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백제시대), 선녀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는
선운산(현 도솔산 : 전북 고창군 아산면) 기슭 선운리 마을에
가끔
산적과 해적들이 나타나 주민들을 괴롭혔다.
☆☆☆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면 나눠먹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우면서
오손도손 살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도적 떼였다.
『도적 떼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없을까요?』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어야지.』
마을 사람들은 걱정만 할 뿐
별 대책 없이 늘 불안과 초조 속에 지냈다.
☆☆☆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웬 낯선 영감님이 나타나 촌장을 찾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는 떠돌아다니면서 소금과 종이를 만들어 연명해 가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이 마을이 소금을 굽고 종이를 만들기에 좋을 것 같아 발길을 멈췄으니
오늘부터 마을 입구에 움막을 짓고 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
비록 허름한 차림새였으나
인자하게 생긴 노인인지라 마을에선 쾌히 승낙했다.
노인이 인근 해변에 나가 바닷물을 퍼서 소금을 만들 때면
마을 사람들은 따라가서 일을 거들며 소금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은
아는 것이 많은 할아버지를 자연 따르게 됐고,
노인은 친자식이나 손자를 대하듯
늘 친절하게 마을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
『할아버지, 큰일났어요.』
『무슨 일이냐?』
『해적들이 나타났어요.』
☆☆☆
해적들은 벌써 움막으로 들이닥쳤다.
『음, 처음 보는 영감이로군.
목숨이 아깝거든 가진 것을 모두 내놓으시오.』
『보시다시피 나는 가진 것이라곤 소금밖에 없소.
가져가고 싶은 만큼 갖고 가시오.』
해적들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노인의 태연한 모습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저희들끼리 쑤군대면서 소금을 한 짐씩 지고 갔다.
☆☆☆
마을은 얼마간 평화로웠다.
『할아버지, 바다 한가운데 이상한 배가 나타났어요.』
『이번엔 해적이 왔느냐?』
『아니어요. 사람 기척이 없는 빈 배여요.
사람이 보이면 물 속에 잠기고
사람이 숨으면 물 밖으로 솟아 나오는 이상한 배가 나타났어요.』
노인이 바닷가에 다다르자
배는 노인을 향해 다가왔다.
동리 사람들은 눈이 둥그래졌다.
『사람을 보면 숨던 배가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요?』
☆☆☆
노인은 그 배의 뜻을 아는 듯 배에 올랐다.
그때 하늘에서 음악소리가 울리면서 백의동자가 나타났다.
『할아버지! 저는 인도에서 공주 님의 심부름으로
두 분의 금불 상을 모시고 이곳에 왔습니다.
공주 님께서는 동쪽 해뜨는 나라의 소금 만드는 할아버지에게
이 불상을 전하고 성스런 땅에 모시게 하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마을로 돌아온 노인은 선운리 망루에 조그만 암자를 세우고
동자가 전해 준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을 모셨다.
노인은 그날부터 염불에 열중했다.
☆☆☆
그러던 어느 날,
도둑들은 다시 노인을 찾아와 소금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거 참 안됐구려.
나는 요즘 불공을 올리느라 소금을 만들지 못했다오.』
『그래, 그렇게 부처님만 쳐다보고 앉아 있으면
밥이 나옵니까? 옷이 나옵니까?』
도둑들은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자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
그때였다. 어디선가
「어흥」하며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놀란 도둑들은
손에 든 창과 칼로 호랑이를 위협하려 했다.
이때 염불을 하던 노인은
한 손으로 호랑이를 어루만지면서 돌아갈 것을 권했다.
그러자 호랑이는 노인 앞에 공손히 절을 하더니
어슬렁어슬렁 산으로 올라갔다.
☆☆☆
이 광경을 목격한 도둑들은
노인이 예사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알아 뵙지 못하고 무례했던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도둑들은 엎드려 절을 하면서 새사람이 될 것을 맹세했다.
『이 시각부터 남의 물건 훔치는 일을 그만두고 사람다운 사람이 될 것이니
저희들에게 새 삶의 길을 열어 주십시오. 노인 어른.』
『거 참 반가운 일이군요. 잘 생각하셨소.
내 오늘부터 소금 만드는 법을 일러줄 터이니 열심히 배워
착하게 살도록 하시오.』
노인은 해적들에게 소금 만드는 법을 일러줬다.
☆☆☆
이 소문을 들은 선운산 도적들도 마을로 내려와
노인에게 참회하며 착하게 살 것을 맹세했다.
산적들에게는 종이 만드는 법을 알려 주면서
거처인 굴속에서 부처님께 예불하며 참회하는 불자가 되도록 가르쳤다.
☆☆☆
그러던 어느 날.
『이제 할 일을 다했으니 가 봐야지.』
노인은 마을을 떠날 채비를 차렸다.
동리 아이들가지 울면서 매달렸으나 소용없었다.
『정 가시려면 이름이나 알려주시지요.』
『늙은이가 이름은 무슨 이름…. 난 검단(黔丹)이라 하오.』
『아니, 할아버지가 바로
그 유명한 검단스님이시라구요?』
동네 사람들은 모두 놀랬다.
특히 전날의 도둑들은 그제야 노인의 뜻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깎고 출가할 것을 결심했다.
☆☆☆
그후 선운사는 89개의 암자와 1백 89동의 요사채,
24개의 굴이 있는 대가람이 되었다.
1954년까지 고창군 심원면 고전리 부락에는
검단선사 이후 불을 때서 소금을 만들던 흔적이 있었는데
46년 삼양염업사에서 그곳에 염전을 만들었다.
그 후 삼양염업사에서는
매년 봄·가을이면 선운사에 소금을 기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