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일련종 법음사로 출가하여 득도수계하고,
1912년 일련종대학(현.입정대학)에서 수학한 뒤,
1918년 「일본산묘법사(日本山妙法寺)」대승가를 개산한 등정일달(藤井日達,1885~1985) 스님은
법화경 여래수량품 장항에 설해져 있는 환래귀가(還來歸家) 즉 인도에 불교를 다시 부흥시키고자
하는 서천개교(西天開敎)의 큰 웅지를 품으시고 말도 안 통하고 사상도 서로 다르며,
무소유의 행각승이지만,1931년 인도 캘커터에 도착,그 후 약 3년을 오로지 선법고(扇法鼓)에
의지한 격고선령(擊鼓宣令)의 일행(一行)하나만 가지고,인도.스리랑카의 각지를 수행하였으며,
1933년 10월 8일경에 이르러 마하트마.간디 옹을 인도 와루다의 숙(塾)으로 방문,
회견하였으며 '南無妙法蓮華經'의 五자.七字를 성웅 간디 옹한테 결연시켜 원래 의도하셨던 본서원을
성취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디 옹의 매 주기 추모식때나 세와그람(Sewagram)의 간디 아쉬람에서는
새벽기도의 첫머리에 '南無妙法蓮華經'이라고 제목 삼창을 하는 연유가
바로 등정일달 스님과 마하트마 간디 옹이 함께 비폭력(非暴力) 평화운동을 실천한 친교때문입니다.
그 당시 등정일달 스님의 인도개교의 발자취를 글로서 남겨진 것이
《와루다 일기 -성 간디 옹과의 회견기 》라는 책입니다.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발췌해 봅니다.
◎1933년
*10월10일
물질과학의 미신-정신문명을 계승하는 기근의 조락(凋落)을 탄식하는 암시서상(暗示瑞相)
또한 간디 옹이 당당하게 표식한 동양의 정신문명은,인도혁명의 새벽에는 혁명의 투사들에
의하여 복멸(覆滅)될 것이니라.이런 경우 일본으로 부터 일본의 불법을 전하려온 우리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특히 인도에서 대단히 큰것이었다는 것을 곰곰히 느꼈다.
나는 이들의 투사들 사이에서 열심히 북을 치고 제목을 부르겠다.
일본으로 부터 혁명 인도에 보내는 오직 한 송이의 꽃이다.
*10월22일
바푸지(간디 옹)는 무언의 수행이기는 하지만 섬돌 위 베란다에서 또 북을 쳐 나의 제목에
화합한다.젊은 사람들이 바푸지가 밤마다 북을 치니,어찌된 일인가 하고 나한테 물어보는
자가 있다.아마도 북을 좋아 하는 것이리라.
나는 웃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대답한데도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알 턱이 없다.
◎1938년 11월 30일 와루다 환산 행료(丸山 行遼;일달 스님의 제자) 합장.
간디 옹이 사시는 곳은 소 외양간을 수리하여 암패라의 벽을 치고,
평상 위에 암패라를 깔아 좌구(座具)를 펴서 안거하십니다.
쇠똥과 흙으로 다진 성자의 주거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보고 놀랄뿐입니다.
완전히 하리쟌(최하층계급)의 생활에 동화 시킵십니다.
흡사 高祖 日蓮聖人의 만년의 생활을 연모케 하여 송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뷔노바지의 처소에서 납월 팔일 단식.
"오오, 단식하는가. 왜 단식하는가"-간디 옹
"불교가 또 다시 퍼져서 인도가 빨리 독립하고,옹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하여서 입니다."-환산(丸山)
◎1938년 정축년 납월 팔일(12월 6일)
왕사성(王舍城)
성자(聖者)의 일기(一期)는 많이는 비참 그것입니다.
그 중 원대한 성전,다만 제일보로써 그 수명에 끝남을 고할때,슬픔은 한층 깊게 된다.
그 일기의 만년이기는 하지만,그 서원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전도의 곤란은 생전의 수난은 아니였었다.
만년은 이제부터 겨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는 한 사람의 전투여서는 안된다.
일체 중생을 전장에 이끌지 않으면 안된다.
고조 대성인의 미노부(身延)의 은서(隱棲),3칸 4면의 초암,
바람이 통하고 별이 드는 중에 9개년의 생활이 그때 그때에 관한 소식을 뵈올때마다,
얼마나 슬픈 모양이 연모되는 것이었던가.
와루다의 옹의 말년도 인도민족 최저급의 생활자에 똑 같음을 알려
우분토괴(牛糞土塊) 중에 그 만년의 노병(老病)의 몸을 뉘어,
임종의 저녁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눈 앞에 상기하며,
눈물도 멎지 않는다.
생전의 수난은 참아서 참지 못할것도 아니다.
만년의 이 생활은 누구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마저 참아내어 만족한 심지에 사는것은 홀로 성자만이 이뤄낼 것이겠다.
아 아! 졸자(拙者)에는 미치지 않는 것이면서,
이 뒤를 쫓아서 만년을 끝내고 싶다.
남의 일 같지 않아 슬픔의 정이 솟는다.
설(說)보다는 염(念)에,
기도하고 기도하며,
염(念)하고 염(念)하여,
격고선령(擊鼓宣令)의 창제삼매(唱題三昧)에 들어가라.
그래서 통과하기 거북한 우원(迂遠)일 것이라 의심하면 안된다.
통하지 않드라도,우원이드라도,
이 외에 어떠한 방편까지도 정직하게 버려라.
성자 앞에서는 공부조작을 하여서는 안된다.
(이하 생략)
1985년 세수 101세로 천화(遷化 )하셨습니다.본화지용 상수 가운데 무변행(無邊行)보살의
후신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스님, 그 책이 우리말로 번역된 것인지요? 장차 자료를 좀더 구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명색 인도철학을 한 사람이라, 또 간디 논문도 썼고, 와르다에도 가보았잖아요? 그래서 관심이 있고, 언젠가는 이 관계 글을 쓸 생각입니다. 바푸지, 에서 바푸는 아버지라는 말이고 지는 님이라는 말입니다. 간디지, 라고도 합니다. 뷔노바는 그냥 우리말로는 비노바, 라고 하면 됩니다. 간디의 제자입니다. "비노바 바베"라는 전기가 실천문학사에서 번역되었고, 몇 권의 저서도 번역되었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후지이 닛타츠 스님의 사진은 처음 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참, 와르다에도 일본산 묘법사의 산티 스투파가 있습디다. 가보았습니다. 일본 스님은 일본에 갔다고 해서 못 만났고요. 나무아미타불
와루다일기는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없고,초역으로 일부분 번역된 것을 제가 모시던 스님이 가지고 계셔서 필요한 부분만 제가 필사해 놓은것입니다.
아, 스님 대단하십니다. 옛날 스님들이, 인쇄술이 없을 당시의 스님들의 구도열을 보는 듯 합니다. 필사를 하시다니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일본에서 원서를 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등정일달스님의 사상을 담은 책은 제가 일본원서로 몇 권 가지고 있고, 제가 모시던 스님이 필요해서 책 한 권 전체를 번역해서 인쇄본으로 만든게 있지만 출판목적이 아니라서 공개하기가 그렇습니다. 연구용으로 비공개로 보시겠다면 보내드리겠습니다.