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령 또는 우리의 왕 / 김분홍
이것은 두 짝, 권력에 관한 보고서이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당신은 스킨십을 좋아해
자르려는 자와 붙어 있으려는 자의 대립으로 각을 세우고
같은 말을 쫑알대는 손가락에 권력이 붙는다
살을 섞으며, 당신을 사랑했다
뼈를 추리며, 당신을 증오했다
같은 동작을 세뇌시키는 당신은
뼈대만 남은 마지막 자존심
당신의 부름에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12월의 볼륨까지는 고백이 필요하다
온몸을 좌우로, 상하로 굴곡 있는 성격을 만든다
당신의 몸에서 땀방울이 떠나고 있다
권력의 잔고가 쌓인다
가슴에 왕을 만들 때까지 밥그릇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아령을 찌그러뜨리며 근로자들이 첨탑 농성을 하고 있다
아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우리의 왕
당신의 권력에 군살 한 근 붙지 않는다
<시해설: 김정수>
등단작 ‘아령 또는 우리의 왕’은 심사위원들로부터 “명징한 현실 인식과 날렵한 진술이 오히려 알레고리를 중층적으로 해석하는 힘이 되고 있다”며 “현실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잃지 않는”다는 호평을 들었다. 이 시는 ‘아령=권력’이라는 전제로 시작된다. 권력의 속성을 아령과 살을 빼려는 당신을 통해 보여준다.
권력을 소유한 당신은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스킨십을 좋아”한다. 그리고 “같은 동작을 세뇌”시켜 “굴곡 있는 성격”을 만들려 한다. 당신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자르려는 자”, 즉 사용자의 속성이다. 반면 “붙어 있으려는 자”는 “뼈대만 남은 자존심”으로 “당신의 부름에 암묵적으로 동조”할 수밖에 없다. 사랑과 증오가 교차한다.
아령, 즉 권력을 “찌그러뜨리며 근로자들이 첨탑 농성을 하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 시가 무얼 말하려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12월의 볼륨”은 임금협상, “뼈를 추리”는 것은 정리해고 대상자들의 첨탑 농성이다. 회사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당신이 군살 하나 없는 몸을 만들기 위해 흘리는 땀은 근로자들의 피와 땀이다. 자칫 빠지기 쉬운 알레고리나 구호를 아령이라는 사물을 통해 잘 극복하고 있다.
러닝 머신 / 김분홍
발자국이 알리바이를 만들고 지나간다
낯선 발자국 위에 발자국을 찍는 발자국
가보지 못한 여행지를 설정하고 달린다
가야 할 곳이 궁금할 때마다
길을 펼쳐놓고 한 장 한 장 덧댄다
페이스메이커가 없는 페이스에서
나는 완주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출발에 실패한 것이다
속도와 속도 사이에는
목적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등만 보인다
다람쥐처럼
햄스터처럼
거대한 머신 위에서
당신 안엔 또 다른 당신이 달리고 있고
나는 속도를 밀어내며 속도를 쫓아간다
출발한 곳을 모르듯이 도착한 곳을 잊어버린 여정
올라서는 순간 7호선이고 내려서는 순간 세종시 버스 안이다
어느 구간에서 속도를 벗어나야 할까?
속도가 속도를 갈아끼운다
속도가 쓰러진다 나는 그 속도를 더한다
허기진 날에는 초코파이가 마라톤 완주 메달로 보일 때가 있다
가속도가 붙는다
쓰러진 곳은 언제나 목적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