결과물이 나와 흔히 생각하는 ‘잘 만든’ 작품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재료 선택의 포인트다. 잔디밭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 돌멩이 등과 같이 자연물을 많이 사용하는데 작업 후 재료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재료의 장점이다. 미술 재료를 사용하게 되면 주로 철물점에서 구입한 철사, 빨래집게 등과 같은 재료들을 사용해 각기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한다.
그 외에 파프리카즙, 단호박즙 등으로 색깔을 내어 만든 칼라수제비, 물 스텐실도 최 씨가 꼽는 좋은 재료들이다. 칼라점토는 쓰고 나면 버려야 하지만 칼라수제비는 작품을 만든 뒤 수제비로 끓여 함께 먹을 수 있고 물 스텐실은 바닥에 작품을 남기면 증발하여 자연으로 사라진다.
정규 학교 현장에서 작업하던 최 씨가 로사이드의 아트스텝으로 활동하게 건 우연이었다. 수업 나가던 학교에서 ‘멋진 그림’을 그리던 학생이 있었다. 구조적이고 입체적이며 디테일한 그림이었다. 학교 수업을 그만둔 뒤에도 유독 이 친구가 마음에 남아 연락을 주고받으며 한 달에 한두 번 카페에서 만나 같이 그림을 그렸다. 그 후 최 씨가 로사이드에 합류하게 되면서 발달장애인의 전시에 이 학생이 작가로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림에 도로는 많은데 다니는 생물이 없더라. 최 씨는 지인들에게 이 그림 위를 여행하게 하고 싶은 무엇이 있다면 그림을 그려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최 씨가 이를 모아 원본 그림 위를 움직이며 여행하는 영상을 만들고 후에 음악도 입혔다. 현재 로사이드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김동현 작가와의 이야기다. 로사이드는 이들을 장애인 창작자가 아닌 ‘날 것의 창작자’라 부른다. 장애인을 부러 찾는 건 아니나 아직까지 발굴된 사람은 자폐·발달장애인이다.
로사이드는 일대일 워크숍을 주로 진행한다. 최근 그녀는 정진호 작가와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 씨의 이야기에 의하면, 정 작가는 북유럽과 일본의 역사, 신화, 일본과 미국 애니메이션 등에 통달해있으며 모든 것을 ‘리뉴얼’ 한다. 최근엔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강의 제목은 ‘최강리뉴얼 강의 퍼포먼스’. 강의는 정 작가가 실제 ‘있다’고 믿고 있는 어떤 세계가 오직 ‘그만의 세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되었다. 하지만 강의가 계속될수록 학생들은 점차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갔다. 강의 후 이뤄진 쪽지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이에겐 정 작가의 보충설명이 이어졌고 1등 한 이에겐 정 작가의 ‘리뉴얼 초상화’가 상으로 수여됐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았던 정 작가만의 ‘고립된 세계’는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중요한 발판이 되어갔다.
이러한 작업들에 대해 최 씨는 “강의에서 날 것의 창작자가 자신의 이야기만 쏟아낼 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다. 학생들을 배려하며 강의를 진행한다.”라며 “당시 이 강의를 지켜본 창작자의 부모는 아들의 이야기가 늘 지겹기만 했는데 이러한 시선으로 볼 수 있음에 많이 놀라워했다”라고 전했다.
공동작업의 기획자로 함께할 때 중요한 것은 소통하는 관계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일방적 관계가 아닌 ‘함께 무엇을 경험할 것인가’가 물음의 중심에 놓인다. 모든 시작의 자리엔 사람이 있다. 장애인, 비장애인이라는 분류 이전에 사람이 눈에, 마음에 먼저 들어온다. 그래서 이것이 예술인가, 교육인가라는 물음은 로사이드의 작업 앞에서 답을 구하기 힘들다. 이는 교육도, 예술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분명 그 작업에 함께한 사람들 사이에선 상호작용이 일어났다. 그것이 만남이고 소통이다. 그렇다면 앞선 물음에 대한 답은 할 수 없겠으나 ‘사람을 위한 작업, 사람과 생명을 살리는 작업’이라는 로사이드 작업의 목적엔 부합한다. 그래서 최 씨는 학교 현장에서 진행한 일대다수의 작업보다 일대일의 작업이 그에 다가가는데 더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일대일 워크숍을 지속해나가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외에 로사이드가 ‘크게’ 여는 프로젝트로 어떤아트투어가 있다. 어느 한 공간에서 음악가가 공연하면 그것을 본 관객들이 그림을 그린다. 어떤 때는 장애가 있는 음악가가 공연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가 장애인이라고 설명하진 않는다. 그 안에 장애, 비장애는 섞여 있다. 그저 하나의 경험을 다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사람을 만난다. 문은 열려있다.
이날 강의는 최선영 씨가 직접 진행했던 현장 수업의 사진과 동영상을 바탕으로 매우 생동감 있게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강의록을 통해서는 온전히 그 내용을 전달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이날 배포되었던 최선영 씨의 강의 원고를 아래에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