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9월 15일 토 요일. 흐리고 비.
새벽 예불을 드린 뒤 대법륜당으로 옮겨 108 참회 기도법을 배웠다. ‘백팔대참회문 百八 大懺悔 文’에 따라 환오 스님이 시범을 보이고 우리들이 그대로 따라 익혔다. 잘못을 뉘우치고 부처님께 자비를 구하는 내용이다. 숙세의 악업을 고백하는 부분은 삼엄하기가 추상 같고, 용서를 구하는 대목은 간절하고 절절하다. 평생 이렇게 간담 서늘하게 만드는 글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부처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오체투지로 108번 절을 드린다. 108 번뇌에 그 절 횟수를 맞춘 것 같다. 부처님이 여러분 계신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또 몰랐다. 절 하는 방법이 아주 과학적이다. 도입부는 천천히, 중간 부분은 빠르게, 마무리는 아주 느린 템포여서 준비 운동, 본 운동, 숨 고르기 등과 똑 같은 구조다.
새벽 예불과 백팔대참회가 끝나면 5시 반쯤 된다. 이 때부터 6시 20분 아침 공양 때까지는 참선 시간이지만 대개 모자라는 습의를 보충하거나 요가와 체조 등을 배운다. 아침 공양 후 전 나무 숲 길을 산책한 다음 청소를 하고 오전 강의를 듣는다. 10시에 사시불공을 드리고 11시 20분에 법 공양 즉 점심을 먹은 뒤 사경과 강의와 운력에 참여 한다. 오후 5시 20분에 저녁 공양, 6시 10분에 저녁 예불을 드린다. 저녁 7시부터 또 강의를 듣고 8시 반, 하루를 평가 한 다음 밤 9시에 잠자리에 든다. 오전 오후 일과는 가끔 바뀌는 경우가 있었지만 새벽 예불과 백팔대참회는 과정이 끝 날 때까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전나무 숲길 포행은 즐겁다. 차수, 안행으로 금강 문을 나가자 손은 풀어도 좋지만 묵언을 깨서는 안 된다는 습의사 스님의 지시가 떨어졌다. 하늘은 잔뜩 흐려 또 비가 올 모양이다. 남 행자들의 벽돌색 염의 染衣와 여 행자들의 주황색 염의가 검은 녹색 숲 길에 두 줄로 선명하다. 길 옆으로 시냇물이 큰 소리를 내며 기운 차게 흘러가고 있다. 습기 찬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 든다. 우리들은 스님 몰래 소곤소곤 거리며 팔을 휘젓기도 하며 고개를 돌리기도 하며 몸을 풀었다. 태권도 자세를 취하는 사람, 기 체조를 하는 사람, 요가를 하는 사람, 여 행자들도 남의 시선을 의식 하지 않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동작을 거침 없이 선 보였다. 대법륜전으로 돌아오니 앞 산 중턱에 걸쳤던 구름이 적광전 용마루까지 내려왔다.
대법륜전은 농구 코트 세 개가 들어 설 만큼 크고 넓다. 앞 마당에서 7,8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직 사각형 건물의 남 쪽 출입문이 열여 있고 그 좌우와 후방으로 폭 2m 가량의 회랑이 건물 전체를 둘러 싸고 있다. 건물 내부는 기둥이 하나도 없는 텅 빈 공간이며 천장은 아파트 2개 층에 달 할 만큼 높다. 북 쪽 벽면 전체에 지권인 智拳印을 한 비로자나 불 毘盧遮那 佛이 돋을 새김 되어 있고 그 주위를 역시 돋을 새김 한 석가여래의 10대 제자가 둘러 싸고 있다. 직사각형의 길다란 좌우 벽면 전체에는 촘촘한 감실 龕室을 만들어 3,000불을 모셨다. 천장에는 푸른 색과 흰 색으로 학과 용, 연 꽃 등을 그려 넣었다. 바닥은 언제나 뜨끈뜨끈 하였으며 평좌를 하면 300명도 넘게 앉을 수 있겠다. 청 기와를 얹은 거대한 지붕 추녀 상하에 두 개의 현 판이 걸렸는데 위에는 ‘대법륜전 大法輪殿’, 아래에는 ‘선불장 選佛場’ 이라 써 있다. 선불장이란 부처님을 뽑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이 건물의 별명인데 강 석주 姜 昔珠 큰 스님의 글씨다. 지은 지 3년도 안된 새 건물이고 정면 좌우 댓돌에 붉게 핀 베고니아와 제라늄 화분이 하나씩 놓여 있다.
오후, 적광전에서 원행 큰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큰 스님의 법문은 흔치 않다고 하는데 우리들은 절에 들어오자마자 좋은 기회를 만난 것이다. 적광전의 주불, 거대한 석가여래 좌상 앞 법상에 높이 앉은 큰 스님은 찌렁찌렁한 목소리로 만당한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말 했다. “남악 회양 南嶽 懷讓 선사가 아직 깨닫기 전에 육조 혜능 六祖 慧能 대사에게 가르침을 청하러 갔을 때야. 육조가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그렇게 물었거든. 남악 회양 선사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대로 되돌아서 8년 공부를 한 다음 다시 육조 대사를 찾았어. ‘한 물건이라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그래. 여러분들은 뭐라 할 것인가?” 생각 하면 생각 할수록 답답해져 법당을 나서는데 비가 제법 세차게 쏟아진다.
