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에는 잇사갈의 지휘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헌물을 드렸으니
민수기 7장 18-23절「둘째 날에는 잇사갈의 지휘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헌물을 드렸으니 그가 드린 헌물도 성소의 세겔로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열 세겔 무게의 금 그릇 하나라 그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이며 화목제물로 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라 이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의 헌물이었더라」
“잇사갈의 지휘관 수알의 아들 느다넬” 잇사갈은 밧단-아람에서 태어난 야곱의 아홉 번째 아들이자 레아의 일곱 자녀 가운데 다섯 번째인 아들. 레아는 자기가 임신하지 못하던 기간에 한 하녀가 자기 남편의 아들을 낳도록 허락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상 또는 삯으로 이 아들을 주셨다고 생각했다.
창세기 49장 14-15절「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게멤) 나귀(하몰)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잇사갈은 양 우리에 쭈구리고 있는 뼈(게렘) 나귀라는 의미를 갖는다. 양 우리는 미쉬파트(공의)다. 샤파(발가벗기다)에서 유래된 말이고, 말씀으로 발가벗겨져서 세상에 온 자를 의미한다. 세상에 온 자들이 양이다. 바인은 분리되어진 양 우리를 의미한다. 게렘은 뼈라는 의미로서, 단단히 묶다 라는 의미다. 뼈가 흙과 단단히 묶여져 있다는 의미도 되고, 율법에 매여있다는 의미도 된다. 하몰(나귀)은 율법을 의미한다. 묶여져 있는 뼈를 게렘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하나님의 집을 벗고, 벌거벗은 이 나귀들이 흙집을 입고, 양으로 우리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것이다. 그들이 율법을 지켜서 자기들이 원하는 하나님을 찾으려고 가기에 쭈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쉴(메누하)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토브)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왜 나귀가 세상에 왔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안식을 주겠다고 하는 그 안식은 샤바트인데, 여기는 메누하 이다. 메누하는 마노아흐의 여성형이다. 마(말씀)노하트(안식)는 말씀 안에서 안식이라는 의미다. 노아흐는 누아흐에서 유래되었고, 노아와 관련이 있는 단어다. 누아흐나 노아는 안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누아흐는 세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나, 누아흐는 세상에서 괴로워하다가 말씀 안에서 안식을 보고, 그 안식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토브는 선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안식이 돌아오므로 선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에레츠)이 기쁨이 된다. 에레츠는 땅이지만, 물질세계를 의미한다. 이 나귀들이 기쁨을 보고 세상에 오는 것이다. 짐을 지고 내려왔다는 것은 선악을 알게하겠다는 율법의 짐을 지고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집을 벗고, 흙집을 입으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
잇사갈이 하나님이 함께 세상으로 가자 라는 말을 듣고 기쁨으로 같이 내려왔으나 흙집을 입는 순간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어깨에 짊어진 율법을 가지고, 아바드(마음의 밭을 경작하는 것) 하려고 한 것이다.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압제는 세상의 주인인 사탄의 압제 아래 섬기다 라는 의미다. 땅을 경작하는 것은 왜 인간이 세상에 왔으며 죽음 이후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선물이라는 이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누구나 심령 속의 땅을 경작하데 되면, 좋은 밭으로 변하듯이 영적으로 자신의 존재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느다넬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선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이름은 주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나단과 하나님을 뜻하는 엘이 합쳐져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상징한다. 느다넬은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나다니엘(바돌로메)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요한복음 1장 50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누군가의 아들로 불리던 삶이, 하나님의 선물 같은 존재로 바뀐다. 태초에 천지만물의 정체성을 부여하셨던 말씀께서, 부름 받은 이들에게 숨겨있던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 이름 지으신 것이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이라는 출신으로 예수를 보지도 않고 판단했다. 단지 시골이었을 뿐 아니라, 메시야가 베들레헴으로부터 태어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시했던 그가 바로 메시야였음을 고백하고 함께 길을 걷는다. 또한 부르심과 따름 속에서 무화과나무는 예수님과 나다나엘 둘 만의 비밀의 영역이 된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믿는 이에게 더 큰 일을 보여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예수님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바로 그 큰일이었다.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 세상으로 내려가고, 마지막 아담으로 인해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꾼 내용과 일치한다.
창세기 28장 12절에서『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야곱이 벧엘이라는 곳에서 돌베게를 하고 잠을 자는데, 꿈에서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본 것이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다나엘이 순식간에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고백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 있었다는 말은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하는 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말자,『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율법은 자신의 힘으로 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도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결국 무화과나무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이스라엘은 천하만민의 모델이다. 천하만민은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들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표본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표뵨을 선택하여 천하만민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