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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유표(經世遺表) 12권 倉廩之儲3
*<倉廩之儲3>에서는 환곡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곡식 한 섬을 15말이 아니라 10말로 정하여 계산과 운반의 편의를 도모하고, 창고를 제대로 지어 곡식을 썩지 않도록 할 것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환곡이 필요한 이유는 세 가지인데, 군량미 등 창고의 곡식을 썩지 않도록 매년 절반씩 새 곡식으로 바꾸는 것이 첫째요, 이자를 강제로 징수하여 국가와 관리의 필요에 충당하는 것이 셋째요, 흉년에 기근을 구제하기 위함이 셋째이다. 그런데 나라에서 창고도 제대로 못 지어 썩혀서 백성에게 나누어주고 새 곡식으로 이자까지 내라고 했으니,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원통했을까.
곡식은 장차 백성에게 나누어줄 것이니, 먼저 백성을 요량함이 마땅하다. 백성을 요량하지 않고 창고의 곡식을 증가함은 백성을 보전하는 방법이 아니다.
穀將頒民。宜先料民。不料民而增穀。非保民之道也。
환자곡(還上穀)을 나누어줄 때 민호(民戶)나 전결(田結)에 따라 하는데, 민호로 나누어주는 것을 통환(統還)이라 이르고 전결로 나누어주는 것을 결환(結還)이라 이릅니다. 그러나 민호가 있은 다음이라야 전결이 있는 것이니, 본래 백성이 없다면 어찌 빈 전지에 나누어주겠습니까? 그러므로 곡식을 다스리는 방법은 먼저 백성을 요량해야 합니다. 백성의 수효가 이미 밝혀졌다면 그 다음에 곡식 액수를 정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짐을 실어나르는 자가 먼저 그 수레의 힘을 헤아리고, 채소를 심는 자는 먼저 그 전지의 넓이를 요량하는 것과 같아서 수레가 약할 것 같으면 곧 짐의 무게를 줄일 것이며, 전지가 좁을 것 같으면 곧 씨앗을 줄여 심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민호는 경성 5부[3만 5천 800호]를 제외하면 대략 165만 호에 불과합니다.[雍正 기유년(1729) 총 호수임] 비록 누락되는 호가 있더라도, 홀아비, 과부, 떠돌이, 패잔한 호(戶)에는 환곡을 나누어주어서는 안 되고, 또 그 중에 서리(胥吏)ㆍ노예ㆍ역졸(驛卒) 등의 호도 있으니, 실지로 창곡(倉穀)을 꼭 받아야 할 자는 150만 호에 불과하므로 이것으로써 율(率)을 내면 이치에 맞을 것입니다.
15말를 한 섬으로 한 것은 고려의 나쁜 풍속이다. 먼저 말[斗]과 곡(斛)을 바루어야 곡식 액수를 정하게 되고 말과 곡이 바루어지지 않으면 그 액수를 밝힐 수 없을 것이다.
十五斗作石者。高麗之弊俗也。先正斗斛。乃定穀額。斗斛不正。不可以昭其數也。
신은 생각합니다. 천하 어느 곳에도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으로 두 가지 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결ㆍ부(結負)로써 전지를 풀이하는 것이고, 하나는 15두를 한 섬으로 하는 것입니다. 2등은 85, 3등은 70이라 하니 비록 예수(隸首)가 산가지를 잡더라도 그 예를 밝힐 수 없을 것이고, 1만은 66으로 풀이하고, 2만은 33으로 풀이하니 비록 유안(劉晏)이 문부를 잡더라도 그 등(等)을 살펴내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에 정사(政事)에 나선 자는 젊었을 때에는 항우(項羽)ㆍ패공(沛公)의 시와 투전[馬吊]ㆍ골패[江牌] 따위 놀음으로 마음 편히 놀다가 중년에 와서 하루아침에 이 곡부(穀簿)를 만나게 되어 15두를 한 섬으로 하여 15승을 모(耗)로 받는데, 고생하면서 셈을 하여보지만 승제(升除)를 하지 못하여, 문서 끝에 다만 조심스럽게 서명할 뿐, 감히 옳다 그르다 말을 못하니 아전이 그 틈을 타서 제 마음대로 농간합니다. 만약 열 말을 한 섬으로 해서, 중국 법과 같게 한다면 어찌 이에 이르겠습니까? 두 자루에 열 말씩을 담아 소나 말의 좌우에 실으면 그 힘이 견뎌낼 수 있지만, 만약 두 자루에 열 닷 말씩이라면 반드시 가지 못하고 쓰러질 것입니다.[만약 소가 건장하고 힘이 세면 좌우에 열 말씩을 싣고, 그 등에 또 열 말을 올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등에 진다면 건장한 자라야 겨우 열 말을 지는데 만약 또 닷 말을 더하면 수십 리를 가지 못할 것입니다.
