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치동맹이 베팅일까?
김호림
기호일보 입력 2023.06.16 지면 14면
지난 8일 주한 중국 대사는 야당 대표와의 만남에서 미·중 패권경쟁과 관련해 "현재 중국의 패배를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9일 외교부는 중국 대사를 초치, ‘외교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이라는 이유로 ‘엄중 경고’를 했고, 연이어 중국 외교부는 주중 한국 대사에게 한국 측이 주한 중국 대사에 보인 부당한 반응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불만을 표명했다고’ 한다.
이러한 중국 대사의 파문은 한·미·일 안보·기술 동맹을 중시하는 우리 정부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중국이 미·중 패권경쟁에서 승리자가 될 것을 인지해 우리가 영·미·일 동맹에서 벗어나 자기편에 서달라는 강요로 보인다. 미국 백악관의 관리는 이를 "분명히 일종의 압박 전술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패권이란 통상적으로 초강대국에 의해 규율되는 시스템이다. 패권국은 세계 체제에서 질서 유지를 위한 보편적 규칙을 강행할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하며, 대부분 국가에 그러한 체제 유지가 호혜적인 편익을 제공해 준다는 공감을 형성시켜야 한다.
패권국의 지도력이 쇠퇴하거나 경쟁국들이 기존 체제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면 어느 때라도 도전해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하여 세계 체제는 힘의 균형에 따라 단일 패권국인 일극체제, 복수의 양극체제와 다극체제로 운영된다. 이같이 세계는 2차 대전 이후 미·소 냉전의 양극체제로 갈라지다가, 소련 붕괴로 미국 주도의 일극체제로 운영됐다.
그간 미국은 포용정책을 통해 중국을 미국 중심의 기존 세계 경제질서에 편입·통합시키려 노력했으나, 오히려 중국은 경제력을 앞세워 미국의 일극체제를 무너뜨리려는 패권 도전을 시도한다. 과연 중국의 패권 도전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미국 다트머스대학의 국제정치학자 2명이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즈(Foreign Affairs, 2023년 5·6월)’에 게재한 ‘다극체제의 신화’라는 장문의 논문에는 미국과 중국 국력의 실체를 분석해 놓았다. 결론은 지난 20여 년간 미국의 지배력이 이전보다 다소 축소됐지만, 미국의 힘은 어느 국가보다 우월한 최정점에서 일극체제를 유지한다는 주장이다. 그 힘의 원천은 군사력과 경제력이다. 문제는 오늘의 군사기술과 글로벌 경제구조 성격상 도전자가 패권국을 따라가기에는 장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 논문에서 분석한 미·중의 실증적 국력 비교 자료는 이러하다. 먼저 경제 부문에서 중국의 공식 자료를 검증하기 위해 인공위성으로 중국의 밤 동안 빛의 강도를 측정한 후 전기사용량을 계산해 GDP를 추정했다. 그 결과 중국의 실제 GDP는 공식 발표보다 3분의 1이 낮았다. 또 특정 산업 분야에서의 각국 기업 수익성을 비교해 보면 세계 2천 개 최상위 기업 중 미국이 74%에 달하고 중국이 11%를 차지한다. 더욱이 최첨단사업 분야에서는 미국이 53%를 차지하는 반면 중국은 6%에 그치는 실정이다.
그다음 지적재산권 사용료를 기준으로 한 기술력을 비교해 보면 2021년 중국의 특허사용료 수입은 120억 달러였으나 미국은 1천250억 달러로 10배가 넘었다. 군사 분야에서도 중국군의 급속한 현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글로벌 경쟁 상대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즉, 미국은 공중·공해상과 우주를 지배하는 진정한 글로벌 군사력을 가졌으나, 중국은 단지 지역적 군사력에 머무르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를 핵잠수함, 항공모함, 대형 수송기 등 13개 분야별로 비교해 보면 중국은 5개 부문에서 미국 수준의 20%에 못 미치고, 단지 순양함·구축함과 군사위성 2개 부문에서 미국 군사력의 3분의 1 수준을 넘는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양국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수십 년의 시간과 자원, 기술이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흔히 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한 패권경쟁이 세계적 긴장으로 고조되는 상황을 ‘투키디데스 함정’으로 설명한다.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국의 구조적 긴장이 전쟁으로 치닫는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패권 도전 국가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구축했던 군사와 경제력이 악화 또는 쇠퇴할 경우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조급함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상황을 더 위험하게 생각한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했으며, 주한 중국 대사의 일탈도 ‘탈중국’(decoupling)이나 ‘위험회피’(de-risking)라는 역풍에 조급함을 드러냈을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베팅은 이기는 편에 선다는 뜻이다. 국가는 국민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하므로 승자의 편에 서는 것이 안전하다. 그러나 국민이 자유인으로서 진실을 존중하며 살아가려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보편적 가치가 우선돼야 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체제와 가치를 공유하는 상대와 연합해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는 일이 정상적인 국가의 사명이다. 따라서 이러한 가치동맹을 베팅이라 부르는 건 외교관이 사용할 적절한 언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