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이방 사도가 되기까지
▶ 오늘의 본문 : 갈라디아서 1장 11-24절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Ⅰ. 그림으로 보기
1. 1장 13-14절을 표준 새번역이나 영어 번역을 읽어보고, 회심 전에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① 갈라디아서 1장 13-14절 :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적에 한 행위가 어떠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이미 들은 줄 압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또 아주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나와 나이가 같은 또래의 많은 사람보다 유대교 신앙에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②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구속하신 성도들을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유대교에 열심인지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열심이었으나 그 열심으로 예수님을 박해하고 예수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였다는 것이다.
※ 지나치게(exceedingly zealous of the traditions/유대교회의 전통) :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의 균형.
2. 언제 바울이 아라비아로 갔다는 말인가요? 거기서 무엇을 했을까요? (지도)
① 바울은 다메섹 도상 계시 사건이후에 아라비아로 갔다. 성령님께서는 바울을 아라비아로 인도했다.
② 아라비아는 사막과 광야의 땅이다. 모세의 연단을 연상시킨다. 바울은 약 삼년 동안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했을 것이다.
3. 오늘 본문의 내용으로 봐서 바울사도의 전도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까?
① 사도행전 9장 20절 22절 :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② 17-18절 :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4.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갔을 때 무슨 소문을 들었다는 것입니까? 소문의 내용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십시오.
① 21-23절 :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②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 후에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다는 말은 베드로를 만난 이후에는 줄곧 예루살렘에서 떨어진 지역에서 활동 했다는 뜻이다. 그로인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바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그와 영적으로 연합되었음을 나타낸다는 말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오일 동안 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를 만나 교제한 후에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유대의 교회들은 아직 바울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다. 바울의 사도로서의 소명과 그의 전도 사역은 이와 같이 열두 제자들과는 달리 독립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③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떨어진 이방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유대에 있는 교회가 바울을 대면하여 알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을 박해하던 그가 진멸하려고 하였던 그 믿음을 전한다 함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참으로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기이한 역사였다. 우리도 바울처럼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Ⅱ. 사건으로 겪어 내기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것들은 교회 식구들과 의논해야 하고, 어떤 것들은 의논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의논하고 의논하지 말아야 하는지 나누어 봅시다.
Ⅲ. 가슴으로 이해하기
1. 바울은 옛날 자기가 교회를 핍박하던 부끄러운 이야기를 왜 끄집어내어 하는 것일까요? 바울의 심중을 들여다보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①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교회를 핍박했던 이야기를 했다.
②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이 중요하다. 이론은 힘이 없으나 경험은 힘이 있다. 율법은 힘이 없으나 은혜는 힘이 있다.
2.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주장합니까? 언제 어디서 깨닫게 된 것일까요?
① 11-12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 우리가 복음을 배우지만 사실은 복음은 배운다고 아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아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만나 주셔야 복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②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다음 아라비아로 가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주님께서 만나 주셔야 한다.
3. 여기서 바울은 왜 예루살렘과 자신의 차별을 주장할까요? 그렇게 하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① 바울이 다메섹 사건 이후 삼년 만에 게바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는 것은 자신이 전한 복음과 자신의 사도직이 사도들에게 의존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삼년 만에 베드로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도 그와 함께 단지 십오일을 머물렀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십오일을 머무는 동안도 베드로 외에 주의 동생 야고보만 보았을 뿐 다른 사도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4. 바울사도 자신이 언제부터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었고(그것을 언제 알았는가), 자기가 받은 사명은 무엇인지 언제 깨달았습니까? 여기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① 11-12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② 사도행전 9장 15절 :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다메섹 도상)
③ 에베소서 3장 8절 :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Ⅳ. 영혼에 새기기
본문 내용이나 공부한 내용을 마음에 그려보면서 묵상해 봅시다. 처음엔 성경 내용으로 시작하지만 후에는 모든 생각을 접고 빈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기다려 보십시오. 말씀 안에서 주님과 교재를 나눈 것이 있으면 간직하여 당신의 영적 삶에 적용하며 사십시오.
Ⅴ. 삶으로 옮겨 내기
1. 이전에 사울같이 악한 사람, 즉 교회를 아주 없애버리려고 했던 사람을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시는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나누어 봅시다.
2. 자기 혼자 기도하다가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들과 바울의 차이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