볏 집[藁稈]으로 섬을 만드는데, 엉성하여 구멍이 많으니 또한 변경해야 할 풍습입니다. 그러나 열 말을 담으면 조금 가벼워서 옮기거나 출납하는 데에 반드시 새지 않을 것인데 매양 닷 말을 더 넣기 때문에 무거워진 섬을 갈고리로 당기니 구멍이 뚫어지며, 힘은 약한데 짐은 무거우니 메어붙이는 것을 금할 수 없어서 곡식 섬이 상하는 것이 많고 완전한 것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제 명령을 크게 내려서 모든 공사(公私)의 곡물은 모두 열 말을 한 섬으로 하며, 한 섬을 한 포(苞)로 한다. 그리고 창(倉)에 바치는 포(苞)는 또 날줄과 씨줄를 촘촘하게 짜고, 겨우 열 말을 담도록 해서, 인습하는 풍속을 깨끗하게 한다면, 공사 간 곡부(穀簿)가 비로소 중국 여러 문자(文字)와 어긋남이 없게 될 것입니다.
양곡(糧穀)을 배정하는 법은 본 곡식의 액수(穀額)에서 반분을 잘라서 사방 민호(民戶)에 배정함이 마땅하고 또 그 땅에 알맞은 것을 살펴서 마을 단위(單位)로 분배하고 호(戶)에다 분배하지 않는다.
其頒糧之法。宜於本額。截取其半。分排四嚮之民戶。又察其土宜。頒之以里。不頒之以戶。
가령 충주의 창고에 쌓인 곡식이 본래 16만 석이라면, 오직 8만 석만 분배해야 할 곡식이니 이에 8만 석을 2만 호에다 분배하면 호마다 양곡 4석(40말)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곡식의 숫자를 세분하면 문부(文簿)가 번거로워질 것이니 마을 단위로 분배함이 마땅하며 호에 분배함은 불가합니다.
충주(忠州) 서일면(西一面) 조원리(棗院里)는 100호이니 양곡 400석을 분배합니다.[대미 20석, 벼 200석, 조 50석, 대맥 100석, 대두 30석]
충주 북이면 유곡리는 120호이니 양곡 480석을 배정합니다.[대미 20석, 租 100석, 소미 50석, 조 200석, 보리 50석, 소두 40석, 패자 20석]
충주 서면은 기름진 땅이므로 정곡은 많고 잡곡이 적으며, 북면은 자갈밭이므로 잡곡은 많고 정곡이 적습니다. 무릇 여러 도, 여러 군ㆍ현에 양곡을 배정하는 율은 이것을 보고서 예로 함이 마땅합니다.
〇혹자는 묻습니다.
“호(戶)에 분배하지 않고 반드시 이(里)에다 배정함은 무슨 이유인가?”
“몇 호 몇 호라고 하는 것이 본래 실지 숫자가 아닙니다. 간사한 백성이 뇌물을 쓰고 향갑(鄕甲)이 손을 써서 충실한 호가 누락되기도 하고 패망한 호를 넣기도 하여 간사한 폐단이 어지럽게 일어나서 그 폐단을 이루 막을 수 없게 되니 그것이 첫째 불편함이고, 정곡과 잡곡이 7~8종이나 되어, 호마다 고르게 분배한다면 되ㆍ홉으로 나누어져서 그 숫자가 너무 세세하여 아전이 인연해서 간사한 짓을 하고 문부가 어지러워질 것이니 그것이 둘째 불편함이며, 떠돌아 없어졌거나 대가 끊어진 호에 지적해서 징수할 곳이 없으면 마을에 징수하고 친척에게 징수해서 말경의 폐단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니 그것이 셋째 불편함입니다.”
혹자는 묻습니다.
