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하는 인생 2부
J가 출소한지 몇 개월만에 신장염이 악화되어 수술하지 않으면
안될 상태여서 어느 친구에게 부탁하여 수술비를 지원받았다고 한다.
수술하고 퇴원한 그를 처음으로 상면하였을 때를 기억컨대
예전의 우람한 몸집과 부유한 인상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퇴원하자마자 돈이 궁한 나머지 옛날처럼 카달로그를 들고
다니면서 발품으로 영업을 하였지만 단 한 건도 성사시키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말았다.
하얗게 머리카락이 세어버린 그를 맞이하는 사업장마다
흔하게 듣는 말이 이제, 어르신이 찾아오시지 말고
젊은 직원을 보내십시요라는 주문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노인으로 취급당하는 마당에서 더 이상 영업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하였을 것이다.
J가 먹고 살 길을 모색하면서 고심하던 중 하늘이 도운 것인지
그의 처지를 가련하게 여긴 어느 친구의 추천으로 쥐꼬리만한
월급관장의 자리를 얻게 되어 숙식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가 헬스클럽에 취직한지 몇 개월이 경과하였을 즈음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
사연인즉, 오늘 밤에 딸과 저녁약속이 있으니 오후 6시~9시까지
헬스클럽을 지켜달라는 부탁이였다.
그의 사정이 딱하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사정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저녁 6시경에 그의 체육관으로 찾아가서 관장대리 근무를 하였다.
그의 사무실은 3평정도의 규모인데 구석에는 접이식침대가 있었으며
가스난로와 전기밥솥, 식기들이 눈에 띄였다.
침대 위에는 담요와 솜이불, 베개가 차곡차곡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갓 삶아낸 고구마를 전기 밥솥에서 꺼집어내어 나에게 대접한 후
곧장 딸을 만나기 위해 외출하였다.
나 역시 대리근무하는 입장이니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기에
고구마 몇 개가 저녁식사가 되고 말았다.
저녁 10시경 그가 흐뭇한 표정으로 체육관을 들어서면서 하는 얘기가
<딸을 만나보니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가 체육관으로 돌아온 후 계속 신상 얘기를 꺼집어내는 것이여서 거의
자정이 임박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주간에는 외로운 줄 모르고 체육관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밤늦게 잠자리에 들때면 왠지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지고 마음이 심란하여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온 날을 돌이켜보면 헛된 일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였으며
물질적인 욕심을 부려보았으나 돈을 벌지도 못하였고 결국은 이렇게
추락하고 말았다는 일종의 신세타령이였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부터 그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으며
생업에 종사하다보니 짜투리 시간을 낸다는 것 또한 쉬웁지가 않았다.
그가 두 번째로 시외지역의 월급관장으로 취직하였다는 소문을
풍문으로 전해 들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인지 아니면
그가 형편이 잘 풀린 탓인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 간에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5년이상이 경과하였으며
어느날 그와 교류하는 후배로부터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가 두 번 째로 취업한 헬스클럽에서 숙식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고스란히 월급 전액을 저축할 수 있었으며
그동안 적립한 돈이 자그만치 5천만원 이상이여서
현재 몸담고 잇는 헬스클럽을 인수받아 자립하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J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생존할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연락두절한 상태에서 뼈를 깍는 노력을 감당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렇지 않고 이 사람 저사람에게 심려를 끼치고 살았다면
주위에서 아무리 걱정하고 위로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싶어진다.
J가 전문성을 갖고 잘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헬스클럽 뿐이였으며
남들이 안된다고 말하는 사업인데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가 절벽 위에서 떨어져 죽지않고 다시 살아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다.
J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고의 세월을
묵묵하게 잘 참아낸 것을 내 일처럼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동병상련의 세월을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를 찾아가면 예전처럼 따끈한 고구마를 밥솥에서 꺼집어 내어
다정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가 죽음의 골짜기에서 기사회생하였으니 앞으로는 더욱 알차고
보람된 인생을 살아갈 줄 믿으면서 이 글을 마치고저 한다.
첫댓글 http://cafe.daum.net/maylove520/HHlJ/11207/ 보낸날짜 2010년 3월 23일 화요일, 오후 14시 48분 58초 +0900
보낸이 "어린왕자의 들꽃사랑마을 운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