습의 도감이 바루 공양 작법을 가르쳤다. 바루를 푸는 법, 펴는법, 다시 매는 법을 먼저 익히고 법 공양 절차 습의에 들어 갔다. 크기가 약간씩 다른 바루 네 개를 가장 큰 바루에 차례대로 집어 넣고 그 위에 수저 집을 가로 질러 얹은 다음 끈으로 묶는다. 이 때 달가닥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매듭을 나비 넥 타이처럼 예쁘고 깔끔하게 마무리 해야 한다. 그런데 이 것이 쉽지 않다. 나비 넥 타이는 고사하고 끈을 조일 때 수저 집이 바루 위에서 제 멋대로 빙 빙 돌고 바루가 옆으로 튕겨 나가며 달그락 소리가 크게 울린다. 천신만고 끝에 매듭을 짓고 바루를 들어 올리는데 바루가 몽땅 쏟아져 큰 소리를 내며 방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다. 바루 끈이 헐거워졌기 때문이다. 습의 도감의 몰아 세우는 소리가 귀에 윙윙 걸린다. 마음이 급해지고 애가 타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쩔쩔 매는 행자들이 딱했던지 찰중 스님과 습의사 스님들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매듭 짓는 법을 고쳐주었다.
법 공양 절차는 더욱 까다롭고 복잡하다. 식당에서 밥과 국과, 반찬, 마실 물과 설거지 물을 받아 와 진열하는 일부터 이를 나누어 주는 일, 밥 먹는 순서, 바루를 닦고 설거지 물을 모아 버리는 일까지 죽비 신호에 따라 전체가 한 사람이 하는 동작처럼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어떤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 절차를 시작 할 때 마다 합장하고 게 偈를 읊어야 한다.바루를 펴기 전에는 불은상기 게 佛恩想起 偈를, 바루를 펼 때는 잔발 게 展鉢 偈를, 배식이 끝나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봉발 게 捧鉢 偈, 오관상념 게 五觀想念 偈, 생반 게 生飯 偈 등을 읊고, 식사가 끝나면 절수 게 折水 偈, 식필 게 食畢 偈를 읊는다. 바루 공양은 밥 먹는 일이라기 보다 그 전부가 예불이고 수행이었다.
저녁 예불 뒤에 습의 도감이 반드시 지켜야 할 생활 규칙을 고지했다. “절에서는 뛰면 안 된다. 부처님 정면을 함부로 지나 가서는 안 된다. 속 옷 차림으로 잠 자면 안 된다. 볼펜 돌리기 등 손 장난을 하지 마라는 등등……”수 십 가지였다. 각자 할 일도 나누어 주었다. 절에서는 이를 소임 所任이라고 부른다. 가지가지 별난 소임이 다 있었다. 반장과 서기가 있고 종두라는 것이 있다. 종두란 원래 종을 치는 소임인데 여기서는 반장의 연락병 역할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청소 당번들인데 목욕탕은 정통, 화장실은 정낭이라 부른다. 대법륜전 청소 담당은 지전, 교육장의 불을 켜고 끄는 담당은 명등, 우물 청소 담당은 수두, 마실 물과 차를 대는 사람은 다각이고 채공, 갱두, 부목은 다 식당 도우미들이다. 귀신들에게 밥을 갖다 주는 헌식이라는 소임도 있었다. 나는 대법륜전 댓돌 청소 담당이 되었다. 월정사로 오는 버스에서 만난 처녀는 여행자 반장이 되었다.
찰중 스님이 오늘 하루를 평가 했다. “묵언을 깨는 사람이 많다. 차수도 안 하고 안행도 안 된다. 행전이 풀어져 발목에 걸린 사람이 많다. 옷 고름도 뒤죽박죽이다. 스님들을 만나도 인사를 안 한다……”언제 돌아 다니며 보았는지 조목 조목 지적하고 다음에 같은 잘못이 적발 되면 벌점을 먹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바루 공양을 걱정했다. 내일 아침부터 당장 바루 공양을 시작 할 터인데 밥 그릇, 반찬 그릇, 물 그릇도 구분 못하니 한심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 하면서 여 행자 반 막내에게 “내 방에 가서 바루 좀 가져 오세요.”했다. 그 때 그 막내 왈, “스님, 바루가 뭐예요?”하는 것이었다. 순간 “와!”하는 웃음이 터졌다. 찰중 스님은 어이가 없어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하루 종일 바루 때문에 그 고생을 하고서도 바루가 뭐냐? 라니……” 하지만, 그 천진한 말 한마디로 바루공양 습의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일거에 날아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