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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오늘의 21세기 전환기 이해하기)
초대형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이번에는 ‘인류 3부작’ 완결판으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내놓았다. 책은 21가지 테마로 나누어 현재의 인류를 살펴보며, 불확실하고 복잡한 21세기 지구촌의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한다.
1부 기술적 도전(환멸, 일, 자유, 평등)에서는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을 개관하고, 2부 정치적 도전 (공동체, 문명, 민족주의, 종교, 이민)에서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반응들을 폭넓게 살펴본다. 3부 절망과 희망 (테러리즘, 전쟁, 겸손, 신, 세속주의)에서는 테러리즘의 위협과 전 지구적 전쟁의 위험, 그리고 그런 분쟁을 촉발하는 편견과 증오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살펴본다. 4부 진실 (무지, 정의, 탈진실, 공상과학소설)에서는 탈 진실 개념을 살펴보고 어느 정도까지 세계의 전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며 정의와 잘못을 구분할 수 있는지 묻고, 5부 회복탄력성(교육, 의미, 명상)에서는 이 혼돈의 시대에 처한 우리의 삶을 보다 포괄적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민족과 종교, 인종주의에 갇혀 반목하고 있는 인류의 오늘은 어떤 내일을 만들어갈 것인지 그 해법을 제시한다.
이 중에서 10여 가지를 아래와 같이 발췌 요약하여 5~6회로 나누어 올려본다.
제1부 기술적 도전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이 합쳐지면 사상 최대 도전에 직면한 바로 지금 인류는 지난 수십 년간 정치를 지배했던 자유주의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다.
1. 환멸 (역사의 끝은 연기되었다)
<환멸> 쟝크 앙투안 발랭
모든 사람, 집단, 민족은 자기 나름의 이야기와 신화가 있다. 하지만 20세기 동안 뉴욕과 런던, 베를린, 모스크바의 글로벌 엘리트들은 세 가지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것으로 모든 과거를 설명하고 전 세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세 가지는 파시즘 이야기, 공산주의 이야기, 자유주의 이야기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파시즘은 나가떨어졌고, 194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세계는 단 두 가지, 즉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격전장이 됐으나, 그 후 공산주의 이야기도 무너지면서 자유주의만이 인류의 과거에 대한 지배적인 안내자이자 세계의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매뉴얼로 남았다. 적어도 글로벌 엘리트들이 볼 때는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이래 전 세게 사람들은 자유주의 이야기에 점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장벽과 방화벽이 다시 유행이다. 이민자와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저항감은 높아만 간다. 겉만 민주적인 정부들은 사법 체계의 독립성을 전복하고, 언론자유를 제한하며, 어떤 반대도 반역으로 몰아간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부상으로 뚜렷이 각인된 해였던 2016년은 이러한 환멸의 파도가 서유럽과 북미의 핵심 자유주의 국가들에까지 가 닿는 순간임을 의미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고립주의에 대한 촉구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약속을 연결했다. 브렉시드 지지자들 역시 영국을 독립 강국으로 만드는 꿈을 꾼다. 마치 아직도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살고 있는 듯이. 중국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제국과 유교의 유산에 다시 눈을 뜨면서 그것을 서방에서 수입해온 미심쩍은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의 보완재나 대용품으로까지 생각한다. 러시아에서 푸틴이 공식적으로 제시하는 청사진도 부패한 과두제의 건설이 아니라 옛 차르 제국의 재건이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푸틴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정교회의 신앙심에 힘입은 전제 정부를 통해 옛 제정시대의 영광을 되찾는 한편 발트해에서 캅카스까지 세력을 확장하겠다고 약속한다.
1) 생각 죽이기
자유주의 정치 체제는 인류가 산업시대를 거치면서 증기기관과 정유공장,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세상을 관리하기 위해 구축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변화에 대처하는데 곤란을 겪고 있다. 1990년대 이래 인터넷은 다른 어떤 변수보다 더 크게 세상을 바꿔놓았다. 민주주의 체제는 지금도 기술의 충격을 이해하느라 허우적대고 있다. AI 부상과 블록체인 혁명 같은 후속 충격에는 대처할 준비도 거의 돼 있지 않은 상태다. 블록체인과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 기존 통화 체제를 완전히 재편하면서, 결국에는 근본적인 세제 개혁이 불가피해질지도 모른다.
