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고 덜어내고
권 덕 봉
kdb53@hanmail.net
컴퓨터가 말썽이다. 정확히 십 년 전, 쓰고 있던 컴퓨터를 낡았다는 이유로 버리고 새 컴퓨터를 들여놓았다, 그리고는 ‘멋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날씬한 몸매와 똑똑한 두뇌를 가진 충실한 동료다. 밤낮없이 일해도 지치지 않는 심장을 가진 바로 그에게 장애가 생겼다. 얼마 전 멋쟁이에게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웹캠을 달아주었다. 그런데 눈에 문제가 있는가 보다. 온라인 수업 수강을 위해 그의 눈에 내 모습을 보여주면 화면이 깜박이다 사라지며 정신 놓기를 반복한다.
기술의 발전은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모델의 컴퓨터를 세상에 쏟아낸다.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난 놈은 S사의 상표가 붙어있었다. MS-DOS*라는 운영 체제를 썼던 초기의 컴퓨터다. 새 모델이 나오자 미련 없이 바꾸었고, 이후로도 여러 모델이 내 곁에 있다가 버려졌다. 십 년이란 세월은 멋쟁이를 몇 세대 전 인물로 만들었다. 벌써 고려장에 보냈어야 했다. 그러함에도 내 곁에 두고 있는 이유가 있다.
국민건강보험이 ‘대사증후군 자가관리 지침서’를 보내왔다. 다섯 가지 건강 위험요인인 복부비만, 높은 혈압, 높은 혈당, 높은 중성지방 혈증 및 낮은 HDL 콜레스테롤 혈증 중에서 세 가지 이상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보낸다는 안내서도 함께 들어 있었다.
내과 의사인 친구가 있다. 오래전부터 건강검진을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받아왔다, 오 년 전 더 미룰 수 없다며 친구가 고지혈증약을 처방했다. 본태성이라고 했다. 삼 년 전에는 절박뇨 현상으로 비뇨기과를 찾았다가 전립선 비대라고 진단받았다. 혈압을 낮추는 성분이 함께 있는 약을 처방받았다. 육 년 전 금연했다. 금연 후부터 뱃살이 아주 조금씩 늘었지만 보기에 흉하지 않았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부 활동이 줄고 운동을 게을리한 탓일 것이다. 최근 두 해 사이에 흡사 만삭인 임부처럼 부푼 배는 남에게 보이기 민망하다.
바르게 말하자면, 멋쟁이는 이미 자기 몸의 몇 곳을 새 장기로 갈아 치운 이력이 있다. 브루투스로 작동되는 키보드와 마우스가 그것이다. 게다가 작년 이맘때쯤에는 대수술도 받아야 했다. 잠들어 있는 이놈을 깨우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 물음에 답하는 것이 느려서 답답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물어보니 기억을 저장해 두기도 하지만 그 기억을 혈액처럼 뇌로 퍼 올리는 심장, HDD가 원인이라고 했다. SSD라는 새 심장을 옆에다 달아주었다. 그랬더니 문고리만 잡아도 일어났다며 달려 나왔다. 이 수술이 조금 잘못되었다는 것은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마구 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떼 내어야 했던 HDD를 남겨두게 했다. 두 개의 심장이 가끔 서로 다투는 것 같다.
나는 능력이 떨어졌다고 뒷전으로 밀려난 것만으로도 서글펐는데 멋쟁이가 쓰레기장에 버려진다면 그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바로 이것이 내가 그를 버리지 못하고 곁에 두고 있는 이유다. 내가 진단받고 약을 처방받는 것같이 멋쟁이에게도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멋쟁이를 데리고 작년에 수술을 맡겼던 의사에게 갔다. 증상을 알리자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컴퓨터가 똑똑한 두뇌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가끔 계산하기 어려운 크고 복잡한 문제를 만나면, 램이라는 장기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웹캠을 작동하게 하는 문제가 너무 커서 멋쟁이의 램은 힘에 부친다. 능력이 훨씬 월등한 램으로 교체하겠다고 했다. 다만 두뇌와 같은 언어를 쓰는 오래전에 태어난 램을 구해야 한다고 해 멋쟁이를 두고 왔다. 지난해에 떼어내지 못했던 HDD의 제거를 곁들여 주문했다.
결국은 실천의 여부이다. 멋쟁이에게는 램을 더하고 나의 몸에서는 무게를 덜어내야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올바른 생활 습관을 유지한다는 말은 몸이 원하는 즐거움은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요구되는 사항은 명료하다. 섭취 열량보다 소비 열량이 크게 하면 된다. 먹는 것을 줄이고 운동량은 늘리면 된다. 그런데 먹는 즐거움마저 포기하면 무슨 재미로 사나. 그래, 먹으려면 운동해야 해. 단위 시간당 소모되는 에너지가 매우 큰 수영강습에 다시 등록했다.
사흘 후 연락받고 멋쟁이를 데리고 왔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처럼 재빠르고 힘차게 달린다. 떼어낸 HDD는 외장하드로 쓰기로 했다. 내장을 들어내 외부의 장기로 쓸 수도 있다니 참 신기하다. 올챙이 배처럼 불룩 내민 내 배의 반만이라도 멋쟁이처럼 밖으로 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되면 멋쟁이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늘씬한 체형으로 돌아가 그와 오래도록 함께 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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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한 디스크 운영 체제. UNIX와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한 텍스트 기반의 운영 체제였다. 검은 화면 위 프롬프트라고 불리는 곳에 키보드로 명령어를 입력했다.
2022년 7월
수필과비평 249호
신인상 당선작
첫댓글 권덕봉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감축드립니다.
말썽 부리던 컴퓨터 내장하드를 드러내 외장하드로 재탄생시킨다는 발상에 감탄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멋쟁이와 더불어 좋은 글 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