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 vs 합리적
‘생명, 생태, 평화’를 기치로 걷는 DMZ 평화누리길. 지난달에는 소이산에 올라 철원평야를 내려 보았다. 넓고 평평하여 눈에 담을 수 없이 큰 땅이라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영토다. 경지정리가 되어 반듯하게 선을 그어놓은 논두렁. 다른 한쪽에는 비뚤비뚤한 논두렁도 보인다. 반듯함과 비뚤함의 사이에 조상의 땀과 피가 서려 있으리라….
오늘은 14번 째 구간. 계획대로 하면 대위리 검문소~이길 검문소~도창 검문소를 걸어야 했다. 하지만 이길 검문소에서부터 도창 검문소는 걸을 수 없는 상황이라 계획을 변경했다. 백마고지 전투전적비에서 나라를 지키다 가신 영령들께 헌화와 묵념을 시작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치열했던 한국전쟁의 한 복판. 철원평야는 조상들의 젖줄이자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 보급로이다. 하여 마주친 중공군과 한국군은 12차례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아군의 손에 들어왔다. 중공군 1만 명과 국군 3,500명의 사상자를 냈던 전투의 현장. 71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구석에도 포탄연기나 피 비린 내는 나지 않는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군사를 거느리는 지휘관은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결단을 한다. 선택과 결단의 순간에서 마주치는 상황. 적군이나 아군이나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지휘관이 선점하고자 하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이를 군사적 용어로 감제瞰制고지라고 한다. 오늘 우리가 헌화하고 행사를 진행했던 백마고지는 중공군 지휘관이나 한국군 지휘관의 감제고지이었다. 이 고지는 1만 명의 목숨보다 더 귀한 존재인 셈이다.
70여 년 전의 지도자가 전쟁과 전투의 승리에 혈안이 되어 인간의 생명마저도 초개처럼 뭉개버렸다. 관점을 생명존중과 인류애로 본다면 그들의 행위는 합리적인가? 합리화한 것인가? 답이야 합리화시키면서도 합리적이라고 말하겠지. 세상을 살아본 사람은 종종 ‘합리화’를 ‘합리적’으로 포장하는 경우와 마주치게 된다. 세상을 한발 짝 비켜서서 보면 답이 보인다. 왜 아등바등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마라톤이 익숙한 나에게 평화누리길을 걷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조곤조곤 이야기 하고 두루미 떼를 보고 갈라진 논바닥을 보고, 걷고 또 걷다가 때로는 바지에 흙탕물이 튀겨도, 보초서는 초병들로부터 낭패를 당해도… .
합리적인 사람과 합리화에 익숙한 사람을 생각해 본다. 개를 몰고 산책 나온 주인이 행인을 위해 길을 열어줄 때 자기는 가만히 서 있고 개 목줄로 개를 조절하는 사람은 합리화에 익숙한 사람이다. 개는 그대로 두고 자신의 몸으로 개의 입 주의를 가려 행인의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은 합리적인 사람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행인이 앞에 있으면 기계음으로 “따르릉~~” 하고 씽 달려가는 사람과 “비켜요” 하는 사람은 합리화에 익숙한 사람이다. 합리적인 사람은 길을 우회하거나 적어도 속도를 줄이면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할 시점에 낮은 목소리로 “따르릉”을 외치는 사람이다.
시선을 안으로 돌려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전략적 포지션, 내 삶의 감제고지는 어디쯤 있을까? 그리고 나는 배려하는 합리적인 사람인가? 현실을 나의 잣대로 맞추는 합리화에 익숙한 사람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14차 대장정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