앞으로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의 쌍둥이 혁명은 경제와 사회뿐만 아니라 신체와 정신까지 재구성할 수 있다. 이 두 혁명을 통해 우리는 우리 내부 세계까지 통제할 수 있고 나아가 생명을 설계하고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뇌를 설계하고 삶을 연장하고 우리의 생각도 임의로 죽이는 법까지 터득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1938년 소련과 독일 혹은 미국에 살았던 보통 사람은 삶의 조건은 암울했지만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며 미래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었다. 그는 석탄광부, 철강노동자, 가정주부가 그려진 선전포스터를 보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봤다. “저 포스터 속에 있는 건 나야! 나는 미래의 주인공이야! 자유주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보통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2018년의 보통 사람은 점점 자신이 사회와 무관하다고 느낀다. 세계화, 블록체인, 유전공학, 인공지능, 기계학습 등 수많은 신비한 단어들이 테드 강연과 하이테크 콘퍼런스 같은 곳에서 신나게 오르내리지만, 보통 사람은 이 중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다고 의심할 법하다.
아마도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은 경제 엘리트에 맞서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지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취에 반대하는 것보다 사회와 무관해지는 것에 맞서 투쟁하기가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2) 자유주의 불사조
자유주의 이야기가 신뢰의 위기에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히틀러의 순간이 닥쳤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초반의 파시즘,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 체 게바라의 순간이 이어지는 동안 자유주의는 또 한 번 다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미래는 공산주의에 속한 듯했다. 하지만 결국 붕괴한 것은 공산주의였다.
슈퍼마켓은 정치범수용소보다 훨씬 강한 것으로 판명 났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유주의 이야기가 그 어떤 경쟁자들보다 훨씬 유연하고 역동적인 것으로 입증됐다는 사실이다. 자유주의는 자신이 가진 최선의 생각과 실천 중 일부를 채택함으로써 제국주의와 파시즘, 공산주의에 모두 승리했다. 특히 자유주의 이야기는 공산주의로부터 배운 결과, 공감의 반경을 넓혀 자유와 나란히 평등까지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였다. 또 자유가 더욱 확대되면서 자유주의 이야기는 공산주의 식 복지제도의 중요성에도 눈떴다. 자유도 어떤 유의 사회안전망과 결합되지 않으면 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생태학적 붕괴와 기술적 파괴라는 문제 말이다. 자유주의는 전통적으로 경제성장에 의지해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마술처럼 해결했다. 자유주의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를 화해시키고, 신앙인과 무신론자, 토박이와 이민자, 유럽인과 아시아인까지 화해시킨 비결은 모두에게 파이의 몫을 더 키워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실제로 파이의 크기를 끊임없이 키워감으로써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지구의 생태계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경제성장이야말로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이다. 경제성장은 기술적 파괴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성장 자체가 점점 위력을 더해가는 파괴적 기술의 발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과업은 세계를 위한 갱신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격동이 20세기의 참신한 이데올로기를 낳은 것처럼, 다가오는 생명기술과 정보기술 혁명을 맞이해서도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10년은 치열한 자아성찰과 새로운 사회-정치 모델 구상이 두드러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자유주의는 1930년대와 1960년대 위기 때처럼 다시 한 번 자기 혁신에 성공해서 이전보다 더 매력적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전통적인 종교와 민주주의는 자유주의가 주지 못하는 답을 줄 수 있을까? 그들은 아주 오랜 지혜를 활용해서 갱신된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와 깨끗이 단절하고, 오랜 신이나 민족뿐 아니라 근대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마저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가 된 걸까?
현재 인류가 이런 질문에 대해 어떤 합의를 이루기란 요원해 보인다. 우리는 여전히 환멸과 분노의 허무주의적 순간 속에 있다. 사람들은 옛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잃었지만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다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인류의 곤경에 대한 잠재적 해법을 탐색하기 전에 우리는 기술이 제기하는 도전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혁명은 아직까지는 요람기에 있다. 그것이 현재 자유주의가 직면한 위기에 어느 정도까지 책임이 있는지는 논쟁적인 주제일 수 있다.
기술혁명은 조만간 수십억 인간을 고용 시장에서 몰아내고, 막대한 규모의 새로운 무용(無用) 계급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이는 현존하는 이데올로기는 모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사회적,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질 것이다. 기술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멀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대량 실직, 혹은 개인 실업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전망 앞에서는 아무도 무관심한 상태로 있을 수 없다.
첫댓글 오랜만에 만나는 만촌의 필설이 우선 반갑지만
내용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감이 잘 잡히지 않네요.
나이탓으로 돌리기 보다
제 수준의 바닥이 들어난 것 같기도 하네요.
낙솔! 잘 지적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책 내용이 너무 난해하여 소생도 책 읽기를 몇 번이나 중단했었지요.
그래도 철학, 역사, 과학을 넘나드는 하라리의 독특한 해박한 지식과 탐구정신에 매혹되어
500 쪽의 대작을 끝까지 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책을 발췌 요약하다보니 연결이 잘 안 되는 곳이 많을 듯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책 줄거리를 옮겨 보는 이유는
정독을 통해 정리하면서 이해를 확실히 하고 보다 오래 기억하기 위한
제 나름의 독서의 한 방법입니다.
결국 '독서광장'이 있기에 가능한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