“귀족과 토호는 혹 괴로움을 싫어해서 먹지 않고 하호(下戶)에다 겹쳐 씌우며, 혹은 탐내어서 제가 많이 먹고 하호(下戶)에다 배정해서 징수할 것이니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진실로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니 마땅히 법을 만들어 마을 백성이 양곡을 받아서 마을 밖 두어 마장 되는 곳에 돌아오면 이장(里長)이 문부(文簿)를 상고한 다음 나누어주는데, 가난한 백성은 각자 제 자루에 받아서 제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면 창고 뜰에서 나누어 받은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법을 만들기를, ‘괴로움을 싫어해서 먹지 않는 자는 중한 율(律)로 다스리고, 탐내어서 많이 먹은 자는 수악(首惡)으로 처단할 것이니, 감사가 살피고 수의(繡衣, 암행어사)가 살핀다.’라고 하면, 백성이 감히 이렇게 못할 것입니다. 진실로 살피지 않으면서, 지금 호에다 분배하므로 귀족과 토호들은 반드시 이 두 가지 죄를 범하고 있으니, 마을에 분배한 뒤에야 이런 폐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릇 반을 남기고자 한다면, 먼저 움(窌) 만드는 법을 강구함이 마땅하다. 그 방법대로 짓지 않고 반을 남겨서 해를 넘기는 것은 백성을 해롭게 하는 정사이다.
凡欲半留。宜先講窌法。不如法而半留以經年者。害民之政也。
우리나라의 곳집 제도는 엉성하기가 너무 심하여 새나 쥐로 인한 소모는 오히려 적은 편에 속합니다. 한번 장마 더위를 겪으면 곧 썩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반을 남기고 반을 나누어주는데 해마다 묵은 곡식을 주면 백성은 모두 썩은 곡식을 받고 좋은 곡식을 바치게 될 것이니, 그 원통함은 무엇보다 심합니다.
무릇 곳집(倉舍)을 지으려면, 높고 건조해서 물기가 없는 구릉 위에[물기가 있고 없음을 시험하고자 한다면 泰西 水法盤으로 시험하는 방법을 이용함이 마땅합니], 땅을 파서 움을 만들고 벽돌을 구워서 쌓는데 바닥에 세 겹을 깔고 옆으로는 두 겹을 쌓으며 아울러 유회(油灰)로 이음새를 바릅니다. 아래쪽은 두루 빈틈없이 해서 새와 쥐를 막으며 화재를 방비하고, 위쪽은 바람 구멍을 많이 뚫고 구리그물(銅綱)을 쳐서 새들을 막습니다. 또 곡식을 쌓는 법은 움집 안에 옆으로 시렁을 많이 설비하고 복판에는 통로를 둡니다. 두어 섬(苫)을 쌓을 적마다 그 위에 조금 여유가 있도록 해서 훈김(鬱氣)을 통하게 합니다. 그 위에 또 옆으로 시렁을 설치해서 층층으로 쌓는데, 이런 다음이라야 곡식이 뜨고 썩는 걱정이 없게 될 것입니다.
또 매년 4월 맑게 갠 날, 한 차례 뒤집어서 볕에 쬐고 바람을 쏘여서 들여두면 장마 더위에도 거의 해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벽돌 구울 줄을 모르니 움집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이미 움집을 만들 수 없다면 반을 남기고 반만 분배하는 것은 백성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중국에 가서 전심전력하여 가마(窯) 만드는 법을 배우고 벽돌 굽는 방법을 강습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창고에 저장하는 곡식 액수를 반으로 줄여서 해마다 다 분배하는 것이 민원을 없애는 방도입니다.
吾東倉廒之制。疎略太甚。雀鼠之耗。猶屬細故。一經潦暑。卽腐敗而不可食。若半留半分。歲頒舊穀。則民無不受灰塵。而納米粟者。其冤孰甚。〇凡作倉舍。須就丘陵之頂。高燥無水氣之處。欲驗水氣有無。宜用泰西水法盤試之術。 鑿地爲窌。乃燒甓爲砌。下鋪三重。旁築二重。竝用油灰。塗縫下際。周密無隙。以防雀鼠。以備火災。上際多穿風穴。以銅網罩之。乃防雀也。又凡積穀之法。於窌舍之中。多設橫架。中通一路。每積數苫。卽其上面。稍有餘地。以通鬱氣。其上又設橫架。層層積庤。乃無蒸腐之患。〇又每四月晴旱之天。一次翻曬風涼以納之。庶乎澇暑。不至爲害。〇吾東不知燒甓。則無以爲窌。旣不爲窌。則半留半分。民之害也。不以專心專力。往學窰a285_246d法。以講燒甓之策。則寧半減穀貯之額。年年盡分。爲無怨之道也。
첫댓글 도디미 님, 책이 잘 왔습니다. 일단 읽고 난 후.. 다시..
그럼, 부담없이 감사히 읽어보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제 걱정은 마시고요~~
네 그리고 다음 주는 쉬고, '호적법'으로 넘어가네요! 땅속에서 올라오고, 공중에서 퍼지는 봄기운을 실컷 느낄 수 있는 한 주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